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서로를 사랑한 세월은 어느덧 10년, 부부로 지낸 시간은 6년이 지났다. 주변 모두가 고영훈이 송서윤을 세상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모든 게 산산이 무너진 건, 느닷없이 집으로 애인이라는 여자가 찾아온 그날부터였다. 송서윤은 그제야 그가 보여줬던 깊은 애정도, 한결같았던 다정함도 모두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되었다. 고영훈은 지난 5년 동안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고 그 여자와 혼외 자식까지 낳았다. 그 여자를 바로 코앞에 두고도, 그는 끝까지 다정한 남편인 척, 완벽한 가장인 척, 모두를 속이며 살아왔다. ‘서윤아,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해.’, 입버릇처럼 내뱉던 그 말은 어쩌면 가장 잔인한 거짓이었다. 그가 맹세했던 사랑은 두터운 가면을 쓰고 지껄인 거짓일 뿐이었고 그 옆의 모든 이들이 그 연극에 동참해 송서윤을 속였다. 심지어 열 달을 뱃속에 품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낳은, 그리고 애지중지 키운 아들조차 그녀를 속이며 아빠와 그 여자 편에 섰다. 배신은 그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남편과 아들, 그리고 가족이라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두 번, 세 번 상처를 받은 그녀는 모든 게 우스꽝스러웠다. 더는 이런 가식적인 삶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송서윤은 끝내 모든 걸 내려놓고 비밀 조직 ‘데미스’로 복귀하기로 결심했다. 이 지긋지긋한 거짓과 연민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고영훈의 세상에서 사라지기로 했다. 한 달 뒤, 송서윤은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그 뒤로 누구도 두 번 다시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고영훈의 곁에도, 이제 더 이상 그녀는 없었다... 고영훈은 누구보다 송서윤을 사랑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격지심이 불러온 화였다. 그녀를 잃을까 두려워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모든 걸 완벽하게 숨겼다고 믿었다. 겉보기에 두 사람은 여전히 행복한 부부일 것이고 송서윤은 영원히 아무것도 모를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착각은 송서윤이 그의 곁에서 완전히 사라진 순간 무너졌다. 그때야 영훈은 뼈저리게 깨달았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영영 잃게 되었다는 걸... 미쳐버릴 듯한 후회와 집착 끝에 영훈은 모든 걸 내던진 채, 세상 어디든 그녀가 있을 법한 곳을 찾아 헤맸다. 절박한 마음에 무릎 꿇고 빌었다. 스스로도 비참할 만큼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서윤아, 다시 날 사랑해 줄 수 없겠니?” 하지만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버린 후였다. 송서윤의 곁에는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 이제 그와 그의 아들이 설 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
View More하지만 고영훈의 순애보가 마냥 가짜인 것은 아니었다.그는 송서윤을 찾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겪었고 타지에서 객사할 뻔한 위기까지 넘겼다. 그 후 그 어떤 여자도 고영훈의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했다. 송서윤이 그의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어 조금의 틈도 생기지 않았으니 말이다.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고영훈은 일편단심 한 여자만 바라보는 멋진 남자가 되어 있었다. 심여진은 그런 그가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으로 변했다고 생각했다.이 남자는 매력적인 외모와 성격은 물론이고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존심도 생명도 그 무엇이든 버리는 순애보까지 갖고 있었다.사랑 앞에 무릎 꿇고 진흙탕 속까지 뒹굴 정도로 비굴해질 줄 아는 남자.심여진의 마음속에서 고영훈의 엇나간 행동들은 그저 송서윤을 향한 지극한 사랑일 뿐이었다.그런데 그 뒤에 이런 진실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심여진은 이제 고영훈이 어떤 희생을 치르든, 얼마나 큰 벌을 받든 전부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에서 곱게 그려 놓았던 고영훈의 형상은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송서윤이 카페를 나섰을 때 밖에는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심건모가 떠올랐다.“비 맞지 마.”송서윤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담담한 눈매의 심건모가 서 있었다.검은색 비옷을 입은 그는 손에 검은 우산을 쥐고 있었다.송서윤은 망설임 없이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어떻게 나왔어요? 중독된 척 연기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녀는 심건모를 꽉 껴안으며 얼굴을 비볐다. 목소리에는 여전히 울먹거림이 남아 있었다.심건모는 한 손으로 송서윤을 받쳐 안으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리안이는 내 딸이야.”“누구도 뺏어갈 수 없어.”심건모의 시선이 멀리서 휴대폰을 흔들고 있는 구혁진과 마주쳤다.구혁진은 계속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입 모양으로 외치고 있었다.“선비인 척할 필요 없어! 빈틈을 타서 몰아붙이라고!”심건모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송서윤을 번쩍 들어 올렸다. 우산이 바닥으로 툭
“리안이한테도 불공평해요!” “어젯밤에 제가 영훈 오빠 데리고 빌라로 아이들 보러 갔었거든요. 그런데 리안이가 자기 아빠를 때리더라고요. 세숫대야를 머리에 씌우고 두드리는 것도 모자라 물총으로 영훈 오빠 눈을 쐈어요.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세요?”송서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동의도 없이 고영훈을 우리 집에 데려갔단 말이에요?”“아가씨 정말 너무하네요.”심여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건 알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와 딸을 못 만나게 하는 언니가 더 너무하죠.”“고영훈은 리안이 아빠가 아니에요.” 송서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언니, 제발 자기 합리화 좀 그만하세요!” 심여진은 목소리를 높였다.“저 이미 부모님께 확인했어요. 리안이는 우리 오빠 아이가 아니라 영훈 오빠 아이라는 거요.”“고영훈도 그렇게 확신한대요?”“네.”“고영훈이 내 딸한테 무슨 말을 했어요?” 송서윤의 머릿속에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쉴 새 없이 밀려왔다. 그녀는 억지로 감정을 누르며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영훈 오빠는 그저 리안이랑 하준이를 보고 싶어 했을 뿐이에요.”“오빠는 아무 잘못도 안 했다고요.”“그런데 오빠랑 하준이한테 쫓겨나다시피 빌라에서 나왔어요.”“리안이는 아예 알아보지도 못하고요.”“오빠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아세요?”“빌라에서 나와서 길가에 쓰러지기까지 했다고요.” 심여진은 고영훈의 고통을 대변했다.송서윤은 그 누구에게도 이 상처를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가해자는 피해자로 둔갑해 동정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짜 피해자는 누구란 말인가?송서윤의 눈에서 차가운 눈물이 굴러떨어졌다.심여진은 멍해졌다.“고통스러운 기억을 다 잊었다고 생각했어요. 오늘 아침 이산 그룹에서 고영훈을 만났을 때, 심지어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상처라는 건 결코 쉽게 잊히는 게 아니었네요.”“아가씨, 고영훈은 살인자예요.”“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내가 리안이를 가졌을 때, 내
송서윤이 떠난 뒤 심건모는 사람을 시켜 CCTV를 확인했었다. 그녀가 문 앞에 서 있을 때 그는 노정안과 통화 중이었다. 그녀는 무엇을 들었을까?“바빠 보여서 방해될까 봐요.”송서윤은 심건모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그의 힘찬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다. 심건모는 송서윤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너라면 난 언제든 시간 있어.”다행히 심장 실험실에 관한 이야기는 듣지 못한 모양이다. 송서윤은 마음에 담아둔 것을 잘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다. 심건모는 송서윤이 그 사실을 알길 원치 않았다. 3D 프린팅 심장은 아직 성과가 없었기에 섣부른 희망을 주었다가 실망만 안겨줄까 두려웠다. 그는 그저 그녀가 아무 걱정 없이 지내길 바랐다.“며칠 병원에 입원해야 해.”“그동안 혁진이가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질 거야.”“내 전우니까 나를 믿는 것처럼 믿어도 돼.”심건모는 송서윤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어두운 표정을 본 그는 달래듯 말했다. “걱정하지 마. 곧 끝날 일이니까.”송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심건모를 껴안았다. “오늘 고영훈과 만난 건 협력 프로젝트 때문이었어요.”심건모의 마음 한구석에 따스한 온기가 퍼졌다. “응.”송서윤이 병실을 나오자 제훈과 조민이 서류 더미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구혁진은 무슨 말을 하는지 심여진을 크게 웃게 만들었다. 심여진에겐 조금 전 서글펐던 기색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송서윤을 발견하자 심여진은 웃느라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언니, 카페 가서 좀 앉을까요?”송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여진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전과 확실히 달라졌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병원 1층 카페.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았을 때,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송서윤 곁에 드리워졌다. 커다란 손이 송서윤 앞의 커피잔을 만져보더니 사진까지 한 장 찍었다. 두 사람이 옆을 쳐다보자 구혁진은 그들의 시선 따위 상관없다는 듯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네 와이프 커피 취향이 너랑 똑같네.][시럽 안 넣은 블랙커피.]
“소중한 줄 모를 거면 차라리 일찌감치 양보하든가.”“보아하니 전남편도 인물이 훤칠하던데.” 혁진은 휴대폰 뉴스를 힐끗 보며 덧붙였다.“꽤 대단한 놈 같아 보이네. 사모님이랑 아주 잘 어울려 보이기도 하고.”심건모는 혁진을 서늘하게 훑어보고는 송서윤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목소리에는 억눌린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나가.”자기가 제 발로 화근을 불러들인 꼴이었다.“이제 막 실력 발휘 시작했는데.”“아까워서 그래?” 혁진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됐다. 무서워서 원. 내가 져준다.”혁진은 그제야 병실 밖으로 나가며 문까지 친절히 닫아주었다.송서윤은 환자복을 입은 심건모의 안색이 창백한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가슴팍부터 얼굴까지 더듬어 올라갔고 눈물이 끊어진 진주 목걸이처럼 뚝뚝 떨어졌다.“혁진이가 헛소리한 거야.” 심건모는 송서윤의 젖은 눈동자를 마주하자 마음 한구석이 부드럽게 녹아내렸다.“정말 아무 일 없어.”‘그렇게나 나를 걱정한 건가?’심건모는 송서윤에게 그만큼 중요한 존재인 걸까.“피 토했어요?”송서윤의 목소리에 짙은 울음 섞인 걱정이 배어 나왔다. 숨이 차오를 정도로 서럽게 우는 그녀였다.심건모는 송서윤의 얼굴을 감싸 쥐고 눈가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자꾸 울면 못나져.”“아침에 미리 말을 맞춰두려 했어.”“어젯밤에 누군가가 나를 중독시키려 했거든.”그런데 송서윤은 인사도 없이 도망치듯 가버린 것이었다.송서윤은 갑자기 심건모의 어깨를 밀쳐 그를 떼어놓았다.심건모는 웃으며 그녀를 다시 끌어당겼다. “실패했어. 이미 구속됐고.”“사건을 하나 맡고 있는데 사람들 눈을 속여야 했어.”“다 가짜야.”송서윤은 심건모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요동치는 심장을 억눌렀다. 모든 게 가짜라지만 그녀가 느낀 심장의 통증만큼은 너무나 생생한 진짜였다.그때 송서윤의 얼굴이 다시 들어 올려졌다.심건모는 목소리를 낮추고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은근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정말 없는 거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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