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세상은 그를 악마라 불렀다. 그녀만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서로를 구원이라 믿은 두 사람은, 끝내 가장 잔인한 선택 앞에 선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view more “아… 아…?”소년은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보였다. 소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다가가자, 소년은 본능적으로 나를 밀치며 가까이 다가오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성이 아닌 본능으로 보였다. 지금 소년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베가?”소녀의 몸, 정확히 심장 부근이 소녀의 눈동자와 같은 금빛으로 빛이 났다. 강한 눈부심에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눈을 찌푸리며 소녀에게 초점을 맞추자, 소녀의 뺨 위로 붉은 피가 떨어졌다.아니, 피가 아닌 소년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었다.“거짓말. 야, 장난치지 마.”소녀의 몸에서 나온 금빛은 소년의 손가락을 타고 소년의 몸을 물들였다. 소년은 그 순간에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평소 소년이 가지고 다니던 총이 떨어져 있었다.“베가… 가지 마.”소년은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보채는 것처럼 어느새 금발 머리로 변한 소녀의 시신을 끌어안고 울었다.“나를 두고 가지 마.”소녀는 정말로 잔인했다. 소년이 처음으로 불쌍해 보였다. 지금 저 모습을 정말로 ‘악마’라고 할 수 있을까?“나를 혼자 두지 마….”붉은 눈물이 쉼 없이 뚝뚝 떨어졌다. 한참 동안, 뚝뚝 떨어졌다. 그동안, 소년은 내가 알던 소년이 아닌 어느새 인간의 형태를 점점 잃어 가는 건지 왼쪽 날개뼈에서 나온 검은 날개는 소녀의 시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카인.”
“너, 내가 헛소리 그만하라고 했지?”소년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했지만, 표정은 핏기 없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 때문인지, 소년의 붉은 눈동자가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붉게 타오르는 빛은 자신의 앞에 있는 금빛을 모조리 태울 것만 같았다.“나는 네가 밖의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평범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어.” “뭐? 너… 지금 나를 내쫓겠다는 의미냐?”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표정과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내가 있으면 그럴 수가 없잖아.” “웃기지 마! 그게 무슨 헛소린데!? 둘이서 여태 잘 지냈잖아! 너야말로 지금 내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잖아!”소녀는 힘없이 미소 지으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소년을 안쓰럽게 바라봤다.“애썼어. 누구보다도 나를 위해 애썼어. 그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야. 하지만… 그런 너를 내가 묶고 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고.” “시끄러워! 헛바람이 들렸네! 또 이상한 책 보고 잔 거지? 돌아가.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서….” “나는 분명히 기억해.”소녀는 잠깐 시선을 주며 곤란한 표정을 하면서도 말했다.“처음 나를 봤을 때, 나를 구해주겠다고 했지?” “뭐…?” “카인, 너와 내가 어떻게 만나게 된 것 같아?” “기억이 흐릿하지? 그럴 거야. 내가 아직 어렸을 적, 제단에 쓰러져 있는 널 발견한 거야. 왜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넌, 그렇게 내게 왔어.”머릿속이 쪼개질 듯 아파졌다. 지금 나는 외부인이다. 저 두 사람의 세
“느낌이 좋지 않아. 빨리 베가를 찾아야 된다고!”그저 하는 말은 아닌 듯했다. 소녀의 방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서둘러 소년의 뒤를 따랐다.“베가! 베가!! 대답하라고!!”초조한 소년을 보니 얼마 전 일도 있고 하니, 갑자기 어디선가 쓰러진 건가 싶은 생각에 마음이 달았다. 하지만 이미 저택 주위를 다 돌아본 소년이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 문득 등골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과 함께 머릿속에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던 낡은 제단이 떠올랐다.“제단! 제단으로 가!” “제단?”소년은 금시초문인 얼굴을 했다. 그 모습에 마른세수하며 헛웃음을 쳤다. 이 와중에 소녀는 소년에게 제단을 알려주지도 않았다니. 정말이지 눈물겨운 애정이다.***소년은 입술을 깨물면서도 자신이 모르는 곳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여간 수상한지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면서도 발걸음은 거침없이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 역시 서둘러 거친 줄기를 가르며 제단에 도착하자, 우거진 이끼들이 지독한 냄새를 뿜고 있었다. 안으로 다급하게 들어오자, 역시나 소녀는 이곳에 있었다. 제단 한 가운데 낡아서 부서지기 일보 직전인 동상을 멍하니 바라보며.“베가!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소년이 거칠게 소녀의 어깨를 잡아당기자, 소녀는 속절없이 소년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카인,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알아?” “뭐? 그딴 거 알 바냐! 얼른 돌아가,
“아가씨?”대낮에 소녀의 문을 거칠게 툭툭 치자, 소녀는 역시 잠들지 않았는지, 조금은 지쳐 보이는 얼굴로 문을 열었다.“이야기 좀 하지?” “싫다면요?”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이자, 소녀는 대화를 피할 생각은 없는지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했다.넓은 공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침대, 그리고 침대 위에 엉망으로 쌓여 있는 책더미.“어제 일은 정말 드문 일이에요. 애초에 신부님이 카인에게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억울한데,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 애가 갑자기 들이닥친 거라고.” “카인이요?” “너희의 세상에서 빠져 달라는군. 조용히 살겠다고.”소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곧 사랑스럽게 미소 지었다.소년의 그 말이 퍽 기쁜가 보다.“평범한 인간은 악마를 죽인다고 표현하지 않아.” “네?” “악마를 죽인다는 표현은… 소년이 처음 썼지.”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멈추고 침묵을 유지했다.“아가씨, 진짜 악마 맞아?”소녀는 말뜻을 이해한 건지, 못한 건지 표정이 오묘하게 구겨졌다.“아니, 매개체는 맞겠지. 내가 묻고 싶은 건… 네 속에 그 악마가 봉인되어 있냐는 거야.” “… 있겠죠.” “어릴 때 폭주한 것도, 아가씨 맞아?”소녀는 그 말에 이마를 짚으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소년의 중얼거리는 말이 신경 쓰였다. 마치 그 중얼거림은 소녀가 아닌 자신이 모두를 죽였다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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