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역모 누명으로 가문과 함께 처형당한 황후 심월령. 죽음의 순간 그녀를 구하러 온 이는 남편인 황제가 아니라 냉혹한 섭정왕 위지헌이었다. 혼례 3년 전으로 회귀한 월령은 더 이상 황후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번 생, 그녀는 자신을 죽인 황실을 무너뜨리기 위해 섭정왕의 손을 잡는다.
View More숙비가 옥반지를 낀 손으로 찻잔 뚜껑을 밀었다.얇은 백자끼리 닿는 소리가 났다. 차는 이미 식었고, 대추 한 조각이 붉게 불어 있었다."채운."채운 상궁이 낮은 상을 밀어 왔다. 회청색 치맛자락이 바닥을 쓸었고, 팔을 거둘 때 향낭의 은실 술이 한 번 흔들렸다.상 위에는 금선 든 종이 두 장이 놓였다. 하나는 빛이 가늘고 차가웠다. 다른 하나는 금빛이 조금 두텁게 번져 있었다."보거라. 이것도 궁의 종이고, 저것도 궁의 종이다. 네가 별궁에서 본 종이가 어느 쪽과 닮았느냐."월령은 두 장을 차례로 보았다.관자놀이에 붙은 잔머리 하나가 숨을 따라 흔들렸다. 무릎 위의 봉서에는 붉은 끈이 감겨 있었다.월령은 상 위로 손을 내지 않았다."두 장 모두 궁의 종이라 하셨습니까.""그렇다.""그러면 소녀가 고를 일이 아닌 듯합니다."숙비의 엄지가 옥반지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었다."어째서.""둘 다 궁에서 났으니, 별궁 종이가 어느 쪽을 닮았든 궁에서 나온 종이입니다. 소녀의 집 종이는 이 상 위에 없습니다."채운 상궁이 향낭의 술을 소매 안으로 밀어 넣었다.묵련 나인의 붓이 기록지에서 잠시 떠 있었다."영악하구나.""소녀는 셈이 느립니다. 다만 없는 종이는 고를 수가 없었습니다.""그럼 봉서를 펴 보아라. 네 손의 것은 궁 것이냐 심가 것이냐."붉은 끈이 월령의 손바닥 골을 눌렀다.월령은 두 손을 포개 봉서를 받쳤다."봉함을 풀지 않고는 감히 아뢸 수 없습니다.""열어 보지 않고는 답하지 않겠다?""예.""참으로 배운 대로 말하는구나.""어머니께서는 종이보다 손을 먼저 지키라 하셨습니다."숙비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대추가 물결 속에서 뒤집혔다.허도겸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묵련 나인이 다시 붓을 들었다. 쪽빛 소매가 밀리며 손목 안쪽이 드러났다.흰 살 위에 가느다란 붉은 줄이 두 겹으로 나 있었다. 가장자리는 아직 부어 있었다.먹을 머금은 붓끝에서 검은 방울 하나가 매달렸다.월령의 속눈썹이 내려갔다.문밖에서 낮은
기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접은 종이를 두 손으로 올렸다.위지헌은 종이를 펼쳤다.글자는 길지 않았다.'금선 내지는 문서방 것이 아닐 수 있음.''남쪽 별원 물목에 쓰던 종이와 닮음. 겉에 앉은 금가루.''독고가 상단 물표. 오상궁.'위지헌의 손가락이 종이 아래쪽에서 멈췄다.심가에서는 기다리기만 하지 않았다. 서원당의 병든 부인이, 서윤이, 은매가, 각자 볼 수 있는 만큼을 보고 있었다.위명서는 그 접힌 종이를 보았다.심월령의 곁에는 늘 누군가 있었다. 그녀가 크게 부르지 않아도, 누군가는 작게 움직였다. 그 사실이 그의 속을 천천히 긁었다."허도겸에게 닿게 하라."위지헌이 말했다."문 안쪽은 노은이 막고 있습니다.""문이 열릴 때를 보아라."기윤이 물러났다.위명서는 닫힌 문을 다시 보았다. 안에서 향이 한 번 더 짙어졌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알 수 있었다.그 향이 누구를 위해 피워졌는지, 그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자녕궁 안에서, 월령도 그 향을 알아차렸다.처음의 향보다 단맛이 늘었다. 사람을 졸리게 하는 향이 아니라, 시간을 잊게 하는 향이었다.월령은 손안의 바둑돌을 한 번 굴렸다. 흰 돌과 검은 돌이 작게 부딪쳤다.그 소리가 향의 단맛을 한 번 끊었다."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숙비가 물었다."돌입니다.""바둑을 두느냐.""두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누구에게."월령은 잠시 멈췄다."혼자 둡니다."거짓이었다. 그러나 모두 거짓은 아니었다. 그는 돌을 주었을 뿐, 두는 것은 늘 월령의 손이었다.네가 두기 좋은 곳에 놓아라.나를 변에 두어도, 버림돌로 써도 된다.그 말이 올라오자 손끝이 조금 따뜻해졌다.따뜻해지는 손은 자녕궁 안에서 약한 손이었다. 월령은 흰 돌을 손바닥 깊이 쥐었다."심월령.""예.""네가 그 종이를 펴지 않고 버틸수록, 밖에서는 다른 말이 자란다."숙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섭정왕이 역적의 딸을 감싸기 위해 자녕궁의 문 앞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그런 말이 지금
자녕궁의 첫 번째 문 앞.위지헌은 들어가지 않았다.궁문 밖에서 기다려 달라는 숙비의 말을 그는 들었다. 들었다는 것이 멈춘다는 뜻은 아니었다."문은 셋입니다."기윤이 낮게 말했다."동문, 서협문, 그리고 후원으로 도는 수문.""수문은 언제 여느냐.""새벽에 한 번. 물을 갈 때."위지헌은 첫 번째 문의 돌계단을 보았다. 세 번째 단이 다른 단보다 닳아 있었다. 사람이 많이 밟은 단이 아니라, 무거운 것이 여러 번 지난 단이었다. 수레가 아니라 들것. 들것이 아니라 함.종이를 빼낸다면 서협문이었다. 기록이 가장 얇은 문.한 번 지나온 길이었다."서협문에 둘을 세워라. 잡지 말고 적어라."기윤이 물러났다.위지헌은 닫힌 문을 보았다. 그 너머에 월령이 있었다.그가 들어가면, 그녀의 마음이 정치가 된다. 그것을 알면서도, 발은 문지방의 그림자 앞에 가서야 멈췄다.그 한 뼘을 넘으면 그녀가 있었다.한 뼘이었다. 그는 그 거리를 오래 보았다. 칼이 닿는 거리도, 말이 닿는 거리도 아닌,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문틀에 손이 닿아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나무의 결을 따라 한 번 굳었다가, 천천히 풀렸다. 그는 그 손을 거두었다. 거두는 데 평소의 두 배가 걸렸다.안에서 향이 한 번 바뀌었다.단맛이 늘어난 향. 사람을 머물게 하는 향.위지헌의 목 안쪽이 말랐다.그는 월령이 그 안에서 얼마나 오래 견디는지 알았다. 충분히 오래. 그것도 그의 앞에 펼쳐진 길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그녀의 손끝이 차가워지는지, 숨이 얕아지는지, 그를 한 번이라도 부르는지. 그것만은 어디에도 펼쳐지지 않았다.한 번 지나온 생에서, 이 시각의 월령은 자녕궁에 있지 않았다.그녀가 무엇을 겪는지 모르는 길을, 그는 처음 걷고 있었다.아는 길과 모르는 길이 같은 문 앞에서 겹쳤다. 그래서 문은 더 가까웠고, 더 멀었다.위지헌은 닫힌 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두 번째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선과 걸음이 같은 방향이 아니었다. 몸의 절반은 여전히 첫
월령은 봉서를 내려다보았다."마마께서 보실 종이라면, 봉을 푸는 자리에 예관이 있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예관이 어디 있느냐.""소녀가 먼저 펼까 두렵습니다."숙비가 웃었다. 웃음은 입가에서 그쳤다."네가 그 종이를 들고 여기까지 온 것은, 펴지 않기 위해서였구나.""그리 보였다면 송구합니다. 예관 앞에서 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월령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고, 끝이 둥글었다. 거스르는 말도 그렇게 하면 거스르는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숙비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심 부인이 가르쳤느냐.""어머니께서는 말을 적게 하라 하셨습니다.""적게 하는 것과 잘 고르는 것은 다르다."월령은 고개를 더 낮추었다."명심하겠습니다."숙비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내민 손을 거두는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 처음부터 내밀지 않은 사람 같았다."네 아비의 글을 잘 알아보더구나."월령의 손끝이 봉서 가장자리에서 멈췄다."그저 아버지의 글이 좋아, 늘 곁에 두고 보았을 뿐입니다."위명서 앞에서 내려놓았던 답과 결이 같았다. 두 번 묻는 자리에서 답이 달라지면, 흔들린 그 틈이 곧 약점이 되었다. 그래서 같은 답을, 같은 결로 내려놓았다."좋아한다."숙비는 그 말을 천천히 되풀이했다."궁에서는 좋아한다는 말도 쓸 곳을 보아야 한다."월령은 대답하지 않았다.아버지의 글은 곧고 좁았다. 글자 사이가 멀지 않았고, 끝을 길게 끌지 않았다. 급한 날에도 마지막 획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월령은 어릴 때 그 글자들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 본 적이 있었다. 종이에 닿지도 않는 손끝으로.그때는 글자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그저 아버지가 멀리 있어도, 글자는 집에 남는다고 생각했다.지금은 글자 위에 다른 글자가 얹혔다. 아버지의 글 위에 금선 내지가, 금선 내지 위에 자녕궁의 향이, 그 위에 아직 마르지 않은 먹이 얇게 놓였다."네 아비는 북문에 있다."화제가 옮겨졌다. 옮겨진 자리가 더 추웠다."예.""
조서는 얇았다.얇은 종이가 사람을 가장 깊게 베는 날이 있다.심가 대문에 걸린 등불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내관이 돌아간 뒤에도 하인들은 감히 소리를 높이지 못했고, 부엌의 솥뚜껑은 평소보다 조용히 닫혔다. 종이 한 장이 집 안의 숨을 바꾸었다. 누가 지나가도 발끝이 먼저 조심스러워졌고, 아이들은 웃다가도 어른들의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월령은 조서를 다시 펼쳤다.궁중 내지 유출.호부 군량 장부 조작.심가 여식.그 말은 일부러 넓었다.월령일 수도 있고, 서윤일 수도 있었다. 혹은 둘 다일 수도 있었다. 넓은 말은
자녕궁에 가는 날, 경성의 거리에는 낮부터 등틀이 세워지고 있었다.상원절은 이미 지났지만, 대연의 봄에는 작은 등놀이가 자주 열렸다. 남쪽 수해지에서 올라온 장인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종이등을 만들었고, 궁은 그것을 사들여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모양을 갖췄다. 거리의 아이들은 등불을 좋아했고, 어른들은 쌀값을 생각하며 그 빛을 보았다.빛은 늘 아름다웠다.그러나 빛을 밝히는 기름값은 누군가의 장부에 적혔다.마차 안에서 서윤은 말이 없었다.오늘의 서윤은 옅은 연두빛 치마를 입었다. 한씨가 골라 준 옷이었다. 너무 화려하지 않
허도겸은 약속한 시각보다 이른 때에 왔다.아침 안개가 아직 대문 밖 버드나무 잎에 걸려 있을 때였다. 심가의 하인들은 물을 뿌린 마당을 쓸고 있었고, 부엌에서는 찹쌀을 씻는 소리가 낮게 났다. 심 부인의 약을 달이는 냄새가 서원당 쪽에서 천천히 흘러나왔다. 집은 깨어나고 있었으나, 아직 하루의 얼굴을 완전히 갖추지는 못했다.그 틈에 온 사람은 늘 급한 일을 품고 있다.허도겸은 정청이 아니라 서고 앞 작은 툇마루에서 월령을 보겠다고 했다. 둘째 숙부는 불쾌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으나, 호부 낭중의 말은 예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이의 이름은 은호였다.은매가 처음 그 이름을 부를 때, 목소리는 거의 소리라기보다 숨에 가까웠다. 은호야. 그 두 글자가 입술 밖으로 나오자마자 은매는 다시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으나, 울지는 않았다. 동생이 깰까 봐 참는 울음이었다.은호는 작았다.일곱 살이라 들었지만, 마른 몸은 그보다 더 어려 보였다. 손목에는 회색 실이 묶여 있던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고, 기침을 참을 때마다 혀끝으로 이를 쳤다. 딱, 딱. 작은 소리는 방 안 사람들의 숨을 매번 붙잡았다.왕부 의원은 은호의 맥을 짚고 오래 말이 없었다.청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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