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이러면 저한테 유리하게 되잖아요. 제가 민영 씨가 잘 모르는 곡을 선택하면 어떡해요. 아무래도 그건 민영 씨한테 불공평할 것 같은데."송민영이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네.송민영은 유현진이 피아노 칠 줄 모른다고 확신했다. 아니면 이렇게 연거푸 거절할 리 없다.방금 전 유현진 때문에 망신당한 송민영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유현진이 거부하면 할 수록 송민영은 더 좋아라 그를 요청했다."현진 씨가 곡을 골라요. 저는 어떤 곡이더라도 박자를 따라갈 수 있어요. 강 대표도 현진 씨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기대할 거 아니에요?"유현진은 강한서를 쳐다보면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가?"강한서는 유현진을 흘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맘대로!"강한서의 태도에 유현진은 조금 실망했다."그럼 다녀올게."유현진이 송민영과 함께 멀어지자 한성우가 입을 열었다."송민영은 피아노 7급이라 일반 곡들은 다 괜찮게 칠 텐데, 현진 씨 괜찮겠어?"강한서는 유현진이 마시던 생수병을 열어 한모금 마시고 답했다."기껏해야 체면이 깍이겠지. 어차피 습관이 됐을 거야."한성우는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송민영은 유현진에게 악보를 건넸다."현진 씨가 골라봐요."악보를 펼쳐 보던 유현진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더니 말했다."이걸로 해요."송민영이 보자 이었다.이 곡은 난도가 있는 곡이었다. 화음 속도가 빠르거니와 다섯 손가락이 서로 다른 힘으로 건반을 눌러야 하기에 제대로 연주하려면 탄탄한 기본기가 필요했다.송민영도 연습해 본 적 있었지만, 힘이 부족해서 고조되는 부분에서 원곡이 가져다 주는 기세를 충분히 표현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그는 유현진을 상대로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두 사람 모두 피아니스트가 아니고, 더욱이 곡을 유현진이 스스로 골랐기에 치지 못하는 사람이 창피할 거라 생각했다."현진 씨, 확실히 이 곡으로 할 건가요?"송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저 물소리와 피아노 소리면 귓전에 울렸다.유현진은 송민영처럼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추위를 타는지라 치마 밖에 흰 외투를 걸쳤다.그리고 머리는 간단하게 포니테일 하고, 고개를 숙여 피아노를 칠 때마다 이마 앞 잔머리가 살랑살랑 날렸다. 거기에 입술을 살짝 깨무니 세속을 벗어난 것만 같은 청초함에 더없이 아름다웠다.이 모습을 지긋이 쳐다보던 주강운은 저도 모르게 술잔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한강운을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그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이러한 대사가 떠올랐다.과인이 아직 놀랄 일이 더 남았나?그중 강한서만 담담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유현진이 곡을 선택한 것은 확실히 송민영한테 불공평했다.그는 집에 있는 피아노로 매번 이 곡을 연습했다.맨 처음에 칠 때에는 그도 송민영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매번 같을 곡을 치다 보니, 처음에는 듣기 거북하던 곡이 차츰 나아지면서 나중에는 훌륭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이 곡을 숙지하고 나서도 피아노방만 가면 이 곡을 쳤다.나중에 강한서가 듣다 못해 유현진에게 어째서 한 곡만 계속 치냐고 물었다.유현진의 답은 심플했다. 이 곡이 뽐내기에 가장 좋아서.그러니 오늘 드디어 뽐내기에 성공했다.강한서가 그런 유현진을 보고 피아노 연주에 대한 태도가 올바르지 않다고 하자, 유현진은 되레 엄청 진지한 태도로 답했다. 자신은 모든 피아노곡을 익힐 필요가 없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악할 정도의 곡만 능수능란하게 연주할 수 있으면 된다고 말이다.유현진은 재주는 많지 않지만 이상한 논리만은 가득하다.강한서가 예전의 일을 떠올리면서 입술을 말아올렸다.맨 마지막 음을 마치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유현진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그의 말대도 듣는 사람들이 경악하고 있었다. 피아노를 십여 년 간 쳐 온 사람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이에 반해 송민영은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방금 전의 자신만만하던 태도는 온데간데 사라졌다.유현진은 불난
"다음에요. 제가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요."송민영이 애써 웃으면서 완곡하게 거절했다.그러자 유현진이 응했다."아쉽네요."입으로는 아쉽다고 말하면서 표정은 전혀 아쉬운 표정이 아니었다.자리에 더 머물러봤자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송민명은 옷을 갈아입겠다는 핑계로 자리를 떴다."쯧쯧"유현진이 속으로 유감을 표했다. 기회를 주는데도 받지 못하다니 참으로 안됐어. 만약 한 곡만 더 연주하면 입장이 완전히 바뀔텐데.유현진이 가벼운 걸음으로 강한서 옆으로 돌아오자 옆에 있던 한성우가 가까이에 와서 엄지척 하면서 찬사를 한바탕 늘어놓았다."형수님! 대단하신데요! 피아노를 이렇게 잘 칠 줄 몰랐어요."유현진은 잘난 척에 성공을 한번 하자 허풍도 거침없이 떨었다."사실 오래 연습하지 않아서 많이 생소해졌어요.""그런데도 이렇게 잘 친다고요? 대체 기본기가 얼마나 탄탄하길래 이렇게 연주를 잘해요?"유현진은 급히 손을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그럭저럭이죠.""형수님 그러면 를 연주할 수 있어요?""그거 보다 훨씬 쉬운 곡인데.""콜록 콜록----"강한서가 옆에서 헛기침을 하면서 유현진을 흘끔 쳐다봤다.그런데 허풍 치는 데 재미를 들인 유현진이 언제 강한서가 주는 힌트를 캐치할 새가 있겠는가? 유현진이 답했다."그건 입문곡이죠.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람이면 다 연주할 수 있죠."그러자 한성우의 눈에서 빛이 반짝거렸다."그럼 가서 를 연주해줘요. 방금 전에 마음에 드는 여자분을 발견했는데, 형수님이 그 곡을 연주해주면 제가 그 여자분한테 가서 같이 탱고를 추자고 해볼게요."유현진......유현진은 헛기침을 했다."저기 바이올린도 있잖아요. 그 곡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면 듣기 더 좋아요.""여기 형수님보다 더 멋진 연주를 보여줄 사람이 어디 있다고. 형수님! 저의 솔로 탈출 여부는 형수님에게 달렸어요."유현진......멋진 연주긴......포르우나 카
몇몇 사장님이 강한서를 찾아와 얘기를 나누자 유현진은 증조할아버지를 찾으러 수영장 쪽으로 걸어갔다.이 노인네는 절대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방금 전 카지노에서 돈을 싹쓸이하더니, 지금은 수영장에서 젊은이들과 숨을 참기 시합을 하고 있다.유현진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한 차례 이기고 나서 진 젊은이들을 상대로 딱밤을 때리고 있었다.유현진......유현진이 옆에서 믿기 어려운 표정으로 민경하에게 물었다."얼마 동안 참으셨어요?""삼심 몇 초요."유현진???"삼심 몇 초를 참고 이겼다고요?"사무실에 앉아만 있는 이 남자들 대체 얼마나 약했으면......민경하가 기침을 하더니 말했다."어르신이 자기소개할 때 강 대표님 증조할아버지라고 소개했어요."유현진......그러니까 이긴 게 아니라, 강한서의 증조할아버지라는 명분으로 타인이 봐주도록 했다는 거네?유현진은 어이가 없었지만, 정작 증조할아버지 본인은 전혀 자신이 불명예스러운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엄청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진짜 늙으면 애가 된다는 옛말 그른 데 없다.증조할아버지는 크루즈에 올라타고 나서부터 줄곧 젊은이들을 놀려먹는 재미에 홀딱 빠져 있더니 드디어 졸린 기색을 보였다.유현진은 증조할아버지를 방으로 모셨다. 증조할아버지는 여전히 미련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밤에 뷔페가 있는데."어느 때인데, 아직도 음식을 염두에 두고 계시다니.유현진이 말했다."제가 사람을 시켜 음식을 남기라고 할게요.""네가 말하면 사람들이 들어?""한서 씨가 말하면 들어요."증조할아버지는 드디어 자신의 증손녀 사위의 좋은 점을 발견했다. 그러더니 마지못해 답했다."그 놈 쓸 만한 구석은 있구나."유현진은 그제야 자신이 양심이 없는 게 증조할아버지로부터 유전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태껏 강한서의 이름을 팔아먹었으면서 이러고 있다.증조할아버지는 엄청 피곤한 모양이다. 어제 크로즈를 탄다는 말을 듣고 나서 너무 흥분한 나머지 오늘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있었다.유현진은 증조
유현진은 송민영이 이 정도로 이성을 잃을 줄은 몰랐다. 다행히 반응이 빨라 이내 가드레일을 붙잡아서 망정이지 아니면 송민영과 함께 물에 빠질 뻔했다. 그런데 송민영은 괴력으로 유현진을 붙잡고 물에 함께 빠지려고 안간힘을 썼다. 갈수록 송민영의 힘을 당해내기 어려워지자 유현진은 급한 김에 송민영을 발로 찼다. 너나 빠져!그렇게 송민영은 질겁하는 표정으로 물에 빠졌다.그러자 뒤에서 전 여사의 외침이 들려왔다."사람 살려요! 여기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그 소리에 갑판 위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누가 물에 빠졌어?""송민영 씨가 빠졌나봐.""정말? 갑자기 멀쩡하던 사람이 어떻게 물에 빠져?""전 여사 말로는 자신이 송민영 씨와 유현진 씨가 다투는 모습을 목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나?""그 말은 유현진 씨가 밀었다는 거야?""난 그렇게 말한 적 없어."크루즈 위에는 갑자기 이 사건을 둘러싼 의견들이 분분했다.그러다가 강한서를 보자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강한서가 사람들의 틈 사이로 들어오자 유현진이 가드레일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무표정으로 구조인원들이 송민영을 구명선 위로 끌어 올리는 것을 바라보았다.강한서가 입술을 깨물먼서 앞으로 다가가 유현진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유현진은 멍하니 강한서를 쳐다보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바닷물은 엄청 찼다. 송민영은 물에 잠기지는 않았지만 몸이 꽁꽁 얼었을 것이다.송민영은 주목을 받기 위해 4월의 날씨에 그저 레이스 한 겹을 걸친 옷차림이었다. 그런데 물에 빠졌으니 옷이 몸에 찰싹 달라붙어 바디라인이 있는 그대로 드러났다. 현장에 있던 남자들은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시선은 계속하여 송민영을 향해 흘끔거렸다.이때 주강운이 외투를 벗어서 앞으로 다가가 송민영에게 걸쳐 주었다.눈시울이 빨개진 송민영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의사선생님이 와서 검사를 해보더니 다른 이상은 없고 그저 많이 놀랐다고 했다.의사선생님이 떠나가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번거롭게 약까지 가져다 주시고."말은 그렇게 했지만 유현진은 주강운을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그는 소파 위에 놓았던 옷을 한데 몰려 놓고는 주강운더러 앉으라고 하였다."강운 씨 따뜻한 물 드릴까요?"주강운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유현진은 따뜻한 물 한 잔을 주강운에게 건네주었다.주강운은 비닐봉투를 벌려 안에 있는 연고를 꺼내 유현진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우선 상처에 발라요."유현진은 연고를 건네받고 웃으면서 고맙다고 전하고는 바로 뚜껑을 열어 연고를 손목에 바르기 시작했다.주강운은 방 안을 한번 훑어보더니 물었다."한서는요?"유현진이 동작을 멈칫하더니 답했다."모르겠어요."방금 전 경호원들이 송민영을 방까지 호송할 때 송민영이 강한서를 붙들고 몇 마디 하더니 송민영이 방으로 돌아가자마자 강한서도 뒤따라 나갔다.어딜 가긴 어딜 가? 송민영 찾으러 갔겠지! 유현진이 옷소매를 올리자 팔 안쪽 피부 한군데가 다른 데에 비해 피부색이 어두웠고 매끄럽지 않았다.주강운은 그 한군데 피부를 한참 지켜보다가 물었다."팔 안쪽 조금 어두운 피부는 어떻게 된 거예요?""이거요? 화상 흉터에요."말하고 나니 주강운의 화상이 떠올랐다. 유현진은 멈칫했다. 주강운의 화상에 비하면 자신의 화상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화상 화제는 더이상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주강운 본인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이어 물었다."어떻게 화상을 입을 거예요?"굳이 숨길 필요가 없는 일이라 유현진은 있는 그대로 답했다."몇 년 전에 엄마와 제가 차사고를 당했어요. 당시 엄마는 엄청 심하게 다쳐서 여태 병원에서 혼미상태로 누워 있어요. 저는 조금 경하게 다쳤고요. 이 흉터도 그때 남은 거예요."유현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실은 그때 사고를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날은 유현진이 학교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유상수가 운전기사를 보내 유현진을 학교까지 바래다 주기로 했는데, 갑자기 기사님이 일
유현진이 말을 끝낸 뒤에야 주강운은 물었다. "병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 엄마 보러 간 거예요?"유현진은 머리를 끄덕였다."지금은 어때요?"머리를 젓는 유현진의 눈빛은 금세 어두워졌다. "그냥 그래요. 숨만 쉬고 계셔요. 다시 깨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주강운은 부드러운 말투로 위로했다. "여태 잘 버텨왔으니, 기적은 꼭 일어날 거예요."유현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요즘은 반응이 있으세요.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좋은 징조래요."주강운은 부드러운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나 해외에서 치료받을 때 알게 된 실력 좋은 의사 친구가 있어요. 필요하면 다리 놓을게요.""고마워요, 필요하면 얘기할게요."유현진은 멈칫하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주 변호사님, 소송 건은 어떻게 됐어요?""경고장은 다 완성했어요. 한번 보실래요?"유현진은 머리를 끄덕였다.주강운은 유현진의 휴대폰으로 경고장을 전송해 주었다.경고장의 내용은 유현진이 인터넷에서 봤듯이 구체적이었다.루머를 지우고 지속적인 가해를 멈출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맞아요." 주강운이 갑자기 물었다. "저번에 심리 치료 다닌다 그랬죠?"유현진은 머리를 끄덕였다. 유현진은 지난번에 사건과 관련된 증거를 제출할 때 대충 얘기한 적이 있었다. "한동안 이 사람들이 어떻게 내 메일을 알아낸 건지 지속해 저주가 섞인 폭력적인 메일을 보내왔어요. 그때 좀 우울했거든요. 내 친구가 이상한 걸 느끼고 날 데리고 심리 클리닉으로 갔어요."병원에서는 그녀가 우울증세를 보인다고 했다. 확실히 유현진은 한동안 우울해 있었고 악몽에 시달렸다. 네티즌들은 그녀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고 유현진은 매일 밤 저주가 현실이 되는 악몽을 꾸었다.외출하는 날에는 지나가던 사람이 그녀를 힐끗 보기만 해도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면서 두려워졌다.다행히도 차미주가 일찍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두었다가는 의사의 말처럼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주강운은 입술을 오므리더니 물었다. "한서는
하지만 상대 기업과 강씨 집안은 절친한 사이였다. 유상수와의 협력 또한 강씨 집안의 신용을 바탕으로 진행했다.그런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되자 이 불똥은 결국 한성 그룹으로 튀게 되었다.당시 강한서는 둘째 삼촌인 강단해와 제일 사이가 안 좋았을 때였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발생하니 강단해는 바로 이 일을 문제 삼아 강한서의 기세를 눌렀다.강한서는 이 일을 조사하던 과정에 유현진도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와 한바탕 다투었다.하지만 유현진은 정말 억울했다.유현진은 유상수가 자기의 명의로 계약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그날 유상수는 유현진에게 같이 외식도 할 겸 하현주에게 가자고 제안했다.유상수는 한동안 병원에 가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하현주와 가까운 사람들이 자주 하현주와 대화를 나누게 되면 회복에 도움이 있다고 했었다.그래서 유상수는 이 일을 핑계로 유현진을 속였다.도착하고 보니 두 사람뿐만 아니라 식사 자리에는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다. 유상수는 유현진은 말끝마다 강씨 집안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유현진은 그 자리가 불편해 이내 자리를 떠났다.유현진은 자기의 등장이 유상수의 계약을 도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그 일로 인해 강한서는 강단해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게 되어 골머리를 앓다 보니 유현진의 해석이 머리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자발적이었든 우발적이었든 어쨌든 유현진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니, 말이다.강한서는 회사 일로 바쁘다 보니 유현진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아이의 일로 다투기까지 하다 보니 강한서는 아예 안방에서 나가 서재에서 지냈다.유현진은 매일 루머와 악플에 시달려 불면증을 앓다가 그날은 수면제 여덟 알을 복용하고 오래간만에 깊은 잠을 자게 되었다. 잠에서 깬 유현진은 강한서의 한마디에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이 상황에서 잠이 와?"유현진은 강한서에게 자기의 상황을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에 유현진은 마음을 접고 말았다.강한서가 그 사실을 안다 해도 그저 '투정 부리지
어두운 표정으로 이번 일의 경위를 할 번 곱씹은 홍혜림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서해금은 항상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한 번도 어긋난 적조차 없었다. 조금만 먼저 얘기를 꺼냈다면 의심을 살 수 있었고 조금만 늦으면 도와줄 기회를 놓칠 수 있었다. 서해금은 늘 홍혜림이 더는 손 쓸 방법이 없는 타이밍에 나타났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 당연히 홍혜림은 평소처럼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손길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서해금이 어떤 인간인데?’서해금은 이익을 얻을 수만 있다면 거지도 아버지로 모실 수 있었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친아버지도 아버지라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도와줄 리가 없어.’‘애초부터 이 모든 것이 서해금이 꾸민 짓이라면 말이 되긴 하지.’‘하지만 대체 왜?’홍혜림은 순간 자신에게도 조향대회의 투표권이 있다는 사실을 또 올렸다. ‘설마 그것 때문에?’서해금 의도를 파악하게 된 홍혜림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가식적인 X. 감히 날 두고 수작을 부려?’생각에 잠긴 홍혜림이 인상을 폈다 찌푸렸다를 반복하며 가끔은 이를 악무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윤이 걱정스레 물었다.“엄마, 왜 그래요?”홍혜림이 감정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역겨운 일이 떠올라서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아직 어린 나이라 홍혜림 말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한 진윤이 말했다. “엄마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전 부정행위도 하지 않았잖아요. 지금은 제가 신고까지 했으니 저희가 여기저기 부탁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저희에게 사정을 해야겠죠. 엄마도 이젠 회사로 나가 보세요. 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너만 괜찮으면 엄마는 아무것도 겁나지 않아. 회사에는 네 아빠와 형이 있어. 내가 할 일은 널 지키는 거야.”그 말에 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떠올렸다.“너한텐 좋은 부
진윤: ...진윤이 흥, 콧방귀를 꼈다. “네가 얘기 안 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한성 그룹 대표지?”진윤이 머리가 떨어질세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엄마, 형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언변이 장난이 아녜요. 게다가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니까요. 전엔 우리 형이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형도 그 형님 앞에선 꼬마에 불과한 것 같아요.”진윤의 뒤통수를 툭 치려던 홍혜림은 그의 머리에 감싸진 붕대를 보고는 시선을 내려 엉덩이를 차버렸다. “형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팔이 밖으로 굽어?”진윤이 바지의 먼지를 털며 말했다. “좋은 건 당연히 형이 더 좋죠. 하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형님이 더 뛰어난 것 같아요..”강한서를 향한 콩깍지가 두껍게 쓰인 진윤의 모습에 홍혜림은 괜히 질투가 났다. 하지만 상대방이 강한서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정인월이 직접 교육한 아이였으니 성품이 우수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진수 그룹과 한성 그룹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지 않은 탓에 협업하는 일이 거의 없어 연계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윤은 한성 그룹이 종사하고 있는 업계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었고 강한서는 IT 업계의 정상급 인물이었다. 그러니 강한서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진윤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홍혜림은 강한서가 아무 이유 없이 진윤을 도울 리가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한서가 여자친구 대신 자신에게서 서해금의 일을 알아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홍혜림은 그 일엔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세를 지고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강한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한 적도 없어 오히려 홍혜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서 대표에게 우리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은근슬쩍 오 교수님을 귀띔하게 한 것도 너의 그 스승님 생각인 거야?”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도와주겠다고
입가를 파르르 떨던 홍혜림이 진윤의 손을 툭, 쳐냈다. “저리 가. 엄마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진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홍혜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자 홍혜림이 진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얌전히 앉아있기나 해. 넌 애가 다치고도 얌전히 있지를 못 해.”잠시 말이 없던 홍혜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신고했어? 오 교수님께도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데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엄마, 만약 학교 측에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진위 여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얼른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을 거예요. 저희가 오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 같은 건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요.”“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인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고 하겠어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학교에서 너한테 처분을 내렸다는 말이 가짜라는 얘기야?”진윤이 말했다. “엄마, 서화 대학은 엄마와 아빠가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여 고르고 고른 대학이에요. 업계에서의 명성도, 학교 분위기도 말 할 것 없이 좋고요. 오랜 세월을 지내며 명성을 쌓아온 학교예요. 그만큼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는 얘기잖아요.”“그런 학교가 고작 이런 여론에 궁지로 몰려 학생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지금은 예전과 달라요. 요즘은 순식간이면 소문이 퍼진다고요. 이런 일은 조금만 미숙하게 처리해도 오히려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봐도 학교 측에서는 함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편이 학교의 명성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잠시 조용하던 진윤이 말을 이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학교 이사진이라면 부정행위가 사실이었다는 결론과 부정행위가 루머였다는 걸론 중 어떤 게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홍혜림이 미간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