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대한민국이 사랑하는 톱스타 윤도운에게, 숨겨둔 딸을 들켰다. 5년 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를 하루아침에 버리고 사라진 박서연. 바닥 배우가 된 그녀는 이제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는 딸 유나를 키우며 살아간다. 그런데 복귀작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톱스타이자, 자신을 죽도록 증오하는 전남친 윤도운과 재회한다. 그리고 아이를 본 순간, 윤도운의 시선이 달라진다. “박서연, 저 아이… 누구 애야?” 친자검사 결과는 ‘친자 아님’. 하지만 누군가 결과를 바꿔치기했다. 5년 전 그녀가 그를 떠난 진짜 이유와, 톱스타 윤도운의 숨겨진 딸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터지는 순간, 두 사람의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ดูเพิ่มเติม“한 잔만 더 마셔요, 서연 씨.”
최태식이 밀어놓은 술잔은 서연의 눈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투명한 액체가 샹들리에 아래에서 잔잔히 흔들릴 때마다 속이 먼저 울렁거렸다. 이미 몇 잔을 비웠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고, 목구멍은 독한 술에 오래 긁힌 듯 따갑기만 했다.
“제가 술이 조금 약해서요.”
애써 웃으며 잔을 밀어냈지만 최태식은 손등으로 그것을 다시 그녀 앞으로 밀어놓았다.
“약하면 마시면서 늘리면 되지. 이번 역할 그렇게 하고 싶다면서?”
그 말에 서연은 대답 대신 손을 무릎 위로 가져갔다. 손가락을 세게 얽어 쥐자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그 정도의 통증이 있어야만 지금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잊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최태식의 웃음은 노골적이었다. 그가 무슨 뜻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했고, 왜 굳이 자신을 불러냈는지 모를 만큼 서연은 어리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웃으며 잔을 부딪쳤고, 누군가는 애써 다른 대화를 이어 갔다. 모두가 보고 있었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척했다. 이런 자리에서 누군가의 비참함보다 중요한 것은 분위기를 깨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서연은 천천히 술잔을 집어 들었다.
이 역할이 필요했다.
그 사실 하나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한때 박서연은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배역을 구하는 배우가 아니었다. 드라마 한 편이 끝나면 다음 작품 이야기가 들어왔고, 기자들은 그녀의 선택을 기사로 썼다.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고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조금씩 달라졌다.
먼저 연락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졌고, 주연 후보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다른 배우들의 이름 앞에 붙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에게 남는 선택지는 줄어들었으며, 이제는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는 것조차 다시 시작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대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오늘도 여기까지 왔다.
자존심보다 더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연회장 입구 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높아졌다.
“윤도운 왔대.”
누군가의 말이 귓가를 스치는 순간, 서연의 손에서 술잔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고개를 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몸은 이미 그쪽을 향하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검은 수트를 입은 채 익숙한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며 안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서연은 오히려 눈을 뗄 수 없었다.
윤도운.
여섯 해 만이었다.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렀을 뿐인데, 애써 접어 두었던 시간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한때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불렀던 이름이었다.
좋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전화를 걸었고, 힘든 날이면 그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당연히 윤도운이 그 안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떠난 뒤에도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떠난 사람만 남은 자리에서 몇 번이고 되돌아가게 된다는 걸, 서연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도운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서연의 숨이 멎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윤도운의 얼굴과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은 분명 같았다. 하지만 그 눈빛은 낯설었다. 한때 자신을 바라보며 웃던 사람의 흔적을 찾으려 해도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서연은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도와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마음이 눈빛에 스며들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여기서 나를 데려가 줘.
무슨 일이 있었든, 네가 나를 얼마나 미워하든.
단 한 번만 예전처럼 내 편이 되어 줘.
그러나 도운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그대로 사람들 사이를 지나 상석으로 향했다.
서연의 가슴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래.
자신은 그에게 아무것도 바라서는 안 됐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막상 그의 외면을 마주하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아팠다.
“마침 잘됐네.”
최태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 배우도 왔으니까 우리 좀 더 재밌게 놀아 볼까?”
그가 손짓하자 직원들이 술병을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서연의 앞에 술잔을 하나씩 늘어놓기 시작했다.
열 번째 잔까지 채워진 뒤에야 최태식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박서연, 너 이 역할 원하잖아.”
주변의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 쏠렸다.
“이거 다 마시면 역할 줄게.”
서연은 말없이 열 개의 잔을 바라봤다.
그것은 술이 아니라 선택처럼 보였다.
마시고 오늘의 모욕을 견디든지.
아니면 거절하고 다시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든지.
그녀는 천천히 윤도운을 바라봤다.
상석에 앉은 그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누군가가 그의 다음 작품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의 잔을 채워 주고 있었다. 그 화려한 풍경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남자와, 지금 열 잔의 술 앞에 앉아 있는 자신 사이에는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래도 서연은 기다렸다.
혹시라도 그가 말릴까 봐.
정말 어리석게도.
도운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잔을 들어 올렸다.
“우리 더 재밌게 해 보자고.”
서연의 얼굴에서 마지막 기대가 사라졌다.
그녀는 첫 번째 잔을 들었다.
술이 목을 타고 내려갈 때마다 속이 타들어 갔다. 두 번째 잔을 비웠을 때는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고, 다섯 번째 잔을 내려놓았을 무렵에는 누군가 대단하다며 손뼉을 쳤다.
그러나 서연은 아무도 보지 않았다.
그저 잔만 바라봤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술이 몸 안으로 쌓일수록 눈앞이 조금씩 흐려졌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여덟 번째 잔을 들었을 때, 윤도운이 자리에서 몸을 조금 움직였다.
서연의 손이 멈췄다.
“그만하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최태식이 웃으며 물었다.
“왜, 윤 배우?”
도운의 시선이 서연에게 머물렀다.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야지.”
서연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잔을 들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윤도운은 자신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어디까지 무너지는지 직접 보러 온 것뿐이었다.
아홉 번째 잔을 비운 뒤에는 제대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마지막 잔을 들자 손등으로 술이 흘러내렸다. 서연은 그것조차 닦지 않은 채 끝까지 잔을 비웠다.
빈 잔이 테이블에 닿는 순간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졌다.
서연은 그 소리를 뒤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에서 무언가가 거세게 올라왔다.
입을 틀어막고 연회장을 빠져나온 뒤 화장실 문을 닫자마자 세면대 앞으로 몸을 숙였다.
한참 동안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눈물이 흘렀다.
몸이 괴로워서인지, 아니면 조금 전 자신이 윤도운을 바라보며 도움을 기대했던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인지 알 수 없었다.
겨우 몸을 일으킨 서연이 물을 틀었다.
그러나 거울 속에 비친 다른 그림자를 발견하는 순간, 손끝이 그대로 멈췄다.
윤도운이 뒤에 서 있었다.
한참 동안 거울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 사이에서 먼저 시선을 거둔 것은 서연이었다. 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렸을 때도 도운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그 침묵이 오히려 연회장에서 들었던 어떤 모욕보다 견디기 어려웠다.
“왜 따라왔어?”
그는 대답 대신 문을 닫았다.
서연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지만 좁은 공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등을 벽으로 밀어 넣었다. 도운이 가까워질수록 예전에는 너무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의 존재가 이제는 숨이 막힐 만큼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 네 꼴 좀 봐.”
서연이 고개를 들었다.
“꼭 뼈다귀 하나 얻으려고 꼬리 치며 구걸하는 개 같네.”
말이 뺨을 때린 것처럼 아렸다.
서연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화를 내야 한다는 것도, 밀어내야 한다는 것도 알았지만 정작 그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가슴 한편에서 먼저 올라온 것은 분노가 아니라 오래된 서러움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해야 해?”
“내가 틀린 말 했어?”
“네가 뭘 안다고.”
그제야 겨우 입술을 열었지만 목소리는 생각만큼 단단하지 않았다.
도운은 그녀의 턱을 붙잡아 억지로 시선을 맞췄다.
“그래. 내가 모르는 게 많겠지.”
서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런데 하나는 알아.”
그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넌 원래 이런 애 아니었어.”
그 말에 서연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한때의 자신이라면 오늘 같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술잔을 엎어 버렸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웃으며 나왔을 것이고, 기회를 놓치는 것이 두려워 자신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살아가면서 원하지 않아도 달라졌다.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생기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생기면.
어떤 날은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무릎을 굽혀야 했다.
그런 사정을 도운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사람은 변해.”
“변했다고?”
“그래.”
도운의 입가에 잠깐 허탈한 기색이 스쳤다.
“아니. 넌 변한 게 아니라 망가졌어.”
그 말은 이상하게 깊숙이 파고들었다.
서연은 그를 밀어냈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도운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아 있던 기색이 사라졌다.
“우린 끝났잖아.”
“끝낸 건 너였지.”
그가 내뱉은 말에 서연은 그대로 굳었다.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 것도 너고.”
그녀는 아무것도 부정하지 못했다.
그날 자신이 어떻게 떠났는지.
그가 얼마나 많은 전화를 했는지.
그리고 그 전화들을 보면서도 끝내 받을 수 없었던 이유까지.
모든 것이 떠올랐다.
“미안했어.”
겨우 꺼낸 말이었다.
도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미안?”
그 한마디가 여섯 해 동안 쌓인 시간을 비웃는 것 같았다.
“그 말 하나 하려고 내가 여섯 년을 기다린 줄 알아?”
서연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더 물으면 결국 무너질 것 같았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왜 떠났는지.
그리고 지금 자신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단 하나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서연의 침묵은 도운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간 듯했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훑다가 손으로 내려갔다.
오른손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서연은 반사적으로 손을 감췄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도운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예전에 서연은 그에게 말했었다.
이 손가락만큼은 정말 결혼할 사람을 위해 남겨 두겠다고.
아무나 이 자리에 반지를 끼울 수는 없다고.
그때 도운은 웃으며 물었다.
그럼 내가 끼워 주면 되겠네?
그 기억을 떠올린 사람은 서연만이 아니었다.
도운의 시선이 반지 위에 오래 머물렀다.
“이거 누구 거야?”
“놔.”
서연이 손목을 빼려 했지만 도운은 놓지 않았다.
“누구 거냐고.”
“네가 알 필요 없어.”
그 말이 떨어진 뒤, 도운의 손끝이 굳었다.
서연은 그제야 그에게서 손목을 빼낼 수 있었다.
하지만 도망치듯 돌아설 수도 없었다.
도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지.
자신이 한때 결혼할 사람을 위해 남겨 두겠다고 했던 자리에 다른 남자가 반지를 끼워 주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을.
그 믿음이 그의 안에서 어떤 상처를 건드렸는지, 서연은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차라리 그가 화를 냈으면 했다.
소리를 지르고, 자신을 비난하고,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돌아서 버렸다면 조금은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윤도운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손가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여섯 해 동안 묻어 두었던 것이 그 눈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서연은 숨을 죽였다.
그가 입을 열기 전부터 이미 알았다.
자신이 끝까지 피해 왔던 질문이 결국 여기까지 따라왔다는 것을.
“너 결혼했어?”
차 문이 닫히자마자 서연은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촬영장이 점점 멀어졌다.조금 전까지 자신을 붙잡고 있던 윤도운의 손도.그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강혜원의 얼굴도.모두 뒤로 사라지고 있었지만, 손목에는 아직도 손가락이 조여 오던 감각이 남아 있었다.서연은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봤다.그러자 운전석 옆에 앉아 있던 조정우가 뒤를 돌아봤다.“아파?”“괜찮아.”“네가 괜찮다는 말 할 때마다 더 불안해지는 거 알아?”서연이 작게 웃었다.“그 정도로 호들갑 떨 일 아니야.”“얼굴이 저렇게 부었는데?”정우는 곧장 병원으로 가자고 말했다.서연은 싱싱이가 있는 곳으로 먼저 가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지만, 정우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결국 그녀는 그의 손에 이끌리듯 진료실로 들어갔다.의사가 약을 바르는 동안에도 서연은 연신 싱싱이 걱정만 했다.“이제 가도 되지?”“안 돼.”정우가 대답했다.“아직 붓기도 안 빠졌어.”“싱싱이가 기다려.”“그럼 같이 가.”서연은 그제야 그를 바라봤다.정우는 처음부터 다른 선택지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얼굴이었다.서연은 문득 웃음이 났다.“너 진짜 사람 피곤하게 한다.”“그래도 네가 나 없으면 더 피곤하게 살잖아.”그 말에 서연은 대답하지 못했다.싱싱이의 병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아이가 태어난 뒤였다.혼자 아이를 키우겠다고 버텼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냉정했다.병원 기록 하나.보호자 서명 하나.아이에게 필요한 서류 하나를 만들 때마다 자신에게는 없는 자리가 너무 선명하게 드러났다.그때 조정우가 말했다.‘내가 해 줄게.’서연은 웃으며 거절했다.‘뭘.’‘남편.’그 말에 그녀가 굳어 버리자 정우는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어차피 명의만 빌려주는 거야.’그때도 그는 웃고 있었다.하지만 서연은 알고 있었다.그 일이 단순히 이름 하나 빌려주는 것으로 끝날 수 없다는 걸.그래서 더 미안했다.그럼에도 결국 그의 도움을 받았다.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누가 내 와이프 괴롭혀?”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촬영장을 가르자, 강혜원이 들고 있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서연 역시 얼얼하게 부어오른 뺨을 감싼 채 고개를 들었다.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양옆으로 비켜섰다.그 사이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윤도운은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낯선 사람일 리 없었다.며칠 전 자신이 받아 본 조사 자료 속 사진.박서연의 곁에 서 있던 남자였다.아이가 가운데에 있었고, 세 사람이 마치 오래전부터 한 가족이었던 것처럼 웃고 있던 바로 그 사진 속 남자.도운의 시선이 천천히 서연에게 향했다.서연 역시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었다.“정우야?”남자의 표정이 굳었다.“이게 뭐야.”그는 서연의 뺨을 바라보다 그대로 그녀에게 다가갔다.“누가 이렇게 만들었어?”서연은 얼른 손을 내렸다.“아무것도 아니야.”“아무것도 아닌데 얼굴이 이 모양이야?”조정우가 손을 뻗으려 하자 서연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그러나 이미 그의 시선은 강혜원에게 향해 있었다.“저 사람이야?”혜원이 당황한 얼굴로 한 걸음 물러섰다.“뭐라고요?”“몇 번이나 때렸길래 사람 얼굴이 저렇게 부어.”주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감독은 물론이고 스태프들까지 누구 하나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조정우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촬영이랍시고 사람 하나 붙잡아 놓고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그 말에 감독이 황급히 나섰다.“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오해요?”정우는 짧게 웃었다.“그럼 설명해 보시죠.”그는 다시 서연의 얼굴을 바라봤다.“저렇게 될 때까지 누가 뭘 했는지.”감독의 입이 굳었다.그때 조정우가 무심한 듯 덧붙였다.“제가 이 작품에 투자하면.”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강혜원 씨는 여기서 빠지는 걸로 합시다.”혜원의 얼굴이 굳었다.“지금 저보고 나가라고 하시는 거예요?”“그렇게 들렸으면 맞겠네요.”“제가 뭘 잘못했는데요?”혜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촬영하다가 NG 좀 낸
“박서연.”윤도운은 통화를 끊기 직전 다시 이름을 불렀다.“그 여자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전부 알아봐.”상대가 잠시 말을 멈췄다.“어디까지요?”도운의 눈앞으로 조금 전 병실에서 마주했던 서연의 얼굴이 스쳤다.아이가 아프다는 말을 들은 순간 무너져 내리던 모습.자신을 향해 피가 필요 없다고 소리치던 모습.그리고 끝내, 당신 아이는 아니라며 단호하게 선을 긋던 얼굴까지.“전부.”그 말과 함께 통화가 끊겼다.그런데도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못했다.박서연이 다시 나타난 뒤부터 이상한 일뿐이었다.분명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아이를 두고 있었고, 그 아이는 자신과 같은 희귀 혈액형을 가지고 있었다.그 사실만으로 무언가를 단정할 수는 없었다.세상에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이 자신 하나뿐인 것도 아니었다.그러나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은 달랐다.도운은 두 눈을 감았다.자꾸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그 아이가 몇 살인지.박서연이 언제 아이를 낳았는지.그리고 그 시간들이 자신이 그녀에게 버림받은 뒤의 세월과 어떻게 겹치는지.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숨이 막혔다.“설마.”입 밖으로 나온 말은 곧 사라졌다.그는 곧바로 스스로를 비웃었다.박서연이 그런 사실을 숨긴 채 자신 앞에 나타났을 리 없었다.아니.그럴 리 없다는 생각보다,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더 무서웠다.서연은 싱싱이의 병실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문을 열면 아이가 보일 텐데, 이상하게도 손잡이를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아이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숨조차 쉬지 못했다.이제 겨우 위기를 넘겼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가슴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았다.서연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침대 위에는 싱싱이가 평소처럼 작은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서연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아이의 손을 감쌌다.따뜻했다.그것만으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엄마.”작은 목소리에 서연이 얼른 고개를 들었다.“안 잤어?”싱싱이는 힘없이 웃었다.
누구 하나 먼저 물러나지 못했다.서연의 손은 윤도운의 가슴께에 닿아 있었고, 도운의 팔은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양옆을 막고 있었다.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아이를 두고 상처가 되는 말만 골라 내뱉었다.그런데도 몸이 이렇게 가까워지자, 이상할 만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미움이 아니었다.서연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아래로 향했다.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똑똑.“도운 형.”문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굳었다.“안에 있어요?”서연이 화들짝 윤도운을 밀어냈다.도운 역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너무 늦었다.방금까지 서로의 숨이 섞일 만큼 가까웠던 감각이 몸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왜.”도운이 문 쪽을 향해 대답했다.“촬영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요. 다들 찾고 있어요.”“알았어.”매니저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서연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얼굴이 뜨거웠다.방금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깨닫자 더 견딜 수가 없었다.윤도운 역시 그녀의 시선을 알아챈 듯했다.서연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그의 입가에 비틀린 웃음이 스쳤다.“왜.”“뭐가요.”“뭘 그렇게 봐.”서연은 입술을 깨물었다.“안 봤어요.”“그래?”“착각하지 마요.”도운이 한 걸음 가까워졌다.서연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그러나 그의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방금 전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떠올랐다.오래전.아직 윤도운이 지금처럼 누구나 알아보는 배우가 아니었을 때였다.좁은 집에서 둘만 남아 서로를 바라보던 밤.서연은 그때도 지금처럼 그에게 화를 냈다.“맨날 나 놀리기만 하지?”도운은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누가 놀렸어.”“방금도.”“네가 먼저 봤잖아.”“뭘.”“뭘 보긴.”그가 장난스럽게 몸을 가까이하자 서연은 얼굴을 붉히며 그의 어깨를 밀었다.“윤도운.”“왜.”“그만해.”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결국 도운은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고, 서연은 그가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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