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외국에 간다고?”성유리는 예상치 못한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녀는 성노을을 쳐다보면서 다급히 물었다.“노을아, 언제부터 외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야? 왜 엄마한테 얘기하지 않았어?”“얼마 전에 유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국내에 남아있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아요.”“확실한 거지?”박한빈은 그에게 유학에 관한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어쩐지 짤막한 말 한마디에 많은 의미가 담긴 것 같았다.성노을은 망설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유학하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을 거예요.”성유리는 박한빈과 성노을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묻고 싶었지만 때가 아닌 것 같아서 도로 삼켰다.그녀는 성노을에게 음식을 집어주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노을아, 앞으로 기회가 많을 테니 천천히 생각해 봐.”성노을은 재벌가 도련님이기에 여러 분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실패하더라도 가문의 힘을 빌려 다른 영역에 손을 뻗으면 그만이었다.성유리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일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전부 박한빈 덕이었다.지위가 높고 막대한 부를 쌓아두었기에 성유리와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성하늘과 성노을이 한평생 놀기만 한다고 해도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성유리는 박한빈을 힐끗 쳐다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한빈 씨, 게 껍데기를 발라줄게요.”그 말에 박한빈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성유리는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게를 집어 들었다.“별로 먹고 싶지 않아.”그는 말하면서 성유리의 손목을 잡았다.“알겠어요.”성유리는 음식을 그릇에 놓아주면서 말을 이었다.“맛있는 것만 주문했으니 얼른 먹어요. 이것도 정말 맛있어요.”박한빈은 갑자기 이것저것 챙겨주는 그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색하지 않고 그녀가 집어준 음식을 입에 넣었다.식사를 마친 뒤, 성유리는 성노을과 같이 뒷좌석에 앉으려고 했다. 그런데 차에 기대있던 박한빈이
성유리는 고개를 돌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미간을 찌푸린 채 앞을 내다보고 있는 박한빈은 차가 막혀서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성유리는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성노을과 얘기를 나누었다. 평소에 성노을은 말수가 적었지만 오랜만에 성유리를 만나서 그런지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얼마 후, 박한빈이 예약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금성 최고급 상권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이었고 1인당 200만 원을 훌쩍 넘겼다.이곳에 오는 손님은 상당한 재력을 자랑하거나 권력이 높은 사람이었다. 호텔 매니저는 박한빈을 보자마자 달려가서 공손하게 인사하고는 방으로 안내했다.성유리는 성노을에게 해청시에서 있었던 일을 알려주었다. 옆에 있던 박한빈은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더니 찻잔을 들이밀었다.성유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를 바라보았다.“유리야, 목이 마르지 않아? 물도 마시지 않고 오는 길 내내 얘기를 나눴잖아.”그의 표정에서 아무런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하지만 성유리는 그가 화났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재빨리 차를 한 모금 마셨다.박한빈은 고개를 돌리고 성노을을 향해 물었다.“요즘 네 누나와 연락한 적이 있어?”“네. 얼마 전에 누나가 저한테 연락했어요.”성노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프로젝트 자금이 부족해서 돈을 빌려달라고 했어요.”그때 성하늘은 이 일을 박한빈과 성유리에게 알려주지 말라고 했었다. 부탁을 들어준다고 한 적이 없으니 얘기해도 상관없을 것이다.“그래서 하늘에게 돈을 빌려줬어?”“아니요.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제가 아니라 아빠한테 도와달라고 했을 거예요. 저에게 연락했다는 건 아빠한테 말할 용기가 없거나 말했는데 도움받지 못한 거겠죠. 둘 중 어느 경우든 도와주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성노을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성유리는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이때 박한빈은 그녀의 손바닥을 살짝 꼬집었다. 성유리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그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하늘이 너한테 또 뭐라고 했어? 돈을 빌리겠다고 한 뒤
“노을아!”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성노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들었다. 차 옆에 서 있던 성유리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성노을은 신이 나서 재빨리 달려갔다.“엄마, 언제 돌아오셨어요?”성유리는 그의 볼을 매만지더니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 금성에 오자마자 너를 데리러 왔지. 노을아, 요즘 밥을 제때 챙겨 먹지 않은 거야? 얼굴이 반쪽이 되었네.”“세 끼 다 먹었어요.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입맛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적게 먹었을 뿐이에요.”“그러면 저녁에 나가서 맛있는 걸 먹을까? 네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가자.”“좋아요. 아빠는 어디에 있어요?”성노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차창이 천천히 내려갔다. 그는 표정이 굳은 박한빈과 시선이 마주쳤다.성노을은 멈칫하더니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성유리와 너무 가까이 붙어있으면 박한빈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그는 성유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했다.“길가에 서 있지 말고 얼른 차에 타.”박한빈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성유리는 성노을과 함께 뒷좌석에 올라탔다.운전석에 앉은 박한빈은 그녀가 뒷좌석에 앉은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동을 걸었다.성유리는 성노을을 바라보면서 다정하게 말했다.“요즘 잘 지냈니? 별일 없었어?”곰곰이 생각해 보던 성노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난주에 시험을 보았어요. 오늘 성적표를 받았고요.”“그랬어? 이번에는 몇 등이야?”“또 5등밖에 하지 못했어요.”성유리는 만족스러운 듯 웃으면서 말했다.“아주 잘했어.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거지?”“늘 똑같아요.”“아, 노예린이 모풍국에 갔다고 했지? 저번에 소식을 전해 들었어.”성노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외국에 가서 허전하지 않아? 엄마가 너라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아. 너는 어때?”“생각보다 견딜 만해요. 저는 괜찮으니까 신경
하은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교에 소문이 퍼질 거라고 생각했다. 성노을을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찾아와서 그녀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었다.아무도 없는 곳으로 간 뒤, 하은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할 말이 뭐야? 시간 없으니까 빨리 말해.”“노예린은 외국에 갔어.”“알아. 겨우 그걸 말하려고 부른 거야?”하은진의 말에 성노을은 멈칫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요즘 노예린과 연락한 적 있어?”“당연히 연락하지. 그곳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 현지인과 소통할 수 없어서 그 나라 언어를 배우고 있대. 노예린이 바빠서 매일 연락하지는 못했어.”성노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무언가가 이상하다고 느낀 하은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야?”성노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아, 아무것도 아니야. 계속 노예린과 연락하고 있어서 다행이야.”말을 마친 그는 뒤돌아섰다. 그 자리에 남겨진 하은진은 찝찝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교실로 돌아가려고 했다.이때 성노을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노예린이 너한테 내 얘기를 한 적이 있어?”“뭐라고?”“요즘 노예린이 너랑 연락하면서 내 얘기를 한 적 있어?”그 말에 하은진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른 그녀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그게 궁금해서 나를 찾아온 거야?”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성노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차라리 노예린한테 직접 물어보지 그래?”“뭐?”“너는 노예린의 연락처를 알고 있잖아. 직접 물어보란 말이야.”성노을은 노예린의 연락처마저 모른다는 것이 떠올랐다. 순간 할 말을 잃은 그는 고개를 돌렸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은진은 미간을 찌푸렸다.“설마 노예린의 연락처도 모르고 있었던 거야?”“맞아. 물어보려고 했는데...”하은진은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했다. 성노을이 노예린을 좋아해서 물어보는 줄 알았지만 단순히 이성적인 감정만 품은 것 같지 않았다.“노예린이 신경 쓰여서 그래?”
“성노을!”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성노을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그의 옷과 머리카락은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한 여학생이 이쪽으로 걸어오자 성노을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그 여학생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성노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쑥스러워서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졌고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성노을은 가만히 서 있는 여학생을 보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여학생의 친구들이 소리를 질렀다.“겁먹지 말고 질러버려!”“준비한 대로 하면 돼. 기회가 왔을 때 물어보란 말이야.”그 말에 성노을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나한테 할 말이 있는 거야?”“노을아, 혹시 연락처 좀 알려줄 수 있을까?”그 여학생은 수줍게 웃으면서 물었다.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는지 옷깃을 꽉 잡고는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성노을은 그제야 여학생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아니.”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핑계를 대면서 완곡하게 거절했겠지만 성노을은 사뭇 달랐다.말을 마친 그는 여학생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돌아섰다. 제자리에 굳어버린 여학생이 목 놓아 울었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성노을은 그 상황이 민망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학생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서 가버린 것이다.옷을 갈아입으러 갈 때, 그는 복도 한쪽 끝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노예린의 친구 하은진이었다.노예린이 모풍국에 간 지 벌써 두 주일 정도 되었다. 그 사이에 하은진은 다른 학생과 친해졌고 어디를 가든 함께였다.성노을은 하은진이 다른 여학생과 같이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노예린이 학교에 있을 때 하은진과 아주 친하게 지냈었다.두 사람은 매일 같이 밥을 먹고 매점에 가서 간식을 사 먹었다. 그런데 노예린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하은진은 다른 친구와 친하게 지냈다.
그녀는 말하면서 짜장면을 계속 먹었다. 성유리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어서 배주아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배주아는 뜸을 들이더니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아주머니는 아저씨를 잃을까 봐 두렵지 않으세요?”“당연히 두렵죠. 하지만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건 그 사람의 마음속에 나 말고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거잖아요. 조금 전에 배주아 씨가 얘기했다시피 바람을 피운 사람과 계속 만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거예요. 사실 배주아 씨도 영원한 사랑을 꿈꾸잖아요. 안 그래요?”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란 배주아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는 손을 매만졌다.“얼른 먹어요. 면이 불으면 맛없잖아요.”그제야 정신이 든 배주아는 젓가락을 들고 짜장면을 먹었다. 두 사람은 식사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식사를 마친 뒤, 성유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전시회에 다시 갈 건가요?”배주아는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러면 먼저 집에 돌아가 보세요. 아까 못 본 작품이 있어서 가보려고요. 오늘 같이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배주아 씨 덕에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성유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녀가 식당에서 나가기 전에 배주아가 입을 열었다.“아주머니는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계셨죠?”성유리는 배주아가 솔직하게 말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사실 아주머니께서 저를 모욕하고 때릴 줄 알았어요.”그 말에 성유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배주아 씨는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어요.”깜짝 놀란 배주아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손을 덜덜 떨었다.“애초에 잘못을 따질 생각이 없었어요. 배주아 씨는 아직 젊고 가지고 싶은 것이 많겠죠. 그 나이에 실수할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내 남편이 몇십 년 동안 알고 지낸 나를 버리고 두 번밖에 보지 못한 배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