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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배시아
차가운 땅바닥에 쓰러질 거라는 차설아의 예상과 달리 순간 단단하고 늘씬한 팔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페퍼민트처럼 상쾌한 향기가 코끝에 닿자, 그녀는 한순간에 매료되었다.

“몸이 엄청 뜨겁네? 열이 나는 건가?”

성도윤은 품에 안긴 여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평소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하던 그의 얼굴에 걱정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말랐을 줄이야! 깃털처럼 가벼운 몸은 남자의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너랑 상관없어.”

차설아는 중심을 잡고 이를 꽉 악물더니 애써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자고로 이혼은 깔끔하게 해야 한다. 전 남편한테 미련 없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여줘야 후련하기 마련이니까.

따라서 그녀는 감성팔이라도 하는 것처럼 비실비실한 모습은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말은 세게 할 수 있어도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이미 기력을 다한 차설아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이내 성도윤은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병원까지 데려다줄게.”

“지금 뭐 하는 거야? 이거 놔!”

차설아는 아픈 것도 있지만 민망한 나머지 계속해서 몸부림쳤다.

“우린 이미 이혼했다고, 잊었어?”

“숙려기간 동안 넌 여전히 내 아내야.”

단호하고 강압적인 남자의 말투는 차설아에게 거절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떠날 것 같은 두 사람을 보자 임채원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건 결코 그녀가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곧이어 잽싸게 허리를 짚고 힘든 척 가냘픈 목소리로 외쳤다.

“도윤아, 잠깐만. 나 배가 슬슬 불러와서 걷기 불편하다고.”

“거기서 기다려. 진무열한테 픽업하러 오라고 할 테니까.”

말을 마친 성도윤은 품에 안긴 차설아를 내려다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

이에 차설아는 기가 막혔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임신한 애인 데리고 이혼을 강요할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자상한 척 챙겨주겠다는 건가?

이렇게 뻔뻔스러운 남자가 있을 줄이야! 관계는 끝냈어도 남 주기 아깝다는 뜻인가?

여우 같은 임채원과 정말 환상의 짝꿍이 따로 없었다.

결국 차설아도 이 연극에 가담하기로 했다.

차설아는 몸부림치는 대신 팔을 뻗어 성도윤의 목을 끌어안고 커다란 눈동자를 깜빡이며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럼 고마워, 우리 남편.”

성도윤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표정을 종잡을 수 없었다.

반면, 임채원의 얼굴은 화가 나서 붉으락푸르락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성도윤은 접수를 마치고 차설아를 데리고 피검사까지 했다.

검사 결과는 바로 나왔다.

“39.3도네요. 병균 감염을 시작으로 바이러스 감염까지 더해 조금만 늦게 오셨더라면 열이 나는 거로 그치지 않았을 거예요. 아마 지금쯤 황천길을 걷고 있겠죠.”

의사는 검사 결과를 훑어보면서 안경을 고쳐 쓰더니 성도윤을 빤히 쳐다보며 굳은 얼굴로 혼내기 시작했다.

“남편이라는 분이 대체 뭐 하는 겁니까? 아내 분이 열이 펄펄 나는데 옷을 이렇게 적게 입히고, 생각이 있는 거예요?”

성도윤이 해명하려는 순간 차설아가 잽싸게 끼어들어 불쌍한 척 말했다.

“선생님, 우리 남편한테 뭐라 하지 마세요. 비록 결혼해서 호의호식하기는커녕 맨날 천대받고 본인이 바람피우고 이혼까지 강요했지만, 절대로 우리 남편 탓은 안 해요. 왜냐하면 얼굴 하니만큼은 진짜 잘생겼잖아요. 이게 다 제가 원해서 한 결혼이에요.”

성도윤은 어리둥절했다.

이 여자가 지금 장난하나? 그동안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다른데?

의사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지 성도윤과 차설아를 번갈아 보면서 탄식을 금치 못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대체 머리에 뭐가 들어있단 말이지?

“링거 다 맞고 처방 약을 먹고 나면 괜찮을 겁니다.”

의사는 대충 설명하고는 얼른 자리를 떴다.

성도윤과 차설아만 남은 병실에 갑자기 미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비록 결혼한 지 4년이 되었지만, 같은 공간에서 단둘이 지낸 적은 거의 없었다.

성도윤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쩔러 넣고 차설아를 내려다보았다.

“더 해보시지?”

차설아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아니야.”

2절까지 했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울까 봐 겁이 났다.

“열이 이렇게 심한데 왜 다른 날로 미루자고 연락 안 했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잠자코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의 모습은 또다시 생존력이란 찾아볼 수 없는 강아지처럼 보여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팠다.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을 과연 막을 방법이 있을까? 이혼하기로 마음먹은 사람한테 날짜를 미루자고 해 봤자 무슨 소용이겠어?”

차설아는 고열 때문에 기운이 없었다. 성도윤의 다정함이 그리운 건 사실이지만 결코 원해서는 안 되었다.

“오늘 고마웠어. 이제 괜찮으니까 그만 가도 돼. 네 애인이 배가 부른 채 널 기다리고 있잖아.”

이 말을 듣자, 성도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알았어, 먼저 갈게.”

이때, 키가 크고 훤칠한 남자가 병실로 들어섰다.

“누님, 무슨 이혼을 하는데 병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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