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광역수사단 조직범죄수사팀 경위, 팀 내 에이스 형사 윤서하. 결혼 3년 차. 윤서하는 남편을 사랑한다. 단 하나의 문제만 빼고. 매일 밤 사라진다는 것. 어디에 가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왜 거짓말을 하는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남편.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쫓는 거대한 사건이 그의 그림자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View More새벽 3시.
잠에서 깬 윤서하는 습관처럼 옆자리를 더듬었다.
차가운 이불. 남편이 누워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있었다.
익숙한 일이다.
"또 나갔네."
새벽이 되면 종종 사라지는 남편.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며 다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도윤은 아침상을 차려놓고 태연하게 침실에서 나오는 서하를 돌아보며 미소지었다.
"잘 잤어?"
"응."
서하는 대답했다.
그리고 도윤은 늘 그랬듯 자연스럽게 서하의 머리를 헝클이며 의자를 빼주었다.
서하가 하품하며 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아침상. 그는 매일 밤 자리를 비우면서도 한번도 아침을 뺴놓은 적은 없다.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갈 퍼먹자 속이 데워지며 어젯밤까지 야근으로 피로한 몸이 풀리는 듯 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도윤이다.
그의 눈빛을 보면 더 이상 어떤 의심도 할 수가 없다. 저런 눈빛으로 보는 남자가 날 두고 딴 짓을 할 리도 없다는 생각을 하며 서하는 밥을 먹는데 집중한다.
도윤도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며 묻는다.
“오늘도 야근이야?”
서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답했다.
“응..하....이 사건 언제쯤 끝나려나. 도무지 단서가 안 잡히네. 꼬리가 잡힐 듯 하면 빠져나가고..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박 팀장님 말처럼 정보가 새어나가기라도 하고 있는건가.”
도윤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로 그녀를 보며 어루듯 말한다.
“곧 잡히겠지. 당신 능력이면, 못 잡을 범인이 있겠어? 그보다 당신 몸부터 좀 챙겨. 요즘 매일 야근이라 얼굴 보기도 힘든 거 알아?”
서하는 피식, 웃으며 투덜대듯 대꾸한다.
“몸 챙길 새가 있어야 말이지. 얼굴 보기도 힘들다는 사람이 새벽에는 어딜 그렇게 나가?”
도윤이 숟가락을 들던 숟가락을 잠시 멈칫했다. 얼굴 표정에 미세하게 균열이 갔다. 하지만 곧 표정을 갈무리하더니 원래의 여유롭고 다정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서하는 그 미묘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오랜 형사 경력으로 인해 타인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했으니까.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마음 탓이었을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도윤이 서하의 밥 위에 계란말이 하나를 얹어주며 말했다.
“잠깐, 산책도 할 겸 답답해서 나갔다왔어. 친구가 전화 와서 산책하면서 잠시 통화하다보니 좀 오래걸렸네. 기다렸어?”
서하는 그가 얹어준 계란말이를 우물거리며 투덜댔다.
“도대체 그 새벽마다 전화하는 친구 대체 누구야? 유부남한테 새벽마다 전화나 걸고 말이야...”
도윤은 귀엽다는 듯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하의 곁으로 다가가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질투하는 거야? 난 항상 대기 중인데. 당신이 바쁘지만 않으면 매일 같이 시간을 보낼 준비 돼 있다구.”
서하는 볼을 살짝 붉히며 서둘러 그릇을 챙겨 일어나 싱크대로 향했다.
“뭐, 뭐야...갑자기...”
괜히 물을 세게 틀어 붉어진 볼을 숨겼다. 벌써 결혼한 지 3년 차인데도 그의 노골적인 애정표현에는 도무지 이길 재간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출근 시간이었다. 서둘러 옷을 챙겨입고 신발을 신자, 그가 신발장 앞에 서서 그녀를 배웅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서하가 신발을 다 신고 일어서자마자 도윤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잘 다녀와, 다치지 말고.”
서하는 금새 새빨개진 얼굴로 도망치듯 현관문을 열고 나오며 소리쳤다.
“간다...! 오늘은....빨리 와볼게.”
도윤은 그저 미소지으며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을 뿐이었다.
그리고 현관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도윤은 한동안 그 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미소를 지웠다.
도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조직범죄수사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정신없는 소음이 서하를 맞이했다. 출근한 서하가 마주한 풍경은 가관이었다. 복도에는 밤샘 근무를 마친 형사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여기저기서 전화벨 소리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윤 경위님!"
조직범죄수사팀 막내 형사 김민석이 그녀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서하는 커피 한 잔을 집어 들며 물었다.
"회의 시작했어?"
"아뇨. 아직입니다."
"팀장님은."
"방금 서장님이 부르셔서..."
“아침부터 분위기 개판이겠네.”
서하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속으로 욕을 삼켰다.
민석이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그러게요. 근데 선배, 어제 또 밤새셨죠?"
"너도 밤샜잖아."
"저는 그래도 10시에는 퇴근했습니다."
"난 남편이 밥 차려줘."
"...그거 자랑이죠?"
서하가 피식 웃었다.
"부럽냐?"
"엄청요."
둘이 회의실로 들어가려던 순간,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박태성 팀장이 어두운 얼굴로 회의실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다 모였으면 들어와."
곧 형사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회의실 벽면에는 수십 장의 사진과 사건 자료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최근 6개월간 발생한 사건들.
불법 도박장 운영.
유흥업소 자금세탁.
마약 유통.
폭력조직 간 충돌.
겉으로는 전혀 다른 사건처럼 보였지만 서하의 눈에는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박 팀장이 자료를 넘기며 말했다.
"좋은 소식은 없다."
회의실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제 급습 예정이던 도박장도 비었다."
"또요?"
누군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박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움직이면 귀신같이 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서하가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흑룡회."
박 팀장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또 그 얘기냐."
"정황상 맞습니다."
서하는 벽에 붙은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도박장, 마약, 유흥업소. 운영 방식도 비슷하고 자금 흐름도 연결됩니다."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그럼 추측이야."
서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계속 막히고 있습니다."
"그럼 어디서 새어나가고 있다는 소리겠지."
"..."
"내부든 외부든."
서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저희 중에 있다는 겁니까?"
회의실 공기가 순간 무거워졌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닙니다."
"왜 아니지?"
"우리 팀 사람들입니다."
"윤 경위."
"전 믿습니다."
박 팀장의 냉정한 목소리가 회의실에 낮게 울렸다. 팀원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둘의 팽팽한 기류 속에 마른 침만 삼켰다.
"경찰도 사람이다."
"......"
"돈에 넘어가는 놈도 있고."
"협박당하는 놈도 있고."
"가족이 인질이 되는 놈도 있어."
"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박 팀장이 서류철을 덮었다.
“아니라고 하고 싶으면 이번엔 잡아와. 또 허탕치지 말고. 말로만 하지 말고 결과로 증명하라고.”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서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는 팀장의 등 뒤에 대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이번엔 반드시...잡겠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의심받지 않게 만들겠습니다.”
김민석이 그녀의 어깨를 슬며시 잡으며 토닥였다.
"잡죠."
"이번엔 진짜."
회의가 끝나고, 형사들이 하나둘 회의실을 빠져나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회의는 끝났지만 여전히 사무실 분위기는 무겁다.
"이번에도 결과 없으면 특별수사본부로 넘어간다."
그때 박 팀장이 지나가듯 한마디 던진다.
조직범죄수사팀 사무실이 조용해진다.
팀장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간 뒤에도 사무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특수본으로 넘어간다는 말은.
사실상 조직범죄수사팀이 실패했다는 뜻이다.
팀원들의 표정이 굳는다.
그때,
"다들 왜 그래."
서하가 의자를 밀고 일어선다.
"팀장님 성격 하루 이틀 보냐?"
몇몇 형사들이 피식 웃는다.
"우리도 압니다."
"알면 됐네."
서하는 벽에 붙은 사건 자료들을 떼어내며 말한다.
"이 사건 누가 제일 오래 물고 늘어졌지?"
"경위님이요."
"누가 제일 많이 뛰어다녔고?"
"경위님이요."
"누가 제일 많이 욕먹었고?"
회의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진다.
"그것도 경위님이요."
"그럼 믿어."
서하가 사건 파일을 탁 덮는다.
"잡을 수 있어."
짧은 한마디에 사무실 분위기가 바뀌었다.
누군가 피식 웃었다.
"경위님이 저 말하면 진짜 잡히긴 하더라."
"그러니까."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하고 사흘 만에 검거했잖아요."
"이번에도 잡죠."
"당연하지."
어느새 사무실 분위기가 조금 밝아져 있었다.
한동안 사무실에는 타자 소리만이 울렸다.
서하는 회의실에서 가져온 사건 자료를 다시 훑어보았다.
한 장, 또 한 장.
그때.
"잠깐."
서하의 말에 팀원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CCTV 캡처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이 차량."
"네?"
김민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도박장 CCTV."
"번호판은 지워져 있었잖아요."
"번호판만."
서하가 사진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측면 스티커는 안 지워졌네."
팀원들이 모니터 앞으로 몰려들었다.
"어?"
"진짜네."
서하는 사진을 확대했다.
차량 뒷문 아래 붙어 있는 작은 스티커 하나.
흐릿했지만 익숙한 문양이었다.
"성북구."
"...네?"
"성북구 쪽 애들이 자주 쓰는 마크야."
사무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서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석아."
"네."
"성북구 쪽 폐창고랑 차고지 리스트 다시 뽑아."
"네!"
"최 형사."
"예."
"차량 이동 경로 확인."
"바로 하겠습니다."
지시가 떨어지자 팀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하는 벽에 붙은 사건 사진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잡았다."
아주 작은 꼬리였지만, 이번에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삐리리-
도윤의 폰이 짧게 울렸다.
“뒷정리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그가 짧게 말했다.
핸드폰 너머의 남자 목소리가 낮고 단조로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전부 정리했습니다. 시키신대로 확인도 마쳤습니다.”
도윤이 짧게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 보내.”
곧 사진 몇 장이 도착했다.
도윤은 무심하게 화면을 넘겼다.
핏자국이 남은 창고.
바닥에 쓰러진 남자.
그 뒤로 무릎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들.
도윤은 무심한 눈으로 사진을 넘기다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하자 눌러서 확인했다.
[이 실장은 어떻게 할까요?]
도윤이 간결하게 메시지를 입력했다.
[치워.]
전송 버튼을 누른 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싱크대로 향한 도윤은 소매를 걷어 올렸다.
설거지가 아직 남아 있었다.
서하가 돌아오기 전까지 끝내야 했다.
오늘 저녁도 아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야 하니까.
작은 카페 안, 창가 구석 자리에 앉은 남자가 몇 번이고 출입문을 바라봤다. 남자는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손에 쥔 컵은 이미 식은 지 오래였다. 남자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세 번째로 창밖을 확인했다. 길 건너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시선이 멈춘 채로 굳어버렸다.몇 초 뒤, 그 차는 그대로 출발했다. 그제야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카페 밖.서하는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오후 2시 57분.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3분이 남아있었다. 서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카페 문을 밀었다.딸랑-서하가 카페로 들어서자 남자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남자의 표정은 누군가에게 쫓기듯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서하와 눈을 마주치자 벌떡 일어나 살짝 고개를 숙였다."...괜찮아."남자는 자신에게 말하듯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입술 끝이 떨리고 있었다.서하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둘 사이에 짧지 않은 침묵이 흐른 뒤에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서하는 말없이 그의 떨리는 손끝을 유심히 살펴봤다."그때.""그냥 돌아가시라고 했는데."남자가 가방에서 작은 녹음기를 꺼냈다. 손을 떨며 한참이나 서하에게 건네지 못하고 있었다."천천히 말씀하세요.""괜찮습니다."서하는 재촉하지 않고 잠자코 기다렸다. 남자가 꼭 쥐고 있던 녹음기를 천천히, 아주 느리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손을 거두지 못한 채 한참 동안 녹음기만 바라봤다."...죄송합니다."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남자는 입술을 몇 번이나 달싹였다. 하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전.""아버지 같은 경찰이 되고 싶었습니다."고개를 떨군 남자는 잠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근데.""아버지는.""제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남자가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서하는 아무것도 묻지
아침 일찍부터 조직범죄 수사팀 사무실은 분주했다.서하는 어젯밤 민석과 찾아낸 자료들을 팀원들 앞에서 브리핑하며 팀원들의 의견을 받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사건 파일들이 차례대로 펼쳐져 있었다. 화이트보드에는 흑룡파 관련 사건들이 연도순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모든 사건 끝에는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임태성.그 이름 위에는 붉은 동그라미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잠시 쉬는 시간.민석이 커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경위님.""오늘은 뭐부터 파볼까요."서하는 화이트보드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임태성.""…역시 그래야겠죠.""이번엔 사람을 본다."민석은 금세 의미를 이해했다."...임 검사, 저희가 가능할까요..""응.""안 되면, 되게 만들어야지.""…겁나냐?"민석이 피식 웃었다."조금은요.""근데, 경위님도 같이 깨질 거잖습니까."서하는 마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당연하지."“깨져도 너보다 내가 먼저 깨진다. 걱정마.”서하가 민석의 등을 두어번 툭툭 두드리고는 말했다."우리한테 남은 시간은 한 달이야.""시간 없다.""그럼 시작하자."그렇게 두 사람은 오전 내내 검찰 기록과 사건 배당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임태성이 맡았던 사건들, 그중에서도 흑룡파와 연관된 사건들을 따로 분류해 정리했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임태성이 맡았던 사건은 흑룡파뿐만이 아니었다. 정치권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들 역시 그의 손을 거쳐 간 경우가 유난히 많았다.사건 번호.담당 부서.기소 여부.불기소 사유.증인 명단.참고인 진술.압수수색 영장.하나하나 비교하기 시작했다.민석이 화면을 보며 서하에게 손짓했다."...경위님.""이거 이상합니다.""흑룡파 사건만 맡은 게 아니네요.""정치인.""재벌.""선거 자금.""재개발 비리...""전부 임 검사 손을 거쳤습니다."서하가 다가와 모니터를 바라봤다."...우연일까."민석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니요.""이 정도
며칠 전.서울지방검찰청.검사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비서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손님 오셨습니다."책상 위 서류를 넘기던 임태성이 고개를 들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분명 예의를 차리고 있었지만 어딘가 위압감이 느껴지는 남자였다. 낯선 얼굴, 하지만 이름은 익숙했다.새로운 흑룡파 보스. 강도윤."...도윤 대표."도윤은 가볍게 목례만 했다."처음 뵙겠습니다."임태성이 의자를 가리켰다."앉으시죠."도윤은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임태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약간은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도윤을 바라보았다."무슨 일로 검찰청까지 오셨습니까."도윤은 잠시 검사실을 둘러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거래를 하나 제안드리려고 왔습니다."임태성의 눈이 가늘어졌다."...거래?""예.""검사님도 손해 볼 일은 아닙니다."임태성은 팔짱을 꼈다."들어보죠."도윤은 미리 준비해 온 서류철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하지만 서류를 열지는 않았다.대신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요즘.""경찰이 꽤 시끄럽더군요."임태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정훈 경위."그 이름이 나오자 검사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도윤은 마치 신문 기사를 읽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 사건 때문인지.""15년 전 사건까지 다시 들여다본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순간, 임태성의 손끝이 아주 잠깐 멈췄다.김성철.그 이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도윤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모른 척 말을 이어갔다."...괜한 소문이었으면 좋겠습니다."짧은 침묵이 흐르고, 도윤이 이번에는 서류철을 앞으로 밀었다."본론으로 들어가죠."임태성이 천천히 서류를 펼쳤다.첫 장.도심 재개발 사업 투자 계획.두 번째 장.예상 수익.수십억 원.세 번째 장.참여 기업 명단.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 사업이었다.임태성이 천천히 서류를 덮었다."...그래서, 이걸 왜 보여주시죠.""
기록보관실은 오래된 종이 냄새로 가득했다. 천장 끝까지 빼곡하게 기록들이 서가에 들어차 있었다. 민석은 양손 가득 사건 기록철을 들고 와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쿵.쿵.두꺼운 파일들이 연달아 쌓였다. 표지만 봐도 수십 건이었다.민석이 한숨을 내쉬었다."...경위님."서하는 대답 대신 파일 하나를 집어 들었다.민석이 쌓여 있는 기록철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이거... 전부 보시게요?"서하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응.""...""이거 15년 치예요."민석이 헛웃음을 흘렸다."며칠은 걸리겠는데요."서하는 첫 번째 파일을 펼쳤다.낡은 종이가 바스락 소리를 냈다."다 봐."민석이 그녀를 바라봤다.서하는 시선을 기록에서 떼지 않은 채 말했다."...김성철 사건이."잠시 말을 멈춘 뒤 조용히 덧붙였다."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어."민석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무슨 말씀이십니까."서하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민석을 바라봤다."흑룡파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걸 보면, 김성철 회계사 한 명으로 끝났을 리 없어.""분명.""비슷한 사건이 더 있었을 거야."민석도 더 이상 농담을 하지 않았다.말없이 옆 의자에 앉아 다른 파일을 펼쳤다.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기록만 넘겼다.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이어졌다.파일이 한 장 넘어갔다.또 다른 사건.또 다른 종결.또 다른 무혐의.민석이 고개를 갸웃했다."...경위님.""응.""딱히 눈에 띄는 특징이 없습니다."파일을 넘기던 손을 멈추며 말했다.“분명 사건들이 다 찝찝하게 끝난 건 맞는데…”서하도 손을 멈췄다.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맞아.""하나씩 보면, 안보이지."그녀는 다시 다음 파일을 펼쳤다."...하지만."서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파일이 하나둘 책상 위에 펼쳐졌다.민석은 사건번호를 정리했고, 서하는 화이트보드 앞으로 걸어갔다.드르륵.검은 마커 뚜껑을 열었다.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가장 위에 날짜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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