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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Author: 정대천
이도현은 문득 마음이 동해져서 옷걸이에 걸려 있던 겉옷을 집어 걸치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몇 걸음 걸어 밤빛 속으로 들어섰을 즈음,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 경성까지는 아무리 말을 재촉해 달려도 꼬박 하룻밤은 걸렸는데, 지금 이미 해시 무렵이니, 내일 조회 전에도 돌아올 수 없다는 현실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밤바람이 서서히 불어와 가슴속에 치밀던 충동을 씻어 내리는 듯했다.

그는 손에 든 향낭을 꼭 쥔 채 한동안 서 있다가, 나직이 웃음을 흘리며 몸을 돌려 본채로 돌아갔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신수빈은 이도현이 직접 써 보낸 글씨를 건네받았다.

봉을 풀어 한 번 펼쳐 보니, 그의 글씨는 그 사람과 꼭 닮아 있었다.

은갈고리와 쇠칼로 그어 놓은 듯 힘이 서려 있었고, 획마다 기세가 밖으로 뻗어 나가서 종이가 찢길 것 같은 정도였다.

신수빈은 그가 서안 앞에 서서 마음껏 붓을 놀리고 있을 모습을 눈앞에 그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사람을 시켜 신병문에게 보내도록 했다.

그러자 청하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마님, 밤늦게까지 새워 가며 겨우 완성하신 향낭인데요. 보낼 때 어찌하여 도련님 일은 말씀도 안 올리신 겁니까?”

“청하, 너는 몰라. 그 사람은 내가 관가 일에 직접 손을 대는 꼴을 보면 분명 못마땅해할 거야. 내가 그의 마음속에서 차지한 자리는 아직 그가 나 하나 때문에 조정을 흔들 만큼 대단한 자리가 못 된다. 이 정도가 오히려 딱 좋아. 그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자질구레한 일 하나쯤으로 나와 신 씨 집안을 기억하게 하고, 신 씨 집안이 어떤 사람들의 집인지 떠올리게 하면 그만이야. 돈 몇 냥에 눈이 멀어 집안 기풍을 더럽힐 집안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 두면 되지. 뭐… 나야…”

신수빈은 말을 멈추며 천천히 숨을 고르고는 이내 눈썹 끝에 옅은 비웃음을 띠우더니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내가 어떤 꼴이 되든 상관없어. 그가 아직 나라는 사람에게 질려 버리지만 않는다면, 계속 내 손안의 말로 써 먹으면 그뿐이니까.”

청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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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연은 누이의 몸이 예전보다 한층 더 커진 것을 눈치채고 바로 배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아이를 가진 것이냐?”“네, 벌써 여섯 달이 되었습니다.”“외조카가 태어나는 걸 내가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신도연은 허리춤에서 옥패 하나를 풀어 손에 쥐었다.“이 옥패는 내가 산과 강, 호수와 바다를 떠돌 때 내내 함께했던 거다. 위에 새겨진 무늬도 내가 직접 새겼다. 외조카가 태어나거든 이걸 아이에게 전해 주거라. 산천과 강물이 분명 아이를 지켜 줄 거다.”신수빈도 이 옥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강줄기를 따라 상류까지 거슬러 올라가 천산에서 구해 온 옥으로 훗날 직접 무늬를 새겨 줄곧 몸에 지니고 다녔기 때문이다.신수빈이 가볍게 손을 저었다.“그럼 제가 오라버니께서 무사히 나오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때 오라버니께서 직접 아이 목에 걸어 주시지요.”신도연은 누이가 자신이 옥에 갇힌 일을 마음 아파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몸에 아이까지 품고 있으니 괜히 더 상심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 눅눅하고 음침한 감옥 공기 역시 그녀의 몸에 좋을 리 없었다.그는 해야 할 말만 일러 준 뒤 더 머물지 말라 당부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뜨게 했다.신수빈은 그에게 몸조심하라는 인사 한마디를 남기고 신도연이 있는 옥사를 떠났다.장녕이 그녀를 호위하며 함께 나가려고 할 때, 신수빈이 물었다.“내 오라버니를 고발한 그 감독관, 이 근처에 있느냐?”“마님께 아뢰자면 북쪽 쪽에 있습니다.”“그쪽으로 데려가거라.”“마님, 북쪽에는 죄질이 무거운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혹여 마님께서 놀라시기라도 하면 그게 모두 소인의 실책이 됩니다.”신수빈은 장녕을 한 번 바라보며 입가에 옅은 비웃음을 머금었다.“나는 너희 왕야 손에서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나왔는데 이제 와서 무엇이 나를 놀라게 하겠느냐?”장녕은 잠시 멍해졌다가 곧 고개를 숙이고는 앞장서서 그 감독관이 있는 곳으로 신수빈을 이끌었다.그는 장풍이 누구를 건드려도 윤 씨 마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97화

    “내가 강회로 떠나기 전에 섭정왕께서 한 번 날 부르셔서 하도를 어떻게 다스릴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섭정왕께서는 강회 평원 구간을 제대로 정비하는 데 대략 얼마만큼의 은자가 필요하냐고 물으셨지. 그래서 나는 단기간만 본다면 제방을 쌓고 둑을 보강하는 것만으로도 양안 유역의 백성을 지킬 수 있지만 오래 두고 보려면 상류부터 손을 대야 한다고 말했지. 물길을 나누고 산을 트며 수로를 파는 일까지 모두 큰 공사라 더 큰 비용이 든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섭정왕께서 한참동안 생각하시더니 대주 왕조가 세워진 지 아직 이십 년밖에 되지 않았고 여러 해 전쟁이 이어져 국고가 비어 있으니 당장 많은 은자를 내놓기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선은 단기적인 대책부터 세워 평원 유역만이라도 수환을 피할 수 있게 은자 백만 냥을 먼저 내리시겠다고 하신 거다. 강회로 내려갔을 때 하도 장부에 고작 삼십만 냥만 올라 있는 걸 보고 나도 이상하다고 느꼈지. 하지만 하도 관아 쪽에서는 조정에서 내려온 돈이 애초에 이것뿐이라고 했다. 나는 아마도 호부에서 내려오는 길에 중간에서 층층이 갈취해 먹었을 거라고 짐작했으나 치수는 한시도 늦출 수 없으니 겉으로는 큰소리를 치며 다시 섭정왕께 상소를 올려 추가로 자금을 청하겠다고 했다.”“섭정왕의 이름을 빌려 이런 중간에서 배를 채우는 관리들을 한 번쯤 눌러 두려 한 것이다. 이후 강회 하도 쪽에서도 돈이 충분하다고 했기에 일단 그들이 삼킨 돈을 토해낸다면 먼저 하도 공사를 시작하고 뒤의 일은 차차 따져 물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모래와 자갈, 공사 자재가 수레마다 제방으로 실려 오는 걸 직접 확인했지만 어디선가 자재를 바꿔치기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하도 감찰사가 직접 감찰한다고 한 구간은 내가 따로 유심히 살펴봤는데 예왕의 봉읍이었다.”“홍수가 밀려오는 시기가 곧 다가온다. 그렇게 부실한 제방으로는 거센 물살을 도저히 막아낼 수 없어. 내 예상대로라면 보름 안에 강회 일대에 홍수 피해가 났다는 소식이 올라올 거다. 그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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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94화

    신수빈은 따로 품고 있는 생각이 있었다.그는 지위도 높고 권세도 막강한 사내였다. 지금은 자신에게 막 새로이 마음이 기울어 있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의 곁에 있지 않았고 그의 주위에는 이미 다른 여인이 있었다.신수빈은 그가 여자를 얼마나 두었는지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다만 앞으로의 일에 그를 써먹어야 하는 만큼, 조금은 공을 들여 그의 마음을 붙잡아 둘 필요가 있었다.그에게 보낼 향낭에는 자신의 몸에서 나는 향과 가까운 향재를 넣었다. 그녀는 지금 이 죽일 놈의 사내를 달래 주려는 셈이었다.신수빈은 향낭에 용무늬를 수놓지는 않았다. 그 밤에 그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정말로 용무늬를 수놓아 보낸다면 그는 그것을 차고 바깥에 나설 수 없을 터였다.그녀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가장 단정하고 기품 있는 상서로운 무늬를 골라 수를 놓았다. 그의 신분에도 잘 어울리며, 길한 뜻도 담긴 무늬였다.그녀는 실을 비틀어 바꾸고 다시 꿰매기를 되풀이했다. 중간에는 하도 졸려 눈을 비비기도 했다. 바늘끝에 손가락을 몇 번이나 찔려 피가 배어나왔지만, 마침내 자시 무렵이 되어서야 향낭 하나를 완성할 수 있었다.향재를 향낭 안에 채워 넣은 뒤, 그녀는 일어나 굽은 허리를 한 번 주무르며 몸을 폈다. 이어 서안 앞으로 걸어가 직접 붓을 들어 편지를 한 통 썼다. 글을 다 쓴 뒤에, 아직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은보에게 봉투를 건네며 명했다.“밖에는 아마 왕야의 사람들이 나와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전해서 왕야께 올리라 하거라.”은보는 근처 어딘가에 암위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은보와 금자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은보는 낮게 대답을 남기고 문을 나서 마당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이도현이 향낭을 받은 것은 그날 밤이 되어서였다. 그는 신수빈이 친필로 적어 보낸 편지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내내 평온했으나, 입꼬리가 올라가는듯한 기색까지 숨기지는 못했다.행궁에 머무는 며칠 동안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93화

    관사는 신병문을 모시며 동서남북을 따라다니는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그런 그를 이렇게까지 허둥지둥하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보통 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신병문이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이기에 이토록 놀라 허둥대는 것이냐?”관사가 서찰을 내밀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도련님 곁에 있던 측근이 사람을 보내, 말을 재촉해 올린 서찰입니다. 도련님께서 하천을 수축하는 데 쓰인 은전을 착복하고 수하 감리들과 나누어 가지려다, 그 감리에게 고변을 당했다 합니다. 그 감리는 도련님께서 따로 꾸며 둔 거짓 장부까지 내놓았다 하고요. 강회 일대의 하도 감찰사는 도련님이 섭정왕께서 직접 지목하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결박해 경성으로 압송했다 합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경성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 있을 것이라 합니다.”신수빈과 신병문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아우가 어찌 하천 공사에 쓰인 은전을 탐낼 리가 있겠느냐!”신수빈 역시 믿기지 않았다.신 씨 집안이 어떤 집안인가? 천하 제일의 부호이지 않았던가? 과장이 아니라, 하천을 고치는 데 들어가는 그 얼마 안 되는 은전은 신 씨 집안이 성 안에서 운영하는 가게 하나 값에도 미치지 못했다. 오라버니는 그런 신 씨 집안의 당당한 적통 셋째 아들인데 어찌 그깟 돈을 탐낼 수 있단 말인가?게다가 오라버니가 자신의 뜻과 꿈에 얼마나 집요한 사람인지 집안 식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이가 어찌 하찮은 은전 몇 푼 때문에 이런 일을 꾸미겠는가?신수빈은 곧바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오라버니가 누구의 이익을 건드렸음을 짐작했다.강회 일대에는 여전히 옛 왕조의 신하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비록 옛 왕조는 이미 사라졌으나 능력 있는 신하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대로 기용되고 있었다.이도현의 사람과 세력들은 그 뿌리 깊은 옛 씨족들의 관계망 속까지는 쉽게 스며들지 못했다.그런 곳에서 갓 조정에 발을 들인 오라버니가 다소 거칠게 일을 밀어붙이니 결국 그들의 이권을 건드리고 만 것이라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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