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4
By:  moominkiller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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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모 누명으로 가문과 함께 처형당한 황후 심월령. 죽음의 순간 그녀를 구하러 온 이는 남편인 황제가 아니라 냉혹한 섭정왕 위지헌이었다. 혼례 3년 전으로 회귀한 월령은 더 이상 황후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번 생, 그녀는 자신을 죽인 황실을 무너뜨리기 위해 섭정왕의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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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sy
nesy
넘 재밌어요. ㅎㅎㅋㅋ 위지헌 짱
2026-07-17 22: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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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 Jo
Jo Jo
이책 흥미진진하네요!! 매회차마다 제목이있고 그제목대로 전개가 질질끌지않고 끊고 맺는 문맥이 단정해서 지루하지않고 ,문장력과 표현력이 뛰어나고 깊게 썼네요!
2026-07-11 16:26:4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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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마미
보리마미
뭔 소설이 문장을 어렵게 표현하는지 첨 앞부분은 내가 머리가 나쁜가 디게 잼없어..번역을 멋부린건지 작가가 원래 표현이 멋인지~~
2026-06-16 2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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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해
해태해
환생얘기는 너무나 많지만, 이이야기는 글이 몰입도가 있고 문장력이 높아서 보는재미가 있어요!
2026-06-16 21:59:2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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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 lee
jy lee
지극히 나른한듯 하면서도 숨을 긴장하게 만드는 템포를 잘 잡아챈 글...문장이 하나하나 섬세하고 표현력을 갖춘 글... 대부분을 1인칭 시점으로 이어가나 한걸음 물러난듯 제3자적 시선처럼 열고 닫는 서술 능력까지... 이야기의 흐름을 어떻게 이어갈지 뒷 얘기보다 뒷문장이 더 기대되는 글...
2026-06-12 14: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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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Chapters
2. 칼
"살려 주십시오."월령이 속삭이자, 위명서의 눈에 옅은 빛이 스쳤다. 끝내 그녀가 무너졌다고, 사랑이 아니어도 두려움 앞에서는 모두 무릎을 꿇는다고 여겼을지도 몰랐다.월령은 진흙 속에서 손끝을 움켜쥐었다. 흰 소매 안쪽으로 손톱이 손바닥을 눌렀다."아란을. 그 아이만은 살려 주십시오."위명서의 얼굴에서 빛이 사라졌다.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그 침묵만으로 충분했다.이미 늦었구나.황제는 처음부터 누구도 살릴 생각이 없었다. 목숨을 저울에 올려 흥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저울 자체를 손에 쥔 사람이었다."시각이 되었습니다, 폐하."형부상서가 젖은 관복을 끌며 머리를 조아렸다. 위명서는 더 이상 월령을 보지 않았다.소매 끝에 묻은 먼지를 털듯,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 손짓 하나에 처형인이 움직였다.월령은 눈을 감지 않았다.마지막까지 보리라 했다.자신을 버린 황제의 얼굴을. 충신의 피를 먹고도 태연한 붉은 담을.그리고 기억하리라.눈을 감아도 잊지 않으리라.칼날이 들어 올려졌다.빗물이 칼등을 따라 흘렀다. 그 얇은 빛이 눈앞에 닿는 순간, 형장 밖에서 땅이 울렸다.처음에는 천둥인 줄 알았다. 그러나 천둥은 그렇게 일정하게 달려오지 않는다.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를 내지 않고, 말의 콧김과 군화의 진동을 데려오지 않는다."북경군이다!"누군가 외쳤다.군중이 갈라졌다.검은 갑옷의 기병들이 형장으로 밀려들었다. 우산이 뒤집혔고, 호위병들이 검을 뽑았고, 형부의 관리들이 젖은 종잇장처럼 질려 물러났다.그 선두에 한 남자가 있었다.위지헌.대연의 섭정왕.선황의 아우이자 현 황제의 숙부.북쪽 변경을 침묵시킨 왕.황궁 안에서조차 이름을 낮춰 불러야 하는 사람. 월령이 황후로 있던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마음을 놓고 마주한 적 없는 남자.그가 빗속을 가르고 달려오고 있었다. 흑마가 계단 앞에서 앞발을 들었다.위지헌은 말이 멈추기도 전에 뛰어내렸다. 검은 장포는 빗물에 무겁게 젖었고, 허리의 장검은 이미 뽑혀 있었다."위지헌! 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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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봄
"숙부."위명서가 차갑게 불렀다.일부러 그렇게 불렀다.피를 나눈 어른이 황명을 거역했다는 사실을, 군중과 관리들 앞에 더 또렷이 세우려는 목소리였다."그 여인은 역적이다."폐후 심씨도, 황후도 아니었다.그 여인.위명서는 월령에게서 마지막 이름마저 벗겨 내듯 말했다. 위지헌은 피 묻은 검끝을 내리지 않았다.월령을 돌아보지 않은 채 낮게 받았다."황후께서는 역적이 아니시다."폐후라 적힌 죄패가 월령의 목에서 빗물에 젖어 흔들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호칭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증좌는 모두 나왔다."위지헌이 마침내 황제를 보았다. 그 눈빛에 군중이 한 걸음 물러났다.신하가 군주를 보는 눈도, 숙부가 조카를 꾸짖는 눈도 아니었다. 오래 칼집 안에서 잠들지 못한 칼의 눈이었다."네가 내놓은 증좌겠지."그의 목소리는 낮고 정확했다."찾았다. 네가 황후를 죽이려 덮어 둔 것들. 옥새의 붉은 자국도, 북문을 더럽힌 명부도, 심 장군의 이름을 훔친 글씨도."월령의 손끝이 얼어붙었다.그가 알고 있었다.아버지가 누명을 썼다는 것을. 심가가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을.자신이 황제에게 버려졌다는 것을.그런데 왜 이제야.왜 하필 모든 것이 끝난 뒤에야."거짓이다!"위명서가 소리쳤다.목소리가 높아지는 순간, 황제가 아니라 궁지에 몰린 사내가 먼저 드러났다."섭정왕이 역적의 딸에게 미혹되어 황명을 거역한다! 금군은 들으라, 당장 저자를—"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북경군의 화살이 일제히 금군을 겨눴다.활시위가 빗속에서 낮게 울었다. 금군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위지헌은 그 소란 속에서 월령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연에서 황제 다음으로 높은 남자가, 진흙탕 형장 위에서 죄패를 건 여인 앞에."월령."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황후도, 폐후도, 심씨도 아니었다.그 두 글자는 빗속에서도 이상하게 젖지 않았다."늦었습니다."그의 손이 그녀의 뺨 가까이에서 멈췄다. 닿기 전 한순간, 허락을 구하듯 숨을 멈추었다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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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향
살구꽃 향이 났다.빗물에 젖은 진흙 냄새도, 목 안쪽을 태우던 비린 독향도 아니었다.부드럽고 희미했다.오래 닫혀 있던 창틈으로 먼 봄이 숨을 죽이고 들어오는 듯했다.심월령은 숨을 들이켰다.그리고 곧바로 기침을 토했다."아가씨!"누군가 비명을 질렀다.월령은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칼날이 닿기도 전부터 속을 태우던 열기가, 아직 목 안쪽에 남은 것 같았다.그러나 손끝에 닿은 목은 멀쩡했다. 상처도, 쇠사슬이 쓸고 간 자국도, 죄패가 눌렀던 흔적도 없었다.월령은 천천히 눈을 떴다.붉은 황궁의 담이 아니었다.차가운 돌계단도 아니었다.머리 위에는 옅은 청색 비단 천장이 드리워져 있었고, 창 너머로 살구나무 가지가 흔들렸다. 가지마다 연분홍 꽃잎이 다닥다닥 붙어, 바람이 지날 때마다 몇 장씩 창살에 닿았다가 아래로 떨어졌다.이 방을 알고 있었다.심가의 동쪽 별채.황후의 금관을 쓰기 전, 그녀가 열여섯 해를 살았던 방이었다. 창가 낮은 서안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먹이 남아 있었다.절반쯤 펼쳐진 병법서, 아버지의 군보를 따라 그리던 산맥과 강줄기, 아란에게 가르쳐 주다 만 바둑판. 흑돌 셋과 백돌 다섯이 끝내기 자리에서 묘하게 맞물린 채 멈춰 있었다.이 방은 그녀가 가장 아름답게 꾸며지던 곳이 아니라, 가장 오래 생각하던 곳이었다."아가씨, 괜찮으세요? 의원을 부를까요?"월령은 고개를 돌렸다.침상 곁에 어린 시녀 청아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아직 양 볼에 젖살이 남은, 눈이 크고 손이 빠른 아이.훗날 황궁 깊은 곳까지 따라와 끝까지 곁을 지키다, 누구도 제대로 이름을 불러 주지 않은 채 사라졌던 아이. 그 아이가 눈앞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월령의 손끝이 떨렸다."청아."목소리가 낯설었다.갈라지고 쉬어 버린 목소리가 아니라, 아직 한 번도 오래 울부짖느라 망가지지 않은, 어린 자신의 목소리였다."예, 아가씨.""오늘이 며칠이냐."청아가 눈을 깜빡였다."삼월 초엿새입니다. 아가씨께서 낮잠을 너무 오래 주무셔서, 소인이 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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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약방
심가의 약방은 동쪽 별채와 서원당 사이, 봄볕이 잘 드는 작은 후원에 있었다. 문 가까이 둥근 소쿠리마다 길경과 감초, 말린 귤껍질이 얇게 펼쳐져 볕을 머금었다.부드러운 약재 냄새 안쪽에, 불 위에서 오래 졸아든 탕약의 쓴 김이 섞여 있었다. 월령이 문턱을 넘자, 안에서 약재를 고르던 계집종 하나가 흠칫 몸을 굳혔다.은매였다.스무 살이 조금 넘은 나이. 눈꼬리가 처져 순해 보이고, 손끝에는 약재 물이 배어 있었다.예전의 월령은 그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어머니를 병들게 한 독은 뒤늦게 알았으면서, 독을 들고 온 손은 끝내 보지 못했다."아가씨께서 여기는 어쩐 일로…"은매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어머니의 탕약을 보러 왔어요."월령은 천천히 약방 안으로 들어섰다."마님 약은 거의 달여졌습니다. 곧 서원당으로 올릴 참이었어요."월령은 약로 위의 검은 사기그릇을 보았다.얇은 김이 피어올랐다.감초와 생강, 길경의 냄새가 먼저 났다. 겉으로는 병든 사람에게 올리기 알맞은, 따뜻하고 무해한 기침약이었다.그러나 그 밑에, 아주 희미한 단내가 섞여 있었다. 달다 하기엔 눅눅하고, 쓰다 하기엔 지나치게 부드러운 — 혀가 아니라 피 속으로 먼저 스며드는 냄새.월령은 그 냄새를 알고 있었다. 붉은 담 안쪽에서는 사람이 향으로 병들었다.차로 잠들었고, 웃는 얼굴 아래에서 천천히 숨이 가늘어졌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늘 늦었지만, 한 번 배운 냄새는 몸이 잊지 않았다.적련초.처음에는 몸을 데우는 약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래 끓이면 피를 삭이고 장부를 망가뜨린다.기침이 있는 사람에게 쓰면 병세가 깊어진 것처럼 보여, 가장 들키기 어려운 독. 어머니는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월령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은매. 이 약은 누가 지어 주었느냐."은매의 어깨가 작게 떨렸다."둘째 부인께서 의원에게 처방을 받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들었다."월령이 조용히 되받았다."직접 받은 것이 아니냐."은매는 입술만 달싹였다.월령은 옅게 웃었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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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연꽃
"저는 정말 이름을 모릅니다."은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어젯밤 어떤 여인이 저를 불렀습니다. 검은 장막을 쓰고 있어 얼굴은 보지 못했고, 목소리도 낮게 깔았습니다. 이 약재를 넣으면 은자 열 냥을 주겠다고, 거절하면 제 동생을 팔아 버리겠다고…""그 여인이 남긴 것은.""없습니다. 다만…"은매가 품에서 작은 비단 조각을 꺼냈다."약재가 싸여 있던 천입니다. 버리려 했는데, 무늬가 고와서…"청아가 그것을 받아 월령에게 건넸다. 흰 비단 조각에 연꽃 무늬가 은실로 수놓여 있었다.아주 작고 섬세한 자수였다. 햇빛 아래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다가, 손바닥 안에서 기울 때마다 물 위에 뜬 꽃처럼 은빛이 살아났다.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저 고급 비단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월령은 알고 있었다.심서윤은 늘 그런 연꽃 무늬를 좋아했다.가련하고 깨끗해 보인다며.월령은 비단 조각을 손안에 접었다. 예전의 그녀는 이 작은 무늬 하나도 보지 못했다.서윤이 흘린 눈물만 보았고, 둘째 부인의 다정한 걱정만 들었다. 어머니의 기침 뒤에서 누가 웃음을 삼키는지, 끝내 보지 못했다.이제는 보였다.너무 선명하게."이 약은 그대로 올리지 않는다."월령이 말했다.은매가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아가씨?""어머니께서 드실 약은 내가 따로 준비한다. 다만, 모두가 이 냄새를 맡게 될 것이다."잠시 뒤 서원당에는 둘째 부인과 심서윤이 올 것이다. 어머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직접 탕약을 권하겠지.그때 그들의 얼굴을 보아야 한다. 누가 어머니의 숨이 꺼지기를 기다리는지.누가 약이 사라질까 두려워하는지."은매. 살고 싶으면, 오늘 본 것을 잊어라."월령은 손안의 연꽃 비단을 소매 깊숙이 넣었다."그리고 누가 이 약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똑똑히 보아 두어라."은매가 바닥에 엎드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약방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부드럽고 느린 걸음.병문안을 온 귀한 손님처럼 조심스러운, 그러나 조금도 서두르지 않는 걸음이었다. 문밖의 햇빛이 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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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손님
문밖의 목소리는 봄비처럼 부드러웠다. 심서윤은 늘 저렇게 말했다.조심스럽게, 다정하게, 누구도 해친 적 없다는 얼굴로. 한때 월령은 그 목소리를 친자매처럼 믿었다 — 곤원전의 어느 밤, 그 작은 손이 비녀함에서 밀서를 꺼내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지금 문을 열어서는 안 됐다.서윤은 영리했다.이 약방 안의 공기만으로도 이상함을 눈치챌 아이였다. 월령은 은매에게 다가가 몸을 낮췄다.떨리는 손을 붙잡고, 그 손안에 작은 약봉지를 쥐여 주었다."이것을 넣어라. 감초와 진피다. 독은 없다."월령이 낮게 속삭였다."향만 비슷하게 날 것이다. 손을 떨지 마라. 오늘 네가 올리는 탕약은,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은매의 목울대가 작게 움직였다."너도 죽지 않는다."월령은 그 젖은 눈을 외면하지 않았다.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죄가 있다 하여 곧장 버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대신, 누가 죽을까 두려워하는지 잘 보아 두어라."바로 그때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언니?"첫 부름보다 아주 조금 낮아져 있었다. 걱정하는 척했지만, 그 안쪽에는 젖은 종이를 급히 접는 듯한 조급함이 있었다.예전이라면 놓쳤을 소리였다."문을 열어요."청아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봄볕을 등지고 심서윤이 서 있었다.연분홍 저고리에 흰 치마, 머리에는 은실로 연꽃을 수놓은 비단 댕기. 그 가련한 얼굴을 보는 순간, 오래 묻어 둔 밤 하나가 스쳤다.곤원전의 밤.서윤은 그때도 똑같이 울먹였다. 언니,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폐하께서 언니를 버리셨는데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어요. 다음 날, 월령의 침전에서 위조된 역모 서신이 발견되었다."서윤아."월령은 다정하게 불렀다.제 목소리가 이토록 평온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평온은 용서가 아니었다.오래 끓은 물이 더는 김을 내지 않는 순간에 가까웠다."몸이 안 좋으시다더니 왜 약방에 계세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어머니 약이 걱정되어 보러 왔어."그 찰나, 서윤의 시선이 약로 위의 사기그릇을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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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숙모
방 안에는 약한 햇살이 고여 있었다. 침상에 기대 앉은 유씨는 창백했지만 살아 있었다.아직 눈빛이 꺼지지 않았고, 손끝에 온기가 남아 있었다. 월령은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무너질 뻔했다.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이 방에는 지켜야 할 사람이 있고, 잡아야 할 사람이 있었다."어머니.""월령아."유씨가 고개를 돌렸다.그 부름 하나에 월령의 눈가가 뜨거워졌다."네가 웬일로 약방까지 다녀왔니. 몸이 약한 아이가.""어머니 약이라서요."월령은 침상 곁에 앉았다.유씨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어머니는 늘 그랬다.월령이 웃어도 울음을 알아보았고, 아무 말 않아도 상처를 먼저 보았다."무슨 일이 있었니?""아무 일도요."거짓말이었다.그러나 이번 거짓말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둘째 부인 한씨는 이미 방 안에 앉아 있었다.짙은 자색 치마에 단정한 비녀를 꽂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유씨를 바라보던 중이었다. 향낭에서 매화와 침향을 섞은 향이 났다.너무 정갈해서, 오히려 병든 방의 냄새와 어울리지 않았다."월령이가 효심이 깊구나. 아픈 몸으로 직접 약을 가져오다니."한씨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숙모께서 좋은 약을 보내 주셨다 들었습니다."월령은 고개를 숙였다."내가 한 일이 뭐가 있겠니. 네 어머니께서 어서 나으셔야지."한씨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눌렀다. 그때의 월령은 그 눈물을 믿었다.지금은 그 손수건 끝에 묻은 향까지 의심스러웠다.서윤이 한 걸음 나섰다."큰어머니, 어머니께서 밤새 의원 처방을 다시 살피셨어요. 꼭 드셔야 해요.""고맙구나, 서윤아."유씨가 희미하게 웃었다.월령은 탕약 그릇을 들었다. 그 순간 한씨와 서윤의 시선이 동시에 그녀의 손으로 향했다.초조함, 기대, 그리고 아주 깊은 곳의 두려움.월령은 그 모두를 보았다."어머니, 약이 조금 뜨겁습니다. 제가 먼저 식혀 볼게요."월령은 숟가락으로 탕약을 떠 올렸다. 한씨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고, 서윤은 숨을 멈췄다.그러나 월령은 숟가락을 어머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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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틈
쨍그랑.백자 그릇이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났다. 검은 탕약이 흰 융단 위로 번졌다."아!"서윤이 비명을 질렀고, 한씨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이런. 손이 미끄러졌구나."월령은 놀란 척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바닥에 쏟아진 탕약이 아니라, 서윤의 치맛자락에 닿아 있었다.탕약 몇 방울이 연분홍 치마 끝에 튀었다. 그곳에서 아주 희미한 변화가 일어났다.물방울이 닿은 자리가 검게 번지는 듯하다가 곧 사라졌다. 보통 약재라면 그런 흔적이 남지 않는다.그 탕약에는 독이 없었다.다만 적련초의 냄새를 흉내 내려 넣은 약재가 있었고, 그 약재는 진짜 적련초 가루와 닿으면 비단 위에서 검게 변했다. 붉은 담 안에서 너무 늦게 배운 작은 반응이었다.그리고 그 반응은, 서윤의 치맛자락에 이미 적련초 가루가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서윤아."월령이 천천히 몸을 숙였다."네 치마가 더러워졌구나. 가까이 와 봐. 내가 닦아 줄게.""괜찮아요. 갈아입으면…"서윤이 황급히 물러났다."서윤아."침상 위에서 유씨가 낮게 불렀다.천천히 몸을 일으키며."월령이가 닦아 준다지 않니."서윤은 더 물러날 수 없었다. 월령은 손수건을 꺼내 치맛자락을 잡았다.손수건에 묻은 약물이 검게 변했다.아주 옅었지만, 분명했다.한씨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월령은 손수건을 접어 소매 안에 넣었다.아직은 공개하지 않는다.지금 여기서 몰아붙이면 한씨는 꼬리를 자를 것이다. 서윤은 울며 모른다 할 것이고, 은매는 죽는다.적련초를 보낸 더 큰 손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서윤은, 처음으로 돌아올 틈마저 잃는다.월령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죄를 덮어 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붙잡을 수 있는 손이라면 먼저 붙잡아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다행히 얼룩이 깊지는 않네."월령은 고개를 들었다."언니…"서윤의 눈에 혼란이 스쳤다."청아, 약방에 따로 내려 둔 탕약을 가져오너라. 내가 어머니께 드릴 거다."청아가 빠르게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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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연못
해시가 가까워질 무렵, 남쪽 연못에 안개가 내려앉았다. 얇고 흰 안개가 물 위의 달도, 버드나무 그림자도, 멀리 별채의 등불도 한 겹씩 지워 갔다.벌레 소리마저 돌 틈으로 잦아든 그 어둠 속에, 월령이 서 있었다. 흰 장삼 위에 짙은 남색 겉옷을 걸쳤다.밤 안으로 스며들기 위해 고른 빛이었다. 곁에 선 청아는 자꾸 소매 끝을 만졌다.낮 동안 본 것들 — 독향이 남은 탕약, 은매의 젖은 눈, 서윤의 치맛자락에 번진 검은 흔적 — 이 아직 어린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은 모양이었다.그래도 청아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 사실이 월령의 가슴 한쪽을 아프게 했다."아가씨."청아가 입술만 움직이듯 속삭였다."정말 여기 계셔도 괜찮을까요?"월령은 대답 대신 청아의 손등을 감싸 쥐었다.차가운 손이었다.주인과 시녀라는 이름을 잠시 걷어 내면, 어둠 속에 선 것은 동갑내기 어린 처자 둘이었다."누가 오면 소매를 잡아. 소리는 내지 말고."월령은 연못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기억은 늘 뒤늦게 왔다.어머니의 흰 천이 걸린 뒤에야 탕약의 냄새를 떠올렸고, 오라비의 군보가 피로 젖은 뒤에야 봉인의 붉은 먹이 번져 있었음을 기억했다.불이 꺼진 방에 남은 연기처럼.이번에는 기다릴 차례였다.저들이 손을 뻗는 순간을.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렸다.청아의 손이 월령의 소매를 잡았다. 검은 장옷을 뒤집어쓴 여인이 연못가로 들어섰다.걸음은 낮고 빨랐고, 익숙한 길을 지나면서도 세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은 가려졌으나, 월령은 그 몸가짐을 알아보았다.금지.서윤의 처소에서 서신을 나르던 아이였다. 악해서라기보다, 살아남는 법을 너무 일찍 배운 몸가짐이었다.잠시 뒤 담장 아래에서 마른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심가의 하인은 아니었다.옷은 평범한 장정의 차림이었으나, 어깨는 좁고 턱은 말랐으며, 걸음은 빠르다가도 멈출 때마다 발끝을 먼저 거두었다. 궁에서 오래 산 사람의 걸음이었다.허리끈의 매듭도 달랐다.두 번 감고 안쪽으로 눌러 숨긴 매듭. 외궁의 하급 내시들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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