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49화

Author: 류한나
그러나 큰소리를 치던 고은서는 아무리 고민해 봐도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끝내는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대로 진주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진주처럼 이쁘고 소중히 여기는 존재라는 뜻이에요. 비록 듣자마자 탄복할 만한 이름은 아니지만 기억하기 쉽잖아요. 게다가 진주라는 이름이 여자애한테 엄청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고은서가 진지하게 말했다.

옆에 있던 곽승재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 이름으로 해.”

“저도 우리 집 쿠아 이름처럼 엄청 좋은 것 같아요!”

여시은도 맞장구를 쳤다.

직원들은 당연하게도 별다른 의견이 없었다.

이름을 확정한 후 직원은 고은서에게 기념증서를 증여하면서 그녀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알려주었다.

그중에는 직접 사육사를 통해 아기 판다의 성장 근황을 알 수 있는 혜택과 수시로 현장에 보러 올 수 있는 혜택이 포함되어 있었다.

고은서는 자신이 직접 이름을 지어준 판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매우 좋았다.

“은서 씨, 곽 대표님, 괜찮으면 카톡 아이디 알려주세요. 방금전에 찍은 사진이랑 동영상 보내드릴게요.”

여시은이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고은서와 달리 곽승재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저는 필요 없으니까 은서한테만 보내시면 돼요.”

“그래요.”

고은서의 카톡을 추가한 후 여시은은 가방에서 만년필을 꺼내 곽승재에게 건네주었다.

“곽 대표님, 이거 돌려드릴게요. 기회가 없어서 계속 못 돌려줬어요. 그렇다고 저녁에 곽 대표님 방 문을 두드리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마침 생각났을 때 돌려드리려고요.”

하지만 곽승재는 담담하게 거절했다.

“그저 만년필뿐인데 굳이 돌려주지 않아도 돼요.”

“혹시 쿠아가 물었다고 꺼리시는 건가요? 그럼 제가 새 만년필을 장만해서 회사로 보내드릴게요.”

“괜찮습니다.”

곽승재가 또 한 번 사양했다.

이를 본 여시은도 더는 강요하지 않고 나긋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온 지 한참 되는데 쿠아가 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서 먼저 돌아가 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어게인, 비긴   제550화

    고은서는 그가 건네주는 물을 받지 않았고 여행 체험에 당첨된 일도 묻지 않았다.그녀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바꾸고 박지연에게 온승준에 관해 물었다.“온승준은 세미나로 간 후로 연락 있어?”“어제 전화 왔는데 바빠서 못 받았어.”박지연이 답했다.“그리고?”“없어. 이게 다야. 나도 다시 연락하지 않았고 온승준도 다시 연락 오지 않았고.”“결정은 내렸어?”박지연의 고은서의 물음에 한참 침묵하면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이혼할 거야. 그런데 이혼하고 나면 남남이 된다고 생각할 때마다 아쉽긴 해. 하지만 더 잡고 있어 보았자 의미가 없잖아. 요즘 직장 일 때문에 바삐 보내다 보니까 결혼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도 들곤 해. 이제부터 일에만 몰두하려고.”고은서는 박지연의 선택을 지지했다.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려보니 곽승재가 여전히 물병을 들고 선 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날씨가 엄청 좋았는데 밝은 햇살이 나뭇잎 사이를 뚫고 곽승재를 비추면서 남다른 분위기를 조성했다.‘왜 갑자기 외로워 보이는 거지? 아니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고은서는 곽승재의 외모에 취해 쓸데없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에게 주의를 줬다.“난 힘들어서 먼저 호텔로 돌아가서 쉴게.”고은서는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관광버스를 타고 혼자 호텔로 돌아갔다.그녀는 폭신한 침대에 누워 자신의 인스타를 확인했는데 많은 사람이 좋아요를 눌러주었다.그 밑엔 민시후의 댓글도 달려있었다.[판다 하나 입양한 걸 가지고 입이 귀에 걸렸네. 돌아오면 네가 좋아하는 동물들을 모아서 내가 동물원 하나 차려줄게.][감사하지만 사양할게요. 해성에 동물원이 이미 충분하게 많아서요. 차라리 보너스 상금을 더 두툼하게 넣어주세요.]고은서는 민시후의 댓글을 답장해준 후 새로 고침 버튼을 눌렀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가 인스타를 올린 지 일 분도 안 됐을 때 곽승재가 그녀와 똑같은 인스타 내용을 업데이트해 올린 걸 발견했다.그의 사진은 한 장도 없었고 다 그녀의 단독

  • 어게인, 비긴   제551화

    송민준은 문자로 이전에 부탁했던 백씨 가문 산업과 관련된 일을 처리했음을 알려왔다.비록 민시후에게서 사전에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고은서는 송민준의 문자를 받고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건넸다.[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민아에게 듣기로는 친구가 되셨다면서요? 은서 씨 모습을 보고 정신 차렸는지 열심히 일하겠다고 하네요. 이전에 민아는 시후의 아내가 되어 현모양처가 되는 것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날도 오네요. 정말 놀라워요. 부모님께서도 아시면 기뻐하실 거예요. 은서 씨, 앞으로도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네. 감사해요. 민준 씨.]고은서는 송민준과 예의상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다른 요청은 하지 않았다.송민준이 그녀를 도운 건 송민아의 가정부 진숙희 때문이긴 하지만 송민준 정도의 사람이라면 고은서와 백유미 사이의 갈등을 모를 리 없었다.처음 송민준을 끌어들일 때는 시험해 보려는 마음이었다.하지만 결과가 나왔으니 더 이상 그에게 다른 도움을 청할 생각은 없었다.원지훈의 전화를 받고, 송민준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고은서는 피곤함이 몰려왔다.그녀는 더 이상 곽승재의 인스타를 신경 쓸 힘도 없었다.침대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울리는 화재 경보음에 고은서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복도에서도 분주한 발소리가 들려왔고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여실히 느껴졌다.하지만 해성 호텔에 있을 때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터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확신하기 전에 함부로 나가기가 망설여 진 고은서였다.내선 전화를 들고 프런트에 문의하려던 찰나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곽승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서야! 안에 있어? 빨리 문 열어!”동시에 고은서의 핸드폰 화면에 곽승재의 연락이 떠올랐다.“무슨 일이야?”고은서는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화재 경보가 떴어. 빨리 나와!”고은서는 화재라는 말에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내선 전화를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문을 열자 곽승재가 초조한 표정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어게인, 비긴   제552화

    고은서도 쿠아를 구하고 싶었지만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알기에 그녀는 여시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시은 씨, 먼저 나가요. 쿠아는 괜찮을 거예요!”“쿠아도 생명이 있는 아이예요! 제가 구해야 해요!”여시은이 고집을 부리며 쿠아 쪽으로 가려고 해서 그녀를 잡고 있던 고은서는 넘어질 뻔했다.다행히 곽승재가 빠르게 고은서를 붙잡아 세운 뒤 여시은까지 멈춰 세웠다.“소방대원들이 왔어요. 그들이 구해줄 거예요.”곽승재가 단호하게 말했다.고은서가 고개를 돌리며 막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보였다.여시은도 그들을 발견하고 즉시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제 고양이가 안에 있어요. 꼭 먼저 구해주세요.”소방대원들이 약속하자 여시은은 고은서의 부축을 받으며 곽승재와 함께 안전 통로로 향했다.계단에는 이미 소식을 들은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어 매우 혼잡했다.조금만 실수하면 넘어질 위험도 있었고 밀려드는 사람들에 짓밟힐 위험도 있었다.고은서가 걱정된 곽승재는 그녀를 꼭 껴안으며 보호했다.그로 인해 고은서는 여시은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저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여시은은 이 상황에서도 점점 침착해 보였다.그러나 목욕 가운을 입은 채 젖은 머리를 한 그녀는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해 보였다.고은서는 그런 여시은이 신경 쓰였지만 곽승재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데리고 아래로 향했다.아래로 갈수록 사람들은 더 많아졌지만 곽승재의 보호 덕분에 고은서는 부딪히거나 다치지 않았다.호텔 밖으로 나오지 광장에는 많은 여행객들이 모여 있었고 소방대원들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사다리차도 준비해 두었다.“괜찮아?”곽승재가 물었다.고은서는 긴장감으로 물든 잘생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어깨 상처는 괜찮아?”‘조금 전까지 나를 보호하느라 끌어안고 사람들 틈에서 치였으니 부상이 심해졌을지도 몰라...’곽승재가 어깨를 살짝 움직이며 답했다.“큰 문제 없어. 나중에 병원 가서 한 번 볼게.”그들이 대화하는 동안 여시은도 소방대원의 보호 아

  • 어게인, 비긴   제553화

    고은서가 여시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러세요?”“두 분께 너무 큰 폐를 끼친 것 같아 정말 죄송하네요.”여시은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곽 대표님께서도 다쳤다고 들었는데 소파에서 주무시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요. 괜찮다면 저희 둘이 같은 방을 써도 될까요?”겁먹은 여시은의 모습과 품 안에 안긴 쿠아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고은서는 여시은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기에 그녀가 불편할까 봐 방과 침대를 양보하려 했다. 게다가 곽승재가 먼저 소파에서 자겠다고 하니 여시은에게 방을 양보하려던 참인데 여시은만 괜찮다면 고은서는 곽승재와 한방에서 지내는 것보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게 더 나았다.곽승재에게 문자를 보낸 고은서가 여시은에게 말했다.“시은 씨, 얼른 씻고 푹 쉬어요.”여시은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쿠아를 좀 안아 주시겠어요? 많이 놀랐을 거예요.”쿠아를 받아 안아 든 고은서는 몸을 작게 웅크리고 두려워하는 쿠아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고은서가 쿠아의 머리를 쓰다듬자 쿠아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그때 곽승재에게서 답장이 왔다.[상처가 아프네.][흉터를 제거하기 위해 서운에 온 거 아니었어? 그럼 상처는 이미 나아서 실밥도 풀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고은서는 일부러 사실을 들춰가며 답했다.곽승재는 한참 지나고도 답장이 다시 오지 않았다.고은서도 콧방귀를 뀌며 더 이상 묻지 않고 쿠아를 달래며 시간을 보냈다.담이 작고 체력이 좋지 않아 보여 물을 조금 주려고 할 때 책상에 놓인 여시은의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는 아빠라고 표시되어 있었다.혹시 급한 일인가 싶어 고은서는 욕실 문을 두드렸다.“시은 씨, 전화 왔어요. 아버지신 것 같아요.”“죄송하지만 대신 받아서 이따 다시 전화하겠다고 해주실래요?”여시은이 답했다.고은서는 여시은의 말대로 전화를 받았다.“시은아, 왜 이제야 전화를 받는 거야? 아직 서운에 있어?”고은서가 입을 열기도 전에 반대편에서 걱정스러운 목소

  • 어게인, 비긴   제554화

    그들이 공손한 태도에서 여재훈의 지위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그들은 여시은이 수중에 든 물건들을 건네받으며 함께 밖으로 향했다.“곽 대표님, 우연이네요. 야식 사서 오시는 거예요?”여시은은 눈치 빠르게 곽승재를 발견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곽승재는 차분히 물었다.“여시은 씨는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여시은은 여재훈과의 통화를 간단히 설명했다.“곽 대표님. 오늘 정말 죄송합니다. 너무 많은 폐를 끼쳤네요. 그리고 조금 전에는 제가 조금 겁이 나서 은서 씨를 잡아 뒀는데 혹시 대표님 상처 회복에 영향을 드렸다면 다시 한번 사과드릴 수밖에 없겠네요.”여시은은 솔직하면서도 사랑스럽게 말했다.곽승재는 고은서를 한 번 바라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럼 먼저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여시은은 손을 흔들며 반짝이는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차가 떠나자 고은서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여시은 씨 아버지는 높은 권력을 지니신 분인가요?”곽승재는 간결하게 답했다.“상당히 강한 실력을 갖춘 가문의 후계자야. 정치적 배경도 있긴 한데 더 깊게는 몰라. 나도 스쳐 가며 한번 만난 게 전부라서.”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전화로 여기 상황을 파악하고 바로 사람을 보내 여시은을 데려가더라니.’“아직 아프다더니 왜 나갔어?”고은서가 물었다.곽승재는 손에 든 여러 봉투를 살짝 흔들며 말했다.“간식 좀 사 왔어. 배고프지는 않아? 근처에서 꼬치랑 간식 좀 샀는데 같이 먹을래?”곽승재가 고은서를 초대했다.‘도도하기로는 남한테 뒤지지 않는 사람이 이렇게 서민적인 면모를 보인다고? 지난번에는 호텔 밖에서 아침을 사다 주더니 오늘은 야식이네.’고은서는 곽승재가 일부러 그러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이런 음식은 절대 손대지 않으면서 순전히 나를 유혹하려고 산 게 분명해.’저녁을 대충 때웠던 고은서였기에 고소한 냄새가 풍기자 그녀는 입에 군침이 돌았다.“샀으니 버릴 수는 없잖아.”그렇게 말하며 고은서는 봉투 하나를 받아 들고 즉시 옥수수를

  • 어게인, 비긴   제555화

    고은서의 이상함을 눈치챈 곽승재가 그녀를 잡으며 물었다.“왜 그래?”고은서는 곽승재의 손을 뿌리치며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날 속인 거 아니야? 이 과일주 사실은 도수가 높은 거지?”곽승재는 차분히 답했다.“이거 파는 사장님이 도수가 높지 않아 마시기 좋다고 했어. 특히 여자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산 건데 못 믿겠으면 병에 적힌 도수를 확인해 봐.”고은서는 병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손이 빗나가 허공만 휘저었다.곽승재는 그녀를 놀리지 않고 빈 병을 하나 들어 올려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자, 봐봐. 10도에서 15도 사이야. 높은 도수는 아닌데 너무 빨리 마셔서 그런가보다.”음료수처럼 벌컥벌컥 마셨으니 어지럽지 않을 리가 없었다.고은서는 여전히 자신이 멀쩡하다고 느끼며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얼른 방으로 돌아가. 난 씻고 자야겠어.”곽승재가 말했다.“너 취한 것 같아.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네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돌아갈게.”고은서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유심히 살폈다.담담한 표정과 침착한 말투를 한 곽승재는 그녀를 단순히 걱정하는 것 같았다.“괜찮아. 나 안 취했어. 아무 일도 없을 거야.”고은서가 단호히 말했다.“취하지 않았더라도 혼자 두면 안 돼. 호텔 3층에 피부과를 겸한 스파관이 있어. 여러 가지 서비스가 있던데 전신 스파도 받을 수 있대. 같이 가 줄까?”고은서는 최근 며칠간 피곤했던 터라 목욕도 하고 마사지를 받는 편이 방에서 곽승재와 함께 있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함께 3층으로 향했다.스파관은 남겨 구역이 나뉘어 있었다.고은서는 따뜻한 욕조에 편안히 몸을 담그고 미용사가 등을 마사지하는 것을 느꼈다.미용사의 숙련된 손길과 따뜻하고 향기로운 방 안에서 그녀는 점점 졸음에 빠져들었다.얼마나 지났을까 고은서는 누군가에게 들리는 느낌에 눈을 뜨려 했지만 어지럽고 무거운 머리로 인해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 어게인, 비긴   제556화

    “은서야, 물 좀 마실래?”곽승재의 손이 고은서의 이마에 닿았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곽승재가 이혼 합의서에 서명하라고 차갑게 말하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왜 갑자기 나한테 잘해주나 했어! 달콤한 말로 속여서 사인하게 만들려고 그러는 거야!’고은서는 곽승재의 손을 홱 밀쳐내며 몸을 뒤로 물렸다.“일부러 속여가며 잘해주는 척할 필요 없어! 난 사인하지 않을 거야! 이혼 안 해!”순간 멍해진 곽승재가 침대에 앉으며 물었다.“은서야, 우리 지금 이혼했어? 안 했어?”그 말을 듣자 고은서는 눈물을 흘리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안 해! 나 이혼 안 해! 할머니 만날 거야! 할머니는 우리가 이혼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야! 날 강제로 사인하게 할 수는 없어!”곽승재는 눈앞의 고은서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얼굴은 술기운에 의해 붉어져 있었고 두 눈에는 긴장감과 혼란이 가득했다.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렀고 그녀는 두 손을 자신의 등 뒤로 감췄다.마치 그가 억지로 그녀의 손을 잡고 사인하게 할까 두려워하는 듯했다.그녀의 모습에 곽승재의 마음은 저도 모르게 아파졌다.“은서야...”“나가! 난 사인 안 할 거야! 그건 내가 한 게 아니야! 이혼 못 해!”곽승재가 뭐라 하기도 전에 고은서는 침대 끝으로 가 몸을 움츠리고 고개를 베개 아래에 숨기며 울부짖었다.곽승재는 급히 고은서를 품에 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흥분하지 마. 억지로 사인하라고 하지 않을게. 우리 이혼 안 해.”고은서는 곽승재의 품속에서 몸을 떨며 웅크렸다.그녀는 마치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듯 슬픔에 빠져 울었다.“승재 오빠, 그 방화 사건은 정말 내가 한 게 아니야. 제발 나 믿어줘...”고은서의 눈물이 곽승재의 팔에 닿자 그의 심장은 뜨겁게 달아오르며 아파졌다.곽승재는 그녀의 여린 몸을 꼭 안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울지 마. 너 믿어.”...고은서는 목이 말라 깼다.흐릿한 정신으로 물을 마시려 몸을 일으켰지만 욱신거리는 두통이 찾

  • 어게인, 비긴   제557화

    고은서의 질문에 곽승재는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취해서 계속 나한테 승재 오빠라고 부르면서 가지 못하게 했어.”고은서는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피곤했던 그녀는 어젯밤 마사지를 받으며 깊이 잠 들었고 그 이후 어떻게 방에 돌아왔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난 취했으니까 네 말이 맞는 걸로 할게.”고은서가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었다.“곽승재, 일부러 과일주 사서 마시게 하고 스파까지 데려간 거지? 그렇게 해서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뭐라도 하려고 한 거야?”곽승재는 화도 내지 않고 차분히 답했다.“너한테 무슨 짓 하려는 생각은 없었어. 너는 어젯밤 날 못 가게 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이혼은 안 된다고 하면서 강제로 사인시킬 수는 없다고 하더라. 고은서, 이혼은 분명히 네가 먼저 얘기했고 나한테 사인하라고 강요한 것도 너였잖아. 내가 언제 널 강제로 사인하게 한 적 있어?”고은서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또 환생한 걸 깜빡했나 보네. 정신병원에 있었던 걸로 착각했나...’전생에서 곽승재의 변호사가 이혼 합의서를 가지고 와서 강압적으로 사인하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그때 고은서는 거절하며 곽승재에게 직접 만나서 물어보겠다고 했지만 변호사는 싸늘한 어조로 곽승재가 바빠서 만날 시간이 없다고 했다.또한 사인하지 않으면 소송으로도 빠르게 판결을 받아내겠다고 협박하기도 서슴지 않았다.고은서는 울며 변호사에게 곽승재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변호사는 그녀에게 짜증 내며 두 명의 간호사를 데리고 그녀를 강제로 사인하게 했다.“고은서, 방화 사건은 어떻게 된 거야? 나한테 진실을 밝히라고 했는데 무슨 진실을 얘기하는 거야?”곽승재가 물었다.고은서가 환각제를 먹었을 당시에도 곽승재를 보고 승재 오빠라고 부르며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했었다.어젯밤에도 마찬가지로 술에 취한 고은서는 억울하고 절망적인 어조로 방화 사건은 그녀가 한 일이 아니라고 믿어달라고 했다.처음에는 고은서가 환각 상태라서

Latest chapter

  • 어게인, 비긴   제1112화

    의사가 여재훈의 상처를 처치하는 사이, 고은서의 휴대폰이 울렸다.번호를 보니 곽승재였다.고은서는 여재훈에게 말하고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은서야, 너 사고를 당했다며? 너와 여 대표님이 모두 다쳤다고?”곽승재가 다급히 물었다.임신 오해 사건 이후, 두 사람이 모든 것을 터놓고 얘기한 뒤로 그녀를 몰래 보호하던 인원을 철수한 상태였다.하지만 운전기사는 여전히 주민기가 배치한 인원이어서 고은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알 수 있었다.고은서는 어디서 들었는지 캐묻지 않았다.“괜찮아. 마재경이 갑자기 유일 투자은행 주차장에서 나를 습격했어. 여재훈 씨가 막아주다가 팔을 다치셨고.”“나는 지금 출장 중이라 경찰서 쪽에 다른 사람을 보냈어.”곽승재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해성으로 돌아갈게.”고은서는 급히 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여긴 별일 없으니까 일에 집중해. 여재훈 씨의 상처 처치가 끝나면 경찰서로 가서 마재경을 만날 거야.”“이쪽 일은 거의 마무리됐어. 내가 돌아가면 같이 경찰서에 가자.”곽승재는 설명을 이어갔다.“지난번 마재경이 다쳤을 때 병원을 방문해 더 이상 협조가 필요 없다고 통보하고 충분한 보상금도 지급했어.”“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 존재감을 과시하지 말라고 몇 번 경고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걸 보면 배후에 조종자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곽승재는 차분한 목소리로 분석을 이어갔고, 고은서도 어느 정도 수긍했다.따져보면, 마재경은 돈 때문에 곽승재와 손잡은 것이고 그녀와 깊은 원한이 없었다.협력 관계가 끝났으면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야 정상이지, 이렇게 위험한 방식으로 그녀에게 복수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하지만 마재경이 진심으로 곽승재를 좋아하게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천천히 사랑을 키워나가고 싶었는데 곽승재가 갑자기 관계를 끊자고 하니 그 분노를 고은서에게 쏟아냈을 수도 있다.고은서가 이 가능성을 말하려는 순간, 간호사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안에 있는 환자분의 부탁이라며 그녀의 상처

  • 어게인, 비긴   제1111화

    ‘분명 넘어뜨렸는데.’고은서는 마재경이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몰랐고, 가위를 들고 달려들 줄은 더욱 생각지 못했다.피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고은서는 다급한 마음에 전기충격기를 꺼내 마재경의 몸에 들이댔다.“조심해요.”고은서와 마재경이 전기충격기와 가위를 손에 들고 서로 공격하려는 순간, 우람한 체구의 남성이 황급히 달려왔다. 여재훈이었다.그는 고은서를 확 끌어당기고 마재경을 밀쳐냈다.쨍그랑! 전기충격기가 땅에 떨어지며 마재경의 몸에 닿았고, 감전된 마재경은 비명을 질렀다.잠시 비틀거리던 마재경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다시 가위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고은서가 마재경을 걷어차려고 다리를 뻗는 순간, 여재훈이 자기 팔로 가위를 막아 그녀를 보호했다.그의 넓은 어깨는 웅대한 산처럼 든든해 보였고,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품에 안겼을 때처럼 피난처 같은 안정감을 주었다.짝! 가위가 여재훈의 팔을 찌르며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재훈은 잽싸게 마재경을 발로 걷어찼다.“여재훈 씨, 괜찮으세요?”정신을 차린 고은서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여재훈은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괜찮아요.”이때 경비원 몇 명이 달려와 마재경을 제압했다.고은서는 여재훈의 팔을 살펴보았다. 재킷과 셔츠가 찢기고 기다란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고은서는 가슴이 아려와 다급히 말했다.“다치셨네요. 빨리 병원 가서 싸매야 해요.”“고은서 씨도 다쳤으니 같이 가요.”여재훈이 고은서의 쇄골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여재훈의 말을 듣고 나니 쇄골 근처 어깨죽지 부위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손으로 만져보니 피는 나지 않는 듯했다. 오늘 카라 없는 캐주얼 셔츠를 입은 까닭에 마재경이 가위를 휘두를 때 살짝 긁힌 듯하다.“저는 연고만 바르면 될 것 같아요. 어서 병원 가요.”고은서는 경비원에게 마재경을 경찰서에 넘기라고 말했다.그러고는 기사를 불러오고 여재훈과 함께 뒷좌석에 탔다.여재훈의 팔뚝에 번진 핏자국을 보며 고은서는

  • 어게인, 비긴   제1110화

    여재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은서 씨를 회사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이 식사는 여재훈이 초대한 자리였으니 끝까지 책임지고 고은서를 안전하게 회사까지 돌려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아 분위기가 조금 무거웠다.고은서는 여재훈이 자기 딸이 고양이를 학대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걸 알기에 여재훈한테 혼자 생각할 시간을 줬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유일 투자은행의 주차장에 도착했다.“은서 씨, 곽승재 씨랑 현재 무슨 사이이신가요?”여재훈이 물었다.고은서는 사실대로 답했다.“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예요.”여재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승재 씨는 은서 씨를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더군요.”연회 때 곽승재가 고은서를 적극적으로 감싸는 모습을 모두가 똑똑히 봤다.이에 대해 고은서도 부정하지 않았다.“그건 곽승재 씨의 일방적인 감정이에요. 저는 그 사람한테 이성적인 감정은 없어요.”“시은이가 승재 씨를 꽤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요. 저한테도 말한 적 있어요.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여재훈은 말을 이었다.“아마 시은이의 질투심도 여기서 시작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은서 씨를 해하려 했던 걸지도 모르죠. 하지만 쿠아는 시은이가 가장 아끼던 반려동물이에요. 시은이가 이유 없이 해칠 리는 없을 겁니다.”고은서는 그 말의 속뜻을 곧바로 이해했다.여재훈의 말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향한 질투 때문에 공격적으로 나왔을 수는 있어도, 쿠아는 여시은이 키우는 반려동물이기에 쿠아를 해칠 사람은 아니라고 믿는다는 것 같았다.고은서는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가족이라는 필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여재훈도 여시은의 본모습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고은서는 더 말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에 여재훈한테 간단히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차에서 내린 고은서는 어디선가 여자 하나가 스쳐 지나가는 듯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고, 공기 중에서 약간의 피비린내도 느꼈다.그녀는 주

  • 어게인, 비긴   제1109화

    여재훈은 고은서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는 물었다.“시은이가 또 무슨 일을 했다는 거죠?”마침 노 사장님이 식전 반찬을 가져다주며 주문한 대표 요리도 곧 준비된다고 알렸다.고은서는 계속해서 말했다.“재훈 씨, 저희 먼저 식사부터 하고 이야기할까요?”고은서는 몹시 배가 고팠다. 만약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면 두 사람 모두 식사할 마음이 사라질 것 같았다.여재훈은 고은서의 제안에 동의했다.이 개인 요리 식당의 음식은 색다른 풍미가 있었고, 고은서는 배부르게 먹었다.반면, 여재훈은 거의 먹지 않았다. 마치 그는 고은서를 동반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한 것처럼 보였다.식사 중에는 가끔 일상적이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약 삼십 분 후, 고은서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배가 너무 부르다고 말했다.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아있지만, 여재훈은 배부른 고은서를 보며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여재훈은 그녀가 배부르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여재훈은 고은서의 찻잔에 물을 따라주며 물었다.“우리 시은이가 또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 거죠?”고은서는 찻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여시은이 고양이를 학대한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저번에 제가 쿠아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했었잖아요?”고은서가 말했다.“전 정말 시은이에게 누명을 씌운 게 아니에요. 여시은이 제 눈앞에서 쿠아의 입술을 다치게 했어요. 그리고 평소에도 쿠아를 자주 괴롭혔어요.”고은서의 말을 들은 여재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시은이는 쿠아를 그렇게 아꼈어요. 집에서도 항상 품에 안고 다녔고, 쿠아가 뭐라도 먹고 싶어 하면 직접 손으로 먹여줬다니까요. 시은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했겠어요?”여재훈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었다.“은서 씨, 혹시 오해가 있는 건 아니에요? 뭔가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평소 여시은은 얌전한 딸의 이미지를 잘 연기해 왔기에 여재훈은 그녀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재훈 씨가 믿기 힘든 거 알아요. 아버지 입장에서야 딸이 그

  • 어게인, 비긴   제1108화

    지난번 숙모에게 가방을 선물했을 때, 숙모가 엄청나게 기뻐했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그래서 이번엔 삼촌에게도 뭔가를 사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은서는 노 사장님에게 코담배병을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다. 그리고 가족에게 드릴 선물로 하나 사고 싶다고 말을 덧붙였다.“이건 친구가 선물한 거라 어디서 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노 사장님은 미안한 듯 말했다.고은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그냥 예뻐서 한번 여쭤본 거예요. 나중에 백화점 가서 한번 골라볼게요.”“아가씨는 참 효심이 깊구먼.”노 사장님은 칭찬을 몇 마디 건넨 뒤, 주문한 메뉴를 주방으로 가져갔다.“은서 씨 아버님께서 코담배병을 좋아하시나요? 선물하시려고요?”여재훈이 부드럽게 물었다.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전 아버지가 없어요. 삼촌께 드리려는 거예요.”여재훈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그는 고은서를 몇 번밖에 만나지 못했기에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들었다.“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여재훈은 곧바로 사과했다.고은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괜찮아요. 저희 가족끼리도 잘 지내고 있어요.”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여재훈은 고은서의 그 미소는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때 여재훈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전화번호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시은아, 왜 그래... 주사 맞는 게 당연히 좀 아프지. 하지만 주사를 안 맞으면 어떻게 낫겠어... 알겠으니깐 떼쓰지 말고, 의사 말 잘 들어.”전화를 끊고 나서 여재훈은 고은서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시은이가 아픈데 주사 맞기 싫다고 하네요.”고은서는 여시은의 이름에 반응이 컸다. 예전에 여시은에게 학대받다 죽은 쿠아가 떠올랐다. 그 기억 때문에 속이 불쾌해지고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그녀는 말없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여재훈은 고은서의 반감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그는 조심

  • 어게인, 비긴   제1107화

    여재훈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여시은이 아픈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밖의 여론이 여시은에게 불리해서 고은서를 만나고 싶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요 며칠, 인터넷에서는 여시은과 관련된 뉴스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은서가 KK한테 도움을 요청한 것 외에도, 아마 곽승재도 뒤에서 힘을 써준 것 같았다.“원래 연회 다음 날에 시은이를 데리고 직접 사과드리려고 했는데, 며칠간 일이 좀 많아서 오늘로 미뤄졌어요.”여재훈은 이어 말했다.“오늘 아침에 갑자기 시은이가 열이 나서, 제가 혼자 찾아오게 됐습니다.”“은서 씨, 지난 일은 전부 시은이의 잘못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여재훈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고은서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재훈 씨의 사과는 저한테 너무 과분해요. 다만 저를 나쁜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고은서가 지난번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여재훈은 마음이 더욱 불편해져났다.“제가 도우미와 시은이의 말만 믿었네요. 시은이에게는 그 일에 대해 이미 훈계했고, 요 며칠 집에서 반성하고 있습니다.”고은서는 여시은이 그저 여재훈에게 보여주기 위해 반성하는 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여재훈은 여시은을 여전히 굳게 믿고 있었고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에도 크게 실망하지 않은 듯했다.고은서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운전 중이던 여재훈도 잠시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한적한 곳에 있는 개인 요리 식당에 도착했다.그 식당은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엄청 좋았다.정원에는 다양한 희귀한 꽃들과 식물들이 놓여 있었고 작은 인공 폭포와 휴식용 테이블과 의자들도 마련되어 있었다.입구 쪽의 돌 테이블 위에는 하얀색의 통통한 고양이 두 마리가 게으르게 햇볕을 쬐고 있었다.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니 고은서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 어게인, 비긴   제1106화

    송민아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저번에 네가 너무 진지하게 말하길래, 나 진짜 겁먹었잖아.”고은서가 다시 한번 웃으며 잡담하듯 물었다.“민아야, 너 예전에 말했잖아. 너랑 네 오빠는 엄마가 다르다고. 그럼 네 아빠랑 네 오빠 엄마는 이혼하신 거야?”송민아는 사무실 밖을 슬쩍 확인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말했다.“몰래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우리 오빠 엄마는 아빠랑 혼인신고도 안 했대. 둘이 약혼까진 했는데,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오빠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길 거절했대.”고은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설마 송민준의 엄마도 결혼 안 하고 그를 낳은 걸까?’지난번 고은서가 송민준과 함께 바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가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송민준은 어릴 때부터 보호만 받고 자라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고 고은서한테 말한 기억이 있다.그때 그의 말투는 평소의 부드러운 말투가 아니라 약간의 조롱 섞인 느낌이었다. 마치 그의 어린 시절이 순탄치 않았다는 듯이.‘혹시 송민준의 어머니가 결혼도 안 하고 그를 낳아서 상처를 받은 탓일까?’“은서야, 이건 진짜 너한테만 말한 거니까, 절대 우리 오빠한테 묻지 마!”송민아가 신신당부하면서 말했다.“오빠는 이 얘기를 누구한테도 한 적 없어. 분명히 신경 쓰고 있다는 거야. 우리 엄마가 말하는 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더래.”“오빠는 혼자 살긴 해도 우리 엄마한테는 되게 예의 바른 거 있지. 나도 이 비밀 듣기 전까진 우리 둘이 같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줄 알았어.”고은서는 절대 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송민준에게 묻지도 않겠다고 약속했다.“민아야, 혹시 너희 엄마가 네 아빠의 다른 연애 상대에 대해 말한 적 있어?”고은서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묻는 성격이었다.혹시라도 송민아의 어머니가 송민준 부모의 관계에 끼어든 거라면 송민아의 어머니가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냥 어른들 옛날 연애사에 호기심이 생긴 거야. 만약 불쾌했

  • 어게인, 비긴   제1105화

    송민준의 단어 사용은 꽤 신박했다.그는 “어젯밤 그 일은, 네가 의도한 거야?”라고 물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가 아니라.그러니까 송민준의 말뜻은 그가 어젯밤 일이 여시은을 고의로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고은서의 계획이었음을 알고 있다는 건가?하지만 그 테라스는 비교적 한적했고 로마식 기둥이 시야를 가려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잘 알아채기 어려운 장소였다.고은서가 로비에서 넘어졌을 때 여시은은 빈 와인잔을 들고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이 상황을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떻게 송민준은 고은서가 여시은을 속이기 위해 고육지계를 쓴 걸 알아챈 걸까?고은서는 아예 직설적으로 물었다.“민준 오빠, 왜 그렇게 물어보는 거야? 설마 어젯밤 내가 넘어졌던 게 자작극이라고 생각한 거야?”그 말을 듣자 송민준은 웃으며 물었다.“은서야, 그런 뜻이 아니야. 난 그냥 그 농장 영상 말이야, 그걸 일부러 어젯밤 그 시점에 터뜨린 건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알고 보니 송민준은 농장 영상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그날 송민준의 컴퓨터에서 영상을 확인하고 난 후, 송민아가 고은서에게 이 영상을 바로 여재훈에게 전달할 거냐고 물었을 때, 고은서는 송민준을 경계해 일부러 연회 이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었다.하지만 실제로는 연회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영상을 공개해 버렸다.송민준이 의심하는 것도 정상이다.“맞아.”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원래는 어젯밤이 지나고 여재훈 씨를 따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 상황에서는 여시은이 그런 행동을 할 만한 동기를 증명하려면 그걸 꺼낼 수밖에 없었어.”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다른 뜻은 없었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네 선택이 맞아, 난 항상 널 지지할 거니깐.”그의 표정을 본 고은서는 확신했다. 송민준은 고은서가 아직 그를 경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그의 성격상, 어젯밤 그녀가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했을 테니까. 하지만 송민준

  • 어게인, 비긴   제1104화

    박지연은 계속해서 불만을 터뜨렸다.“내가 보기엔 여시은은 태생이 못돼먹었어!”“이번에 그렇게 크게 당했으니 더더욱 널 원망할 거야. 너 조심 좀 해.”박지연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각을 세우기로 마음먹었기에 여시은과 평화롭게 지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앞으로는 여시은을 더 철저히 경계할 것이다.“듣자 하니 곽승재가 내내 널 감싸줬다며? 너한테 점점 마음이 가는 모양이야.”박지연이 코웃음을 쳤다.어젯밤 곽승재가 고은서를 계속 도와줬던 건 사실이었다. 증거를 공개하자고 제안한것도 곽승재의 생각이었고 마지막에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곽승재가 고은서에게 큰 도움을 준 셈이었다.하지만 고은서는 곽승재에 대한 이야기를 박지연과 깊이 나누지 않았다.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 박지연이 고은서에게 뜬금없는 소문 하나를 전했다.“우리 과장님한테서 들었는데, 어제 혜린 씨가 다니는 병원에 조 여사님이 찾아가서 난리를 쳤대. 혜린 씨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다른 남자랑 팔짱 낀 사진까지 들고 와서 공개하면서 혜린 씨랑 그 자리에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움 났대!”고은서는 지난번 소동 이후 손자를 중시하는 조수연이 한동안은 조용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또 난리를 친 거였다. 조수연의 전투력은 엄청 대단했다.“아니, 그러다 혜린 씨 혹시라도 애를 지우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고은서가 물었다.박지연은 말했다.“조 여사님 말로는 혜린 씨 뱃속 애가 자기 아들 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해서 혜린 씨를 끌고 가서 친자 확인하자고 했대. 그래서 둘이 몸싸움까지 벌어져서 이미지도 최악이라 혜린 씨는 한 달 정직당했어.”“혜린 씨 배속에 애가 온승준 씨 애가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 집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거야? 그냥 진짜 애 아빠랑 결혼하면 될걸...”고은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소문엔 그 남자가 유부남에 애까지 있다고 하더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냥 과장님이 흘린 얘기야.”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