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 공주는 막무가내로 쳐들어 온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조금도 화내지 않았고 오히려 따뜻하게 맞이했다. 송석석은 사죄하며 말했다. “찾아뵙는다고 미리 소식을 전해야 했는데 급한 일이라 이렇게 무작정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그러자 민지 공주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이런 인사말을 주고받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하지 않느냐? 마침 미우 공주도 여기 손님으로 와 있다. 너무 많이 먹어 배탈이 난 것인지 지금 화장실에 갔으니 곧 만나게 될 것이다.”“너무 많이 먹어 배탈이 났다니요? “송석석이 걱정되어 묻자 때 미우 공주가 하녀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언니 말씀은 그냥 넘겨도 된다.”그녀는 배를 감싸 쥐고 있었으며, 여전히 불편해 보였지만 민지 공주에게 대꾸할 때만은 단호했다.“푸하하! 석석이가 여기 있으니 이젠 발뺌해도 소용없다. 너는 먹성이 좋고 한녕도 그런 너를 꼭 닮았지 않았느냐!”송석석은 시만자와 홍작과 함께 미우공주에게 예의를 갖추었다.“미우 공주께 인사드리옵니다.”미우 공주도 예의를 갖추었다.“다들 서 있지 말고 자리에 앉거라. 그런데 석석아, 왜 얼굴이 이렇게 창백한 거냐? 누가 괴롭히기라도 한 것이냐?”자리에 앉은 송석석은 승은백부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시만자가 그 기녀를 때린 일까지도 빠짐없이 말했다.그러자 미우 공주도 시만자에게 칭찬의 눈길을 보냈다. “잘했다!”그리고 나서 탁자를 한 번 내리치더니 덧붙였다.“천한 주제에 감히 주모에게 도발을 해?! 왕비를 눈앞에 두고도 안하무인이라니! 네 동생이 거기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개 짐작이 가는구나. 아이를 임신했는데도 남편이 애정을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민지 공주는 그제야 송석석이 급하게 방문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차를 천천히 마시는 그녀의 눈에 분노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이 어사대감이여서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해야 했다.차를 마시던 민지 공주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미우야
민지 공주가 말했다.“내 시아버지는 어사대를 맡고 계시는 주관이다. 얼마 전 돌아와서 식사할 때 관료들의 풍기를 정화하고 어사대 규범을 재건하겠다고 말씀하시더군. 그러면서 모든 관료가 청렴결백해야 한다고 하셨다. 요즘 한창 사관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을 텐데 량소가 딱 이 시기에 꼬리가 밟힌 게로구나.”그러자 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 “그야말로 불행 중 다행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기다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그 기녀가 맞았으니 량소는 마음이 몹시 아플 겁니다.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저를 무척 경멸하였습니다. 아마 찾아와 따지려 할 테니 왕비를 모욕하는 것이 죄목에 해당하는지 궁급합니다.”그러자 민지 공주는 답했다.“들으려니 량소는 스스로 신통한 재주를 지닌 사람이라 하더군. 황제께서 직접 명한 탐화랑이자 황제의 제자라던데, 그러면 더더욱 행실을 올바르게 하고 모법을 보여야 할 터인데 지금 내실이 혼란스럽고 홍등가를 돌아다니는 것도 모자라 기녀를 첩으로 들이다니, 게다가 본처를 소홀히 하고 더 나아가 왕비까지 모욕하려 했으니, 어사대가 이를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민지 공주의 말에 송석석은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량소를 때리는 것은 그의 복수심만 채울 것이고 란이에게도 더욱 불리할 것이다. 그러나 사관이 그를 주시하고 있는데 감히 건방지게 굴 수 있을까? 그럼에도 변함없이 오만을 떤다면 그녀에게 이제 미래는 없을 것이다.화가 나 씩씩거리던 미우 공주도 란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란이는 너무 나약하다. 어찌 되었든 자신이 군주 출신인데 어찌 그런 모욕을 당할 수 있단 말인가?”“게다가 숙부님이 어떤 분인지 다들 알고 계시지 않느냐?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어떻게 강인할 수 있겠느냐?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군주가 아니라 그저 세가의 여인이라도 감히 이렇게 대우하겠느냐?”시만자도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란이가 량소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대체 어떤 점이 좋다고 하는
황실로 돌아간 후, 송석석이 몽동이에게 물으려고 하자 몽동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얼마 줄 건가?” 송석석은 쉽게 초대할 수 없다는 상대임을 알기에 금전적으로 많이 줘야 몽동이의 사부님이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송석석이 물었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서 만삭이 되기까지 몇 달 밖에 되지 않으니 두 명에게 천 냥씩 주는 건 어떠냐?” 몽동이는 답답한듯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나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난 바로 편지를 쓰러 가야 해. 황실에 편지 배달원 있지? 지금 바로 우리 사부님에게 편지를 보내야 한다.” 그러자 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 당장 어서 편지 쓰러 가. 천 냥이면 적은 돈은 아닌데 말이야..”몽동이의 사부는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걸 반대했다. 왜냐하면 부잣집의 여호위가 되어 봤 자 기껏해야 한 달에 은자 2 냥 밖에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온갖 모욕을 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군주를 보호하면 다른 일은 하지 않아도 되고 모욕을 당할 일도 없으니 그의 사부님께서도 분명히 흔들릴 거야. 군주를 다치지 않게 보호만 하고 내 태아보호약만 잘 지키기만 하면 몇 개월만 해도 두 명이서 천 냥을 얻을 수 있는데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딨겠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편지를 보낸 다음 날, 승은백의 세자 량소가 두 명의 사내를 데리고 집으로 와 송석석을 만나려고 했다. 사여묵이 외출한 틈을 타서 온 것으로 봐서는 그가 아주 겁이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그냥 재혼한 송석석을 만만하게 여겼던 것 같았다. 다만 문간은 그가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을 보고 그의 신분을 즉시 염 선생에게 아뢰었다. 그러자 염 선생은 문 앞으로 다가가더니 낮으면서도 냉담한 말투로 말했다. “그냥 꺼지겠습니까? 아님 맞고 꺼지겠습니까?”염 선생의 뒤에는 시위가 몇 명이 있었는데 모두 채찍을 들고 있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량소가 겁에 질려 송석석을 만나기도 전에 풀이 죽은 채 도망가버렸다. 시만
몽동이는 사저들 앞에서 거듭 강조했다. “앞으로 황실에선 반드시 내 본명으로 불러야 합니다. 내 이름은 몽천생이고 몽동이도 똥 몽동이도 아닙니다.” 시만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몽동이라는 이름은 진작에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네가 원한다면 천생으로 불러줄 수는 있지만 넌 영원히 우리 마음속의 몽동이라는 건 잊지 말거라.” 송석석은 사람을 시켜 두 사저를 데리고 가 목욕을 하게 하고 옷을 몇 벌 사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나서 내일 아침 승은백부로 갈 준비를 했다. 마침 홍작이 시만자에게 평양후부 노부인에게 처방을 보내라고 해서 장군부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장군부를 지날 때 시만자가 커튼을 걷어 한 번 본 후 아무런 이상이 없자 그냥 내버려 두었다. 처방을 평양후부의 집사에게 넘기자 그들은 감히 지체하지 못하고 바로 승은백부로 갔다. 마차 안에서 송석석은 라 사저와 석소 사저에게 저택에 들어가면 주의해야 할 점을 말해주었다. “우리가 주동적으로 누군가를 때려서는 절대로 안 되지만 연유라는 여자가 군주에게 접근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량세자가 군주의 방에 와서 화풀이를 해서 부인이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량세자를 직접 밖으로 내보내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매일 복용하는 약과 매일 먹는 음식은 모두 은침으로 검사해야 합니다. 석소 사저께서 의학을 조금 아시니 시기에 적절한 음식을 준비해 주시면 되는데 직접 준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기억할 점이 있는데 사저들이 처리하기 곤란한 위급상황이 생긴다면 한 명은 남아서 군주를 지키고, 다른 한 명은 곧바로 나한테 와서 알려주셔야 합니다.” 송석석은 세심하게 당부하며 최대한 사저들을 저택의 다른 주인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했다. 송석석은 승은백부 부인께서 란이를 해칠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무인을 무시할지도 모르니 두 사저들이 눈치를 보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송석석은 량세자와 연유를 경계하려고 했다. 석소 사저는 송석석의 말을 듣고 고개
송석석은 순간 왕청여가 혼수로 자신과 겨루려고 했다던 시만자의 말이 떠올랐다. 게다가 저번에 만났을 때도 불쾌하게 헤어져서 송석석은 기분이 안 좋은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전 부인.” “왕비께선 한가하신가 봅니다. 아침부터 우리 장군부로 구경하러 오시다니.” 왕청여도 안색이 안 좋은 데다 말투까지 날카로웠다. “그런 게 아니라면 설마 왕비께서 아직도 장군부가 자기 집인 줄 착각하시는 건가요?” 심판자가 화가 나 당장 마차에서 내리려고 했는데 송석석이 그녀를 말리고는 왕청여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가끔씩 와서 자신의 과거를 기리기도 하고 장군부의 나쁜 놈들이 어떻게 지내는 지도 보곤 한답니다만.” 그러자 왕청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렀다. “대체 누가 나쁜 놈이라는 겁니까? 왕비께서 장군부의 웃음거리를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차라리 마차에서 내려 가까이에서 보시지요. 직접 보고 냄새도 맡아보세요. 그리고 마음에 들면 손으로 닦으셔도 됩니다.” 그러자 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미 장군부의 사람이 아니니 이런 더러운 곳은 전 부인께서 닦으십시오.” 왕청여는 화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왕비께서 장군부를 모욕하다니요. 사람들이 교양이 없다고 비웃을까 두렵지도 않습니까?” 송석석은 손수건을 꺼내 흔들었다.“나는 사람들이 비웃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 전 부인은 두렵습니까? 두렵지 않다면 내가 사람들에게 부인께서 나와 혼수를 비교하려고 한 일을 말해볼까요?” 송석석의 말에 왕청여는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저 여자가 이 일을 대체 어떻게 안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혼수가 비교할 게 뭐가 있다는 겁니까? 그저 저속하기 그지없는 금은일 뿐이지 않습니까? 왕비에게 있는 것 중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 있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도 분명 왕비께서 없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송석석은 손을 뻗어 뒤에 있는 장군부 대문을 가리키며 말했다.“그러네요. 하지만 부인께서 가진 건 우리 황실에는 확실히 없
송석석은 내심 안도가 되어 편안한 숨을 내쉬었다. 석소 사저가 왕청여에게 손 봐주고 싶다고 할 때 그녀는 석소 사저가 승은백부에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싸울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사저들이 분수를 잘 알 것이라고 믿었다. 송석석은 왕청여의 미움을 산 적도 없는데 그렇게까지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마 장군부의 노부인이 왕청여 앞에서 내 험담을 엄청 많이 했겠지. 보아하니 장군부의 노부인은 내가 황실로 시집온 게 여지간이 질투 나고 미웠나 보다. 다만 왕청여도 한때는 방 씨 집안의 며느리로 지냈었잖아. 방시원이 얼마나 활달하고 통찰력 있는 사람인데, 왜 그런 건 하나도 배우지 못했을까?’ 승은백부에 도착하자 승은백 부인이 서둘러 손님을 화청으로 맞이했다. 량소가 며칠 전에 황실에 가서 소란을 피워 승은백 부인은 황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죄를 물으러 올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기다렸는데 아무도 오지 않더니 오늘 북명왕비가 왔다는 보고를 듣고 너무 긴장이 되어 심장이 다 튀어나올 지경이였다. ‘아들의 벼슬길이 보기엔 밝아 보이지만 실은 어사가 그를 참배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북명황실에서 죄를 묻고 어사대가 이 일을 부풀린다면 참배를 원하는 상소문이 눈송이처럼 어전으로 날아갈 것이야.’ 평소라면 소문만 들어도 상소하던 어사대가 며칠 동안이나 잠잠하자 승은백 부인은 마음이 더욱 조마조마해졌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안절부절못하며 먼저 사과를 건넸다. “며칠 전에 아들놈이 철이 없어 사람을 데리고 황실로 찾아가 왕야님과 왕비님에게 폐를 끼쳐드렸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왕비님께 사과드리겠습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송석석의 태도는 지난번보다 좋지 않았다. “세자께서 백작가문에서 태어나 공부를 많이 한 데다 황제폐하께서 직접 뽑으신 일등이지 않습니까? 다만 어린 나이에 가장 주의해야 할 건 사람
송석석은 눈이 퉁퉁 부은채로 얼굴을 가리려는 란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러자 란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제 눈을 보지 마십시오...”송석석은 말을 무시한채 한 번 보더니 말했다.“아주 복숭아처럼 퉁퉁 부었구나.”“언니...”란이는 또 울먹이며 말했다. “량소가 그날 일로 매일 나한테 와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가는데 남편이 되어서 어쩜 그렇게 모질게 굴 수 있습니까?”송석석이 눈쌀을 찌푸렸다. “걔가 널 욕하는데 가만히 있어?! 넌 욕할 줄 모르니?”“저는.. 욕을 할 줄 모르는데요..”송석석은 더 이상 방법이 없어 고개를 돌려 석소 사저에게 물었다.“사저, 혹시 욕할 줄 아십니까?”“당연하지.”석소 사저가 흔쾌히 답했다.“좋아요. 그럼 앞으로 량세자가 와서 군주를 욕한다면 사저께서 대신 욕해주십시오. 원칙은 단 하나입니다. 그가 욕하면 사저도 욕을 하고, 그가 손찌검을 하면 사저도 그를 공격하시면 됩니다.”“그거 참 잘 된 일이군.”“언니, 이 두 분은 누구십니까?” 린이가 눈물을 머금고 의혹스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 분들은 내가 매산에서 알게 된 사저들인데 무공도 할 줄 알고 의학도 좀 아셔서 너의 식사도 감시할 수 있고 네가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대신 상대해 줄 수 있다.” “언니, 고맙습니다..” 란이의 눈물은 줄 끊어진 구슬 마냥 흘러내렸다. “됐다. 그만 울거라. 매일 울기나 하고 그래서 아기에게 무슨 좋은 영향이 가겠는가?” 송석석은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화가 났다. “그리고 넌 군주다.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백부로 시집온 것인데 왜 매일 천대를 받는 것이냐? 너처럼 못난 군주가 또 어디 있냐? 난 가끔 네가 가의 군주에게 좀 배웠으면 좋겠구나. 그녀가 모든 사람의 미움을 샀지만 결국 너처럼 손해를 보진 않았잖니?” 말을 마친 송석석은 가의 같은 악독한 년과 란이를 비교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다시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너도 좀 강하게 굴면 안 되겠느냐? 넌 군주이고 세자 부
이방이 눈을 가늘게 뜨고 온몸이 경직해지더니 눈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바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말했다.“그래서? 구경하는 건 그녀의 자유인 것을.”이방의 말을 들은 왕청여는 너무 가슴이 답답해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너.. 이방, 내가 부탁하나 할게. 건후부로 가서 사과를 하면 안 되겠냐? 너 하나 때문에 장군부 전체가 양향을 받고 있고 부군의 벼슬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단 말이다.”“부군? 호칭이 입에 착착 붙는군.”이방이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내가 잘못 불렀느냐? 그가 내 남편 아니냐?”“그래, 네 부군이니 그의 앞길은 네가 알아서 계획하고 사과도 네가 하고 돈도 네가 주거라.”“너 이게 무슨 태도냐?”이방이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난 네가 여기서 꺼지게 할거야. 그러니 다신 날 찾아와서 건드리지 마.”왕청여는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분명히 가족이고 내가 본처인데 이방이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무례할 수 있단 말인가?’송석석 앞에서는 혼수를 꺼내 장군부에 보태는 게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했지만 사실 왕청여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했다.“이방, 내 오라버니는 북명군의 주장이고, 친정은 평서백부인데 네가 어찌 감히 나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단 말인가?”그러자 이방도 콧방귀를 뀌며 비꼬는 말투로 되물었다.“그래서? 네 오라버니가 북명군을 거느리고 나를 죽이러 온다 더냐? 아니면 평서백부가 세력을 믿고 황제폐하께서 하사하신 장군의 평처를 괴롭히기라도 한다는 건가?” 왕청여는 말문이 막혀 마구 소리쳤다. “너 참말로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구나. 애초에 부군께서 어떻게 널 좋아하게 된 건지 궁금하네. 분명 네가 전쟁터에서 부군을 꼬셨겠지. 아무튼 너나 송석석이나 모두 파렴치한 년들이야.” 그러자 이방이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실망시켜 미안하군. 전쟁터에선 그가 먼저 나에게 호감을 표시했고 먼저 나를 좋아한다고 했어. 그리고 나를 송석석과 비교를
시만자는 그제야 송석석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 부인이 사람을 데리고 왕 씨 저택으로 가서 추태를 부렸으니, 당연히 사죄도 왕 씨 저택으로 가서 해야한다. 이렇게 소 세자의 일로 약점을 잡고 있으면 지아가 시집을 가더라도 감히 박대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아에게는 이제 후원자도 있고 소 씨 가문의 약점도 쥔 셈이 되었다. 하시만 시만자는 오늘 화풀이를 하러 온 것일 뿐, 소 부인을 상대하러 온 것이니 쉽게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필명 등 인이 모두 떠난 후에야 소 부인에게 말했다. “안백작부가 명망가라니, 정말 뻔뻔하군요. 어느 명망 있는 가문의 사람이 양첩을 유괴하고 다른 가문으로 찾아가서 행패를 부리겠어요? 오늘 원래는 당신들의 가면을 모두 뜯어내고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려 했지만, 소민이 진심으로 지아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두 아이가 민망해할까 봐 참았습니다. 하지만 지아가 당한 억울함을 계속 해결해주지 않는다면 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가르쳐 키운 아이가 당신들에게 괴롭힘당하는 꼴을 볼 순 없습니다. 당신이 백작부를 믿고 작위가 없는 왕 씨 가문을 괴롭혔으니, 다른 이가 같은 방식으로 갚아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고작 백작부 따위, 내 눈에 차지도 않습니다. 소 세자가 고주의 용서를 빌든 말든 내 알바 아니지만, 지아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한다면 일을 크게 만들 것입니다. 그때까지 당신들의 보귀한 작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겠지요.” 소 부인은 시만자의 말에 얼굴이 금새 붉어졌지만, 감히 그의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시만자는 진성에 오래 머물며 문제가 생기면 이치를 따지는 성향이었으나, 상대가 막무가내라면 그럴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소 세자의 양첩 유괴는 사실이었고, 이미 경위부에 압송된 상태라 시만자가 이를 빌미로 소동을 일으킬 수 있음을 소 부인도 알았다. 그러자 소 부인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고, 안 백작만 계속 사죄하며 두 아이가 원래 천생연분이라고 말하며, 소 부인이 다른 사람의 헛소
소씨 가문의 반응을 보니, 진성의 다른 가문들이 평소에 그들과 친밀하지 않아 이 일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시만자는 소 부인이 놀란 틈을 타 말을 이었다.“우리 부군이 가장 아끼는 조카가 바로 지아인데, 큰 억울함을 당해서 태후마마께 아뢰려던 걸 내가 간신히 말렸소. 지아를 때린 자가 스스로 나서서 벌을 받으면 그만인 것을!”왕이장은 진성에서 여러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시만자의 부군, 만종문의 제자, 병부 효고사, 그리고 진성 내 만종문 산업의 주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와 왕씨 가문의 관계는 일부러 밝히지 않았지만, 이럴 때 활용해도 괜찮을 만큼 중요했다. 태후마마가 만종문의 임 사부를 존경하는 점을 생각하면, 이 관계를 의심하는 이는 없을 터였다.시만자는 말을 마치고 혼자 의자에 앉았는데, 그 표정은 송석석과 다를 바 없었다. 이때 소씨 가문은 비로소 섭정왕비가 직접 소 세자를 데려온 것도 왕지아를 위한 조치임을 깨달았다. 소 부인은 왕지아에게 이토록 강력한 배경이 있는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아이고, 제가 소인의 말만 믿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네요…”소 부인이 급히 사죄했다.“반드시 뒤에서 함부로 지껄이던 자들을 찾아내 왕씨 아가씨에게 사과하겠습니다. 당장 사람을 데리고 가서…”그러자 시만자가 차분히 말을 끊었다.“처벌할 마음이 있는데, 왕지아의 눈을 더럽힐 필요까지 있겠소? 백작부에서 처벌하지 못한다면, 마침 섭정왕비께서 사람을 데리고 오셨으니 소 세자를 처벌할 때 함께 처리하면 되겠소.”소 백작은 급히 수긍하며 하녀와 종들을 불러내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넘겼다. 송석석이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소 세자가 덕행에 흠이 있는 탓에 작위 수여는 불가능할 것이오. 그리고 오늘 누군가 경위부에 고소한 이상 내가 방관할 수도 없소. 대충 몇 대 맞고 넘어가려 한다면 법이 왜 있겠소?”시만자는 속으로 생각했다.‘화풀이하러 온 게 아니었나? 소씨 가문 때문에 지아와 소민이를 갈라놓을 순 없는데…’소 부인은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시만자는 어이가 없었다. 고작 소씨 가문이라는 작은 백작부가 감히 이렇게 날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평생동안 막돼먹은 여자를 많이 보았지만, 귀족 가문의 막돼먹은 여자는 처음이었다.왕지아가 끌려 나가 뺨을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는 말을 듣자, 시만자는 소씨 가문의 대문을 박차고 사람들을 끌어내고는 한바탕 때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화가 나더라도 참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왕지아와 왕청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모르니 그들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그렇게 시만자가 급히 왕씨 가문으로 달려갔을 때, 왕지아가 손목을 그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또 왕청여가 하녀들을 모두 내보냈다는 말을 듣고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곧장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왕청여가 목을 매려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 또한 화가 나서 그의 뺨을 때렸다.최근 몇 년간 자신의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왕청여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자 공방에서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참을 수 없었다.왕청여를 때린 후, 시만자는 즉시 소씨 저택으로 향했다. 소씨 저택에 도착하자 석석이 현갑군을 데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의심이 앞섰다.‘석석이는 관직이라 복수 같은 걸 할 수 없는데…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송석석은 관복을 입고 정좌에 단정히 앉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필명이 그의 곁을 따르고 있었고, 몇 명의 현갑군이 소민의 형인 소 세자를 붙잡고 있었다.백작부의 모든 어르신과 도련님들이 모여 있었고, 가문을 책임지고 있는 주모인 소 부인도 나와 있었다. 상황을 보니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시만자는 옆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미리 말이라도 해줄 것이지. 이러니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백작과 소 부인이 송석석에게 굽실거리며 사정하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알고 보니 소 세자가 부유한 상인의 양첩과 결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걸렸고, 자신의
왕청여에게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게 한 것은 방시원이 돌아올 때도, 전북망과 이혼했을 때도, 왕씨 가문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후회한 것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였다.왕씨 가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왕청여는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니 자신에게 잘못이 많음을 깨닫고 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고, 고생한 자신을 비난할 자격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형수님이 자신의 오만한 성격 때문에 고생했음을 알면서도, 과거를 들추며 상처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다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왕지아는 안백작부의 도련님 소민과 정이 들었다. 비록 평서백 작위는 없어졌지만, 형수가 선제의 찬사를 받아 고명을 얻었고 가업 경영에도 능숙했으며, 셋째 동생이 시씨 가문의 딸 시만자와 결혼해 왕씨 가문은 여전히 병부에서 중용되고 있었다. 두 가문의 위상은 비슷했다.그러나 소민이 어머니에게 왕지아와의 혼인을 청하자, 소 부인은 강하게 반대했고, 심지어 만나는 것조차 금지했다. 비록 소민은 세상에 없는 효자이지만 왕지아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녀 외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하겠다고까지 하며 반항했다. 이에 소 부인은 그를 감금해버린 것이다.왕청여는 아마 소 부인이 방문하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소 부인은 하인들을 대동하고 왕씨 저택에 난입해 최씨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감히 우리 아들을 넘보다니! 윗사람이 바르지 못하니 아랫사람도 바르지 못한 건가? 당신 시누이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뻔뻔하게 굴더니, 이제는 딸까지 그 꼴이로군! 어린 나이에 남자를 유혹하고, 우리 아들에게 부모를 협박하는 법까지 가르치다니! 이 가문에는 악랄한 자들밖에 없는 것이냐?!”말을 마치자 하인들에게 저택을 부수게 했고, 왕지아를 끌어내 사람들 앞에서 뺨을 때리며 머리와 얼굴에 침을 뱉었다. 왕청여와 최씨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