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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3화

작가: 류한나
고은서는 또 한 번 곽승재의 변화를 느꼈다.

공항에서도 비행기에서도 그리고 호텔 로비에서도 민시후와 함께 있는 그녀를 전처럼 강제로 끌고 가지 않았다.

방금전에 다시 시작하자고 일련의 약속을 한 것도 너무 뜻밖이었다.

과거의 그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이런 약속을 한 적이 없었다.

그의 눈빛을 보아서는 거짓말이 아닌 듯했다.

아마 전생의 그녀였다면 혹은 금방 환생한 그녀였다면 이런 말을 듣고 한참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고은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 돼.”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곽승재는 순간 눈에 띄게 실망해 했다.

“은서야,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거절하는 이유가 대체 뭐야?”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지 마. 당신이 내가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뭘 안다고 그래?”

고은서가 헛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곽승재는 순간 자괴감 때문에 고개를 푹 숙였다.

“알고 있어. 내가 다 보상해줄게.”

‘아니,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고은서가 고개를 저으며 또다시 거절했다.

“필요 없으니까 내 가까이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은서야...”

“뭐야? 고백이라도 하고 있었던 거야?”

민시후가 걸어오면서 비아냥거렸다.

“민시후!”

종일 참고 있던 곽승재의 분노가 끝내는 폭발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회사를 똑같은 위기에 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그러나 민시후는 무서워하기는커녕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ZY 그룹뿐만 아니라 차라리 북제에 있는 민씨 가문 전체를 망가뜨리지 그래? 더 재밌을 것 같은데.”

“내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해?”

곽승재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겠지. 사업계의 유일무이한 존재인 GS그룹의 곽 대표에겐 아주 쉬운 일이겠지.”

민시후가 비꼬는 듯한 말투로 그를 약 올렸다.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날 북제로 돌려보내려고 한 것 같던데. 형한테서 전화가 오지 않나, 나중엔 아버지한테서 직접 전화가 오고 말이야. 왜? 고은서가 나한테 잘해주니까 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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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말을 들은 민시후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당연히 곽승재가 한 짓이겠지. 집으로 가지 않으면 아마 끊임없이 연락 올 거야.”아버지의 연락을 받은 그는 부득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택시 불러줄 테니까 너 혼자 가. 굳이 내가 같이 가줄 필요 없잖아.”“두 시간이란 시간을 나한테 투자하면 이틀 동안 심지어 더 많은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될 텐데 설마 내가 계속 네 곁에 붙어있길 바라는 거야?”민시후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이건 그냥 답정너잖아.’고은서는 당연하게도 두 시간으로 더 많은 자유 시간을 얻는 걸 선택할 것이다.‘민시후가 가면 곽승재도 더는 내 곁에 있을 이유가 없겠지. 그렇게 되면 나도 진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거야.’민시후가 비서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티켓을 끊어달라고 부탁할 때 고은서는 먼저 중식집 밖으로 나갔다.여시은은 중식집 앞에 있는 잔디밭에서 만년필 하나를 들고 고양이와 놀아주고 있었다.고양이가 이리저리 뛰면서 그녀의 손을 물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온화한 목소리로 만년필을 물라고 고양이를 달랬다.여시은은 잔디밭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는데 검은 긴 생머리가 어깨 위에 자연스레 풀어 헤쳐져 있었다. 나긋한 목소리로 고양이를 달래는 그녀의 모습이 유독 마음에 와닿았다.그러다 갑자기 고양이가 그녀가 쥐고 있던 만년필을 땅에 떨어뜨렸다.그러나 그 만년필을 피뜩 들여다본 고은서는 아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름 아닌 곽승재가 갖고 있던 만년필이었다.전에 곽승재의 물건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두고 소중히 여기던 고은서는 그 만년필이 곽승재가 평소에 쓰던 만년필이란 걸 한눈에 알아보았다.“은서 씨.”그녀의 시선을 감지한 여시은은 고개를 돌리고 그녀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고은서도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호텔로 갈 거예요? 아니면 여기서 쿠아랑 더 놀아주고 갈 거예요?”“당연히 호텔로 가죠. 마침 쿠아도 배고파하는데 잘됐네요.”여시은이 고양이를 안고 고은서를 향해

  • 어게인, 비긴   제545화

    쓸데없는 물음이었다. 그녀가 그 이유를 알고 있을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전에 몇 번이고 물어봐도 날 놀리면서 안 알려주더니 이번엔 진짜 알려주려는 건가?’“이유가 뭔데?”고은서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알고 싶으면 같이 뒷좌석에 앉아줘. 그래야 말하기 편하잖아.”민시후가 껄렁거리며 말했다.망설임도 잠시, 고은서는 이내 뒷좌석에 올라탔다.그녀는 민시후와 곽승재 사이의 모순에 관해 너무 알고 싶었다.게다가 차에 기사도 있었고 민시후가 그녀를 함부로 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물론 기사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알고 있는 민시후는 사람을 함부로 대할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민시후도 그녀를 따라 뒷좌석에 앉았다.문을 닫은 후 민시후는 폰을 꺼내 그녀와 함께 셀카 한 장을 찍고 누군가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어딘가로 음성메시지를 보내며 깐족댔다.“곽 대표, 봤지? 고은서가 날 공항까지 데려다주면서 심지어 나랑 같이 앉기 위해 뒷좌석에 탔다니까. 당신은 날 못 이겨.”‘왜 갑자기 진지하게 슬픈 감정에 젖어있는 것처럼 곽승재 얘기를 먼저 꺼내냐 했더니 곽승재랑 내기 한 거였어?’“그만 쳐다봐. 나도 곽승재한테 당하고만 있을 수 없잖아. 받은 만큼 돌려줘야지.”“아까 둘이 만나서 내기하자고 했어?”고은서가 눈이 휘둥그레서 물었다.방금 전, 민시후가 짐을 가지고 내려가려고 할 때 차마 이렇게 쉽게 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일부러 곽승재를 찾아가 그녀가 그를 공항까지 데려다줄 거라 하면서 도발했던 것이다.“고은서 이젠 당신 차에 앉으려고도 안 하지? 그런데 어쩌나, 내 차에는 엄청 잘 앉는데. 내가 직접 운전할 때면 내 옆 조수석에 앉아주고 내가 뒷좌석에 앉을 때면 또 나랑 같이 뒷좌석에 앉아주고 하는데.”그는 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는 곽승재를 보면서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말을 보탰다.“왜? 못 믿겠어? 그럼 기다려. 내가 증명해 보일 테니까.”지금 이 시각, 민시후는 고은서를 보면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답했다.“내

  • 어게인, 비긴   제546화

    민시후는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내 착각인가? 왜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지? 아니야. 쓸쓸하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하루종일 이리저리 날뛰면서 다른 사람을 놀리지 못해 안달이나 하는 사람을 내가 왜 걱정하는 거야.’그녀는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프론트 데스크 직원에게 그녀의 방에 누구도 함부로 들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곽승재가 전보다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고은서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갔다.그날 저녁, 고은서는 꿀잠을 잤다.이튿날, 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조식 먹으러 내려갔다.때마침 여시은도 조식 먹으러 내려왔다. 그녀는 귀여운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올리 묶은 채 어제와 같이 고양이 이동장을 메고 있었는데 청순하고 귀여운 느낌을 주었다.여시은은 고은서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은서 씨, 좋은 아침이에요!”“시은 씨, 쿠아도 좋은 아침이에요.”고은서가 쿠아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인사했다.아침 식사 후, 고은서는 아기 판다를 볼 생각에 들떠있었다.“시은 씨도 같이 가지 않을래요?”여시은은 고은서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저야 좋죠. 마침 저도 아기 판다 보러 가려고 했어요.”두 사람이 담소를 나누며 호텔 문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고은서는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곽승재를 발견했다.그는 오늘 정장 대신 세련된 일상복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남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훤칠한 몸매와 뛰어난 얼굴을 가진 그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관광버스 앞에 서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의사 보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거지?’“은서야.”곽승재가 자연스럽게 그녀를 향해 걸어왔는데 그의 손에는 판다 키링이 쥐어져 있었다.“호텔에서 판매하길래 네 가방에 달면 좋을 것 같아서 하나 샀어.”곽승재가 말하면서 그녀의 가방에 달아주려고 했다.“괜찮아. 나 스스로 하나 사면 돼.”고은서가 그의 손을 피하

  • 어게인, 비긴   제547화

    벨 소리를 들은 고은서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폰을 꺼내려고 했다.그러다 갑자기 자신이 얼마 전에 벨 소리를 바꿨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바로 이때, 옆에 있던 곽승재가 태연하게 전화를 받았다.이를 본 고은서는 약간 의아했다.‘곽승재가 내가 녹음한 벨 소리를 사용한다고?’그녀는 그가 이미 삭제한 줄로만 알고 있을 뿐 저장해놓고 이렇게 당당하게 사용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전에는 그렇게 애원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더니 이젠 나도 쓰지 않는 벨 소리를 갑자기 바꾼다고?’고은서는 이 상황이 너무 우스웠다.곽승재가 전화를 끊자마자 고은서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벨 소리 지워.”그러나 곽승재는 침묵으로 자신의 태도를 표시했다.“대체 어쩌자는 거야? 은서라고 다정하게 부르면서 내가 녹음한 벨 소리를 사용하면 내가 감동하면서 생각을 바꿀 것 같아?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이런 쓸데없는 일은 더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런 일로 내가 생각을 바꾸는 일은 없을 테니까.”고은서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내가 널 어떻게 부르든 무슨 벨 소리를 사용하든 다 내 자유야. 너는 간섭할 권리가 없어. 그리고 감동 받으라고 하는 것도 아니야. 그저 내 진심을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야.”“어떤 진심? 수단을 가리지 않고 너에게 위협적인 존재인 민시후를 돌려보내는 거?”“민 회장님이 편찮으신 건 사실이야. 그리고 난 그저 이 사실을 민시후 형한테만 이 사실을 알렸을 뿐, 나머지는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더는 곽승재와 다투고 싶지 않았던 고은서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아기 판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지금 민시후 때문에 화내는 거야?”곽승재가 그녀를 따라가며 물었다.그의 물음에 고은서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답했다.“당연한 거 아니야?”“민시후 너랑 안 어울려.”곽승재는 입술을 달싹이며 고민 끝에 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 말을 들은 고은서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민시후가 나랑 안 어울린다고? 그럼 누가 나랑 어울리는데? 설마

  • 어게인, 비긴   제548화

    심지어 아기 판다를 안는 시간도 십 분 이내로 제한되어 있었다.그러나 짧디짧은 십 분이라고 해도 뽀송뽀송하고 포동포동한 아기 판다를 만질 수 있다는 거에 고은서는 만족하고 있었다.아기 판다는 고은서의 품에 앉아 그녀가 쥐여준 사과 조각을 야금야금 먹었다.고은서는 아기 판다의 귀여운 모습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얼굴을 아기 판다 몸에 대고 비볐다.곽승재는 그녀의 곁에 서서 폰을 들고 이 순간을 대신 기록해주고 있었다.고은서는 눈이 반달 모양이 될 정도로 기뻐하며 웃고 있었다. 비록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곽승재는 그녀가 얼마나 환하게 웃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특히 아기 판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만족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옆에서 보고만 있던 곽승재도 따라 기분이 좋아졌다.십 분이라는 시간은 눈 깜짝할 새로 지나가 버렸다. 고은서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아기 판다를 사육사한테 돌려주고 밖으로 나왔다.“진짜 너무 귀엽지 않아?”밖으로 나온 고은서는 참지 못하고 자신의 기쁨을 곽승재와 공유했다.“특히 사과 먹을 때 왼손과 오른손에 쥐고 있는 걸 한 입씩 바꿔가며 먹는 거 봤어? 그 작은 손으로 사과를 입에 넣으려고 하는 모습이 왜 저리도 귀여운지.”곽승재도 옆에서 직접 보고 심지어 동영상까지 찍었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아기 판다 흉내를 내는 고은서를 보자 또 남다른 기분이었다.그는 고은서에게 그녀가 판다보다 더 귀엽다고 알려주고 싶었다.그러나 이 말을 한다고 해도 아마 돌아오는 고은서의 불쾌한 표정일 뿐일 것이다.그는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더 보고 싶으면 한 번 더 봐도 돼.”고은서는 확실히 그러고 싶었다. 곽승재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예약 명액이 원래도 제한되어 있었고 그녀가 한 번 더 들어가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괜찮아. 아무튼 내일 것도 예약했으니까 내일 다시 오면 돼.”이후 오후 내내 기분이 좋아진 고은서는 기지

  • 어게인, 비긴   제549화

    그러나 큰소리를 치던 고은서는 아무리 고민해 봐도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끝내는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대로 진주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진주처럼 이쁘고 소중히 여기는 존재라는 뜻이에요. 비록 듣자마자 탄복할 만한 이름은 아니지만 기억하기 쉽잖아요. 게다가 진주라는 이름이 여자애한테 엄청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고은서가 진지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곽승재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좋네. 그 이름으로 해.”“저도 우리 집 쿠아 이름처럼 엄청 좋은 것 같아요!”여시은도 맞장구를 쳤다.직원들은 당연하게도 별다른 의견이 없었다.이름을 확정한 후 직원은 고은서에게 기념증서를 증여하면서 그녀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알려주었다.그중에는 직접 사육사를 통해 아기 판다의 성장 근황을 알 수 있는 혜택과 수시로 현장에 보러 올 수 있는 혜택이 포함되어 있었다.고은서는 자신이 직접 이름을 지어준 판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매우 좋았다.“은서 씨, 곽 대표님, 괜찮으면 카톡 아이디 알려주세요. 방금전에 찍은 사진이랑 동영상 보내드릴게요.”여시은이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그러나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고은서와 달리 곽승재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저는 필요 없으니까 은서한테만 보내시면 돼요.”“그래요.”고은서의 카톡을 추가한 후 여시은은 가방에서 만년필을 꺼내 곽승재에게 건네주었다.“곽 대표님, 이거 돌려드릴게요. 기회가 없어서 계속 못 돌려줬어요. 그렇다고 저녁에 곽 대표님 방 문을 두드리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마침 생각났을 때 돌려드리려고요.”하지만 곽승재는 담담하게 거절했다.“그저 만년필뿐인데 굳이 돌려주지 않아도 돼요.”“혹시 쿠아가 물었다고 꺼리시는 건가요? 그럼 제가 새 만년필을 장만해서 회사로 보내드릴게요.”“괜찮습니다.”곽승재가 또 한 번 사양했다.이를 본 여시은도 더는 강요하지 않고 나긋하게 웃으면서 말했다.“나온 지 한참 되는데 쿠아가 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서 먼저 돌아가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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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재훈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여시은이 아픈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밖의 여론이 여시은에게 불리해서 고은서를 만나고 싶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요 며칠, 인터넷에서는 여시은과 관련된 뉴스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은서가 KK한테 도움을 요청한 것 외에도, 아마 곽승재도 뒤에서 힘을 써준 것 같았다.“원래 연회 다음 날에 시은이를 데리고 직접 사과드리려고 했는데, 며칠간 일이 좀 많아서 오늘로 미뤄졌어요.”여재훈은 이어 말했다.“오늘 아침에 갑자기 시은이가 열이 나서, 제가 혼자 찾아오게 됐습니다.”“은서 씨, 지난 일은 전부 시은이의 잘못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여재훈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고은서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재훈 씨의 사과는 저한테 너무 과분해요. 다만 저를 나쁜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고은서가 지난번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여재훈은 마음이 더욱 불편해져났다.“제가 도우미와 시은이의 말만 믿었네요. 시은이에게는 그 일에 대해 이미 훈계했고, 요 며칠 집에서 반성하고 있습니다.”고은서는 여시은이 그저 여재훈에게 보여주기 위해 반성하는 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여재훈은 여시은을 여전히 굳게 믿고 있었고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에도 크게 실망하지 않은 듯했다.고은서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운전 중이던 여재훈도 잠시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한적한 곳에 있는 개인 요리 식당에 도착했다.그 식당은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엄청 좋았다.정원에는 다양한 희귀한 꽃들과 식물들이 놓여 있었고 작은 인공 폭포와 휴식용 테이블과 의자들도 마련되어 있었다.입구 쪽의 돌 테이블 위에는 하얀색의 통통한 고양이 두 마리가 게으르게 햇볕을 쬐고 있었다.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니 고은서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 어게인, 비긴   제1106화

    송민아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저번에 네가 너무 진지하게 말하길래, 나 진짜 겁먹었잖아.”고은서가 다시 한번 웃으며 잡담하듯 물었다.“민아야, 너 예전에 말했잖아. 너랑 네 오빠는 엄마가 다르다고. 그럼 네 아빠랑 네 오빠 엄마는 이혼하신 거야?”송민아는 사무실 밖을 슬쩍 확인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말했다.“몰래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우리 오빠 엄마는 아빠랑 혼인신고도 안 했대. 둘이 약혼까진 했는데,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오빠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길 거절했대.”고은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설마 송민준의 엄마도 결혼 안 하고 그를 낳은 걸까?’지난번 고은서가 송민준과 함께 바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가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송민준은 어릴 때부터 보호만 받고 자라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고 고은서한테 말한 기억이 있다.그때 그의 말투는 평소의 부드러운 말투가 아니라 약간의 조롱 섞인 느낌이었다. 마치 그의 어린 시절이 순탄치 않았다는 듯이.‘혹시 송민준의 어머니가 결혼도 안 하고 그를 낳아서 상처를 받은 탓일까?’“은서야, 이건 진짜 너한테만 말한 거니까, 절대 우리 오빠한테 묻지 마!”송민아가 신신당부하면서 말했다.“오빠는 이 얘기를 누구한테도 한 적 없어. 분명히 신경 쓰고 있다는 거야. 우리 엄마가 말하는 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더래.”“오빠는 혼자 살긴 해도 우리 엄마한테는 되게 예의 바른 거 있지. 나도 이 비밀 듣기 전까진 우리 둘이 같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줄 알았어.”고은서는 절대 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송민준에게 묻지도 않겠다고 약속했다.“민아야, 혹시 너희 엄마가 네 아빠의 다른 연애 상대에 대해 말한 적 있어?”고은서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묻는 성격이었다.혹시라도 송민아의 어머니가 송민준 부모의 관계에 끼어든 거라면 송민아의 어머니가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냥 어른들 옛날 연애사에 호기심이 생긴 거야. 만약 불쾌했

  • 어게인, 비긴   제1105화

    송민준의 단어 사용은 꽤 신박했다.그는 “어젯밤 그 일은, 네가 의도한 거야?”라고 물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가 아니라.그러니까 송민준의 말뜻은 그가 어젯밤 일이 여시은을 고의로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고은서의 계획이었음을 알고 있다는 건가?하지만 그 테라스는 비교적 한적했고 로마식 기둥이 시야를 가려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잘 알아채기 어려운 장소였다.고은서가 로비에서 넘어졌을 때 여시은은 빈 와인잔을 들고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이 상황을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떻게 송민준은 고은서가 여시은을 속이기 위해 고육지계를 쓴 걸 알아챈 걸까?고은서는 아예 직설적으로 물었다.“민준 오빠, 왜 그렇게 물어보는 거야? 설마 어젯밤 내가 넘어졌던 게 자작극이라고 생각한 거야?”그 말을 듣자 송민준은 웃으며 물었다.“은서야, 그런 뜻이 아니야. 난 그냥 그 농장 영상 말이야, 그걸 일부러 어젯밤 그 시점에 터뜨린 건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알고 보니 송민준은 농장 영상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그날 송민준의 컴퓨터에서 영상을 확인하고 난 후, 송민아가 고은서에게 이 영상을 바로 여재훈에게 전달할 거냐고 물었을 때, 고은서는 송민준을 경계해 일부러 연회 이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었다.하지만 실제로는 연회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영상을 공개해 버렸다.송민준이 의심하는 것도 정상이다.“맞아.”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원래는 어젯밤이 지나고 여재훈 씨를 따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 상황에서는 여시은이 그런 행동을 할 만한 동기를 증명하려면 그걸 꺼낼 수밖에 없었어.”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다른 뜻은 없었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네 선택이 맞아, 난 항상 널 지지할 거니깐.”그의 표정을 본 고은서는 확신했다. 송민준은 고은서가 아직 그를 경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그의 성격상, 어젯밤 그녀가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했을 테니까. 하지만 송민준

  • 어게인, 비긴   제1104화

    박지연은 계속해서 불만을 터뜨렸다.“내가 보기엔 여시은은 태생이 못돼먹었어!”“이번에 그렇게 크게 당했으니 더더욱 널 원망할 거야. 너 조심 좀 해.”박지연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각을 세우기로 마음먹었기에 여시은과 평화롭게 지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앞으로는 여시은을 더 철저히 경계할 것이다.“듣자 하니 곽승재가 내내 널 감싸줬다며? 너한테 점점 마음이 가는 모양이야.”박지연이 코웃음을 쳤다.어젯밤 곽승재가 고은서를 계속 도와줬던 건 사실이었다. 증거를 공개하자고 제안한것도 곽승재의 생각이었고 마지막에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곽승재가 고은서에게 큰 도움을 준 셈이었다.하지만 고은서는 곽승재에 대한 이야기를 박지연과 깊이 나누지 않았다.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 박지연이 고은서에게 뜬금없는 소문 하나를 전했다.“우리 과장님한테서 들었는데, 어제 혜린 씨가 다니는 병원에 조 여사님이 찾아가서 난리를 쳤대. 혜린 씨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다른 남자랑 팔짱 낀 사진까지 들고 와서 공개하면서 혜린 씨랑 그 자리에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움 났대!”고은서는 지난번 소동 이후 손자를 중시하는 조수연이 한동안은 조용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또 난리를 친 거였다. 조수연의 전투력은 엄청 대단했다.“아니, 그러다 혜린 씨 혹시라도 애를 지우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고은서가 물었다.박지연은 말했다.“조 여사님 말로는 혜린 씨 뱃속 애가 자기 아들 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해서 혜린 씨를 끌고 가서 친자 확인하자고 했대. 그래서 둘이 몸싸움까지 벌어져서 이미지도 최악이라 혜린 씨는 한 달 정직당했어.”“혜린 씨 배속에 애가 온승준 씨 애가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 집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거야? 그냥 진짜 애 아빠랑 결혼하면 될걸...”고은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소문엔 그 남자가 유부남에 애까지 있다고 하더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냥 과장님이 흘린 얘기야.”

  • 어게인, 비긴   제1103화

    여시은은 여전히 여재훈의 다리를 붙잡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그럼, 아빠가 생각하시는 해결 방법은 뭐예요?”여재훈은 여시은에게 홍보팀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공개 사과하고, 개인적으로 고은서에게 직접 진심으로 사과한 뒤 집에서 2주 동안 자숙하라고 말했다.“제 회사는 아직 개업식도 제대로 안 했는데 공개 사과를 하라뇨? 그럼 모든 사람들이 저를 웃음거리로 볼 거 아니에요!”여시은은 눈이 퉁퉁 부은 채 애원했다.“아빠, 저 은서한테 개인적으로 사과만 하면 안 돼요? 저도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사람들을 이끌기 힘든데, 공개적으로 사과하면 앞으로 누가 저를 믿고 따르겠어요?”“안 된다.” 여재훈은 단호하게 말했다.“이 일은 이미 파장이 커졌고 많은 사람들이 너를 지켜보고 있어. 그러니 모든 사람에게 확실하게 해명해야 한다.”“시은아, 잘못을 저지른 건 무서운 일이 아니야. 진심으로 뉘우치고 성실하게 사과하면 은서 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너에게 다시 기회를 줄 거다.”여재훈은 계속해서 말했다.“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네가 잘못했는데 내가 덮어주면 그건 너를 망치는 거야. 그러니까 이 일은 이렇게 결정된 거다!”여시은은 그 말을 듣자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고은서를 그저 연못에 좀 빠지게 했을 뿐인데 이게 뭐 그렇게 큰일이라고 이렇게까지 일을 키운단 말인가?’‘공개 사과라니, 이제 예전처럼 모두에게 존경받고 칭찬받던 모습은 끝이라는 거잖아.비록 인터넷의 영상은 지워지더라도 사람들이 나에 대한 나쁜 인상은 지워지지 않을 거란 말이야!’오늘 밤 그렇게 많은 부유층과 정재계 인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녀는 그들에게 최악의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해성에서 쌓아온 그녀의 완벽한 이미지가 단번에 무너진 셈이다.예전엔 그녀가 울기만 하면 여재훈은 안쓰러워하며 뭐든지 다 용서해 줬었다.‘지금은 무릎까지 꿇었는데도 아빠는 고은서 때문에 자신의 딸을 벌하려 한다니, 정말 나를 딸로 생각하긴 하는 걸까?’

  • 어게인, 비긴   제1102화

    여시은은 그 말을 듣자 눈이 시뻘게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아빠, 제가 한 게 아니라니까요! 고은서가 일부러 저를 함정에 빠뜨린 거예요. 왜 저를 믿지 않으세요!”“시은아!”여재훈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난생처음으로 이토록 차가운 눈빛으로 딸에게 화를 냈다.“너는 어쩌다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 됐니!”“내가 사람을 시켜서 확인해 봤어. 연회장 CCTV 꺼놓은 거, 그거 네가 시킨 거더라.”여재훈은 딸을 억울하게 만들까 걱정돼 CCTV 관련 내용을 직접 조사했다.그런데 정말로 여시은이 꺼놓았던 것이었다.“네가 정말 은서 씨를 해치려는 의도가 없었다면 왜 CCTV를 미리 꺼놓은 거냐?”여재훈은 냉정한 태도로 물었다.여시은은 자신이 고은서의 계략에 걸려든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고은서는 일부러 도발적인 눈빛으로 여시은을 자극했고 곧바로 테라스로 이끌어냈던 것이다. 모두 여시은한테 엿 먹이려는 행동이었다!여시은은 고은서가 쿠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격동적으로 행동해 자신을 밀칠 거라 확신했었다.왜냐하면 고은서는 지난번엔 쿠아를 다치게 한 일로도 크게 충격을 받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엔 반전이 생겼다.고은서는 오히려 침착하게 반격했고 지난번 농장에서의 ‘물에 빠진 사건’ 증거까지 들고나왔다.일이 이렇게 커져 버린 이상 여시은은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걸 알았다.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여재훈을 향해 소리쳤다.“맞아요! 저 고은서가 너무 꼴 보기 싫었어요! 왜 아빠는 맨날 걔만 칭찬하세요? 이러니깐 제가 질투 나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고은서한테 꼽 주고 싶었어요!”“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이에요. 전 잘못한 거 없어요! 후회도 안 해요!”“너!”여재훈은 손을 번쩍 들어 여시은의 뺨을 때리려 했지만, 그녀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보고는 차마 때릴 수가 없었다.“시은아, 아빠가 평소에 너를 어떻게 가르쳤니? 사람은 자기 양심에 떳떳해야 하고 올곧게 살아야 한다고 했잖아! 근데 너는 어떻게 질투심에 눈이

  • 어게인, 비긴   제1101화

    이미숙은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바로 여시은이 고은서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겨 연못 가까이로 끌어당기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그 영상은 누군가가 휴대전화로 촬영해 올린 것 같았고 화질이 너무 좋은 건 아니지만 전반 상황을 알아보는 데에는 충분했다.영상의 끝에는 고은서와 여시은의 얼굴을 비춘 장면도 담겨 있었다.다소 초라해진 고은서는 곽승재의 부축을 받으며 옆에 서 있었다. 여시은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빛엔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했다.그 와중에 영상의 제목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재벌가 아가씨, 두 얼굴의 진실!]“사모님, 저 여자는 어쩜 저리 독하대요. 이렇게 심하게 괴롭히다니. 누가 폭로해 줘서 다행이지! 이제 세상 사람들 다 그 여자 피해서 다니겠어요!”이미숙은 화가 난 듯 말했다.고은서는 이번 일이 오래 퍼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시은 뒤에는 여재훈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 일로 여시은이 보기 좋게 망신을 당했고, 여재훈 역시 자신의 딸이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테니, 이번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은서는 이미숙의 휴대전화 영상에 대뜸 ‘좋아요'를 눌렀다.한편, 여씨 가문에서.여시은 역시 유튜브 영상을 확인했다. 분노에 찬 그녀는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던졌다.밖에 서 있는 박미화가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다.“시은 아가씨, 회장님께서 지금 바로 서재로 오시래요. 할 말씀이 있으시답니다.”이번이 박미화가 세 번째로 말을 전하러 온 것이었다.여시은은 곧바로 얼굴에 드리워진 분노와 짜증을 숨기고는 일부러 슬프고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방문을 열었다.박미화는 방안에서 반응이 없자 방문을 열려고 하였다. 때마침 여시은이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급히 손을 거두며 사과했다.여시은은 박미화의 손을 움켜쥐었다. 조금 전에 분노로 인해 물어뜯은 날카로운 손톱이 그녀의 살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여시은은 울먹이는 말투로 물었다.“미화 언니, 아빠가 나한테 화 많이 나신 거야? 나 어떻게 해야

  • 어게인, 비긴   제1100화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기사가 차를 라이트문 아파트 앞에 세웠다.고은서와 곽승재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고은서는 샤워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직행했고 곽승재는 거실에 남았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고은서는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곽승재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왜 또 왔어? 할 말 있어?”고은서가 물었다.곽승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논의할 게 있어서. 그전에 이 콜라 생강차부터 마셔.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거야.”“사모님, 콜라 생강차는 감기 예방에도 효과적이거든요. 어서 드세요!”이미숙이 차를 가져오며 말했다.고은서는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잔을 들어 올리더니 이상한 듯 물었다.“아줌마, 제가 방금 들어온 걸 보지도 못하셨을 텐데 어떻게 제가 감기 걸릴 줄 아시고 미리 차를 준비하셨어요?”이미숙의 눈가에는 잠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곽승재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내가 알려줬어. 일단 마셔.”고은서는 고개를 숙여 생강차를 내려다 볼뿐 이미숙의 표정 변화를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물론 곽승재의 눈에 비친 기대감도 보지 못했다.생강차의 냄새를 맡아보니 생강 향이 꽤 진했다.고은서는 생강차를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콜라의 단맛과 생강의 톡 쏘는 맛이 어우러져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맛이 어때요?”이미숙이 물었다.“좋네요. 그런데 오늘은 생강을 좀 많이 넣으신 것 같네요. 예전에 만드신 것보다 더 매운데요.”이미숙은 잠시 망설이다가 급히 대답했다.“생강 양을 조절하지 못했네요. 주의할게요.”고은서는 더는 따지지 않고 다시 마시려던 참이었는데 곽승재가 말을 건넸다.“맛이 별로면 안 마셔도 돼.”고은서는 그를 흘겨보았다.“누가 맛없다고 했어? 아줌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건데 끝까지 마셔야지.”“사모님, 도련님과 얘기 나누세요. 저는 할 일이 남아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이미숙은 두 사람의 언쟁을 피하려는 듯 급히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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