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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차차
아침 회의에서 총지배인은 ‘귀한 손님’이 체크인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각 부문 매니저들한테 당분간 부하 직원 단속을 엄중히 할 것을 요구했다.

“조심 또 조심하고 무슨 일이든 세심하고 또 세심하게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귀한 손님’과 가장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될 객실 매니저인 심유진은 특별히 따로 남아 다시 한번 당부의 말을 들어야 했다.

“허 대표님은 심각한 결벽증이 있습니다. 무조건 방은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심 매니저가 프런트와 잘 말해서 일단 허 대표님이 밖으로 나가는 것만 확인하면 바로 청소팀을 부르세요. 그리고 청소팀더러 절대 허 대표님의 그 어떤 개인 물품도 만지면 안 된다고 당부하세요.”

심유진은 총지배인이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그럼 만약 청소할 때 허 대표님이 옷 같은 걸 침대 위에 던져두었으면 어쩝니까. 그러면 그분 옷을 만지지 않기 위해 침대 정리도 하지 말아야 하나요?”

“첫째 허 대표님의 성격으로 볼 때 절대 함부로 옷을 침대 위에 두지 않을 겁니다. 둘째 만약 그분이 정말로 옷을 침대 위에 벗어두었다면 그분이 방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침대 정리를 마칠지언정 함부로 그분 옷을 건드리면 안 됩니다. 작년에 경주 로열 호텔 본부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청소부가 테이블을 닦으려고 허 대표님의 노트북을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대표님이 그 일을 알게 된 후 그쪽 객실부의 매니저부터 청소부까지 전부 사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총지배인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다 심 매니저를 위해 하는 말입니다. 절대 허투루 듣지 마세요.”

“총지배인님께서 해주신 조언 잘 새겨듣겠습니다!”

심유진은 돌아가자마자 객실부의 모든 사람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그녀는 총지배인이 말해준 주의 사항들을 꼼꼼히 전달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모를 실수를 줄이기 위해 로열 스위트룸 청소는 전부 경력이 많고 세심한 두 아주머니한테 부탁했다.

**

허태준은 아침 일찍 나가서 심유진이 퇴근할 저녁 8시가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심유진은 첫날을 무사히 넘겼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보니 휴대폰에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있는 것을 확인했다. 모두 같은 번호였는데 처음 보는 번호였다.

그녀가 다급하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긴 통화연결음이 흐르고 전화가 막 끊기려던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8888호로 와.”

휴대폰 너머로 남자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뭔가를 참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심유진은 순간 남자의 목소리에 당황했다. 그러다 곧바로 상대방이 누군지 깨닫고 황급히 답했다.

“알겠습니다 허 대표님.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그녀는 곧바로 잠옷을 갈아입고 축축한 샤워 가운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서둘러 위층으로 향했다.

‘8888’은 로열 호텔에서 유일한 로열 스위트룸의 방 번호였다. 즉 허태준이 머물고 있는 그 방이었다.

방문 앞에 도착한 심유진은 안절부절못하며 벨을 눌렀다.

잠시 후 허태준이 문을 열었다.

그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셔츠의 한쪽 밑단은 은회색 캐주얼 양복바지의 가장자리에 느슨하게 걸쳐져 있었고 다른 한쪽은 밖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의 셔츠 단추가 풀어헤쳐져 있었는데 그 안으로 그의 새하얀 목덜미와 움푹 파인 쇄골, 그리고 가슴 근육이 은근하게 보였다.

방금 샤워를 마친 건지 몸에서는 보디워시 향이 났다. 채 말리지 않은 머리가 제멋대로 흐트러져있었는데 그 모습에서 퇴폐적인 섹시함이 느껴졌다.

심유진이 두 눈을 크게 뜨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허태준이 그녀를 방안으로 휙 끌어당겼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닫혔다. 심유진은 차갑고도 두꺼운 문짝에 등을 세게 부딪쳤다.

그녀의 얼굴이 고통에 이그러졌다.

“아……”

그녀가 뜻밖의 고통에 앓는 소리를 내뱉으려고 할 때 아랫입술이 누군가에게 덮쳐졌다.

당황한 심유진이 눈을 크게 떴다. 잘생긴 허태준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놓여있었다.

그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가늘고 길게 뻗은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빨개져 있었다.

허태준의 키스는 다급하고 공격적이었다. 마치 며칠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사람이 겨우 우물을 찾은 듯이 거칠었다.

심유진이 엉겁결에 그를 밀치며 거부했지만 현격히 차이 나는 힘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 조급해진 그녀가 그를 때리고 발로 차도 보았지만 그의 신분이 두려워 감히 세게 때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허태준한테 그녀의 반항은 그저 간지럽히는 정도밖에 되지 못했다. 그 행동은 그를 멈추기는커녕 더욱 흥분케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귓가로 다가갔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남편이 어떻게 너를 배신했던지 잊었어? 그한테 복수하고 싶지 않아?”

심유진은 마치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허태준은 심유진의 셔츠 자락을 스커트 가장자리에서 빼났다.

이성이 그녀에게 안 된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조건웅과 우정아의 알콩달콩한 모습이 자꾸만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미 끝난 결혼이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쓸데없는 정조를 지키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심유진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두 팔을 들어 허태준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녀의 허락에 허태준이 눈을 번쩍 떴다. 새까만 눈동자가 괴이하게 번뜩였다.

허태준의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

심유진은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그녀를 깨운 건 하염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였다.

커튼을 친 탓에 방안은 아직도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그녀는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집어뜯으며 팔을 뻗어 협탁에 놓인 자신의 것과 똑같게 생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번호도 확인하지 않고 통화 버튼을 누른 채 자신의 귓가에 가져갔다.

“여보세요?”

그녀의 짙은 콧소리에 전화를 건 상대방이 화들짝 놀랐다.

“맙소사?! 여자?!”

“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심유진은 그저 자신이 상대방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그 외의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때 욕실 문이 열리고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부드러운 침대 매트리스가 움푹 파이는가 싶더니 심유진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누군가가 낚아채갔다.

“무슨 일이야?”

허태준의 싸늘한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 위에서 울렸다.

순간 심유진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 순식간에 모든 졸음이 싹 가셨다.

어젯밤의 기억이 밀물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점령했다. 그녀는 긴장되고 부끄러운 마음에 이불을 꽉 쥐었다. 당장 이곳에서 사라지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방안은 너무나 고요했다. 그녀는 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조롱 섞인 물음을 던지는 것을 듣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금이야 옥이야 그렇게 자기 몸을 지키던 놈이? 그 여자 누구야? 서우연? 아니면 사민영?”

서우연과 사민영은 모두 최근 가장 잘나가는 여자 연예인들이었다.

“둘 다 아니야.”

허태준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가 휴대폰을 침대 위로 휙 던졌다.

“깼어?”

그가 심유진에게 물었다.

심유진은 그제야 어쩔 수 없이 눈을 떴다.

허태준은 상반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하반신에는 수건만 두르고 있었다.

그는 침대의 가장자리에 앉아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젯밤 일은 그저 해프닝일 뿐이야. 깊게 생각하지 마.”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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