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05화

Author: 꽃길
여자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더 예뻐지고 싶어 한다고들 하지 않던가.

나는 이제야 내가 진정우를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손을 씻고 나오자마자 진정우가 다가와 나를 부축하려 했다.

나는 괜히 강한 척하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괜찮아요. 저 이제 괜찮아요.”

그는 억지로 도와주려 하지 않고 내 뒤를 따라 식탁으로 걸어왔다.

테이블 위에는 아까 말했던 요리뿐만 아니라 깔끔한 반찬 두 가지와 과일샐러드까지 추가되어 있었다.

차려진 음식은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웠다.

“정우 씨, 동생은 정말 행복하겠어요.”

그가 이렇게 정성을 다해 요리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의 동생이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떠오르며, 갑자기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정우 씨, 고향은 어디예요? 동생은 어디서 살아요?”

그는 나를 흘깃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요? 내가 당신 동생한테 뭔가 해코지라도 할까 봐요?”

“평진이요. 청평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이에요.”

이번에는 의외로 상세히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한 척 말했다.

“저 이번에 대표님 덕분에 휴가받았어요. 수고했다며 그냥 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요.”

그는 여전히 담담했다.

역시 군인 출신이라 그런지 보통 사람들과는 감정 표현부터 다르게 느껴졌다.

대표님이 준 휴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신비로운 대표님이 떠올랐다.

“내가 뭘 잘했다고 대표님이 이렇게 잘해 주시는지 모르겠어요. 아직 눈에 띄는 성과도 없는데 말이에요.”

그러다 문득 대표님이 강유형의 회사 계약을 거절했던 일이 떠올랐다.

“사실 대표님 아니었으면 저 아마 강유형 회사랑 계약했을 거예요. 그 회사 괜찮았고 이익도 꽤 됐거든요. 그런데 대표님이 딱 잘라 거절하시더라고요.”

내 말을 듣던 진정우가 슬쩍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왜요?”

“글쎄요, 혹시 제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나는 장난스럽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206화

    그날 밤, 나는 집을 떠났다. 진정우의 집은 불이 꺼져 있었다. 아무래도 집에 없는 듯했다.강진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건 기차역 대기실에 앉아 있을 때였다.이번에는 비행기 대신 KTX를 선택했다.시간이 두 시간 더 걸리긴 했지만 나는 땅 위를 달리는 KTX가 하늘을 나는 비행기보다 더 안정감을 준다.“지원아, 차 고쳤어. 어디 있어? 내가 가져다줄게.”강진혁의 목소리는 늘 그랬듯 따뜻하고 차분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담담히 대답했다.“수리소에 놔두세요. 제가 직접 찾으러 갈게요.”잠시 침묵이 흘렀다. 강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수리소가 어디 있는지 알아?”“네. 항상 거기서 정비하잖아요.”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정비사가 그러는데 네 차에 누가 일부러 손을 댔다고 하더라.”그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사실, 내가 일부러 조작한 거였으니까.“정말요?” 나는 최대한 놀란 척 물었다.“지원아, 혹시 네 차를 다른 사람이 운전한 적 있어?”그의 질문은 순수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대답할 말을 고민했다. 그때 강진혁이 덧붙였다.“다행히 해를 끼치려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 다만 조금 번거롭게 하려던 것 같아. 차라리 집에서 멈춘 게 나았지, 밖에서 멈췄으면 더 골치 아팠을 거야.”그의 말에 나는 굳이 변명하지 않기로 했다.“알겠어요. 조심할게요.”잠깐의 침묵이 이어지더니, 강진혁이 다시 물었다.“지금 밖에 있어? 주변이 좀 시끄러운데.”“네.”나는 짧게 대답했다.그는 내 짧은 대답에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몸조심해.”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다.요즘 ‘불필요한 인간관계와 소셜 활동을 줄여라’는 영상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 의미를 이제야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사람들과의 관계는 때로는 부담스럽고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특히 걱정을 해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나는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207화

    이곳은 정말로 여행지나 휴양지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나는 주변 풍경에 취해 넋을 놓고 있다가,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언니, 누구 찾으세요?”돌아보니,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서 있었다. 짙은 흑발을 땋아 가슴 앞으로 늘어뜨린 그녀는 맑고 깨끗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혹시 성이 진 씨야?”나는 대뜸 그녀에게 물었다.그러자 소녀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네, 맞아요. 언니는... 우리 오빠를 찾으러 오신 건가요?”그 말을 듣고 그녀가 진정우의 여동생임을 확신했다.솔직히 진정우와 전혀 닮지 않았지만 둘 다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다.진정우는 강인하고 남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 소녀는 자연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청초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응, 나는 네 오빠의 친구야.”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그녀는 잠시 당황한 듯 보였지만 곧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저는 진소영이에요.”기쁜 듯하면서도 어색해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진소영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서둘러 내 손을 놓으며 집 안으로 안내했다.“오빠도 참, 아무 말도 안 하고... 제대로 정리도 못 했잖아요.”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네 오빠도 몰라. 나 몰래 온 거거든.”그녀는 깜짝 놀라더니 한참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이미 그녀의 집안을 유심히 둘러보고 있었다. 이곳은 볼수록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언니, 여기 앉으세요. 제가 꽃차 끓여드릴게요.”진소영은 밝은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하지만 괜히 부담을 줄까 봐 나는 사양했다.“괜찮아, 목마르지 않아.”하지만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더 곧 주전자와 말린 꽃잎을 들고나왔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웃었다.“네 오빠가 사준 거야?”“네. 오빠는 항상 저한테 최고의 것만 주려고 해요.”진소영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꽃차를 끓이며 그녀가 집안을 한번 둘러보더니 말했다.“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208화

    “언니, 우리 오빠를 사랑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우리 오빠를 받아줘서요!”진소영은 그렇게 말하며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차를 따라 내게 내밀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 순간, 내 눈가도 뜨거워지며 코끝이 찡했다.하지만 나는 웃으며 말했다.“어머, 네 말투가 꼭 너희 오빠가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사람처럼 들리네.”진소영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는 그녀가 건넨 차를 받아 한 모금 마셨다.입안 가득 퍼지는 맑고 청아한 꽃차 향이 정말 일품이었다. 이렇게 순수하고 깔끔한 맛은 처음이었다.역시 이슬 물로 끓인 차는 다르구나 싶었다. 정말 천상의 맛이었다.“언니, 우리 오빠는 저 때문에 여자 친구도 안 사귀었어요. 나중에 자기 부인이 날 싫어할까 봐, 날 귀찮아할까 봐요...”진소영은 말을 이어가다 멈췄다.그녀가 갑자기 말을 멈춘 이유를 나는 알 수 있었다.아마 오빠가 그녀의 병에 대해 내게 말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혹시 내가 그녀가 아픈 것을 알게 된다면 진정우를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듯했다.나는 담담하게 웃으며 한 모금 더 마신 후 말했다.“네가 몸이 아프다고 해서 내가 너희 오빠를 싫어할 것 같아? 내가 이렇게 예쁜 소녀를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한다면 내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겠니?”내 말에 진소영은 다시 환하게 웃으며 긴장을 풀었다.그러고는 다시 물었다.“오빠가 제 병에 대해 말했어요?”“그럼. 아니면 내가 이렇게 먼 길을 와서 널 보러 왔겠어? 네가 궁금해서 온 거야. 그리고...”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진소영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리고 뭐요?”나는 그녀가 오해할까 봐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널 데려가려고 했지. 하지만 이곳을 보니까 내가 널 데려갈 자격이 없는 것 같아.”솔직히 내가 그녀를 데려갈 곳은 이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아무리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해도 이런 자연 속에서의 자유로운 삶과는 다를 테니까.“언니가 절 데려가신다면 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209화

    “언니, 혹시 방법이 있어요?”진소영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방법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우조차 시도하지 않은 일을 내가 감히 나서서 할 수 있을까?성공하면 다행이겠지만 실패한다면?진정우가 평생 나를 용서하지 않는 건 차라리 괜찮다.하지만 그가 소영이을 잃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건 차마 견딜 수 없을 것이다.“언니도 방법이 없는 거죠?”내 침묵을 희망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진소영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그녀는 고개를 숙이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오빠도 시도하지 못했어요. 너무 위험하니까요. 어떤 의사가 감히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겠어요.”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곧 고개를 들고 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변화가 너무 빨라 보여도, 그건 단지 그녀가 나에게 자신의 우울함을 전하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괜찮아요, 언니. 지금도 저는 충분히 행복해요.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렇게 오래오래 살지도 모르죠.”그녀의 이런 말이 오히려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나는 이렇게 예쁘고 순수한 아이에게 희망을 잃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위로 삼아 말했다.“사실 내 친구 중에 의사가 있어.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이거든. 지금은 산부인과 의사지만 그녀에게는 유능한 의사 친구들이 많아. 심장 분야의 전문가도 있어.”“진짜요?”순간 진소영의 눈빛이 빛을 발했다.그 눈빛은 마치 새로운 희망의 불빛처럼 반짝였다.“그럼. 사실 이번에 온 것도 네 상태를 알아보고 싶어서야.”나는 그녀를 달래려고 한 것도 있지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것도 사실이다.물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하지만 진소영의 눈빛 속에서 느껴지는 간절함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그녀에게 단순히 살아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건강한 삶을 누리고 싶은 열망이 느껴졌다.지금 그녀가 지내고 있는 이곳은 누군가에겐 꿈같은 낙원일지 몰라도, 그녀는 분명 이곳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210화

    내 말을 들은 진소영은 얼굴이 새하얘지며 고개를 급히 저었다. 내 손을 꼭 잡은 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언니, 그런 오해 하면 안 돼요! 그 사진 속 사람... 그런 거 아니에요. 우리 오빠는 다른 여자를 좋아한 적이 없어요. 언니가 첫 번째예요.”그녀가 겁에 질려 손까지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니 더는 놀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영이는 심장이 약했다. 작은 충격도 조심해야 했다.나는 그녀를 안심시키려 코끝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왜 그렇게 긴장해? 나 다 알아. 네 오빠가 여자 친구 사귄 적 없다고 했어.”진소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덧붙였다.“그리고 다른 여자아이를 좋아한 적도 없어요.”그 말을 듣자 웃음이 나왔다. 이 아이는 정말 순수했다. 마치 세상에 조금도 물들지 않은 채 자신만의 깨끗한 세계에 사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만큼 마음 한구석에서는 걱정도 들었다.이런 순수한 아이가 언젠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녀만큼 순수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만약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는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나는 그런 걱정을 떨쳐내며 부드럽게 말했다.“알겠어. 네 오빠 정말 순수하다는 거 알아. 내가 잘 지켜줄게.”그러자 진소영은 다시 웃었다.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벽에 걸린 사진들을 살폈다. 겉으로는 신경 쓰지 않는 척했지만 여전히 진정우가 소녀를 업고 있는 사진이 마음에 걸렸다.그 소녀는 분명 진소영이 아니었다. 만약 소영이었다면 그녀가 그렇게 긴장하며 해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그렇다면 사진 속 소녀는 누구일까?이웃집 아이? 아니면 친척? 지금쯤은 다 자랐겠지. 혹시 드라마처럼 갑자기 나타나 “정우 오빠!”라며 찾아오는 건 아닐까?생각이 지나치게 앞서가고 있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피식 웃었다. 이렇게까지 상상하다니, 나도 참 한가하다 싶었다.다시 진정우네 가족사진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번에는 그의 아버지 얼굴에 시선이 멈췄다. 묘하게 익숙했고 마치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얼굴 같았다.“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211화

    진소영은 단순한 동생이 아니었다. 진정우가 마치 딸처럼 키운 존재였다.그런 애틋한 마음이 있었기에, 강철 같은 그도 이렇게 조심스럽고 신중한 사람이 되었겠지.소영이는 진정우와의 추억을 하나둘 들려주었다.이 작은 집은 진정우가 직접 벽돌 하나하나 쌓아 올려 지은 곳이라고 했다.집에 있을 때는 물고기를 잡아 구워주곤 했고 그의 요리는 모두 소영이를 위해 연습한 결과라고 했다.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진정우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책임감과 외로움 속에서 그의 특별함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마음이 아려왔다.소영이는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그 평온한 얼굴을 바라보며 문득 진정우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앞으로는 내가 당신을 더 아껴줄게. 혼자 감당하지 않게."하지만 그 충동은 잠깐 스쳤을 뿐,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그런 말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거니까.하지만 대신 안리영에게 전화를 걸었다.“너 어디야?”피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상태가 좋지 않은 듯했다.“너 왜 이래? 수술 끝난 거야? 피곤해 보여.”“아니, 아파서 그래.”그 말에 순간 놀랐다. 안리영이 아프다는 말은 좀처럼 듣기 힘들었으니까.“무슨 일이야? 약은 먹었어?”“응. 별일 아니야. 과로 때문이야.”안리영는 담담하게 대답했다.“근데 너 어디야? 무슨 일 생겨서 도망친 거 아니지?”그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아니, 넌 그런 사람 아니지.” 그녀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사실 부탁 하나 하려고.”나는 진소영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런데 그녀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왜? 네 쪽에 아는 사람 없어?”잠시 정적이 흐른 후에 안리영이 입을 열었다.“...있어. 네 말로 보면 가능할 것 같긴 해.”“정말? 고마워.”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묘한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채 나는 고마움을 전했다.하지만 그녀는 곧 뜻밖의 말을 꺼냈다.“근데 그 사람한테 연락하기 싫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212화

    진소영은 내가 떠나는 게 아쉬운 듯, 어떻게든 붙잡고 싶어 했다. 그녀의 세상은 너무나도 외로웠으니까.나는 단 이틀의 휴가만 받았지만 그녀와 더 시간을 보내기 위해 허진호에게 연락해 이틀을 더 연장했다. 하지만 결국 떠나야 할 시간은 찾아왔다.소영이는 내가 떠나는 길에 마시라고 작은 병에 담은 이슬 꽃차를 건넸다.“언니, 이거 꼭 가져가세요.”게다가 꽃가루와 꽃잎으로 만든 음식을 정성껏 포장해 주며 마치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주려는 것 같았다.그녀의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워 가슴 한편이 저렸다.“언니, 나중에 꼭 다시 와주세요.”소영이는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말했다.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는 것이 분명했다.나 역시 코끝이 찡해져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웠다.“응, 꼭 올게.”나는 짧게 대답하며 마음을 다잡았다.이별은 늘 아픈 법이다.나는 소영이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내 친구가 좋은 의사를 알아봐 주고 있어. 연락되면 네 오빠랑 같이 데리러 올게.”“정말요? 기다릴게요.”그녀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갈 때는 기차를 탔지만 돌아올 때는 비행기를 선택했다. 피곤했던 나는 비행기에서 깊이 잠들었다. 안리영에게 연락하니 공항에 도착하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꿈속에서는 며칠 동안 소영이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함께 꽃을 다듬고 강물에서 빨래하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던 순간들. 그 따뜻한 기억들이 나를 가득 채웠다.착륙 후 곧장 택시를 타고 수리센터로 향했다.가는 길에 휴대폰이 울려서 봤더니 발신인은 강유형이었다.그가 조나연과의 관계를 공개한 후 나를 거의 찾지 않았기에 이번 전화는 의외였다.“지원아, 우리 아버지가 정말 하룻밤 만에 머리가 하얗게 셌다는 게 사실이야?”그 말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며칠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기가 막혔고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조차 어이가 없었다.“직접 가서 보면 되잖아.”나는 냉정하게 말했다.내가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213화

    나는 강유형이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이어서 말했다.“우리 부모님은 지금 도저히 조나연을 받아들일 수 없어. 특히 엄마가 더 심하셔. 그래서 네가 엄마한테 좀 나연이 좋게 말해 줄 수 없을까?”나는 정말 기가 막혔다.나에게 조나연을 위해 좋은 말을 해 달라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아니면 나를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는 걸까?“강 대표님, 만약 저한테 그 부탁을 하실 거라면 미리 말씀드리지만 기대하지 마세요.”나는 굳이 착한 척할 필요가 없었다.“지원아...”“강유형! 내가 천사도 아니고 나랑 조나연은 아무 상관도 없는데 내가 왜 좋은 말을 해줘야 해?”나는 단호하게 되물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너 혹시... 질투하는 거야?”“질투?”나는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아, 날 질투심 많은 사람으로 몰아가고 싶었던 거야? 그렇다면 실망할 텐데. 나 질투 안 해.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네 본모습을 빨리 알게 됐으니까.”그는 한숨을 쉬었다.“지원아, 그냥 겉보기에 그럴 뿐이야. 내가 빚진 게 있어서 그래. 사실 우리 사이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나는 그의 말을 듣기도 싫어 차갑게 끊어버렸다.“그건 네 일이야. 나랑은 아무 상관 없잖아.”“하지만 너 말고는 내가 얘기할 사람이 없어.”그의 목소리는 낮고 답답해 보였다. 평소 당당하던 그에게서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그러나 이제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성인이었고 각자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미안하지만 난 바빠.”나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수리점에 도착해 차를 찾은 뒤, 나는 바로 안리영을 만나러 갔다.이 며칠 동안 진정우는 연락이 없었다. 아마 내가 진소영과 함께 있다는 걸 알고 배려한 듯했다.이소희는 며칠 전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조명 조정 작업이 거의 끝났고 진정우는 밤을 새워 조명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했다.전에 여유를 부리

Latest chapter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8화

    조시언은 아예 강진혁과 정면으로 맞붙을 작정으로 보였다.강진혁은 괜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지만 이 일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면 그도 마냥 가만있을 수 없었다.하지만 조시언이 강진혁의 영역에서 이토록 기세등등한 걸 보면 분명 무언가 대비책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조시언이 귀국한 지는 겨우 몇 달 남짓한데 어떤 수를 숨기고 있는지, 무슨 힘이 있는지 궁금했다.잠시 혼란스러웠다. 강진혁은 조시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언제나 조용하고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고 귀국한 후에도 특별히 어울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강진혁은 그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다.그런데 그가 이렇게 자기 발목을 잡는 존재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강진혁이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세상 별의별 인간들을 다 상대해 봤고 그런 그에게 이름도 낯선 조시언 따위는 아무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여겼다.파도를 일으키기는커녕 물결 하나 일렁이기도 어려운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그는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조시언 씨께서 이렇게까지 예의를 갖추시겠다고 하시니 그럼 이 자리에서 내일 장례식까지 천천히 기다리시죠.”말을 마친 그는 손을 살짝 내저었다.그 즉시 출입구 쪽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고는 조시언 쪽 사람들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나도 갑작스럽게 누군가에게 끌려 나와 강유형의 뒤에 숨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자기 자신조차 지키기 어려운 처지였다.나는 그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 키 차이가 이렇게나 많이 났다는 것을 말이다. 널찍한 등 너머의 세상을 볼 수조차 없을 만큼 듬직했다.생각해 보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는 늘 이정도 키 차이를 유지했었던 것 같다. 그는 늘 이렇게 내 위를 지키고 있었다.학창 시절에 나는 어떤 불량 학생의 고백을 거절해 골목길에서 애들한테 둘러싸여 봉변을 당할 뻔했을 때가 있었다. 그때도 강유형이 나타나 나를 자기 뒤로 끌어당기더니 그대로 녀석들과 맞붙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7화

    “안리영 씨가 괜히 남의 일에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생기진 않았을 겁니다. 조시언 씨가 직접 오셨으니 이제 그쪽 사람 데리고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강진혁의 말투엔 조시언이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기를 바라는 속내가 담겨 있었다.조시언의 맑고 단정한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강 대표님은 우리 조씨 가문을 우습게 보시는 모양이네요. 사람을 붙잡았다 풀었다, 본인 마음대로 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강진혁도 알고 있었다. 조시언이 이곳에 온 이유가 안리영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서로 적당히 선을 넘지 않으며 겉치레투성이인 말만 주고받는 것도 결국엔 정면충돌을 피하려는 계산에서였다.하지만 지금 보니 조시언은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리고 지금 강진혁의 입지는 예전만 못했다. 용준호와의 협력도 끊겼고 강유형과도 더 이상 같은 편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혼자 싸우는 상황이었다.그러니 적이 하나라도 줄면 그만큼 신경 쓸 일도 줄어들 터였다.“그럼 원하는 게 뭡니까? 내가 사과라도 하길 바라는 겁니까?”강진혁은 한발 물러서며 말했다.그러자 조시언은 고개를 돌려 안리영을 바라보며 대답했다.“그건 저한테 물을 일이 아니죠. 얘한테 물어보셔야죠.”강진혁의 턱 근육이 일렁였다. 명백히 기분이 상한 눈치였다. 강진혁더러 안리영에게 사과하라고 한 건 사과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의 자존심을 짓밟으려는 의도였다.그는 남에게 무시당하는 걸 가장 싫어했다. 그런데 지금 조시언이 이런 식으로 나오니 오랫동안 눌러왔던 분노가 마침내 터지려 하고 있었다.“보아하니, 조시언 씨가 원하는 건 사과가 아니라 우리 강씨 가문의 일에 끼어들려는 거군요?”강진혁은 노골적으로 말을 꺼냈다.조시언은 태연하게 말했다.“그럴 생각은 없습니다.”“없으면 그만 가시죠.”강진혁은 대놓고 내쫓는 듯한 말을 뱉었다.조시언은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곤 안리영을 바라보았다.“리영아, 가자.”하지만 안리영은 곁에 있는 친구를 두고 떠날 사람이 아니었다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6화

    나는 소화기를 들어 올리는 그 순간부터 그와 함께 끝장을 볼 각오를 했다.강진혁은 이미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는 마치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언제든지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함께 파멸로 끌고 갈 수 있는 위험한 존재였다.“지원아.”강유형이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무모하게 나서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그가 두려워한 건 내가 강진혁을 해칠까 봐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다칠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하지만 내 위협은 강진혁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는 우리를 깔보듯 훑어보며 한심한 벌레라도 보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그럴 만도 했다. 강유형은 그에게 당해 지금 몸조차 가누지 못했고 가사도우미는 나이가 지긋했다. 게다가 나는 임신 중인 몸이었다. 그러니 그는 무서울 게 없었다.“윤지원, 사람은 눈치를 살필 줄 알아야 해. 지금 상황을 봐, 내 편에 서는 것만이 네가 살 길이야. 너도 네 아이가 엄마, 아빠 없이 살아가길 바라진 않을 거 아니야. 태어나기도 전에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사라지길 원하니?”“진정우가 준 물건만 내놓으면 너희 세 식구를 무사히 지켜줄게. 게다가 부귀영화까지 누릴 수 있게 해주지. 그때 가서 계속 여기에서 살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든 마음대로 해도 좋아.”이런 상황에도 그는 여전히 나를 유혹하려 들었다.“강진혁, 그렇게는 안 돼. 그런 식으로 살다간 나중에 내 아이 앞에서 고개도 들 수 없을 거야. 만약 아이가 자라서 자신의 행복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더러운 거래로 이루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나를 원망하게 될 거야.”그 말을 내뱉는 순간 아랫배가 꿈틀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고작 한 달을 채운 아기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생각해 보면 이 아이의 존재는 하늘이 준 뜻밖의 선물이었다. 진정우가 배성재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왔던 그날,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생겨난 기적이었다.강진혁은 코웃음을 쳤다.“그래? 그렇다면 더 할 말은 없군.”그 말과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5화

    이 차는 강씨 가문의 아름다웠던 기억인 동시에 강진혁이 부모님과 강유형을 원망하기 시작한 사건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강유형을 이곳에 가둬뒀을 거라 확신했다.나는 곧장 그 차를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차 문 가장자리의 먼지가 문질러져 벗겨진 흔적이 보였다.내 예상이 적중했다.“강유형.”나는 그를 부르며 차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다.하지만 문은 잠겨 있었고 당연히 열리지 않았다.나는 손으로 유리 위의 먼지를 닦아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손발이 묶인 채 뒷좌석에 누워 있는 강유형이 보였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강유형, 강유형...” 나는 다급히 그를 불렀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기절한 듯했다.어떻게 강유형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강진혁은 정말 사람이기를 포기한 셈으로 보였다.이제 와서 열쇠를 찾으러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구석에 놓인 소화기를 발견했다. 곧장 달려가 그것을 들고 차 유리에 힘껏 내리쳤다.차 유리의 강도를 너무 얕본 탓일까, 두 번을 내리쳤는데도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있는 힘껏 내리칠 수도 없었다. 내 뱃속의 아기는 작은 충격에도 버티기 힘들 테니 말이다.“지원 씨.”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리자 집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제가 할게요.”그녀는 내 손에서 소화기를 받아 들고 전보다 더 힘차게 차 유리를 내리쳤다. 두어 번의 충격 끝에 유리는 방사형으로 금이 가게 되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내리쳐 마침내 유리에 구멍을 냈다. 그녀는 손을 넣어 안쪽의 잠금장치를 열었다.“강유형, 정신 차려, 정신 좀 차려봐.”나는 그의 어깨를 붙들고 흔들었다. 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지원아...”나와 가사도우미는 그를 부축해 앉혔고 손발에 묶인 끈을 풀어 주었다. 정신을 되찾은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형이 한 짓이야.”“아마 삼촌 장례식을 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4화

    강유형이 여태껏 안 보이던 이유가 드디어 밝혀졌다. 강진혁이 그를 가둬둔 것이다.안리영의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는 정말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까지 수작을 부렸다.용준호는 이미 처리됐고 강유형마저 가둬두었으니 이제 남은 건 강진혁, 그 혼자뿐이었다. 모든 결정권이 그의 손에 넘어갔다.사람들은 말한다. 사내는 독해야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말이다. 언제나 점잖고 다정하기만 했던 그가 지금은 혈육도 모르는 체하는 악마가 되어 있었다.“지원아, 그이를 구할 사람, 너밖에 없어...”김희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더욱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내게 몰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자신도 강진혁한테 잡혀 갇힐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눈을 감고 못 본 척해야만 했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내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자식에게 두려움을 느껴서라기보다는 그녀에게 아직 다하지 못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강두식은 그녀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고 가장 의지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남자가 먼저 떠났으니 그녀에게 삶은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그저 가장 사랑했던 이의 곁을 지키고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고 싶을 뿐이었다.나는 그녀를 달래고는 조용히 안리영 곁으로 다가가 속삭였다.“내가 강진혁을 붙잡고 있을게. 넌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강유형을 구해.”안리영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내가?”지금껏 메스만 들어본 그녀였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이곳엔 우리 둘뿐이었고 그녀 외엔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없었다.망설임도 잠시 안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김희연은 몸을 휘청이더니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은 척했다.강진혁은 얼른 그녀를 안아 침실로 옮겼고 안리영은 의사라는 이유로 당연히 함께 불려 들어갔다.나와 안리영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역할을 바꿨다. 그녀가 강진혁을 붙잡아두는 사이, 나는 강유형을 구하러 나섰다.“혈압이 너무 높아요. 혹시 혈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3화

    “의료사고는 병원이나 의사의 책임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고 도 선생님도 복직하셨어. 다만...”안리영은 말을 잠시 멈췄다.“다른 병원으로 전근 가셨어.”며칠 동안 병원에 머물면서 그녀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이번 사고 때문에 전근 가신 거야?”“응. 조사 결과 산모의 죽음은 도 선생님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혀졌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냥 그녀 손에 죽었다는 사실만 보고 이 모든 게 그녀의 책임이라고 여기는 거지.”안리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씁쓸히 말했다.“사람들의 입이 제일 무서워. 가볍게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다들 몰라.”그 말의 뜻은 도 선생님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기도 했다. 그녀도 지난 세월 동안 유가족들에게 오해받고 괴로워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우리 리영이, 마음고생 많았겠네.”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맞는 말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가장 고달프다고 느끼지만 정작 우리가 겪는 고통은 이 세상 온갖 아픔 중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출관하는 날, 하늘에선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하늘조차 이 아픔을 가엾게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나는 안리영과 함께 강씨 가문에 도착했다. 저 멀리 길 양쪽으로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강두식은 평생을 업계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를 애도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강씨댁 대문 앞엔 흰 보가 드리워져 있었고 양옆에는 추모의 글귀가 붙어 있었다. 문 앞에 서기만 해도 가슴 속으로 서늘한 기운이 파고들었다.“조금 있다가 아주머니 뵙게 될 텐데 감정 조절 잘 해야 해. 흥분하면 안 돼.”안리영이 걱정된다는 듯이 당부했다.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조절되는 거라면 이 세상엔 그렇게 많은 희로애락도 없었을 것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2화

    강유형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온몸에 힘이 빠진 듯했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입술을 살짝 떨며 말을 꺼냈다.“엄마가 그러는데, 아빠가... 돌아가셨대.”강진혁은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는지 별다른 반응도, 놀라움도 없었다.둘은 말없이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강진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가자.”그때 마침 강유형이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잠결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나는 어지럽고 복잡한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헤매고 있었다.그 전화는 마치 구명줄처럼 나를 그 혼란스러운 꿈에서 깨어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꿈에서 너무 많은 힘을 빼버려서 그런지 목소리가 흐물거렸다.“여보세요...”“지원아.”강유형은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고 그 뒤로 말이 없었다.“무슨 일이야?”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흐물거리며 물었다.“아빠... 오늘 가셨대.”강유형의 목소리는 깊고도 낮았다. 하지만 내게는 그 소리가 너무 크고 너무 선명하게 들렸다.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시간조차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강두식은 내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원망했었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그는 나를 친딸처럼 아껴주었고 그로 인해 나는 더 이상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되었다.그 애매한 감정은 늘 내 마음을 갉아먹었다. 그래서 김희연이 나더러 집에 한번 들르라고 부탁했을 때, 그러겠다고 했지만 결국엔 가지 못했다.이제 강두식은 세상을 떠났다. 더는 그를 볼 수도, 마주할 수도 없게 되었다.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그 틈 사이로 강유형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이제 난 아버지가 없어.”이런 영원한 상실이라는 감정은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나는 안다. 우리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때의 나는 너무나도 어렸지만 그날 느낀 망연자실한 공포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깊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1화

    김희연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이내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래... 약속한 거야...”나는 인터넷에서 용준호가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진과 영상도 함께 올라왔고 댓글에는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줄을 지었다. 조직 연루설도 떠돌고 있었다.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강유형이 사람을 시켜 한 짓이었다.나만 아는 것도 아니었다.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강진혁은 그 일로 그를 찾아왔다.“네가 용준호를 건드렸지? 살 만큼 살았다는 거야? 죽고 싶은 거냐고.”그는 날 선 질책을 던졌다.“그런가 봐. 불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니 말이야.”강유형은 비웃는 듯한 말투로 빈정거렸다.강진혁은 그 말속의 숨은 뜻을 알아챈 듯했다. 하지만 따로 더 설명하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은신처 마련해줄게. 용진표가 널 가만두지 않을 게 분명해.”“오라고 해.”강유형은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였다.“허.”강진혁은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넌 아직도 우리 아버지가 예전 그 모습인 줄 아는 거야? 지금 어떤 상황인지 너도 잘 알잖아. 용진표는 더 이상 우리 아버지를 봐주지 않을 거라고.”강유형은 소파에 늘어져 앉아 다리를 탁자 위에 올렸다. 두 다리를 교차한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셔츠 단추도 몇 개 풀어진 상태였다. 그야말로 태평한 모습이었다.“내가 언제 아버지 힘을 빌린 적이 있었나?”그는 입술을 살짝 내밀며 말했다.“형, 형은 늘 부모님이 나를 더 사랑하고 유산도 나한테 물려준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형이 모르는 게 있어. 내가 넘겨받은 건 용씨 가문에 다 털리고 껍데기만 남은 KS 그룹이었어. 내가 하나하나 다시 살을 붙이고 키워서 지금처럼 만들어낸 거야. 결국엔 용씨 가문을 내 발밑에서 기어다니게 만들었지.”강진혁의 길고 가는 눈이 안경 너머로 조소를 띠며 번뜩였다.“지금 그 말은 모든 걸 네 실력으로 해냈다고 자랑하는 거야? 부모님이 KS를 너한테 물려준 게 네가 나보다 더 유능해서라고 주장하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0화

    “아무 일도 아니야”안리영은 휴대폰을 끄며 말했다.저 말의 뜻은 대개 무슨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기에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아마 구안석과 관련된 일일 것이다.연이 끊겼어도 실처럼 미련이 남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나도 강유형과 헤어진 지 꽤 되었고 이미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와 완전히 끝맺지 못한 채 이리저리 얽히고 있었다.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 외의 다른 끈들이 남아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임신한 사실을 김희연이 알게 되었고 그녀는 보양식을 한가득 들고 나를 찾아왔다.“참 잘됐다. 지원이도 이제 엄마가 되는구나.”“지원아, 병원은 아무래도 환경이 좋지 않고 먹는 것도 부실하잖니. 집으로 돌아가렴. 아줌마가 돌봐줄게.”...그녀의 얼굴은 기쁨과 감격으로 흘러넘쳤다. 내 아이가 강씨 가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난 더 이상 그녀의 며느리가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가 키운 딸이나 마찬가지인 것에서 비롯된 기쁨이었다.비록 우리 부모님의 죽음에 강씨 가문의 책임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강씨 가문에서 보낸 10년 동안 나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해 준 것만은 진심이었다. 그게 죄책감에서 비롯된 감정일지라도 나는 그 사랑을 절실히 느꼈고 실감하며 받아들였다.“아줌마, 삼촌도 돌보셔야 하잖아요. 저까지 돌보시면 너무 힘드실 거예요. 그리고 아무래도 병원에 있는 게 더 안전할 거예요. 무슨 일이 생기면 의사 선생님이 바로 달려올 수 있으니까요.”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원한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두 아들과 나 사이의 미묘한 관계 때문이었다.강유형은 나를 향한 마음을 다 떨쳐내지 못했고 강진혁은 나를 노리는 듯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다시 저 곳으로 들어간다는 건 그야말로 스스로 불길에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게다가 어떤 일들은 내려놓았다 해도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르면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