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잃어버렸던 청력을 되찾은 날. 원슬비는 자신이 사랑한 남자, 강성준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쓰레기 같은 남자와 뻔뻔한 여자에게 차례로 따귀를 날린 뒤, 원슬비는 결혼식장에서 도망친 언니 대신 하씨 집안의 둘째 도련님에게 시집가겠다고 대답했다. 소문 속의 하이재. 오래 앓아 몸이 성치 않은 데다, 성정마저 음험하고 냉혹하다는 남자. 사람들은 모두 말했다. 그런 남자에게 시집가 봐야 살아 있는 과부가 되는 셈이라고. 하지만 신혼 첫날 밤. 하이재는 원슬비의 가는 허리를 움켜쥔 채 그녀를 통유리창 앞에 세워 눌렀다. “내가 별로라 생각했다며?” 그 뒤 사흘 동안. 다리에 힘이 풀린 원슬비는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소문이란 것이 얼마나 허술한지... ... 어느 날, 화려한 연회장에서 그녀를 배신했던 전 남자친구가 눈시울을 붉히며 원슬비에게 매달렸다. 다시 시작하자고. 자신에게 돌아와 달라고. 하이재는 태연한 얼굴로 알약 몇 개를 입에 털어 넣더니, 이를 갈며 으드득 씹었다. “도우야, 칼 하나 가져와.” 그가 천천히 웃었다. “내 병이 지금 발작하려는 것 같거든. 병자니까 사람 하나 죽여도 봐줄지 모르잖아.” 모두가 하이재의 광기를 두려워했다. 다만 원슬비만은 알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폭풍 같은 분노 아래, 오직 자신에게만 향하는 뜨거운 집착과 사랑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Ver mais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졌다.보이지 않는 ‘뭔가’가 공기 중에 번진 듯, 주변 온도가 조금씩 올라갔다.이재의 시선이 슬비의 얼굴에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섬세한 쇄골을 지나 웨딩드레스 네크라인에 박힌 작은 다이아몬드 장식에 멈췄다가, 그보다 조금 아래로 향했다.바로 그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한 이재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목젖을 한 번 움직이더니 방금보다 더 낮게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잠깐 전화 받고 올게”슬비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귓불은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이재의 시선이 그 붉은 귓불에 잠깐 머무르더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밖으로 나가던 그가 발걸음을 멈추고, 밖에서 대기하던 도우를 보고 말했다.“잘 보고 있어.”도우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예, 회장님.”이재는 전화를 받으며 복도 끝의 VIP 휴게실 문을 열었다. 전화 너머로 지혁의 능청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오늘 그 원씨 집안 큰딸 데리고 웨딩드레스 보러 갔다며?]이재는 길게 대답하지 않았다.“응.”그는 긴 다리를 느슨하게 포개고 소파에 앉았다. 손가락 사이에는 담배들 들고 있었지만 불은 붙이지 않은 상태였다.[진심이야?]지혁이 혀를 찼다. [예전엔 네가 그렇게 그런 것을 믿는 줄 몰랐는데. 액막이 결혼 같은 걸 정말 믿어? 게다가 너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며.]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만지작거리던 이재가 느긋하게 말을 잘랐다.“용건 없으면 끊는다.”[잠깐, 잠깐! 있어.]지혁이 급히 말했다. [아까 스타엔터 달라고 한 거, 진짜였어?]“그럼 장난으로 들었어?”[알았어.]지혁은 의외로 시원하게 답했다. [그럼 바로 내 비서 시켜서 스타엔터를 네 명의로 넘기라고 할게.]이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고맙다.”[우리 사이에 뭘...] 지혁은 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 [참, 도혁이 스타엔터에 가수 이름을 걸고 있거든. 맨날 일도 제대로 안 하고 돌아다녀. 헛짓거리하면 네 마음대로 내보내. 내 눈치 보지 말고.]“알았어
‘디자이너 베라?’슬비는 멈칫했다.‘전 세계 상류층이 찾는다는 그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그녀는 본능적으로 이재를 돌아보고 목소리를 낮췄다.“계약 결혼이잖아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이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번거롭지 않아. 드레스 몇 벌밖에 안 돼. 다 네 치수에 맞춰서 미리 주문해 둔 거야. 가볍게 입어 보기만 하면 돼.”말을 마친 이재는 베라를 보았다.“다 준비됐어요?”“네. 사모님 치수에 맞춰 메인 드레스 12벌, 피로연 드레스와 이브닝드레스 24벌을 준비했습니다. 전부 안쪽에 있습니다.”슬비는 좀 놀랬다.‘이게... 몇 벌뿐이라고?’베라의 미소가 더 환해졌다.“사모님께서 먼저 보신 뒤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현장에서 바로 조정해 드리겠습니다.”말을 마친 베라는 커튼을 열었다.슬비는 숨을 멈춰야 했다. 특수 제작된 옷걸이마다 웨딩드레스가 줄지어 걸려 있었다. 한 벌 한 벌이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그중 가운데 놓인 드레스가 가장 눈에 띄었다. 매끈한 새틴 머메이드 라인에, 네크라인과 소매 끝에는 아주 작은 진주와 다이아몬드 장식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조명 아래 은은하게 빛났고, 층층이 이어지는 긴 드레스 자락이 물결처럼 바닥 위로 흘렀다.“이 드레스는 회장님께서 사모님을 위해 따로 주문하신 디자인입니다.”슬비는 소파 쪽에 앉은 이재를 돌아봤다.이재는 잡지를 뒤적이고 있던 이재가 슬비의 시선을 느꼈는지 눈을 들었다.“왜? 마음에 안 들어?”“그런 게 아니라...” 슬비는 잠시 말을 고른 뒤 살짝 말했다. “너무 과해서요.”‘우리는 계약 결혼이잖아.’‘1년이 기한이고, 서로 필요한 걸 가져가는 사이.’‘이런 드레스를 입고 형식만 차린다는 게...’‘나 자신도 너무 아까우니까...’이재가 눈썹을 살짝 세웠다. 먹빛 눈이 곧장 그녀에게 향했다. 입가에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지만 목소리는 평온했다.“과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우리 와이프가 좋으면 돼.”
같은 시간, 주차장 반대편.성준이 굳은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걸 보자, 우찬은 손에 든 담배를 급히 끄고 빠르게 다가갔다.“어떻게 됐어?”성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로 차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표정은 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어두웠다.우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협의 안 됐어?”“권지혁이 다른 사람에게 넘겼어.” 성준의 목소리는 조용했다.“뭐?” 우찬이 멈칫했다. “누구한테?”“몰라.” 성준은 눈을 감았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권지혁은 얼굴도 안 보이고, 비서 하나만 보내서 날 돌려보냈어.”우찬은 입을 벌린 채 말을 잃었다.강씨 집안은 북명시에서 최고라고까지는 못 해도, 이름 있는 집안이었다.성준이 직접 호강시까지 와서 매각 협상을 하겠다고 했고 약속도 미리 잡혀 있었다. 그런데 한 시간 넘게 기다리게 해 놓고, 정작 본인은 보지도 않은 채 돌려보냈다니?체면을 심하게 구긴 셈이었다.“너무 마음에 담아 두진 마.” 우찬은 말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달랬다. “호강시는 워낙 복잡하잖아. 우리도 막 왔으니 모르는 규칙이 있을 수 있고...”성준은 어두운 얼굴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때 검은 세단이 두 사람의 차 옆을 스쳐 지나갔다.앞 번호판의 ‘H’ 글자를 본 우찬이 저도 모르게 말했다.“또 하이재 회장 차네.”성준은 차 안에서 핸드폰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응.”무심하게 대답하기만 했고,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우찬만 혼자 중얼거렸다.“어제 경찰서 앞에서도 봤는데, 오늘도 또 보네. 우연치고는 너무 우연 아니야?”하지만 성준은 별 반응이 없었다. 핸드폰 화면에는 슬비와의 메신저 대화창이 떠 있었고, 마지막 메시지 앞에는 여전히 빨간 느낌표가 붙어 있었다.우찬이 눈썹을 세우면서 혀를 찼다.“권지혁이 하이재 회장이랑 친하다던데, 설마 스타엔터 산 사람이 하 회장인가?”그렇게 말하며 시선도 무심코 창밖으로 향했다.뒷좌석의 창문이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아서 좁은 틈이 남아 있었다.그 틈 사이로 우찬은 여자
도우를 찾아 집으로 돌아가려던 슬비는 멀리서 차 앞에 기댄 큰 키의 남자를 보았다.이재가 긴 다리를 느슨하게 포개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는 반쯤 탄 담배가 끼워져 있었고, 시선은 낮게 내려가 있었다. 담배 연기가 얇게 피어올랐다.슬비의 시선을 느낀 듯, 이재가 눈을 들었다.다음 순간 맨손으로 담배를 꺼 버린 이재가 그녀를 향해 곧바로 걸어왔다.슬비는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잠깐 반응하는 것도 잊고 있었다.‘하 회장이? 여기엔 왜 온 거지?’“면접 어땠어?”슬비는 정신을 차리고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잘 봤어요. 내일부터 출근해도 된대요.”이재의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잘됐네.”그는 자연스럽게 슬비의 손에 든 가방을 받아 들었다.“가자. 웨딩드레스랑 예복 도착했어. 온 김에 한번 입어 보자.”‘웨딩드레스를... 입어 본다고?’슬비는 이해가 안 됐다.몸을 돌려 차 쪽으로 걸어가던 이재가 곧바로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았다.“뭐 해? 안 오고.”“아... 네.” 슬비는 입술을 다물고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도우가 이미 차문을 연 채 공손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슬비가 차에 오르자, 이재도 뒤따라 앉았다.문이 닫히자, 호강시 오후의 습한 열기가 곧바로 차단됐다.차 안의 에어컨은 빵빵했다. 시더 향기와 옅은 담배 냄새가 공기 안에 섞였다.슬비는 시트에 기댄 채 이재를 살폈다.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차창 밖 빛이 옆모습을 가르며 지나가면서, 긴 속눈썹이 눈 밑에 희미한 그림자를 만들었다.상태는 좋아 보였지만, 눈 밑의 다크서클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지난밤의 키스를 떠올린 슬비는 괜히 뺨이 달아올라서 시선을 돌렸다.‘엄마 말이 맞나 봐. 하이재는 그 방면에서 정말 안 되는 모양이야.’‘이렇게 되는 게 차라리 다행이야. 안 그러면 내가 감당이 안 되니까.’‘남자라는 게... 정말 체면치레 하려다가 자기만 고생이지.’이재가 자신도 남자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슬비도 자신이 친밀 불안 장애 증상이 다시 생길까 봐 걱정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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