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괜찮아.”김준휘는 바로 그녀를 거절했다.“그 전에 내가 그 사람을 크게 한번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이번 일은 그가 은혜를 갚는 것뿐이야. 그래서 감사해할 것도 없고 밥 사줄 필요도 없어. 신경 쓰지 않아도 돼.”그 말을 들은 양희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오빠가 그렇게 말하니 알겠어요.”김준휘는 남도훈과 역시 별 다를 바가 없었다.그녀가 당장 그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았던 건 그의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은 것 외에 김준휘가 아직 쓸만한 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섣불리 그와 말다툼하는 건 명백한 선택이 아니었다.“참. 희지야. 남도훈이 계속 널 만나자고 해.”김준휘는 사람 마음을 잘 다스리는 놈이었다. 그는 남도훈의 일로 그녀 앞에서 공을 세우려 했다.“내 생각에는 그런 쓰레기 같은 놈과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봐. 하지만 이 새끼가 포기를 몰라. 말로는 4년 전의 일이 너와 관련이 있다고 하며 네 꼬투리를 잡고 있어. 만약 네가 만나주지 않는다면 그는 네 집안에 불리한 일을 폭로한다고 했어.”그 말을 들은 양희지는 놀랐다.“무슨 꼬투리요?”김준휘는 입꼬리를 실룩이며 말했다.“그건 나도 잘 모르겠고 너 혼자에게만 얘기하겠다고 했어. 뭔가 수상해. 내 생각엔 이놈이 일부러 너에게 겁을 주는 것 같아. 네가 만나주지 않는다 해도 그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김준휘가 홀가분한 모습을 보일수록 양희지의 마음은 더 불안했다.“무슨 수작을 부릴지 한번 만나봐요.”양희지가 이렇게 말하자 김준휘는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준비할게.”“네! 부탁드릴게요. 오빠.”양희지의 말투는 많이 정중해졌고 조금 전의 불쾌함도 잊은 것 같았다....블루오션 바.“대표님, 우리 이따가 한 잔 더 해요.”하지연은 술에 취한 듯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술잔을 들고 공혜리를 찾아왔다.공혜리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큰 눈망울이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녀는 혀를 꼬며 말했다.“대표님은 무
염무현은 그녀들을 보고 쓴웃음만 지었다.그는 심지어 그녀들이 순식간에 술이 깰 수 있도록 은침을 놓아주고 싶었다.하지만 그렇게 되면 술을 마시고 휴식을 취하는 목적이 사라지게 될 것이니 그는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그냥 내버려두자.’다들 평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모처럼 나와서 모여서 술을 마시니 즐거운 느낌이 가장 중요했다.어찌 됐든 염무현이라는 신의가 있으니 아무리 많이 마셔도 그녀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술을 많이 마신 후에 속이 쓰리거나 토하지 않을지는 그가 걱정할 바가 아니었다.시간은 어느덧 흘러 새벽이 되었고 동료들은 하나둘씩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김범식은 특별히 사람들을 시켜 그들을 집으로 데려다주게 했다.공혜리는 자신이 대표이기에 끝까지 버텨야 한다고 주장했고 두 자매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대신 술도 많이 마셨다. 결국에는 세 사람 모두 취해 쓰러졌다.그러자 염무현은 김범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차 좀 준비해 주세요. 큰 아가씨를 집까지 데려다줘야 할 거 같아요.”“알았어요. 이 두 분은요?”김범식이 술에 취한 우예원과 하지연을 가리키며 물었다.그러자 염무현이 말했다.“우예원은 제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제가 데려다주면 되고. 하지연 혼자 밖에서 자취하는데 늦은 시간에 혼자 돌아가면 위험하니까 일단 우리 집에 하룻밤 묵게 할게요. 어차피 방은 얼마든지 있어요.”김범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니면 큰 아가씨도 함께 데려가세요. 제가 확인해 보니 지금 차 한 대밖에 안 남았어요.”“그래도 됩니다.”염무현이 말을 이어갔다.“제가 대표님께 전화해서 사실을 알려드릴게요.”“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이따가 형님께 말씀드리면 돼요.”“그렇게 합시다.”염무현은 한 손으로 우예원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하지연을 부축했고 홍자는 공혜리를 부축하고 그들은 밖으로 나갔다.김범식은 차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차가 떠나자 그는 다급히 휴대 전화를 꺼내 공규
다음 날 아침.커튼이 자동으로 열리면서 한 줄기 햇빛이 유리창을 통해 침대 위를 비추었다.하지연은 덜 깬 눈을 뜨자 깜짝 놀랐다. 여긴 어딜까?그녀는 서둘러 이불을 걷어 올리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자기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또다시 의문이 들었다.여긴 과연 어딜까?그녀는 얼른 침대에서 내려와 숙취가 덜 깬 머리를 비비며 슬리퍼를 신고 현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침실 문을 열자 익숙한 모습의 사람을 보았다.“예원아, 네 집이야?”“네. 지연 언니! 언니가 왜 여기 있죠?”우예원은 진한 다크서클과 헝클어진 머리 차림이었다.그러자 하지연은 더 어안이 벙벙해졌다.“나도 몰라!”이때 옆에 있던 안방 문이 열리더니 실크 가운을 입은 채 기지개를 켜고 완벽한 가슴 라인을 뽐내는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두 사람은 이 모습을 보자 홀딱 반했다.“안녕!”공혜리가 하품을 하며 그녀들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연은 그녀의 몸매를 부러워했지만 우예원은 놀란 듯했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로 물었다.“대표님, 왜 무현 오빠 방에서 나와요? 둘이...”사실 하지연도 눈치를 챘다. 그 방은 게스트 룸이 아니라 안방이었다.“응?”그러자 공혜리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이 별장에 있는 많은 물건들은 그녀가 직접 구입했기 때문에 그녀는 당연히 익숙했다.“나도 몰라! 깨어나니 저 방에 있던데.”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공혜리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필름이 끊긴듯했다.하지연과 우예원도 마찬가지였다.공혜리의 주량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직원들이 일일이 그녀에게 술을 권하니 그녀도 견뎌내지 못했다.하지연의 주량은 보통이었고 우혜원은 알코올 쓰레기라고 불릴 정도였다.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달리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결국에 세 명 모두 취했다.우예원이 조급한 어조로 말했다.“무현 오빠는요?”하지연도 두리번거리며 안방을 들여다보았다.“여기!”염무현이 옆방에서 걸어 나오며 해명했다.“공 대표님이 저 방
“여러분, 무현님이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한 아침 식사입니다.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요.”이은서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 중식도 있고 한식도 있고 양식도 있었다.그러자 공혜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누구세요?”“저 사람 이름은 이은서예요. 1호 별장의 특별 집사입니다.”우예원이 말했다.공혜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물었다.”리버타운에 집사가 있어?”아파트 개발업체는 SJ 그룹의 계열사이다. 임시 대표인 공혜리는 집사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전 실장님이 1호 별장을 위해 특별히 집사를 두었어요. 제 본업은 부동산 판매고 집사는 제 부업입니다.”이은서가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러자 공혜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그렇군요.”전우식은 눈치가 참 빨랐다. 대표인 공혜리에게 이런 방식으로 인상을 남겼으니 앞으로 승진도 빠를 것 같았다.“앞으로 술이 이렇게 많으면 안 될 것 같아. 너무 힘들어.”공혜리가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었다.하지연과 우혜원은 상태가 괜찮았다. 두 사람은 술이 약해서 빠르게 취하고 자고 일어나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주방에서 우유를 데우고 있는 정은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집이 시끌벅적하니 정말 좋네요. 앞으로 매일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뭐가 좋아요? 예쁜 아가씨가 이렇게 많으면 우리 딸에게 불리하잖아요.”우현민은 생각이 많았다. 그러자 정은선은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그렇네요! 그럼 다... 우리 딸의 경쟁자이네요. 게다가 아주 강한 경쟁자들.”“아침 일찍 음식을 사 오느라고 수고했어요. 아직 밥 안 드셨죠? 같이 먹어요.”염무현이 이은서에게 말했다. 이은서는 완곡하게 거절하려 했는데 우예원이 그녀를 잡아당기며 앉혔다.식탁 위에는 웃음소리와 대화 소리로 가득했다.비록 염무현은 무뚝뚝한척했지만, 미녀 사이에 둘러싸여 마치 꽃밭에 있는 것 같았다.공혜리는 쭈뼛거리며 일부러 염무현과 멀리 떨어져 앉았다. 원래 성격대로면 바로 그의 옆 좌석에 앉았을 것이다.염무현은
“무슨 뜻이죠?”양희지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남도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다.“뻔뻔한 사기군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해요?”그러자 남도훈이 말했다.“욕심부리지 않았다면 속았겠어요? 내가 당신 목에 칼을 들이대고 돈을 투자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잖아요. 당신도 바라는 게 있기 때문에 한 거겠죠. 그럼 위험을 감수할 각오는 있어야죠! 당신은 나의 수익을 노리는데 나는 왜 당신의 원금을 노리지 못해요? 이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양희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 위해 나를 부른 거라면 이만 가볼게요.”그리고 그녀는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어딜 가요! 한 발짝 더 가면 당신 집에서 사람을 찾아 양준우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게 한 사실을 밝힐 거예요.”남도훈은 화를 내지 않고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당신, 그리고 당신 부모님, 세 사람 모두 죗값을 물어야 할 거예요. 그리고 양준우는 폭행에 도주까지 죄를 함께 물면 10년 정도 되겠죠. 아이고, 인생 망했네. 당시 사고가 났을 때 이런 법조문도 자세히 검토해 보셨겠죠. 제가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닌 거 젤 잘 아실 텐데.”양희지는 남도훈의 말을 듣자 화가 잔뜩 부풀어 올랐다. 그녀는 다시 숨을 고르고 담담한척하며 말을 이어갔다.“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계속 연기하세요. 참. 하하!”남도훈은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희지 씨가 언제 제일 비겁한 줄 아세요? 가식적일 때! 속으로는 무서워 벌벌 떨면서도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척. 당신 같은 여자를 많이 봤으니깐 내 앞에서 시치미 떼지 마요. 내가 그때 술 좀 마셨다고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아니에요. 술병으로 내 머리를 친 자식은 염무현이 아니라 네 잘난 동생 양준우잖아요”양희지는 어떻게 말을 이어 갈지 몰라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남도훈을 쳐다보며 말했다.“뭐 하자는 거예요?”“아주 간단해요. 양해서에 사인만 하면 돼요. 돈을 뜯어낸 것이 내 본의가 아니고 내 모든 행위를
남도훈이 말을 이어갔다.“게다가 붙잡히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배신했잖아. 심지어 염무현의 삼촌한테 합의를 원한다면 나한테 4억 원을 배상해줘야 한다고 거짓말까지 하고. 사실 내가 요구한 건 2억뿐인데 돈도 그쪽에서 준비해서 너희 집은 일전 한 푼 보태주지 않았거든?”양희지가 두 눈을 부릅떴다.“그게 무슨 헛소리야? 배상금을 모으느라 신혼집마저 팔았는데!”“당신이 팔았어? 그리고 나한테 직접 돈을 준 것도 아니잖아.”남도훈이 되받아쳤다.“과연 누가 더 잘 알까?”양희지가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말이지?”“아무리 부모님이 파놓은 함정이라고 해도 친딸로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말이 돼?”남도훈이 비아냥거렸다.양희지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듯싶었다.당시 부모님은 남도훈이 돈을 요구하면서 4억을 줘야만 합의한다고 했다.결국 그녀는 신혼집을 팔기로 결심했고, 부모님과 남동생이 극구 반대했지만 워낙 태도가 강경한지라 도무지 설득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셋은 마지못해 찬성했다.나중에 집을 팔고 돈을 받은 다음 양희지는 제일 먼저 남도훈부터 찾아가려고 했다.그러나 부모님이 여자가 이런 일에 혼자 나서면 무시당하기 딱 좋다며 설득하더니 자진해서 대신 처리해주겠다고 나섰다.두 사람이 집에 돌아왔을 때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합의서까지 챙겨왔으니 그녀는 당연히 돈을 줬다고 생각했다.그제야 부모님의 농락에 놀아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남도훈은 애초에 2억만 요구했고, 심지어 돈도 전부 우현민이 마련했다.4억은 고작 미끼에 불과했고, 우현민은 물론 그녀마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순간, 양희지의 머릿속에 어젯밤 맞았던 따귀가 떠올랐다. 사실 1분 전까지만 해도 우예원을 향한 원망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었다.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만약 본인이 당사자라고 했을 때 절대로 따귀 한 방으로 용서할 리가 없었다.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갑자기 돈이 생겼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고, 출처가 바로 복권을 샀
“내 말은 어쨌거나 우리 양 대표가 똑똑한 사람이니까 올바른 선택을 할 거라고 믿기에 바쁜 와중에도 꼭 만나고 싶었던 뜻이라고.”남도훈의 얼굴에는 승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만만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그는 미리 준비한 합의서를 꺼냈고, 그제야 양희지는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 지경이 된 이상 마치 도마 위의 생선 마냥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이런 식으로 법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양희지는 합의서 내용을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왜냐하면 확인해봤자 무용지물이었고, 어차피 사인해야 하는 운명인지라 굳이 본다고 해도 괜스레 마음만 심란했다.결국 마지못해 서명하면서 말을 이어갔다.“이런 얕은수는 절대 먹히지 않을 거야. 두고 봐!”비록 그녀는 협박받아서 어쩔 수 없이 타협했지만 다른 사람은 아직 모르는 일이다.누군가 합의에 동의하지 않는 한 남도훈의 음모는 실패하기 마련이다.“입만 살아서 말이야, 멋대로 생각해. 그동안의 친분을 봐서라도 못 들은 척해줄 테니까.”남도훈이 일부러 배려하는 척 말하자 양희지는 화가 발끈 났다.“원한을 품는 건 미숙한 사람이나 하는 짓이야. 특히 사업가에게는 이익이 가장 중요하거든. 우리가 다시 만나서 담소를 나누며 술자리도 가지고 더욱 깊이 있는 교류와 협력을 논하는 날이 곧 올 거라고 믿어.”“꿈 깨.”양희지는 펜을 내동댕이치고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남도훈은 어깨를 으쓱했다. 양희지가 밖으로 나가자 느긋하게 합의서 뭉치를 꺼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꿈 같은 소리하네. 곧 현실로 만들어주지.”구치소 밖, 양희지는 차에 올라타고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했다.현재 그녀의 마음은 심란 그 자체였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남도훈의 면회를 거절하고 김준휘에게 부탁해서 완전히 입막음했을 것이다.하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라 되돌이킬 수는 없었다.그리고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일은 그동안 자랑스럽게 여겼던 모든 업적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부 염무현과 연루
이에 비해 동창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동창 중에서 과연 자신보다 더 잘 나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비록 모두의 선망과 아부의 대상이 되긴 하겠지만, 이런 무의미한 인사치레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아마도 시간이 애매할 것 같아. 요즘 바쁜 시기라...”양희지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박동하는 다급히 말했다.“왜? 설마 우리 양 대표가 눈이 너무 높아서 가난한 동창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너무 실망이야. 걱정하지 마, 그냥 한자리에 모여서 밥이나 먹자는 건데, 절대로 다른 의도는 없어.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보고 싶은 사람 혹은 잊지 못한 추억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양희지의 눈썹이 까딱했다.“염무현도 온대?”“그건 우리 양 대표한테 달렸지. 염무현도 부를 거야? 말 거야?”박동하는 워낙 눈치 빠른 편이라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자칫 말실수라도 한다면 만회할 방법이 없으니까.“염무현을 부를 수만 있다면 나도 갈게.”양희지가 제안했다.사실 그녀의 생각은 사뭇 단순했다. 과거를 회상하는 핑계로 염무현과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그동안 맺힌 앙금을 최대한 풀어버릴 작정이다.만약 가능만 하다면 재혼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하지만 양희지는 본인의 제안이 마침 박동하의 음모를 이루게 하는 꼴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가 동창회를 만든 가장 큰 목적이 바로 염무현에게 망신을 주어 부동산과 쇼핑몰에서 당했던 모욕을 똑같이 돌려주기 위함이었다.사실 양희지가 염무현의 출현을 꺼릴까 봐 의도를 파악하는 차원에서 미리 연락했다.만약 본인의 추측이 맞는다면 양희지를 초대할 생각이 없었다.왜냐하면 그의 타깃은 오로지 염무현이기 때문이다.“알겠어! 양 대표, 걱정하지 마. 염무현도 무조건 부를게.”박동하는 재빨리 대답했다.“시간과 장소가 정해지면 카카오톡으로 보낼게.”전화를 끊자 양희지는 기분이 한결 나아진 듯했다.“공혜리, 넌 고작 후발 주자에 불과할 뿐이야. 기껏해야 애인이겠지.”그녀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