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남자 넷이 사는 집에서 임시 보호를 받게 됐다. 나를 ‘아가’라고 부르는 남자, 나만 보면 한숨 쉬는 남자, 자꾸 놀러 가자고 꼬시는 남자, 어느새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 어라? 생각보다 지낼 만하잖아! ……근데, 내 정체는 어떻게 숨기지?
View More새벽 2시의 한적한 주택가. 억수같이 쏟아붓는 빗줄기는 와이퍼가 긁어내는 속도보다 빠르게 앞유리를 타고 흘렀다.
주차를 위해 천천히 후진하던 강은택은 둔탁한 감각이 뒷범퍼를 치는 것을 느끼고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후방 카메라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는데. 불길함을 느낀 강은택은 우산도 받쳐 들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강은택이 사는 이 동네는 구도심과 신도심의 딱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암묵적인 규칙이라도 있는 듯 3층이 넘어가는 건물이 하나도 없었고, 온통 큼지막한 단독 주택들로 이루어진, 제법 잘 사는 축에 속한 주택단지였다.
그 때문에 이 시간에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날씨까지 궂으니 강은택은 제 차에 치인 것이 사람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 불법 투기한 쓰레기봉투거나 제 집 앞엔 있지도 않은 ‘주차 금지’ 고깔인 편이 더 현실성 있다고 여겼다.
후미등의 붉은 빛 아래, 아스팔트에 엎어진 것은 쓰레기봉투도 고깔도 아니었다. 완전 어린애는 아닌 듯하고, 몸집이 작은 젊은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얼마나 오래 비를 맞은 걸까. 흠뻑 젖은 원피스가 쓰러진 몸에 묵직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개미새끼도 안 부딪칠 속도였다. 아무리 차체가 크다고 한들, 쓰러질 정도로 세게 치이진 않았을 텐데. 강은택은 입안이 꺼끄러워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괜히 입천장을 혀로 밀었다. 축축해지기 시작한 제 짧은 머리칼을 짜증스럽게 한번 쓸어 넘기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강은택은 쪼그리고 앉아서 여자의 뺨에 붙어있는 젖은 미역 같은 머리칼을 조금 걷어냈다. 작은 콧망울 앞에 손가락을 대서 확인했다. 숨은 붙어 있었다.
“…아오, 씨발.”
자해공갈단이든, 웬 술 취한 미친 여자든, 뺑소니는 안 된다.
강은택은 바닥에 엎어진 여자애를 쌀가마니 주워 들듯 제 어깨에 얹었다. 너무 가벼워서 헛웃음이 났다.
강은택은 정문이 아닌 차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고를 꽉 채우는 픽업트럭과 시커먼 SUV 차량은 오늘 한번도 출차하지 않았는지 물기 한 방울 없이 매끈했다. 그는 익숙하게 그 사이를 지나쳐 차고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투박한 시멘트 벽에 현대적인 현관문이 붙어 있었다. 차고에서 바로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뒷문이었다.
삐리릭― 경쾌한 해제음과 함께 문을 연 강은택이 신경질적으로 신발을 벗어 던졌다. 인기척에 소파에 늘어져 있던 남자의 시선이 뒷문 쪽으로 향했다. 비를 쫄딱 맞은 강은택이, 그보다 흠뻑 젖은 이불 빨래 같은 것을 이고 서 있었다. 여자의 원피스 자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커다란 소파에 길게 누워서 TV를 보고 있던 심우주가 팔을 짚고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강은택은 심우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성큼성큼 거실로 들어와 여자를 시커먼 소파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마디가 굵고 온통 흉터가 가득해 투박하기 짝이 없는 그의 손과 어울리지 않게 제법 섬세한 동작이었다.
“미쳤나 봐, 이 새끼.”
심우주의 시선이 축축한 물귀신 같은 여자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의 얼굴에는 조롱과 흥미가 뒤섞인 미소가 떠올랐다.
달칵―
그때, 1층 욕실 문이 열리고 최지호가 축축한 공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문이 꽉 차게 느껴질 정도로 큰 체격의 까무잡잡한 남자였다. 반바지만 입은 그의 상체에는 아직 물기가 조금 남아 있었다.
최지호가 소파에 눕혀진 정체 모를 여자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최지호. 수건.”
젖은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 넘긴 강은택이 낮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찌푸린 얼굴에는 피곤함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경악한 표정을 짓고 서 있던 최지호는 그의 말에 한 박자 늦게 움직였다.
최지호는 다시 욕실로 들어가 보송한 수건 몇 장을 챙겨 왔다. 강은택은 그에게서 한 장을 받아 툭툭 털어 펼쳤다. 젖은 여자의 몸 위에 마른 수건을 무심하게 올려 두고는, 다른 한 장으로 제 몸의 물기를 대충 닦기 시작했다.
그 사이, 심우주는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여자의 꼴을 뜯어보고 있었다. 흥건하게 젖어 달라붙은 원피스는 몸의 굴곡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까만 머리카락은 창백한 뺨에 어지러히 흩어져 있었다. 그의 시선은 호기심 어린 탐색에서 노골적인 감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야, 너 취향이 좀 바뀐 모양이다?”
심우주는 낄낄거리며 빈정거렸다.
“차에 치였어.”
짧고 무뚝뚝한 대답이었다.
“야, 만우절이라고 무슨….”
“나도 구라면 좋겠다.”
강은택의 대답에 심우주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최지호가 다가와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그림자가 작은 몸을 뒤덮다시피 했다. 강은택이 그랬던 것처럼 최지호도 쪼그리고 앉아서 그녀의 코앞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병원은?”
간결한 단어였다. 최지호는 강은택을 돌아보았다. 그 짤막한 말에는 어쩌면 ‘그런 상식적인 행동은 떠올리지 못했나’ 하는 책망 섞인 의문도 담겨 있을 터였다.
강은택은 복잡한 얼굴로 아직 물기가 남은 제 짧은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새벽 두 시에 깡패 새끼가 정신 놓은 여자를 응급실에 데려간다고.”
“…아.”
강은택의 말에 최지호가 알았다는 탄식을 뱉었다.
“일단 정신 차리면 얘기 좀 하게.”
강은택은 그 말을 마치고 여자의 몸을 덮은 수건을 이용해 대충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의 커다랗고 투박한 손이 어깨와 팔을 꾹꾹 눌렀다.
“어으….”
그때, 긁는 듯한 신음 소리가 머리칼 사이에서 새어 나왔다. 그 소리는 아주 작았으나 빗소리와 TV 소음으로 가득 찬 거실의 공기를 가르고 남자들의 귀에 꽂혔다.
강은택의 손이 우뚝 멈췄다. 무표정한 얼굴에 순간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너무 세게 닦았나 싶었다. 그는 여자의 뺨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떼어내며 상태를 살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앓는 소리를 내는 창백한 얼굴은 생각보다도 더 앳되어 보였다.
“주민등록증에 잉크는 말랐겠나, 이거.”
보고 있던 심우주의 얼굴에 다시 흥미가 떠올랐다.
“으…. 여기…, 어디에요?”
물기를 먹어 희미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어둑한 거실 속으로 흩어졌다. 힘겹게 눈을 뜨며 뱉은 질문에 세 남자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의 얼굴로 꽂혔다.
“…우리 집.”
강은택이 짧게 대답했다.
“아픈 데는? 어디 부딪혔나.”
그는 여자의 상태를 살피듯 위아래로 시선을 한번 훑었다. 걱정이라기보다는 사고 현장을 확인하는 조사관 같은 건조하고 사무적인 태도였다.
“나 쓰러졌어요? 배고파서 쓰러진 건가.”
겨우 눈을 떠서 한다는 말이. 태평하고 순진한 동문서답에 순간 거실에 정적이 흐르는 듯했다.
심우주의 외모를 표현하자면, 여자들은 보통 그를 ‘아, 그 키 크고 잘생긴 사람?’으로 기억했고, 남자들 중엔 가끔 ‘제비’라든지 ‘호스트바 선수’와 같은 단어로 공연히 비아냥거리는 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심우주가 객관적으로 잘생긴 편에 속한다는 걸 뜻하는 방증이었다.쌍꺼풀 없는 눈매가 날렵했다. 자칫하면 날카롭고 차가워 보일 수도 있는 생김새였다. 그러나 남성 평균보다 약간 밝은 피부톤에 짙은 갈색의 눈동자를 가진 심우주는 늘 밝은 갈색으로 염색하여 그 분위기를 상당히 중화시킨 편이었다. 느긋하게 웃음을 머금은 입에서는 중간톤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장난스러운 말들이 흘러나왔으니, 진중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완성된 심우주의 외적인 모습과 분위기는 가벼워 보인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그것조차 의도한 것이었다.심우주는 심각하거나 진지한 분위기를 못 견뎌했다. 꽤 어릴 적부터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변에서 심우주가 당연히 그런 가벼운 사람이기를 기대했기에 그렇게 자라났는지도 모른다.엄마는 젊은 시절에 나름 인지도 있는 배우였다고 했다. 파파라치가 따라붙을 정도는 아닌 듯했고, 오전 늦게 주부를 타깃으로 한 드라마에 왕왕 출연하여 식당에 가면 사인 한 장을 부탁 받는 일이 많았다. 그마저도 심우주가 초등 저학년이 됐을 무렵엔 이른 저녁에 방영하는 작품에도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 알아보는 이가 많아지는 바람에 함께 외식을 하는 일이 사라진 까닭에 그녀의 전성기엔 얼마나 위세를 떨 수 있었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미혼의 여배우와 재벌가 사내에서 난 아이는 혹이나 다름없었다. 없느니만 못한 존재였으니 없는 것처럼 숨어서 살아야 했다. 대신 용돈이 부족해서 편의점 라면 코너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는 또래와는 다르게 심우주의 지갑은 늘 두터웠다. 친구 중 누구도, 심지어 선생조차도 심우주의 부모를 본 적이 없는데, 심우주는 그 미스터리한 부모에게서 늘 이상할 정도로 용돈을 많이 받는 애였다. 그 두둑한 지갑에서 나온 여유 덕
“어딜 간다고 그래, 돈도 없는 게.”최지호는 꼭 그 말이 자신에게 한 말인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온 그가 가로막듯 심우주와 도복희의 사이에 비집고 섰다. 심우주도 키가 상당히 큰 편에 속했지만, 호리호리한 편인 그와 다르게 최지호는 덩치까지 훨씬 컸으므로 도복희는 마치 자신의 앞에 커다란 바위산이 나타난 것만 같았다. 그런 그가 든든한 방패가 되어 줄지,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비켜.”“형, 그만해.”“내가 뭘 했다고 그만하래. 너나 그만하고 비켜, 나 복희랑 얘기 중이잖아.”어느 쪽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두 남자가 대치 중인 거실의 공기가 변했다.도복희는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해졌다.남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돈독한 사이인지 티를 내는 것을 쑥스러워했다. 네 명 중 누구도 ‘우리는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형제로 살기로 했다’ 같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서로의 일상에 자리 잡은 그들이기에 주변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그들을 형제로 봐 주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이 집에서 함께 지내며 도복희도 그걸 느꼈다.그런데 지금, 도복희의 거처 문제를 두고 남자들 사이에 충돌이 생겼다. 그녀는 자신 때문에 그들의 우애에 금이 가는 것만 같아 괴로워졌다. 누군가는 고작 여자 때문에 흔들릴 신의라면 애초에 대단한 것이 아니었으리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여우가 사람을 홀린다.’‘구미호는 사람을 홀려서 간을 빼 먹는다.’그런 말들은 세상에 너무도 널리 퍼져 있었다. 진실은 도복희 그녀도, 그녀의 엄마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연구된 적 없는 숨은 존재였고 구미호족은 이미 절멸했으니까.‘그런 말들을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우리는 사람을 해하는 존재가 아니야.’엄마는 언제나 그렇게 말해 주었다. 그러나 도복희는 육류, 특히 육회나 선지만 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하게 되는 자신에게 인간의 피와 간을 탐하는
“아기 이 집에서 내보낸다.”탁유환의 발언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형제처럼 지내는 네 명의 남자들 사이에서 큰형 노릇을 하는 탁유환의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그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변덕스러운 성정도 아니었으므로 강은택은 그가 이미 뱉은 말을 쉽게 바꾸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탁유환은 흥신소에 들이닥친 양아치들이 도복희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듯했다. 이제 와서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일은 없고 아마 급하게 숨다 다친 모양이다’라고 둘러댄다고 한들 좋은 수가 될까. 아마 그 정도로는 그의 마음을 쉽게 돌릴 수 없을 것이다.탁유환은 등을 돌려 제 뒤에 서 있던 도복희와 마주보고 섰다. 그리고 그 큰 몸을 접어서 마치 작은 아가씨 앞의 기사가 된 것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탁유환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상황이 도복희에게는 좀 낯설었지만,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아가.”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조금 전 강은택을 질책하던 그에게서 풍기던 싸늘한 기운은 온데간데 찾아볼 수 없었다.“…네.”그래도 도복희는 바짝 긴장한 채였다. “이런 곳에 있지 마라. 응?”언제나처럼 명령조였지만 어쩐지 오늘 탁유환이 뱉는 말투는 마치 어르고 달래는 것 같았다. 도복희는 그런 그의 앞에서 차마 거절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네…. 그런데 저 정말로 어디 맞거나 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정말루요.”도복희는 강은택 대신 해명이라도 하듯 늘어놓았다. 강은택에게는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지는 그녀의 말이 꼭 ‘저 정말 괜찮아요. 그러니까 여기 조금 더 머물면 안 될까요?’하고 간절히 부탁하는 것처럼 들렸다.“다행이군.”탁유환은 커다란 손으로 도복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는 눈치 없는 남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예리한 편에 속했다. 단순함이 장점이자 단점인 강은택마저 읽었을 그녀의 속내를 탁유환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내 회사 근처에 빈 오피스텔이 있어. 혼자 지내기엔 괜
흥신소 사무실에서의 사건을 가장 늦게 알게 된 사람은 탁유환이었다. 그 주 토요일까지도 바빠서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거의 없던 그도 일요일에는 주말 낮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던 중이었다.거실의 커다란 1인용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보던 탁유환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작은 몸이 기다란 소파에 엎드려서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 도복희는 두꺼운 판타지 소설책을 읽으며 다리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그녀가 심심해하는 것 같아서 탁유환이 일부러 사 온 책인데, 도복희는 그것이 탁유환이 이미 소장하고 있던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었다.“…큭.”탁유환은 허공에서 덜렁거리는 발목을 보고 저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작은 짐승이 귀를 쫑긋 세우듯 도복희가 그 웃음소리에 홱 그를 돌아봤다.“저 보고 웃은 거죠?”“아니다.”“거짓말.”“그래, 거짓말이다.”도복희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왜요. 제가 책 읽는 모습이 웃겨요?”“네가 웃긴 게 아니라 이 집에 나 말고 글자 읽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게 어색해서 웃었어.”탁유환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이 집에 있는 다른 놈들은 머리통이 밥통이거든.”“…푸핫.”신랄한 뒷담화에 도복희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헙’ 하고 갑자기 숨을 들이키며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그 말 듣고 제가 웃었다고 소문 내면 안 돼요.”괜한 걱정이었다. 스스로 입단속을 하느라 잠시 손에서 놓은 책이 파라락― 소리를 내며 접혔다. 읽던 구간을 놓친 도복희가 작게 ‘으앗’ 소리치며 허둥지둥 다시 책을 펼쳤다. 그때 엎드려 있는 도복희의 바지 밑단이 조금 걷히며 그녀의 하얀 다리에 남은 멍 자국이 드러났다. 푸르뎅뎅하던 것은 이제 노르스름한 빛을 띠며 옅어져 가는 중이었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충격의 흔적이라는 것은 분명했다.“다리는 어쩌다 그랬나.”탁유환의 얼굴에 떠 있던 미소가 희미해졌다.“아, 이거.”흥신소 사무실의 창고에 숨으면서 어딘가 부딪힌 것이었다. 그 순간에는 몰랐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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