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103화: 불타는 진주성 1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4 20:55:23

"올라온다! 사다리를 걷어차라!"

와르르 무너진 공성탑의 잔해는 놈들에게 훌륭한 계단이 되었다.

박살 난 나무판자와 동료의 시체를 밟고, 왜군들이 개미 떼처럼 성벽을 기어올랐다. 성벽 위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타타타타탕-!

성 아래에서 수천 명의 조총수가 일제 사격을 가했다.

콩 볶는 소리가 아니었다. 대기가 찢어지는 굉음이었다. 납탄이 비 오듯 쏟아져 성벽을 때렸다. 돌 틈에 박히고, 나무 기둥을 뚫고, 미처 피하지 못한 병사들의 투구를 깨뜨렸다.

핑!

내 어깨를 때린 탄환이 힘없이 튕겨 나갔다.

"어딜."

나는 옷에 묻은 납 가루를 툭툭 털었다.

"고개 숙여! 방패 뒤로 숨어!"

나는 미숙이를 휘둘러 성벽 위로 튀어 오른 왜병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김시민 장군님! 놈들이 너무 많습니다! 화살도 다 떨어져 갑니다!"

부관이 절규했다.

3만 대군의 파상공세는 끝이 없었다. 죽여도 죽여도, 시체를 넘고 넘어 다시 기어 올라왔다. 성벽 아래는 이미 놈들의 시체로 언덕이 만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123화: 평양성 탈환의 숨은 공신 2

    나는 미숙이를 뽑아 들고, 가파른 경사면을 향해 몸을 던졌다."돌격!!""와아아아아!!"하얀 설원 위로 검은 그림자들이 쏟아져 내렸다.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그 힘을 이용해 가속하는 죽음의 스키 부대.눈보라를 일으키며 미끄러져 내려가는 속도는 말보다 빨랐다.협곡 아래, 왜군들은 고개를 들 힘조차 없어 보였다.그러다 땅이 울리는 소리에 멍하니 위를 쳐다보았다.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눈사태가 아니었다.산을 타고 내려오는 붉은 악귀들이었다."테, 테키슈!(적습!)""막아라! 총을 쏴!"왜군 장교가 비명을 질렀지만, 병사들의 손은 얼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조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지만...틱. 틱.불발이었다. 화약이 습기를 먹고 얼어붙은 탓이었다. 심지에 불조차 붙지 않았다."안 나갑니다! 총이 안 나갑니다!"공포가 놈들을 덮쳤다.콰아앙!선두에 선 내가 그대로 적진 한가운데를 들이받았다.설마의 속도에 내 체중, 그리고 미숙이의 중량까지 더해진 충격량.부딪힌 왜병들이 볼링핀처럼 허공으로 날아갔다.나는 멈추지 않았다.설마의 탄력을 이용해 빙글 돌며 미숙이를 휘둘렀다.퍼억! 우지끈!얼어붙은 갑옷은 유리처럼 깨져나갔고, 추위에 굳어버린 뼈는 너무나 쉽게 부러졌다."으아아악!"비명 소리가 협곡을 메웠다.하지만 그것은 전투가 아니었다. 일방적인 도륙이었다.익호군들이 설마를 탄 채 적진을 유린했다.스쳐 지나가며 창으로 찌르고, 낫으로 베고, 도끼로 찍었다. 기동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왜군들은 눈밭에 발이 묶여 허우적거리는 동안, 우리는 얼음판 위를 지치는 스케이터처럼 그들 사이를 누비며 목숨을 수확했다."살려줘! 살려줘!""으아악!"처절한 울부짖음.나는 감정을 지우고 기계적으로 방망이를 휘둘렀다.이것이 전쟁이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저들이 살아나서 내 가족을 죽인다. 자비는 사치다.적진 중앙.보급을 책임지는 수송대장이 말을 타고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화려한 갑옷을 입은 놈이었지만, 공포에 질린 표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122화: 평양성 탈환의 숨은 공신 1

    ​세상은 온통 하얬다.그리고 죽음처럼 고요했다.​전라도와 충청도를 가르는 노령산맥(蘆嶺山脈)의 험준한 고갯길.하늘에는 구멍이라도 뚫린 듯 주먹만한 눈송이가 펑펑 쏟아지고 있었고, 무릎까지 차오른 눈밭은 한 걸음 한 걸음을 천근만근으로 만들었다.​"후욱... 후욱..."​거친 숨소리만이 고요한 설산을 울렸다.선발된 1,000명의 익호군 정예. 그들은 침묵 속에 걷고 있었다.​"대장님. 춥지 않으십니까?"​옆에서 걷던 최가가 콧물을 훌쩍이며 물었다. 녀석의 수염에는 하얗게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안 춥다. 넌 춥냐?"​"아뇨. 사실 좀 덥습니다. 이놈의 종이 옷이 어찌나 따뜻한지, 땀띠가 날 지경입니다요."​최가는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자신의 붉은 누빔옷을 퉁퉁 쳤다.옷감 사이에 구겨 넣은 한지와 지푸라기, 그리고 품속에 품은 달궈진 돌멩이. 현대의 깔깔이와 핫팩 원리를 적용한 이 '방한 장비' 덕분에, 우리는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서도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다.​"근데 대장님, 나머지 애들은 진짜 안 데려와도 됩니까? 2,000명이나 남겨두고 우리끼리만 와서 좀 쫄립니다요."​최가가 뒤를 힐끔거리며 물었다.​"이 눈밭에 3,000명이 움직이면 다 굶어 죽어. 보급 마차도 못 끌고 오는데 식량은 어떻게 할 거야?"​나는 단호하게 잘랐다.​"나머지 2,000명은 '익호 삼각지대'를 지켜야 해. 담양, 나주, 진주로 흩어져서 왜놈 잔당들이 얼어 죽겠다고 민가 털러 오는 거 막으라고 했다. 겨울엔 도둑 지키는 게 농사 짓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식량 분산 효과도 컸다. 한곳에 모여 있으면 쌀독이 비는 속도가 감당이 안 되지만, 각 거점으로 흩어놓으면 각자도생이 가능하다.​"그리고 이번 작전은 '속도'가 생명이야. 스키... 아니, 설상화 탈 줄 아는 날쌘돌이들만 추려온 이유가 그거다."​"복 받은 줄 알아라. 저거 안 보이냐?"나는 턱짓으로 길가를 가리켰다.최가의 시선이 닿은 곳.눈 덮인 둔덕처럼 보이는 그것은,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121화: 동장군(冬將軍)과 깔깔이 2

    "양산 들어간다! 전군에게 보급해!"공장은 풀가동되었다.종이 구기는 소리, 바느질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며칠 뒤, 익호군 3,000명은 전원 '종이 깔깔이'를 갖춰 입게 되었다.연병장에 모인 녀석들의 꼴은 가관이었다.다들 덩치가 두 배는 커져서 뒤뚱거리는 게 펭귄 무리 같았다. 붉은 누빔옷이 터질 듯 부풀어 있었다."푸하하! 야, 너 굴러가겠다!""너는 곰이냐 돼지냐?"녀석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고 낄낄거렸지만, 표정은 밝았다. 춥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사기가 올랐다.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옷으로 체온을 지킬 순 있어도, 얼어붙은 손발을 녹일 순 없었다. 보초를 서거나 매복을 할 때가 문제였다."손이 곱아서 활시위를 못 당기겠습니다.""발가락 감각이 없습니다."병사들의 고충.나는 다시 머리를 굴렸다.'핫팩.'흔들면 열이 나는 그 문명의 이기.철가루와 소금, 톱밥... 재료는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비율을 맞추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일회용이라 아깝다.좀 더 원시적이고, 반영구적인 방법."돌.""예?"나대용이 물었다."돌을 굽읍시다.""돌을 구워 먹게요?"...이 양반... 개그 욕심이 있는게 분명하다.저봐. 저거. 입가가 실룩실룩 한다."... 아뇨. 품고 다니게."나는 주먹만 한 자갈들을 모아오게 했다. 그리고 모닥불에 던져 넣었다.한참 뒤, 뜨겁게 달궈진 자갈을 꺼내 두꺼운 무명천으로 여러 겹 감쌌다."자, 받아보십쇼."나대용이 자갈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앗, 뜨거! ...어? 이거 꽤 오래가겠는데?""돌은 열을 오래 품고 있으니까요. 식으면 다시 불에 넣으면 되고."원시적인 핫팩.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병사들은 이 '돌 핫팩'을 양쪽 주머니에 넣고, 하나는 품에 안았다."이야, 뜨끈뜨끈하니 좋습니다!""이거 하나면 밤샘 보초도 거뜬하겠습니다!"그리고 마지막 처방."추울 땐 기름기가 최고야. 어제 잡은 멧돼지, 비계 듬뿍 넣고 끓여. 칼로리가... 아니, 열량이 높아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120화: 동장군(冬將軍)과 깔깔이 1

    춥다.그냥 추운 게 아니라, 뼈마디가 시리고 영혼까지 얼어붙을 것 같았다.1593년 1월. 계사년(癸巳年)의 새해가 밝았지만, 태양은 빛을 잃었고 바람은 칼날이 되어 살을 저몄다.역사책에서 봤던 '소빙기'의 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400년 뒤의 대한민국 겨울보다 훨씬, 지독하게 추웠다."으으으... 대장님... 콧물이 고드름이 됐습니다요..."보초를 서던 최가가 덜덜 떨며 들어왔다. 녀석의 수염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방금 교대하고 들어온 건데도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문 닫아! 바람 들어온다!"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소리쳤다.금강불괴? 웃기는 소리다. 칼은 안 박혀도 추위는 박히더라. 내복도 없고 보일러도 없는 이 시대의 겨울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객주 마당의 풍경은 처참했다.익호군 병사들은 삼삼오오 모닥불 주위에 모여 웅크리고 있었고, 피난민들은 얇은 베옷 하나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버티고 있었다. 훈련이고 뭐고 다들 얼어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중이었다."동상 환자가 늘고 있어요. 발가락이 까맣게 변한 사람도 있고..."미령이가 울상을 지으며 보고했다. 그녀의 손도 빨갛게 트고 갈라져 있었다."솜옷은? 더 없냐?""다 떨어졌어요. 목화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예요. 있는 건 죄다 뜯어서 병자들 덮어줬는데도 모자라요."서백설이 한숨을 쉬며 화로에 손을 녹였다. 천하의 거상 서백설도,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솜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상황은 심각했다.이대로 가면 왜놈이랑 싸우기도 전에 추위에 얼어 죽게 생겼다. 활시위는 얼어서 당겨지지 않고, 창대는 차가워서 손에 쥐기도 힘들었다.나는 미숙이를 만지작거리며 고민에 잠겼다.추위를 막아야 한다.하지만 솜은 없다. 가죽도 부족하다.그렇다면 대체 무엇으로 이 칼바람을 막는단 말인가.'전생의 기억... 기억을 더듬어 보자.'대한민국 육군 병장 강철민.강원도 철원의 혹한기 훈련.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 텐트를 치고 자던 그 시절.그때 우리를 지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119화: 대국(大國)의 장수 vs 조선의 항우 3

    눈이 뒤집히고 입에서 거품이 나왔다.정적.객주 마당에 있던 500명의 명나라 기병들이 얼어붙었다.자신들이 믿던 최강의 장수가, 조선의 시골 무인에게 어린애처럼 던져졌다.나는 쓰러진 팽신의 가슴을 발로 밟았다."일어나. 밥 먹어야지."나는 미숙이로 놈의 뺨을 툭툭 쳤다.팽신이 쿨럭거리며 정신을 차렸다. 나를 올려다보는 놈의 눈빛이 변해 있었다.분노? 아니었다.그것은 압도적인 강자에 대한 공포, 그리고 경외심이었다.중국인들은 힘을 숭상한다.자신보다 약한 자는 짓밟지만,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는 철저히 복종한다. 그것이 대륙의 생존 법칙이었다.팽신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따, 따거...(형님...)""......뭐?""제가 졌습니다! 대협의 무공에 감복했습니다!"팽신이 머리를 땅에 박았다. 뒤에 있던 명나라 병사들도 우르르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었다."따거를 뵙습니다!"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아니, 형님은 무슨. 우린 초면인데.""무림에서 강자는 곧 형님입니다! 부디 저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고, 아우로 받아주십시오!"팽신이 울먹이며 매달렸다. 2미터 거구가 징징대니 징그러웠다.서백설이 옆에서 킥킥거렸다."축하해요, 대장님. 전국구 인맥 생기셨네.""시끄러워. 이걸 어쩐다..."나는 한숨을 쉬었다.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식충이들을 다 거둘 수도 없고."야, 팽신.""예! 형님!""너희들, 밥은 먹었냐?""아, 아직...""최가야! 연병장에서 끓고 있던 가마솥 통째로 실어와! 국밥 말아라, 500그릇!"익호군 3,000명의 아침을 책임지던 대형 가마솥들은 아직 식지 않은 상태였다. 훈련용으로 넉넉히 끓여둔 시래기국에 찬밥을 퍽퍽 말아 토렴해내자, 순식간에 500그릇의 국밥이 완성되었다.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이 명나라 병사들에게 돌려졌다. 놈들은 걸신들린 듯이 밥을 퍼먹었다."마이따! (맛있다!) 조선 밥 최고다!"팽신도 국밥을 원샷하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118화: 대국(大國)의 장수 vs 조선의 항우 2

    "목소리 한번 크네. 남의 영업장에서 소란 피우지 말고 용건만 말하쇼.""뭐, 뭐라? 이 건방진...!"팽신은 내 태도에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나는 명나라 유격장군 팽신이다! 네놈이 훔쳐 간 무기와 갑옷을 내놓고, 내 부하들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훔쳐 가다니. 정당한 수리비와 청소비로 압류한 겁니다."나는 턱으로 대장간 쪽을 가리켰다."그리고 댁들 무기는 이미 호미가 돼서 밭 갈러 갔는데요?""......!!"팽신의 눈이 뒤집혔다.무인의 무기를 녹여서 호미를 만들었다? 이건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이, 이 오랑캐만도 못한 놈이! 죽어라!"팽신이 청룡언월도를 치켜들었다.80근(약 48kg) 정도?저걸 한 손으로 붕붕 돌리는 걸 보니 힘 하나는 장사였다."모두 비켜라! 내 손으로 이 놈의 머리통을 쪼개주마!"명나라 병사들이 환호하며 뒤로 물러났다. 익호군 녀석들도 긴장하며 나를 쳐다봤다."대장님... 저 놈 덩치가 장난 아닙니다. 조총으로 쏠까요?"최가가 속삭였다."아니. 놔둬."나는 미숙이를 손바닥에 탁탁 쳤다."저런 놈들은 말로 해선 안 들어. 몸의 대화를 원하시는 것 같은데, 해드려야지."나는 팽신 앞으로 걸어 나갔다."좋다. 덤벼라. 대신, 네가 지면 네 부하들 밥값까지 네가 내는 거다.""닥쳐라!"부웅-!팽신이 언월도를 휘둘렀다.공기를 찢는 파열음이 예사롭지 않았다. 단순한 힘뿐만 아니라 기술이 실린 일격이었다.내 눈에는 궤적이 보였다.위에서 아래로, 대각선으로 내려찍는 궤적.무겁고 느리다.나는 피하지 않았다.오른손에 든 흑단목 방망이, 미숙이를 들어 올렸다.콰앙!언월도의 날과 흑단목이 충돌했다.거대한 쇳덩이와 나무의 충돌이었지만, 부러지는 건 나무가 아니었다.불꽃이 튀고, 팽신의 손목이 튕겨 나갔다."으윽?!"팽신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자신의 온 힘을 실은 공격이, 고작 나무 방망이 하나에 막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힘은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