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는 곧장 성유리 곁으로 달려왔다.그리고 품에 안겨 들었다.“너...”박한빈은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말하려 했다.“지금 엄마가 널 안기에는 너무 무리잖아.”하지만 성유리는 이미 몸을 굽혀 하늘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그녀는 박한빈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고 그저 말없이 하늘이를 안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그날 밤, 하늘이는 성유리와 함께 잠들었다.겉보기엔 다소 침착하고 어른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결국 하늘이는 아직 어린아이였다.낮에 겪은 일은 아이의 마음에 큰 충격을 남겼다.그래서 잠자리에 들었을 때도 한 손으론 사자 인형을 꼭 쥐고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론 성유리의 손을 강하게 붙잡고는 좀처럼 놓지 않았다.평소와 달리 너무 세게 움켜쥐어 아플 정도였지만 성유리는 아무 말 없이 아이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한참이 지나서야 하늘이의 호흡이 서서히 고르게 바뀌었다.성유리는 그제야 눈을 감았지만 기진맥진한 몸과는 달리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무려 삼십 분 넘게 뒤척이다가 결국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가 우유를 한 잔 마시려 했다.계단을 내려오자마자 성유리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누군가의 실루엣을 보았다.박한빈이었다.불도 켜지 않은 채, 그는 어둠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손에는 담배가 들려있었는데 작은 불씨 하나가 새빨갛게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성유리는 순간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예전 같았으면 벌써 뭐라 했을 것이다.박한빈은 이미 1년 넘게 금연 중이었고 적어도 그녀 앞에서는 단 한 번도 피운 적이 없었다.그런데 이젠 피우는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익숙했다.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성유리를 박한빈도 금세 알아챘다.하지만 박한빈은 담배를 끌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거실은 온통 어둠뿐.성유리의 머리 위로는 계단 구석 작은 전등 하나만 켜져 있었다.그래서 박한빈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다.단지 확실한 건, 그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성유리는 말없이 박한빈을 바라보다가 결국
최경언의 그 한마디에 성유리의 몸이 저도 모르게 굳어버렸다.그리고 곧, 그가 무슨 뜻으로 말한 건지 깨달았다.하지만 여기는 경찰차 안이었다.주변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성유리는 알고 있었다.지금 이 순간, 그들 모두의 말과 행동은 철저히 감시되고 있다는걸.단 하나의 말조차 불필요한 오해나 의심의 빌미가 될 수 있다.그래서 최경언이 사과의 말을 꺼냈을 때, 성유리는 단지 고개를 숙이고는 품 안의 하늘이를 더욱 꼭 껴안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박한빈이 경찰서에 도착했다.그때쯤이면 성유리는 진술을 끝마친 상태였다.그녀와 하늘이는 따로따로 조사를 받았고 하늘이는 그녀보다 먼저 끝났다.성유리가 조사실을 나왔을 때, 박한빈은 하늘이를 품에 안고 서 있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미 가라앉았던 감정이 다시 요동쳤다.성유리는 이를 꽉 깨물었지만 눈가가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그리고 본능처럼 그녀는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일 초라도 박한빈에게 가까이 가고 싶었다.하지만 한 걸음조차 떼기 전에 박한빈이 먼저 이쪽을 바라봤다.그의 미간은 깊게 찌푸려 있었고 입도 꾹 다물고 있었다.성유리는 박한빈과 함께한 시간이 길었다.그래서 그 미세한 표정 하나만으로도 그가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 단번에 알아챘다.그제야 성유리의 걸음이 멈췄다.마침 경찰서 직원 한 명이 다가와 박한빈과 이야기를 나눴다.박한빈은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와 악수한 뒤 손을 거둬들였다.대화가 끝나고 나서야 성유리는 천천히 그에게 걸어갔다.박한빈은 길게 말하지 않고 단 한마디만 남겼다.“가자.”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성유리에게는 너무도 냉정하게 느껴졌다.그 말 한마디가 성유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억울함을 무겁게 건드렸다.그렇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봤다.그들은 곧 차에 올랐다.박한빈은 외투를 벗어 하늘이의 어깨에 덮어주었다.지친 하늘이는 그의 어깨에 기대 그대로 잠에 빠져들
그와 동시에 하늘이는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지만 아이는 곧장 성유리 품에 뛰어들지 않았다.오히려 마치 명령을 받은 병사처럼 성유리를 한 번 바라보더니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방을 빠져나갔다.남자는 그 틈을 노려 다시 하늘이를 붙잡으려 했지만 아이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그는 얼어붙은 듯 그대로 제자리에 굳어버렸다.바로 그때, 베란다 창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고 깨진 유리 조각이 날아가며 남자의 얼굴을 스쳤다.남자가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창문을 박차고 들어온 사람은 그의 몸을 거세게 걷어차 바닥에 쓰러뜨렸다.그리고 동시에 성유리가 앞으로 나섰고 손에 쥔 과도는 그대로 남자의 눈을 겨눴다.이 모든 과정은 불과 십여 초.성유리가 강지연을 남자에게 밀어준 순간부터 하늘이가 스스로 도망친 것,최경언이 창을 깨고 들어와 성유리가 칼을 들고 다시 주도권을 되찾은 것까지는 정말 순식간이었다.강지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남자에게 달려가려 했다.하지만 눈앞의 상황을 보고는 본능적으로 돌아서 도망치려 했다.그러나 최경언이 그녀의 허리를 향해 강하게 발을 뻗었다.그 순간,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남자는 여전히 발버둥 쳤고 손에 든 과도를 치켜들어 성유리에게 휘두르려 했다.그러나 성유리의 반응이 더 빨랐다.과도를 휙 틀어 그대로 남자의 팔뚝을 찔러버렸다.“으악!”남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고 튄 피는 성유리의 이마를 적셨다.그런데도 그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고 손에 쥔 칼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곧 경찰이 도착해 현장을 제압했다.남자, 황윤제와 강지연은 그 자리에서 즉시 체포되었다.안전이 확보되고 나서야 성유리는 과도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겨우 풀었다.그리고 하늘이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성유리가 문밖으로 달려 나가기 직전, 경찰과 함께 들어오던 하늘이와 눈이 마주쳤다.그 순간, 성유리의 차가웠던 눈빛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고 하늘이를 향해 달려가 힘껏 껴안았다.그
성유리가 손에 쥐고 있는 칼은 박한빈이 준 것이었다.그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왜 당신이 주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거죠?”돌아오는 박한빈의 대답은 이러했다.“계속 쓸 일이 없으면 그게 제일 좋은 거야.”성유리는 그 말의 뜻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성유리 역시, 자신이 언젠가 정말 이 칼을 써야 할 순간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그 칼끝은 강지연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성유리가 힘을 주자 그녀의 희고 부드러운 피부에 얇은 상처가 생기며 피가 배어 나왔고 강지연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하늘이를 잡고 있던 남자가 돌아서는 순간, 남자는 그 장면을 그대로 목격했다.이내 그의 표정이 급변했다.“뭐 하는 거예요? 당장 지연이 놓아주세요!”“먼저... 제 딸부터 놓으세요.”성유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지금까지 오는 내내 그녀의 손은 떨림을 멈추지 않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오히려 차분했다.성유리는 남자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고 목소리에도 흔들림 없었다.남자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성유리는 칼을 더 깊이 밀어 넣었다.강지연의 목에서 피가 더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고 놀란 그녀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성유리 씨! 미쳤어요? 당장 이 손 놔요! 저를 죽이면 당신도 끝장나는 거예요!”성유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어차피 당신은 원래 저를 죽이려던 거잖아요.”그리고는 다시 남자를 바라보며 외쳤다.“들었죠? 제 딸... 하늘이부터 놔요!”“제가 왜 그래야 됩니까? 아니. 그럼 우리 서로 교환합시다.”남자는 곧바로 방법을 떠올렸다는 듯 말했고 손에 들고 있던 과도를 하늘이 쪽으로 들이댔다.성유리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시선을 천천히 하늘이 쪽으로 돌렸다.하늘이는 처음엔 멍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성유리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아이의 눈빛이 단단하게 변했다.성유리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좋아요.”“안 돼! 절대 안 돼! 저 둘, 절대 이렇게 못 보내!”강지연이 갑자기
하늘이는 그저 조용히 앉아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그저 바라보기만 헸다.분명 질문을 꺼낸 건 하늘이었는데 막상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처럼 보였다.강지연은 다시 한번 하늘이를 바라보다 곧 성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너희 엄마한테 전해. 십 분 안에 안 오면 네 시체를 수습하러 오게 될 거라고.”하늘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얌전하고 고분고분해 보이기까지 했다.그러자 강지연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수화기를 하늘이 입 근처로 가져다 댔다.곧 전화가 연결되었고 반대편에서 성유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늘아!”“사모님, 너무 느긋하신 거 아니에요? 경찰이라도 부르고 있는 거예요?”이내 강지연의 비웃음 섞인 말투가 이어졌다.“금방 도착해요! 하늘이는요? 제 딸은 무사하나요?”“걱정 마요. 당신 딸, 아직은 멀쩡하니까. 아, 물론 제가 마음만 먹으면 일은 생각보다 금방 끝날 수도 있어요.”“강지연 씨!”성유리의 다급한 외침이 다시 들려왔다.우습게도 이건 강지연이 본 성유리의 감정 변화 중 가장 격한 순간이었다.예전의 성유리는 언제나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든 대수롭지 않은 듯, 세상 모든 것이 그녀 눈엔 시시한 것처럼 보였다.그래, 사실 성유리는 정말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사람이었다.왜냐하면 세상 좋은 것들은 죄다 그녀 손에 있었으니까.강지연은 그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세상이란 게 어째서 이렇게 불공평한 걸까?하지만 이제 곧 성유리의 ‘행운’은 끝이 날 터였다.오늘 그녀는 모든 걸 잃게 될 것이다. 목숨까지도.“하늘이 목소리만 들려줘요.”성유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강지연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지만 거절하지 않고 그저 핸드폰을 하늘이에게 가까이 가져갔다.“엄마.”하늘이는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하늘아, 걱정 마. 엄마가 금방 갈게. 절대 무서워하지 마. 곧... 엄마 곧 도착해.”“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이건 하늘이의 대
“이 시*!”하늘이가 묶여 있을 때, 강지연은 바로 다가가 손을 들어 아이의 뺨을 때리려 했다.하늘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눈은 강지연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그 눈빛은 강지연으로 하여금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고 이내 손은 허공에 멈추었다.그리고 강지연은 갑자기 웃으며 아이에게 물었다.“안 무서워?”하늘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강지연은 과도를 꺼내며 물었다.“이게 뭔지 알아?”“과도요.”하늘이는 선생님 질문에 대답하듯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강지연은 그런 하늘이를 보며 점점 더 흥미로워졌다.“알고 있네? 그럼 이 칼이 네 몸에 꽂히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아프고... 심하면 죽을 수도 있어요.”하늘이가 순순히 대답하자 강지연이 더 활짝 웃었다.“그럼 넌 무섭지 않아?”그 말이 끝나자 하늘이는 조용해졌고 고개를 내리깔았다. 마치 강지연이 한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듯.잠시 후, 아이가 입을 열었다.“무서워요. 하지만 아줌마는 그러지 않을 것 같아요.”“왜?”“제가 죽으면 아줌마는 경찰 아저씨에게 잡혀가게 돼요.”“오, 그래?”“추도윤에게는 아빠가 없어요. 만약 엄마도 없으면 고아가 돼요.”“오, 너는 참 걱정거리가 많구나.”“걱정하는 게 아니라 불쌍해서 그래요.”“그럼 너는? 네가 죽으면 네 부모님은 어떻게 할 것 같아?”하늘이는 대답 대신 입술을 꽉 다물었다.이미 매우 침착해 보였지만 이 질문에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이 있었다.강지연은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순간, 하늘이가 대답했다.“괜찮아요. 아빠 엄마한테는 또 다른 아이가 생길 거예요.”아이의 대답에 강지연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말을 잇지 못하는 강지연에게 하늘이가 계속 말했다.“그리고 할머니가 저기서 기다리고 계셔요. 아마 할머니가 데리러 올 거예요.”강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나 안색은 극도로 어두워졌고 저도 모르게 이빨을 꽉 깨물었다.그때, 옆에 있던 남자의 험악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