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825화

Author: 임공
시연은 조용히 앞으로 나서서 유건의 손에서 셔츠를 받아서 들었다.

그러고는 왼팔부터 조심스레 끼워 넣고, 어깨에 걸친 뒤 말했다.

“오른팔도 천천히요.”

시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와 여자는 체구부터 다르니까. 무리하게 움직이면 더 아플 텐데...’

유건은 말없이 팔을 내밀었고, 시연은 신중하게 소매에 그 팔을 밀어 넣었다.

“됐어요.”

단추은... 묻지 않아도 됐다.

유건은 앉은 채 미동도 없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할 생각도 없구나.’

시연은 입술을 다물고 가볍게 허리를 숙여 위에서부터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윗단추 두 개는 풀어둘게요. 그 정도면 괜찮죠?”

“응...”

유건은 콧소리만 짧게 냈다.

시연은 묵묵히 마지막 단추까지 채운 후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남자의 단단한 눈동자를 마주하고 말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시연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고 대표님, 제가 대표님 위장 다 나을 때까지 정성껏 치료해 드릴게요.”

“대신, 대표님은 출입국관리소에 제출할 ‘우리가 실제로 혼인 생활을 했다는 내용의 자필 진술서’를 작성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말을 마친 시연은 불안과 기대가 엇갈린 눈빛으로 유건을 바라봤다.

‘지금이 타이밍이야. 이 사람은 그냥 도와주진 않아. 내가 줄 수 있는 건, 결국 내 의료 기술뿐이니까...’

유건은 그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 여자가, 이걸 조건처럼 거는 거야?’

“뭐야, 고작 침 두 대 놔줬다고, 내가 감사 인사라도 할 줄 알았어?”

유건은 코웃음을 쳤고, 심지어 피식 웃기까지 했다.

“지 선생, 혹시 전생에 침 마스터였나? 이 정도면 한 방에 천만 원쯤 되는가 봐?”

“그건 아니고요...”

시연은 당황한 듯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냥, 대표님이 도와주신다면, 저도 그만큼 보답하고 싶다는 거예요.”

‘솔직히 오늘 이 두 번 침으로 끝낼 생각은 아니었어. 길게 보고 꾸준히 할 각오였는데... 이 사람, 웃는 게 더 무서워.’

“고 대표님.”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828화

    “검사받는 김에, 그냥 전부 다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시연이 말했다.개인 주치의로서 전반적인 건강 체크는 당연한 일이었다.애초에 위만 보겠다고 계약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응.”유건은 예약 표는 보지도 않고 물었다.“돈 꽤 들었지?”‘어...’시연은 잠시 멈칫했다.“많이 든 건 아니에요.”예약비는 일단 시연이 먼저 결제한 상태였다.유건에게 청구할 생각도 없었다.애초에 이건 둘 사이의 ‘거래’였다.시연이 유건의 주치의를 맡고, 유건은 시연의 법적 증인이 되어주는 조건.그런데 유건은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자, 받아.”“아뇨, 괜찮아요.”시연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우리, 그때 그렇게 정리했잖아요.”“받으라고.”유건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난 여자가 돈 쓰게 하는 건 딱 질색이야.”‘아, 또 시작이다.’“네...”시연은 마지못해 손을 뻗었지만, 카드 면을 보고 다시 멈칫했다.“고 대표님... 혹시 다른 카드는 없으세요?”유건이 내민 카드는 바로 그 ‘가족카드’였다.몇 년 전, 두 사람이 부부였을 때 유건이 시연에게 줬던 바로 그 카드.‘지금은 부부도 아닌데, 이건 좀...’“가족카드는 제가 갖고 있긴 좀...”“하.”유건은 숨을 내쉬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카드면 다 똑같은 카드지. 가족카드는 카드 아니야? 못 써?”유건이 점점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자, 시연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어차피 난 함부로 쓰지도 않을 거고.’‘그냥 받자.’ 병원에 도착한 뒤, 유건은 먼저 채혈과 공복 검사부터 진행했다.조영제를 마시는 검사도 있어서, 시연은 함께 대기석으로 유건을 안내했다.“고 대표님, 여기 잠깐 앉아계세요.”유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곧이어 시연이 자리를 비우자,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고 대표님?”누군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남자의 이름을 불렀고, 유건은 눈을 떴다. 주하은이었다.오늘 외래 근무 중이던 하은은 멀리서 유건의 실루엣을 보았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827화

    병원 절차에 익숙한 시연은 검진 항목을 빠르게 정리하고, 바로 유건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대표님, 어느 날 시간 괜찮으세요? 날짜만 확정하면 돼서요.”유건은 손에 든 태블릿을 넘기며 일정표를 훑어봤다.[네가 정해. 내가 시간 맞출게.]“그럼 이번 주 금요일 오전, 괜찮으세요? 주말엔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가 안 된대요.”[그래.]전화를 끊은 유건은 태블릿을 두드려 금요일 오전 일정을 삭제하고, 주지한에게 전달했다.지한은 사정을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형수님 돌아오셔서 진짜 다행이다.’‘이제 대표님도 누군가 좀 잡아줄 사람이 생겼네.’한편, 시연도 빠르게 병원 예약을 마쳤다. 그리고 다시 유건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대표님, 그날 병원엔 혼자 오시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데리러 갈까요?”그 말에 유건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느긋하게 대답했다.[네가 의사잖아. 네가 알아서 해.]‘...’‘이 사람, 지금 나한테 힌트 주는 건가? 말로 못 하나?’‘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돌려 말하게 된 거야...’예전보다 훨씬 더 묘하고 복잡해진 유건의 반응에, 시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럼... 폐 끼치지 않는다면, 제가 모시러 갈게요.”사실 시연은 가고 싶지 않았다.이전에 SKY 전원주택단지에서 도리슬과 유건의 관계를 본 게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혹시 이번에도 또 마주치면...’‘도리슬이면 차라리 낫겠지만, 만약 또 다른 여자라면... 진짜 최악인데.’[그래.]의외로, 유건은 순순히 허락했다.“그날은 금식 검사가 있어서요. 제가 좀 일찍 도착할 것 같아요. 대표님도 조금만 일찍 일어나주실 수 있죠?”시연은 돌려 말하고 있었다.‘혹시 집에 여자가 있으면...’‘나랑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는 뜻인데, 눈치는 챘겠지?’[응, 알았어.]통화가 끝나고, 시연은 잠시 핸드폰을 바라봤다.‘알아들었을까? 아니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렸을까?’금요일.시연은 새벽같이 눈을 떴다.SKY전원주택단지에서 강울대병원까지는 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826화

    “아, 아니에요.”시연은 정신을 차리고 급히 고개를 저었다.“할게요. 물론이죠.”유건이 마음을 바꿀까 봐, 시연은 꽤 불안해 보였다.유건은 그런 시연의 반응이 꽤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기분이 좋아지니 속도 덜 쓰린 것 같았다.“좋아, 그럼 지금 공식적으로 통보할게. 넌 채용됐어.”“아...”시연은 입을 벌렸다가 멍하니 말했다. “네.”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유건의 차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운전기사는 앞좌석, 시연은 유건 옆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지한은 함께 타지 않았다.유건이 굳이 데려다주겠다고 했다.시연은 한 번 사양했지만, 결국 못 이기고 타게 됐다. ‘하... 어색해...’시연은 괜히 헛기침을 한 번 하자, 유건이 옆으로 고개를 돌려 시연을 봤다.“몸 안 좋아?”“아뇨, 그냥 목이 조금 건조해서요.”시연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대충 둘러댔다.“응.”유건은 고개를 끄덕이고, 발밑에 있는 차량용 미니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냈다. 뚜껑을 돌려 열고는 시연에게 건네려던 찰나,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참, 시연이는 찬 거 못 마셨지.’3년 전, 조이를 낳을 때 대출혈로 몸이 크게 상해서, 의사가 몸 상태를 회복하려면 찬 거를 피하라고 했었다. 유건은 들고 있던 물병을 다시 자기 쪽으로 돌렸고, 고개를 젖혀 한 모금 마셨다.시연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뭐야, 나 주려던 거 아니었어?’ ‘아... 내가 또 혼자 착각했네.’하지만, 시연도 유건에게 한마디는 해야 했다.“고 대표님, 위 안 좋으시잖아요. 찬물은 좀 자제하시는 게...”“...”유건은 잠시 멈췄다.이 말, 3년 전에도 시연이 했었다.그땐 시연이 곁에서 지켜보며 일부러 미지근한 물만 마시게 했었는데, 시연이 유건을 감시한 날은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도중에 유건을 버렸으니까.‘젠장...’손끝이 저릿하고 어금니가 꽉 물렸다.유건은 웃으며 물병 뚜껑을 닫았다.“알겠어요, 지 선생님. 앞으로는 꼭 지시에 따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825화

    시연은 조용히 앞으로 나서서 유건의 손에서 셔츠를 받아서 들었다.그러고는 왼팔부터 조심스레 끼워 넣고, 어깨에 걸친 뒤 말했다.“오른팔도 천천히요.”시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남자와 여자는 체구부터 다르니까. 무리하게 움직이면 더 아플 텐데...’유건은 말없이 팔을 내밀었고, 시연은 신중하게 소매에 그 팔을 밀어 넣었다.“됐어요.”단추은... 묻지 않아도 됐다.유건은 앉은 채 미동도 없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니 말이다.‘할 생각도 없구나.’시연은 입술을 다물고 가볍게 허리를 숙여 위에서부터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윗단추 두 개는 풀어둘게요. 그 정도면 괜찮죠?”“응...”유건은 콧소리만 짧게 냈다.시연은 묵묵히 마지막 단추까지 채운 후 고개를 들었다.그러고는 남자의 단단한 눈동자를 마주하고 말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시연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고 대표님, 제가 대표님 위장 다 나을 때까지 정성껏 치료해 드릴게요.”“대신, 대표님은 출입국관리소에 제출할 ‘우리가 실제로 혼인 생활을 했다는 내용의 자필 진술서’를 작성해 주실 수 있을까요?”말을 마친 시연은 불안과 기대가 엇갈린 눈빛으로 유건을 바라봤다.‘지금이 타이밍이야. 이 사람은 그냥 도와주진 않아. 내가 줄 수 있는 건, 결국 내 의료 기술뿐이니까...’유건은 그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이 여자가, 이걸 조건처럼 거는 거야?’“뭐야, 고작 침 두 대 놔줬다고, 내가 감사 인사라도 할 줄 알았어?”유건은 코웃음을 쳤고, 심지어 피식 웃기까지 했다.“지 선생, 혹시 전생에 침 마스터였나? 이 정도면 한 방에 천만 원쯤 되는가 봐?”“그건 아니고요...”시연은 당황한 듯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냥, 대표님이 도와주신다면, 저도 그만큼 보답하고 싶다는 거예요.”‘솔직히 오늘 이 두 번 침으로 끝낼 생각은 아니었어. 길게 보고 꾸준히 할 각오였는데... 이 사람, 웃는 게 더 무서워.’“고 대표님.”시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824화

    시연을 본 유건은 마치 모르는 사람이라도 되는 듯,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묵묵히 서 있었다.냉랭하고 단정한 자세.‘역시... 나랑은 끝까지 거리 두겠다는 거네.’지한은 애써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형수님.”“지한 씨.”시연은 조용히 답했다.‘하... 아직도 ‘형수님’이라니.’그때, 유건이 불쾌한 듯 작게 혀를 차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배를 눌렀다.시연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었다.‘며칠 전, 유건 씨 집에서도 이랬지.’유건의 표정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고개를 살짝 떨구며, 엘리베이터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형님, 어디 안 좋아요?”지한이 다급히 물었고, 시연이 곧장 말을 이었다.“토할 것 같아 보여요.”그러고는 즉시 다음 층 버튼을 눌렀다.“내리는 게 좋겠어요. 지한 씨, 화장실로 데려가세요.”문이 열리자마자, 유건은 말도 없이 달려 나갔다.지한과 시연은 눈을 마주치고는 곧장 그 뒤를 따랐다.예상대로, 유건은 화장실로 들어가 거칠게 토하기 시작했다.지한은 따라 들어가 유건 등을 받쳐주었고, 잠시 후 유건이 힘겹게 걸어 나왔다.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조명 아래에 선 남자의 모습은 말 그대로 ‘병색’이 완연했다.‘설마 유건 씨가... 이렇게까지 될 줄이야.’‘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인데.’시연은 자연스럽게 이마를 찌푸렸다.‘이 상태로 한 번만 더 토하면, 위는 더 상할 텐데.’“이제 토하시면 안 돼요.”시연은 유건의 팔을 가볍게 붙잡았다.“지금 더 토하시면, 위 점막이 심하게 자극될 수 있어요.”“하지만...”지한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아니, 유건 형님이 토하려는데 내가 그 입을 막을 수도 없고...’“일단, 어디 앉을 데부터 찾죠.”“네.”지한은 유건을 부축해 복도에 있는 소파 쪽으로 데려갔다.유건을 조심히 앉힌 시연은 가방을 열어 안을 뒤졌다.“그게 뭐예요?”지한이 물었다.“침구 키트요.”시연은 간결하게 대답하며 작은 알코올 솜 통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823화

    생각보다 일이 순조로웠다.저녁 8시가 다 되어갈 무렵, 매니저가 시연을 찾아와 작은 쪽지를 건네며 말했다.“8번 방 손님이 널 지명했어.”그러고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그 사람이야.”시연은 말 안 해도 누군지 바로 알았다.그래서 쪽지를 조용히 받아서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시연아.”매니저는 뭔가 걱정된 듯 시연을 힐끗 보더니 당부했다.“그 사람이 사람을 지명한 건 이번이 처음이래. 괜히 마음에 두고 부른 거 아니면 다행인데...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네, 걱정하지 마세요.”시연은 얕게 웃으며 말했다.‘마음에 둔 거라니... 그런 건 아니고, 침이 효과 있었던 거겠지.’시연은 준비된 트롤리를 밀고 8번 방으로 들어섰다.오대민은 시연을 보자 환하게 웃었다.“있었네? 오늘 안 나오는 줄 알고 걱정했어.”시연은 인사를 하며 말했다.“절 찾으러 오신 거였어요? 다음부터는 오시기 전에 안내데스크에 먼저 문의하시면 돼요.”“혹시 요일 정해놓고 오시는 거면, 제가 근무를 그 시간으로 맞춰볼게요.”“그거 좋네.”오대민은 유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난 웬만하면 매주 수요일쯤 와.”‘그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시연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네, 기억해 둘게요. 일단 편하게 누워주세요.”“그래.”오대민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침, 진짜 대단하던데? 그날 밤, 간만에 제대로 잤어. 3시간 푹 잤는데, 무엇보다 머리가 안 아팠어. 아파도 오래가진 않더라고.”“그건 좋은 반응이에요.”시연은 부드럽게 말했다.“침 치료에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거예요. 이제 막 시작하신 건데도 그 정도라면, 횟수가 좀 쌓이면 분명히 더 좋아지실 거예요.”“난 그쪽을 믿어.”오대민은 진심 어린 미소로 말했다.그 순간, 시연이 살짝 장난스럽게 웃으며 낮게 말했다.“움직이시면 안 돼요. 그렇게 하면, 제가 경혈 잘못 찌를 수도 있어요.”“아, 응... 미안.”오대민은 몸을 반듯하게 고정하고는 숨도 조심스럽게 내쉬었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