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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대체 무슨 낯짝으로 이리 당당하단 말이지?

차설아는 모든 게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성도윤은 속세를 벗어난 선비처럼 남녀관계에 관심이 없고, 여자를 돌같이 볼 줄 알았는데 결국 소리소문없이 시한폭탄을 터뜨렸다.

애인을 집에 들이는 것도 모자라 아이까지 가지다니?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차설아는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슬픔마저 말끔히 사라졌다.

“그러니까 지금 불륜이란 말이지?”

성도윤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임채원은 눈물을 글썽이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차설아 씨, 이게 다 제 탓이에요. 화풀이하고 싶으면 저한테 해요!”

이 여자가 지금 뭐 하자는 거지? 피해자 코스프레를 제대로 보여주네?

“그래?”

차설아는 당장이라도 뺨을 때릴 기세로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임채원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깜짝 놀라 성도윤의 등 뒤로 쏙 숨었다.

“자기한테 화풀이하라더니 왜 숨는데?”

차설아는 그대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작작 좀 해, 난 나름 소양 있는 사람이라 내연녀와 개싸움 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둘이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데 방해하기는커녕 그 소원을 이뤄줘야 하지 않겠어?”

“뭐... 뭐라고?”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임채원은 어리둥절했다. 몰래 준비한 ‘감성팔이’ 작전도 무용지물이 된 듯싶었다.

보아하니 성도윤과 차설아가 아무런 감정이 없는 계약 부부에 불과하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았다.

아니면 내연녀를 마주친 상황에서 대체 어떤 와이프가 이처럼 무심하고 관대할 수 있겠는가?

이내 차설아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다만 불륜인 만큼 이혼 합의서에 적힌 재산분할에 관한 내용을 다시 협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임채원은 차설아가 재산을 언급하자 조급한 나머지 가식을 떨기는커녕 한층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도윤이가 당신한테 800억에 동탄구 아파트 펜트하우스까지 넘겨주지 않았어?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해줬다고 보는데? 게다가 그동안 도윤네 집에서 그쪽 집안 뒤처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다고! 사람이 너무 욕심을 부리면 못 써.”

차설아는 나쁜 짓은 자기가 다 저질러 놓고 인제 와서 피해자인 척 연기하는 여자 때문에 헛웃음이 터져 곧바로 되받아쳤다.

“하! 아직 와이프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내연녀 따위가 감히 안주인 노릇을 해? 왜? 내가 네 애인 돈이라도 빼앗아 갈까 봐 걱정이야? 대체 누가 욕심을 부리는 걸까?”

임채원은 마치 뺨을 얻어맞은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아니, 난 그런 뜻이 아니라...”

반면, 성도윤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차설아를 바라보는 호수처럼 깊은 눈망울은 무시무시한 압박감을 뿜어냈고, 이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속해.”

차설아는 성도윤의 매서운 눈빛을 마주 보며 요구사항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800억이든 아파트 펜트하우스든 원치 않으니까 성씨 집안 명의로 된 성운이라는 법률사무소를 나한테 양도해.”

“성운 법률사무소?”

성도윤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애써 기억을 더듬었다.

성씨 집안은 해안시 8대 명문가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얼마나 많은 산업을 소유하고 있는지 모른다. 고작 자그마한 법률사무소 따위는 당연히 안중에도 없었다.

다만 그는 이런 법률사무소가 있었던 거로 어렴풋이 기억했다. 이는 성씨 집안의 법적 분쟁을 처리하기 위해 설립한 사무소인데, 죽기 전까지 월급루팡 하려는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한 복지센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전혀 투자 가치가 없었다.

무려 800억이라는 현금을 쳐다보지도 않고 뜬금없이 돈도 안 되는 사무소를 달라고 하다니? 대체 무슨 꿍꿍이란 말이지?

성도윤은 저도 모르게 진지한 눈빛으로 차설아를 꼼꼼히 살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그녀는 어딘가 변한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사무소뿐이야. 이혼 합의서 내용을 수정하고 다시 찾아갈 테니까 사인해 줘. 시간도 늦었는데 오늘은 이만할까? 아, 그리고 네 애인이랑 얼른 득남하길 바랄게.”

턱을 치켜든 차설아의 얼굴은 마치 ‘대단한 사업’이라도 성사한 듯 희색이 만면했고, 쿨하다 못해 추울 지경이었다.

다만 아쉽게도 그녀의 도도한 이미지는 1초도 채 안 되어 와르르 무너졌다.

그녀는 머리가 어지럽고 무거운 탓에 뒤돌아서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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