로그인부모님 회사의 부도를 막기 위해 수락한 결혼. 서로의 조건을 충족하는 거래였다. 모두가 두려워 하는 조직의 보스인 그가, 나를 대할때만은 다정했다. 첫 눈에 반했다는 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음을. 나를 놓치면 평생 혼자일 것 같다는 그의 말이 진심이었음을. 처음엔 믿지 못 했다. 사랑이 처음인 남자와 사랑을 모르는 여자. 차곡 차곡 쌓아가는 오해를 걷고 나자 숨어 있던 사랑이 보였다. 결혼 후 비로소 시작된 진짜 연애.
더 보기거울 앞에 선 남자가 코트를 걸치며 옷매무새를 확인했다.
윤기가 나는 코트는 한 눈에 봐도 평범하지 않은 고급스러움이 묻어 났다.
코트 안으로 단단한 몸을 잘 감싼 수트 역시 그랬다.
남자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반듯한 어깨선이나 자연스러운 허리선, 구김 하나 없는 바지는 완벽 그 자체였다.
적당한 근육이 있는 몸은 큰 키를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했다.
옷차림에 어울리는 판이 큰 시계를 차는 것으로 외출 준비는 끝났다.
차도혁.
호텔 체인과 카지노, 고급 프라이빗 라운지를 운영하는 태원 그룹의 서열 1위.
음지에서 시작한 사업체를 양지로 끌어 올린 입지적인 인물.
그가 조직원이자 오랜 친구 이민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주말, 결혼식이 있을 호텔 주변은 온통 차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태원 그룹 소유의 호텔에서는 당연한 주말 풍경이었다.
예비 신부와 신랑이 1순위로 꼽는 예식홀이 바로 태원 호텔이었다.
이 호텔의 회장인 도혁을 제치고 부회장인 민석이 먼저 결혼을 한다.
다른 건 몰라도 결혼만큼은 도혁을 이겼다며 놀리던 민석이었다.
타인의 결혼에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었는데 친구의 결혼이라 그런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도혁을 닮은 큰 덩치의 SUV가 등장하자 나란히 서 있던 차들이 슬금슬금 움직여 길을 만들었다.
태원 소속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 도혁의 차.
그의 차가 웅장한 엔진음을 도로에 남기며 호텔로 진입했다.
정문에는 고급 세단이 쉬지 않고 사람들을 내려 주고 떠났다.
그 세단에서는 수트를 잘 갖춰 입은 남자들이 내렸다.
태원 그룹의 수장, 차도혁이 도착했다.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조직원들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도열해 있었다.
도혁이 차에서 내리자 절도 있는 동작으로 일제히 상체를 깊이 접었다.
우두 머리 늑대의 등장에 모두 숨을 죽이며.
예식홀까지는 조직원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서 평범하지 않은 아우라를 내뿜는 도혁이 홀에 도착해 자리로 모셔졌다.
예식홀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조명을 받아 고급스러운 빛을 반사하는 샹들리에, 홀 곳곳의 생화 장식, 벽면과 천장은 크리스탈이 눈가루처럼 뿌려져 눈이 부실만큼 반짝거렸다.
조도를 낮춘 홀의 내부에서는 새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돋보일 수 밖에 없었다.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를 위해 모든 것을 계산해서 장식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가족보다 조직원들이 더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가 되겠다.
예식홀을 꽉 채운 수트차림의 남자들.
모두 태원의 조직원들이었다.
그 안에서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
축가가 끝나자 하객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 났다.
예식홀을 나가는 하객들을 보며 도혁은 생각에 잠겼다.
결혼.
도혁의 평생에 있을 수 있는 이벤트일까.
오늘 신랑인 이민석이 오랜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룹의 서열 2위가 아니었다면 참석이나 했을까.
비혼 주의자는 아니지만 기회를 갖지 못 하고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유달리 외롭다 느껴졌다.
"회장님. 이동하시죠."
지인 피로연에 참석 예정인 도혁을 모시기 위해 비서 실장인 강태오가 다가 왔다.
“꼭 가야 하나?”
"회장님이기도 하고 신랑 친구기도 하니까 꼭 가야지. 피로연장에서는 회장, 비서 타이틀 벗고 친구로 돌아가는 거 어때?"
신랑인 이민석, 비서 실장인 강태오 그리고 차도혁.
형제나 다름없는 오랜 친구 사이였다.
그래서 도혁과 함께 태원 그룹에서 일을 하게 된 것도 자연스러웠다.
"그래. 가야지. 그래야 자극 받아 나도 결혼하겠지."
자리에서 일어 난 순간, 도혁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됐다.
태오의 시선이 도혁을 따라 갔다.
"아, 신부 후배라고 들었어. 오늘은 신부 들러리로 . 왜. 마음에 들어?"
신부의 후배.
도혁의 시선이 움직이는 여자를 따라 갔다.
큰 키에 가는 몸선은 모델같고 동글한 얼굴은 강아지같이 귀여웠다.
뛰어난 미인은 아닌데 눈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머리를 환기시키는 싱그러운 기운이 도혁을 감쌌다.
도혁은 눈을 감았다 천천히 뜨며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그저 예쁜 여자에 대한 수컷의 호기심, 그 정도.
“신부 친구들도 있을 건데 어때. 괜찮은 사람 있으면 중간 역할 해 줄게.”
“됐다. 너나 마음에 드는 여자 하나 찍든가.”
신랑, 신부가 도착하지 않은 피로연장에는 신부의 친구들 주위로 과하다 싶은 남자들의 웃음 소리가 에워 쌌다.
매일을 수염이 난 거친 남자들끼리 부대끼는 도혁의 조직원들.
그 틈에 선이 고운 여자들이 있으니 어찌할 줄을 모르고 다들 말 한마디라도 더 붙여 보려 애를 쓰는게 눈에 보였다.
여자 조심하라는 말을 수 천,수 만번 해도 소용이 없는 순간이었다.
도혁은 제일 앞쪽 테이블로 모셔졌다.
신랑, 신부가 오기 전에 피로연장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며 테이블끼리 스몰톡이 이어 졌다.
주인공이 오기도 전에 분위기는 달아 오를 대로 달아 올랐다.
하지만 도혁과 태오가 앉은 테이블만 싸늘했다.
결혼식 피로연인만큼 도혁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그의 조직원들 텐션은 오를대로 올라 있었다.
“주인공들 입장하시네.”
피로연 장소인 호텔 연회장으로 신랑, 신부가 등장했다.
주인공들 뒤로 신부의 후배가 거리를 두고 같이 왔다.
도혁이 앉은 테이블에 신랑, 신부와 그 후배까지 착석했다.
신랑인 민석이 잔을 들어 축하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자 연회홀안이 우렁찬 건배 소리로 채워 졌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진 신부 후배를 보자 실없는 웃음이 났다.
뭐가 이렇게 귀여워.
세나가 도혁을 찾아가 결혼을 약속한 다음 날.대명푸드는 발칵 뒤집혔다.회사마당으로 매끄럽게 들어 오는 고급 세단.직원들이 목을 빼고 구경하는 데 키가 훤칠하고 누가 봐도 잘 생긴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지난 주에 왔던 태원 사람이다 아니다라며 웅성이는 직원들의 입을 한 번에 닫게 한 건 남자 다음에 내린 사람이었다.세나였다.세나를 주면 자금난을 해결해 주겠다며 도혁이 왔다 간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다시 대명푸드를 찾아 왔다.그것도 세나와 함께. 결혼을 허락받겠다고.사실 허락보다는 통보에 더 가까웠다.“세나 너! 차회장이 여기 왔다 간 거 알고 왔을 때 아무 말도 없었잖아. 그런데 갑자기 결혼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자식들을 키우면서 언성 한 번 높이지 않은 오승환이 처음으로 화를 냈다.딸을 걸고 거래를 하자는 도혁의 제안은 대꾸할 가치도 없었으니까.그런데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두 사람이 함께 찾아 와 결혼을 하겠다니.나이가 많은 도혁이 순진한 세나를 꼬드겼다고 생각했다.“미리 말씀 못 드려서 미안해요,아빠. 엄마도.”나윤의 남편과 친구 사이라 알게 됐다.호감을 가지고 몇 번 만났다.도혁이 나이가 있어 결혼을 서두르게 됐다.지난 주, 도혁이 찾아 온 것은 나도 전혀 몰랐다. 알고 나서 허락을 받으려고 온 것이다.세나가 생각해 낸 시나리오였다.오승환이 말도 안 된다며 언성을 높이고 세나가 쩔쩔 매는 동안 도혁은 침묵했다.“세나 너! 이 사람한테 가스 라이팅 당한 거야. 뭐라고 너를 구워 삶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야.”오승환에 이어 엄마 장영서까지 두 발 벗고 반대를 했다.“저희 딸은 이제 학교를 막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에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애 데리고 장난한 거라면 여기서 그만 하세요.”“…제가 첫 눈에 반했습니다.”줄곧 입을 닫고 있던 도혁의 첫 마디였다.“나이때문에 물러 나려고 애썼는데 도저히 안 되서 포기를 못 했습니다. 그래서 찾아 왔던 겁니다. 오세나씨가 부모님 걱정을 많이 하길래 그
"식사는 입에 맞았습니까?"도혁이 냅킨을 내려 놓으며 물었다.태원 호텔의 최상층 스위트룸.이 룸에 발을 들이자마자 세나가 질문을 시작했다.- 식사부터 하고 얘기합시다.일단 숨을 돌리도록 식사를 권했다.세나의 전화를 끊고나서 스위트룸에서 식사를 준비하도록 지시했다.아무리 레스토랑의 프라이빗 룸에서 만난다고 해도 보는 눈은 있기 마련이니까.식사 내내 두 사람은 말이 없었고, 세나는 음식을 뒤적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먹지 않았다."이제 오세나씨가 찾아 온 이유를 들어 볼까요?"결혼을 청하러 간 것은 도혁이었는데 꼭 세나가 도움을 청하러 온 것 같은 물음이었다.도움을 줄지, 말지는 얘기를 들어 보고 결정하겠다라는 오만한 물음."전에 저희 부모님 회사에 다녀 가셨다고 들었어요.""맞습니다.""그 때 왜 찾아 오셨는지, 부모님과 어떤 얘기가 오고 갔는지 궁금해서요."도혁은 온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 섰다.거실창 앞의 소파위에 올려 놓은 봉투를 가져와 세나의 앞에 놓았다.세나가 허겁지겁 봉투를 열어 묵직한 서류 뭉치를 꺼내 보았다. 보고서라는 이름을 단 종이에는 각종 그래프와 글자들이 빼곡했다. 봐도 무엇을 나타내는지 세나는 쉽게 이해하지 못 했다."솔직히 뭔지 잘 모르겠어요. 이 서류가 뭘 나타내는지."세나의 한숨에 도혁이 의자를 끌어와 그 옆에 앉았다."아버님의 회사는 지금 끝의 끝에 몰려 있다고 보면 됩니다. 자금난이 심각해서 내일 당장 어떻게 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네? 그렇게나요?""대기업의 자본에는 당해낼 수가 없어요. 그게 잘못이라면 잘못일까."끝의 끝,당장 망한다는 말에 세나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한데 도혁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도혁과는 관계없는 남의 일이니까."그래서 찾아갔던 겁니다. 자금난을 해결하고 새로운 유통망의 개척, 더 나아가면 신제품 개발도 염두해 뒀고.""그렇게 해 주는 조건은요? 회장님이 제시했다던 조건이요."수창에게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수창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어야 했고 그래 왔다.그런 도혁에게 세상은 어렵지 않았다.다만, 여자는 예외였다.태원 그룹의 최고 자리에 앉기까지는 앞만 보고 달려야 해서.가장 높은 곳에 올랐을 때는 여자 문제로 추락하고 싶지 않아서.단순한 이유였다.돈과 지위가 있는 곳에는 항상 여자가 붙기 마련인데 순간을 절제하지 못 하면 책임질 일이 생긴다는 가정을 늘 되새겼다.난잡한 여자 관계로 최고가 되기 위해 쌓은 과정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도혁은 본능마저 누르며 살아 왔다.“회장님. 사랑에 빠지셨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말입니다.”라운지에서 불려 온 직원이 붙인 도혁의 지금 감정은 사랑이었다.사랑이라…처음으로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한 이 어이없는 마음이 사랑이라…오세나를 가지고 싶어 안달난 마음이 제 마음같지 않아 도혁은 실없는 웃음만 흘렸다.사랑이 뭐 이래.*****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세나는 나윤의 결혼식날 도혁이 준 명함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아빠의 회사가 어려운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나윤을 통해 만나고 싶다는 것을 거절한 것에 대한 뒤끝있는 행동일까.어려운 아빠 회사에 정말 도움을 주려고 온 것일까.어떤 의중을 가지고 아빠를 찾아 갔을까.궁금했다.만나서 물어 보고 싶지만 무서웠다. 몇 번을 전화기만 만지작 거리다 그만 뒀다.그 압도되는 분위기에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기나 할까 싶었다.다음 날.세나는 다시 아빠의 회사를 찾았다.한 때는 공장앞에 제품을 실어 가려는 물류차가 쉬지 않고 들어올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조용하기만 했다.공장이 돌아 가기는 할까.명절이면 주문이 밀려 들어 세나와 동생까지 일을 도우러 가던 적도 많았는데 진짜 망하는 걸까.사무실에서 두어명의 직원들이 나오는 걸 보니 저 사람들도 그만 두는가 보다 싶었다."아빠!"오승환과 장영서가 지키는 사무실은 너무 조용해서 정말 끝나가는 분위기가 느껴 졌다."왜 또 왔어. 집에 있지. 오늘은 수업이 없어?"경리 직원
태오가 올려준 보고서는 여전히 도혁의 책상 위에 있었다.대명푸드.미리 약속된 스케줄을 변경해 가며 방문했다.내일 당장 부도처리 되도 당연하다 여길 자금난을 해결해 주겠다고 찾아간 것이었다.그 해결책의 조건에 오세나를 붙였다.오세나와 결혼을 하는 조건.어린 애도 아니고 대학까지 졸업한 성인인데 결혼, 그 까짓게 못 시킬 일도 없지 않나 예상했다.하지만 윤승환의 분노는 상상이상이었다.-말이 좋아 자금난 해결이지 내 딸을 팔라는 말이지 않습니까.윤승환의 첫 마디였다.도움을 주는 사람은 도혁이었고 받아야 하는 사람은 윤승환이었다.하지만 윤승환은 꼿꼿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비굴하게 매달리지 않을 사람인 것을 도혁은 한 눈에 알아 봤다.더불어 말도 안 되는 도혁의 제안에 경멸의 눈빛마저 보냈다.- 내가 내일 당장 파산하는 일이 있더라고 절대! 안 되는 일이니까 사람 잘못 찾아 왔습니다.당신 딸이 마음에 들어서.거절당한 자존심같은 것도 버리고 찾아 왔는데.그럴 일은 없을 거라니.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 하는 사람인가.원형 테이블에 태오의 명함을 올려 놓기 무섭게 출입문을 열고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다.도혁은 서류를 의미없이 넘겼다 덮었다.30년 가까이 올곧게 운영해 오던 회사가 대기업의 휴게소 사업 진출에 맥을 못 추리고 쓰러지기 직전인 상황이었다.아무리 제품이 좋다 해도 대기업의 유통망과 자본앞에서는 고꾸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점점 줄어 드는 매출과 유통 판로에 직원들을 권고사직하고 있는데 단순히 월급을 받는 사람이 하나 줄어 드는 문제가 아니었다.한 달치 월급을 주는 것보다 월급보다 많은 퇴직금을 주고 내 보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건 자금줄이 거의 막다른 골목이라는 뜻이기도 했다.이쯤 되면 대표의 개인 자산까지 끌어 와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이었다.이 패는 버려졌으니 다른 패를 찾아야 하나.플랜비를 준비하지 않은 채 먼저 저지른 일이니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하지만, 그 전에 도혁은 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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