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잠깐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가느다란 속눈썹 파르르 떨며 멍하니 로딩을 거쳐야 하는 율혜.그 모습은 학교에서 많이 봐왔다.그러니 저와 한 침대에 누워 별 거 아닌 이야기를 주고받다, 까무룩 낮잠에 빠져들어, 자고 일어났을 때의 표정 또한 바로 그려지지.지금도 봐라.무언가 제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싶으면 남에게 쉽사리 내어주지 않겠다는 율혜인데.아쉬운 건 오늘은 이런 저런 일과로 낮잠 시간대를 놓쳤다는 거, 딱 그거 하나였다.“그치. 오늘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코 하는 수밖에 없어. 리짱은 유미 씨와 퇴근할 때가 가까워졌고, 휘안이는 오늘 할 일들이 남았고. 따라서 같이 코 하는 건 다음 기회라는 거지.”“알았어. 그럼 다음부터는 율혜랑 코 하고 싶은 시간대도 생각해둘게. 두 시에 누워서 세 시에 잠들고 다섯 시 조금 넘어서 일어나는 계획으로. 어때? 그럼 지금보다는 완벽하지?”“응. 그렇다면 미리 약속하고 낮잠을 자기로 한 날에는 이 옷도 챙겨와야겠네? 이건 커플 티셔츠라 낮잠 잘 때 필수라는 거잖아.”“그럼~ 율혜랑 나랑 커플 티셔츠를 입고 낮잠에 들면 얼마나 평화롭겠어. 게다가 자고 일어나면 더 통통해진 애교살도 볼 수 있을걸. 율혜만큼은 꾹 하고 눌러봐도 좋아. 율혜는 내 여자 친구잖아. 그니까 날 다 허락할게.”아마도 오늘 당장 율혜의 옆에서 낮잠이 들었다면 다섯 시보다는 이르게 일어나서 곤히 잠든 율혜를 두 눈에 담아두기 바빴을 거다.그러다 제 인기척에 율혜가 뒤척이기 시작하면 저 역시 이제 막 깨어났다는 듯 실눈으로 율혜와의 거리를 재봤을 테지.물론 겨우내 잠에서 깬 율혜가 멍 하니 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저와 한 뼘 이상 멀어질 태세라면 입술 도장으로 간격을 좁혀봤을 테고.아, 방금 한 생각은 한낱 상상보다 한 폭의 그림으로 분류해야 올바른 카테고리가 되려나.한때 입시 미술을 겪어봤던 만큼 무지렁이 비전공자보다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는 편.근데 이런 복잡한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율혜는 제가 다 보는 앞에서 애교살의
“율혜야~ 우리 율혜는 우유 푸딩 슬라임을 만들어서는 나한테도 하나 선물해줬잖아. 그럼 이번에는 황치즈 마카롱 슬라임도 만들어주면 안 돼? 율혜가 즐겨먹는 간식 시리즈로다가.”“간식 시리즈? 그거 진짜 좋은 생각이다! 황치즈 마카롱은 말이지. 단짠단짠한 맛이야. 근데 슬라임이라 먹을 수는 없으니까 맛 대신 향으로 승부하는 거지. 그리고 소리는 새하얀 눈을 밟을 때 나는 뽀득뽀득한 소리가 좋겠어.”“좋다. 그럼 손님들 자리 이동할 때 우리도 밖으로 나가볼까? 때마침 우리 집 냉장고에 황치즈 마카롱이 있거든. 누나가 나랑 율혜 먹으라고 여러 맛으로 잔뜩 사온 거 있지.”“진짜? 소안 언니라면 그냥 디저트 가게가 아니라 아주 맛있는 디저트 가게에서 사왔을 거야. 리짱이 예상이 맞는지 확인해 봐야겠어.”방학에는 아침 겸 점심 개념으로 첫 끼.세 식구 모두 모여 먹는 저녁으로 두 끼.이런 관계로 방학 중 율혜의 간식 시간이란 딱히 규정되어 있지 않아 날마다 크게 끌리는 음식이 없는 한 넘어가도 그만인 개념이었다.그리고 그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휘안은 간식 시간을 핑계 삼아 율혜와 함께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걸 유난히도 좋아했다.“그러자. 우리 집 가서 맛있는 마카롱도 먹고, 재밌는 보드게임도 하자. 그리고 오늘 시연했던 대본 연기도 보여줄게. 학원 수강생들 제외하면 우리 율혜가 첫 번째 관객인 거야.”“좋아! 근데 말이야. 휘안이는 영어 학원 숙제를 다 끝낸 게 맞을까? 나한테 모의고사 하나를 풀어가야 한다고 했잖아. 영어 학원에 가는 건 내일이니까 확인 차 물어보는 거야.”매일같이 달라지는 율혜의 현재 위치와 식사 여부를 수시로 확인하는 편이라는 휘안.그에 반해 율혜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휘안의 굵직한 스케줄을 통째로 외우고 사진 스튜디오 체류 시간도 그에 맞춰 결정하는 편이었다.그러니 안 그래도 기억력이 좋은 율혜는 엊그제 휘안이 지나가듯이 말한 학원 숙제 하나 정도는 쉽게 잊지 못했던 거지.더욱이 휘안이 영어 학원에 가는 시간대는
평일만 됐다 하면 어머님 껌딱지로서 출근 때부터 퇴근 때까지 한 자리를 지킨다는 율혜.휘안은 그 사실을 잘 알았기에 오늘도 역시 나 홀로 레이스로서 걸음을 재촉했다.한 시라도 빨리 지하철에 올라타 목적지까지 경보하듯 달려야 제 니즈가 충족될 거라니까.그렇게 1층 꽃집에 잘난 제 얼굴 들이밀고 연기 학원에서 돌아왔음을 알리면 우리 오민주 여사께서는 막내아들 바로 내보내는 손짓.그리고 그 손짓에 화답하듯 당장이고 옆집으로 달려가 계단도 두 칸씩 훌쩍 건너뛰면 율혜가 짠하고 반겨줄 것이었다.“휘안이 도착… 뭐야? 아직도 있었어?”“휘안이다! 오늘도 성실하게 연기 학원에 다녀온 휘안이가 의젓하게도 제때 귀가했어. 모두들 휘안이를 향해 칭찬의 박수 파치파치~”듣기 좋은 칭찬의 박수 파치파치여도 어물쩍 넘어가는 질투란 쉽게 존재할 수 없는 법.휘안은 저에게 제일 큰 박수를 보내오는 주인공에게 다가가 축 늘어뜨린 입꼬리로서 한껏 쳐진 제 기분을 속삭였다.“응... 오늘도 해야 할 일 최선을 다하고 우리 율혜에게만 환영받고 싶었어. 근데 손님들이 이 시간까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네. 쟤들은 왜 이렇게 율혜 곁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내 생각에는 눈치가 너무 없는 거 같아.”“에구구, 슬라임 손님들이 다 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에서 벗어나 크게 속상하고 만 휘안이야. 하지만 이들에게는 사정이 있었다는 거야. 휘안아. 이들의 사정을 한 번 들어볼래?”“뭐, 딱히 내키지는 않지만 율혜가 말해주는 거라면 다르지. 비밀 이야기라면 듣고 싶어.”휘안이 항시 원하는 건 율혜의 옆자리.하지만 제 시야에 예상에도 없던 두 사람이 들어선 순간 저에게 집중되어야 할 율혜의 관심이 흩어질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을 안 거다.그러니 비밀 이야기를 무기로 저희 둘이서만 대화를 주고받을 거라 대대적인 선포를 다했지.“좋았어. 그렇다면 짧게 상황을 설명해볼게. 예린이는 슬라임을 받으러 왔고, 재이는 그런 예린이를 따라왔어. 그리고 이 둘은 곧 있으면 영화관에 갈
얼씨구, 감히 저보다 서열이 한참 높은 제 누나를 상대로 말 한 마디 안 지려 하다니.하지만 상대는 예민함으로 뭉친 고3이다.그러니 괜한 혼란을 야기하는 태도보다는 맞장구를 치는 각설이의 태도가 정답이겠지.허무맹랑한 반격이 아닌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덫을 놓는 작전으로다가 말이다.“하하~ 우리 휘안이가 누나 진가를 제대로 알아봐주네. 요즘 한참 감수성 폭발할 때지? 실기도 준비해야 하고. 수능도 준비해야 하고. 이맘때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때잖아.”공감으로 시작해서 공감으로 끝나는 대화 방식이란 다음 단계를 위한 떡밥 회수 장치.물론 제 근사한 덫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니 한 템포 더 미루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그래도 아예 못할 건 아니던데? 그냥 다 떠나서 나한테는 율혜가 있잖아. 날 지켜봐줘서 그런지 할만 해. 난 멋있어 보이고 싶으니까.”“어머, 얘가 또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드네. 안 되겠어. 너희 둘 다 입시만 끝나봐. 내가 하루 날 잡아서 풀코스로 잘만 놀아줄 테니까.”“진짜? 그럼 그날은 누나가 쏘는 걸로 알고 있을게. 엄마 아빠 카드 말고 누나 카드로만~”“에휴, 율혜 걔도 알아야 할 텐데... 휘안이 네가 율혜 이야기만 나왔다하면 두 눈에서부터 광이 막 도는 거 말이야. 율혜도 알기는 해?”아무렴 율혜의 이야기에 더욱 샐쭉이는 입매.결국 소안 스스로 한 템포 의도를 늦췄던 건 기약 없는 때까지 늦춘 거나 다름없게 되었다.아무래도 지금 하고 있는 대화의 방향성이란 율혜의 율혜에 의한 것들로만 가고 있다니까.“그거야 다 알고도 남지. 율혜는 나뿐만이 아니라 세상 온갖 것들 관찰하는 걸 좋아해. 그니까 내 표정 하나 맞추는 건 일도 아니야.”“그래. 그니까 전에 방 탈출 카페 갔을 때도 큰 활약을 펼쳤던 거지. 어쩜 그렇게 눈썰미가 좋아? 스태프들도 막 놀랐잖아. 한 시간도 안 채우고 탈출할 거라고는 예상 못했었다고.”“응. 평균 탈출 시간대보다 빨리 탈출해서 놀란 것도 맞지만 다른 의미로도 놀랐을 거야. 율혜가 워낙
“어… 그러게? 내 몸이 따뜻해서는... 아, 나 오랜만에 말문이 제대로 막혀버렸는데?”“괜찮아. 아주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잘 말하고 있어.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던 건 내 말에 감탄해서 그런 걸 거야. 리짱은 긴장한 휘안이를 이해할 수 있거든.”“우와~ 그걸 또 이해해? 우리 율혜, 말을 왜 이렇게 잘하지? 나 막 정신없이 말려드는데.”“이런, 이런. 오늘도 온전한 정신을 되찾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릴 모양이로군. 그렇다면 우선은 맛있는 밥부터 먹어볼까? 식사 시간에 집중하다 보면 그새 또 기력을 차리게 될 거야. 리짱은 그런 휘안이가 예상된다는 거거든.”평소 저 혼자였다면 별 거 아니라 지나쳤을 일들이 율혜의 시선에서는 별 게 다 된다.그 과정은 저로 하여금 사색을 가져다주고 또 다른 율혜의 모습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지루할 틈이란 단 한 개도 없게 만들어주지.물론 율혜가 아닌 다른 이들로서는 안 된다.제 아무리 가까운 이들이 저에게 늘어놓는 재미난 이야기라 할지라도 한 단계 앞서나가는 궁금증은 고사하고 수긍만 더하게 될 뿐이니까.“그럴게. 그니까 밥 다 먹었다고 바로 떠나면 안 되는 거야. 율혜, 나랑 오래오래 놀다 가.”“응. 밥 다 먹고, 보스몬도 잡고. 휘안이 영어 단어 받아쓰기도 봐주고, 학원 갈 준비를 다 마쳤을 때. 리짱은 그때부터야 떠날 수 있지.”“응~ 앞으로 최소 세 시간은 함께해야 해. 율혜 어머님께서 율혜랑 퇴근할 때가 당겨지는 건 예외라지만. 그거 아니고서야 못 벗어나.”몇 없는 제 관심의 축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어 생각지도 못한 틈으로 관심을 겹겹이 늘려주고 제 감정을 바로 헤집는 모든 근원.그건 딱 우리 율혜만이 가능한 일인지라 오늘도 웃음 끝이 잘만 헤퍼진 휘안이었다.***일 년 코스인 캐나다 어학연수를 다녀오고.귀국해서야 또 다시 정해진 시간표대로만 움직이는 그저 그런 대학생이 되어보고.막 학기야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등교할 예정이었으니 체력적으로 힘든 건 없었다.다만 문제라면
방학식에는 교복 차림의 증명사진을 찍기.큰 이벤트마냥 날을 정해둔 건 아니지만 오늘로서도 벌써 세 번째 촬영이 이뤄졌다.이건 작년 하복 차림의 휘안이.이건 작년 동복 차림의 휘안이.그리고 이건 올해 하복 차림의 휘안이.아무튼 이렇게 줄지어놓고 보니 리짱의 애정을 토대로 잘 성장 중인 하나뿐인 아기 토끼가 확실해보여.리짱만이 알아보는 성숙함이 보이니 말이야.“율혜야. 이제 곧 맛있는 밥이 나올 때라는데. 율혜한테 중요한 거 있으면 한쪽에 치워둘까?”“응. 물건 관리는 제때 해야 해. 리짱이 어떻게 모은 증명사진인데 말이야. 물론 증명사진 말고 스티커 사진도 소중하지만.”“헤헤. 나 그럼 음식 담을게. 오늘은 전부 다 우리 율혜가 좋아하는 음식들~ 휘안이가 우리 율혜를 위해 앞치마도 입고 요리했지요~”밥이 다 됐다는 휘안의 말에 테이블 위로 나열했던 증명사진이며 스티커 사진이며 각종 추억들을 다시금 지갑 속으로 모셔두는 율혜.이어서는 제 핸드폰으로 휘안의 뒷모습을 찰칵 하니 찍고는 식사할 준비도 바로 끝냈다.휘안이 준비한 오늘의 스페셜 식단이란 데미글라스 오므라이스에 양송이 스프.여담이지만 사진 스튜디오를 나서기 전, 휘안은 율혜가 보는 앞에서 도준에게도 점심을 같이 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물론 도준은 칼같이 거절하고 집으로 떠났지.그건 아무래도 정해진 퍼포먼스의 개념으로 휘안은 도준을 또 한 번 붙잡지 않고 율혜만을 제 공간으로 데려갔다니까.“띵동~ 오늘의 점심이 도착했습니다.”“우와~ 어제 점심으로는 무성의한 코다리 카레 튀김이 나왔는데 오늘은 완전 색달라. 어떻게 이런 회오리 모양도 잘해낸 거야?”하얀색 접시를 가득 채운 데미글라스 소스와 그 위 회오리 모양으로 장식된 샛노란 오믈렛.또 하나의 포인트로는 얇게 늘려진 생크림.아무래도 휘안은 율혜가 좋아할 만할 것들로 시선을 사로잡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니 말이다.“율혜가 좋아해줬으면 해서 바로 잘해냈지. 율혜, 먹다가 소스 모자라면 오카와리도 좋아.”“얏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