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피로 범벅이 된 심은별이 응급실로 실려 왔을 때, 남편 이준서는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첫사랑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 은별은 마침내 결심했다. 이 결혼을 끝내기로. 사람들은 모두 은별이 준서에게 집착한다고, 비참할 정도로 매달린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보석 업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천재 디자이너이자, 정체를 감춘 미스터리한 펀드 매니저 ‘L’. 그 인물이 바로 은별이라는 사실을. 심지어 준서가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첫사랑을 살릴 특효약 유통망의 명단에도 이름이 올라 있었다. 이씨 가문이 오래전에 철저하게 짓밟아 없애 버렸다고 믿었던 그녀의 본명... 이혼 후, 준서는 은별이 분수도 모르고 날뛴다며 차갑게 비웃었다. 딸조차 엄마를 외면했다. 세상은 모두 은별의 추락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완전히 뒤집혔다. 경매장에서는 은별이 무심코 스케치북에 끄적거렸던 결혼반지 설계도가 천문학적인 금액에 낙찰되었고, 국제구호기구의 전용 의료 헬기가 그녀의 집 마당에 직접 내려와 극비 임상 수술을 의뢰했다. 그리고 이준서가 애지중지 키워 온 그 딸은, 병원 진단서와 함께 전달된 단 한 장의 서류를 보고 손끝을 떨었다. 유일한 골수 기증자 일치 확인서. 그 서류 맨 아래에는 분명히 엄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이준서는 달빛을 등진 채 무릎을 꿇었다. 반면 레드카펫 위를 걷는 은별은 사파이어빛 베일 너머로 희미한 미소를 띤 채, 너무도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대표님. 당신 첫사랑 수술비는 LX그룹 지분 51%예요.”
View More그 뒤로 그들이 또 무슨 말을 늘어놓는지, 은별은 더 이상 들을 생각도 없었다. 준서가 확고하게 리연을 선택한 순간, 그동안 자신이 품었던 모든 기대와 바람이 너무나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다.‘강리연의 이름을 들었을 때, 대체 뭘 기대했던 걸까?’‘이준서가 돌아서서 자신을 한 번쯤 돌아봐 주길 바란 걸까, 아니면 하서가 엄마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바꿔 주길 원했던 걸까?’은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쓰라린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심은별, 넌 정말 한심하구나. 저 사람들이 널 이토록 무시하고 외면하는데도, 대체 뭘 더 바라겠다는 거야?”하지만...7년이 훌쩍 넘는 감정이란, 어찌 하루아침에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비록 은별이 의식적으로 과거의 습관을 지우려 애쓰고 있었지만, 몸과 마음이 일상의 구석구석에 배어든 7년의 흔적을 완전히 떨쳐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법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은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헛된 기대를 머릿속에서 떨쳐냈다. 그리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준서의 무시도, 하서의 냉담도 없는 이런 날들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은별은 마치 인형이 미소 짓는 표정을 따라 하는 사람처럼, 다소 굳은 미소를 입가에 살짝 띠웠다. 삶이 이미 충분히 고단하니, 이제는 스스로를 즐겁게 만드는 법을 찾아야 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문 여는 소리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준서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은별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두 사람의 시선이 정확히 맞닿았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두 사람 눈빛에 담긴 냉기 또한 선명해졌다.은별이 준서에게 이런 태도를 보인 건 처음이었다. 솔직히 말해, 상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해방감 넘치는 일이었다. 은별은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준서의 얼음장처럼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을 보니 차마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그래서 은별은 아
“우리 이씨 가문 돈으로 먹고 살면서, 감히 나한테 버릇없이 굴어? 이번에 제대로 혼내 주지 않으면, 내일 당장 엄마한테 기어오를지도 몰라요.”남주는 영리했다. 단순히 자신의 불만만 토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안미선까지 슬쩍 끌어들였다.이 말에 안미선의 부드러운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꼬리가 날카롭게 치켜 올라가며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동생이 하는 소리, 다 들었니?”남자는 소파 한구석에 기대앉아 있었다. 거실의 따뜻한 조명과 준서가 내뿜는 냉기 어린 그림자가 묘하게 뒤섞여, 윤곽이 흐릿하게 일그러진 듯했다. 마치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듯했다.그림자 속에서도 유독 선명한 눈동자는, 은별을 혼내 주겠다는 모녀의 말에 미동조차 없었다. 시종일관 무심하고 차가울 뿐이었다.“알겠어.” 준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드 정지시켜 놓을게.”어차피 집에만 있는 은별은 먹고 마시는 데 부족함이 없으니, 돈이 전혀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정작 준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수년간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은별이 도맡아 왔다는 사실을. 신선한 식자재와 몸에 좋은 음료, 좋은 옷들. 이런 것들 중에 돈이 안 드는 게 어디 있을까?오늘 카드를 정지시킨다면, 내일 당장 두 사람은 낡거나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하서의 알레르기를 유발할지도 모를 음식을 입에 넣게 될 터였다.물론,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하서의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는 음식도 있긴 하다. 하지만 과연 하서의 입에 맞을까?단지 그 한 그릇의 죽에도, 은별의 심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른다. 그냥 물에 불려서 끓인 하얀 죽이 그렇게 맛있을 리가 있나?이 모든 것을 2층 난간 너머로 듣고 있던 은별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남자가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모녀의 요구를 받아들인 그 순간, 현기증이 일면서 난간을 꽉 쥐지 않았다면 그대로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을지도 몰랐다.이혼을 결심한 마당이었지만, 7년간 쏟은 정성은 결코 거짓이
하서가 죽을 먹겠다고 보채던 날, 은별은 팔뚝에 뜨거운 죽을 쏟고도 아픈 기색 하나 없이 서둘러 그릇을 내밀었다. 아이가 다 먹을 때까지 정성껏 먹여준 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상처를 돌볼 틈이 생겼다. 그 탓에 화상 자국은 피부에 깊게 패어 영원한 흉터로 남았다. 아무리 값비싼 흉터 제거 크림을 발라 봤자 색만 옅어질 뿐,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지금, 하서는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은 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은별의 가슴은 예전처럼 아프지도, 죄책감에 짓눌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하서를 달래줄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SNS에는 매일같이 ‘새엄마’가 등장했다. 10마디 중 8마디는 리연에 관한 이야기였다. 반면 ‘친엄마’는 필요할 때만 간신히 생각나는 존재일 뿐이었다.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은별은 고개를 저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하서를 비켜서서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준서는 오늘 밤 돌아오지 않을 테니, 드디어 홀로 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계획은 완벽해 보였지만, 하서의 고집은 은별의 거절에 불붙은 듯 더 거세졌다.“싫어요! 동화 읽어달라고요! 엄마, 동화 읽어주세요!”하서는 동화책을 쥔 채 침대까지 달려가 은별의 팔을 마구 흔들었다. 날카로운 아이 목소리가 귀를 찌를 듯했다. “싫어요, 싫어요. 동화 꼭 들을 거예요!”“하서야.”은별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하서를 불렀다. 목소리가 쉬면서 말투까지 무거워진 탓인지, 하서는 잠시 멈칫했다.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며 소리쳤다. “엄마 싫어요!”“다시는 엄마라고 안 부를 거예요! 난 리연 이모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어요!”이 말에 은별은 멍하니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창백해진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문자에는 말투가 담겨 있지 않아서, 하서의 SNS에서 본 ‘새엄마’에 대한 글들은 은별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직접 듣는 말 한마디는 훨씬 더 큰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근데 엄마는 그림 그릴 줄 모르실 텐데...”하서는 은별이가 디자인 원고를 그리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하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문 주얼리 디자이너인 남주가 왜 은별한테 원고를 그려달라고 하는지, 게다가 들킨 뒤에는 엄마와 그림 그리기로 약속한 척까지 하고 말이다.“우리 엄마는 식탁 닦고 밥 하고 동화 읽어주는 것밖에 못 해요. 고모가 정말 도움이 급하면 리연 이모한테 부탁해 보는 게 어때요?”리연의 이름이 나오자 하서의 얼굴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고모, 리연 이모 아세요? 이름은 강리연인데, 진짜 대단한 디자이너예요.” “지난번에 아빠랑 놀러 갔을 때 이모가 디자인한 목걸이 봤는데, 진짜 예뻤어요. 저도 커서 꼭 리연 이모처럼 될 거예요. 절대 엄마처럼 되진 않을...”하서는 자랑하느라 신이 난 나머지, 은별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말았다. 그리고 허겁지겁 작은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천진난만하고 맑은 하서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고요한 복도 안에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남주는 은별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눈빛 속의 분노가 거의 넘쳐흐를 듯이 은별을 탓하고 있었다.“그래, 두고 봐. 내가 엄마한테 말할 테니까!”말을 마치자마자 준서에게 인사할 새도 없이 화가 난 채 계단으로 내려갔다. 급하고 무거운 발소리는 가슴속 불 같은 화를 고스란히 말해주는 듯했다.은별은 남주의 협박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누가 오든 간에, 돕지 않겠다고 한 그녀의 결정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이씨 가문 식구들이 자신에게 불만을 품은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이참에 더 밉보인들 잃을 것도 없었다.자신의 등장에 무심하게 등을 돌리고 가버리는 준서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수년간 반복된 일과에 은별은 이미 무뎌져 있었다.은별은 볼을 툭 내민 하서를 내려다보며, 아이의 서운한 기색은 애써 외면한 채 덤덤하게 말했다. “하서야, 시간이 늦었어. 이제 자야 할 시간이야.”“근데 엄마가 동화 안 읽어줬잖아요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