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은은 사과하다가 말고 깜짝 놀라했다.고은서가 다가가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룸 안에는 곽승재가 앉아 있었는데 그의 옆에는 마재경도 함께 있었다.도착한 지 얼마 안 되는지 웨이터가 마침 음식을 올리고 있었다.그녀의 시선을 느낀 곽승재가 고개를 들고 덤덤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곽 대표님,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밥 먹으러 오신 건가요?”여시은이 의외라는 듯 먼저 말을 꺼냈다.“재경이가 이 레스토랑의 음식이 맛있다고 해서 한 번 먹어보러 온 거예요.”곽승재가 담담하게 답했다.옆에 있던 마재경이 부끄럽다는 듯 나긋하게 웃어 보였다.“고마워요, 대표님.”“미리 예약하고 오신 거예요? 우린 만석이라고 좀 기다려야 된다던데.”여시은이 부러워하며 물었다.“괜찮으시다면 합석하실래요?”마재경이 곽승재를 힐끔 보더니 예의 바르게 물었다.여시은은 문 쪽에 서있는 고은서를 보면서 물었다.“은서 씨, 어때요?”마재경은 그제야 고은서를 발견하고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녀를 안으로 초대했다.“은서 씨,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얼른 들어오세요.”‘밥 먹으러 왔는데 왜 하필 곽승재랑 부딪치는 거야?’고은서는 사실 별로 합석하고 싶지 않았다. 반면 음식 냄새를 맡은 여시은은 약간 흥분해 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심지어 고은서의 손을 잡아당기면서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밥만 같이 먹는 건데 대표님도 괜찮으시죠?”“들어오세요.”곽승재가 무표정을 얼굴을 하고 답했다.이렇게 된 이상 고은서는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여시은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네모난 나무 식탁 앞에 곽승재가 센터 자리에 앉고 마재경은 그의 왼쪽 자리에 앉아 있었고 고은서는 곽승재의 맞은 켠 자리에 앉았다.여시은 아주 자연스럽게 곽승재의 오른쪽에 있는 자리에 앉으면서 쿠아를 잠시 웨이터에게 부탁했다.사람이 많아진 탓에 곽승재는 웨이터를 불러 음식을 몇 가지 더 주문했다.“와, 다 매운 음식이네요. 은서 씨, 괜찮겠어요?”여시은이 관심하는 말투로 물었다
뚝배기 안에 있던 우유는 몹시 뜨거웠는데 여시은이 국자를 떨어뜨리면서 우유가 그녀의 손에 튕겼다.여시은은 순간 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들고 있던 그릇을 옆으로 팽개쳤다.그러자 뜨거운 우유가 마침 고은서와 마재경의 손등에 튕겼다.두 사람은 동시에 갑자기 몰려오는 고통에 신음소리를 내면서 손을 움켜쥐었다.“괜찮아?”곽승재가 벌떡 일어서면서 고은서의 손을 잡았다.바로 이때, 꽈당하는 소리와 함께 마재경이 의자와 같이 뒤로 넘어졌다.뚝배기랑 더 가까이 있었던 마재경이 사실상 더 심하게 데였는데 방금 튕겨오는 우유를 피하면서 실수로 뒤로 고꾸라졌던 것이다.그러나 곽승재는 그녀를 관심할 겨를이 없었다.그는 이미 식은 차를 빨갛게 데인 고은서의 손등에 부으면서 옆에 넋을 놓고 있는 웨이터를 향해 호통쳤다.“지금 멍해서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얼른 찬물을 가져오지 않고!”“네네.”웨이터가 황급히 찬물을 가지러 가고 여시은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듯했다.“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은서 씨, 괜찮아요?”여시은이 긴장해 하며 물었다.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밀려오는 고통 때문에 저도 모르게 손을 거두어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곽승재가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를 제지했다.“움직이지 마.”“마재경 씨, 왜 넘어지셨어요. 얼른 일어나세요.”여시은이 마재경 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앗, 재경 씨도 데었어요? 죄송해요.”여시은이 자책하면서 사과했다.그녀도 곽승재를 따라 식은 찻물로 임시 처치를 해주려고 했는데 쓸 수 있는 찻물은 이미 그가 다 써버린 후였다.“괜찮아요. 웨이터가 곧 올 거예요.”여시은이 마재경을 위안했다.마재경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여시은의 부축하에 힘겹게 일어섰다.웨이터는 이내 찬물을 가져왔고 이어 상황을 처리하러 온 매니저가 사과하며 나타났다.그와 동시에 다른 한 담당자가 화상 연고를 들고 룸으로 들어 왔다.곽승재는 눈살을 찌푸린 채 고은서를 위해 연고를 발라주었다.행여나 그녀가 아파할까 봐 애써 힘
고은서는 곽승재의 숨결이 가빠진 걸 느낄 수 있었다.잠시 후, 곽승재는 콧방귀를 뀌면서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마재경을 바라보았다.“가자. 병원으로.”그제야 관심을 받은 마재경은 가엽게 눈물을 흘리면서 입을 열었다.“대표님, 저 괜찮아요. 별로 안 아파요.”“그래도 안심하게 검사받아.”곽승재는 말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마재경은 머뭇거리면서 고은서를 힐끔 보더니 이내 곽승재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며 그의 팔짱을 꼈다.키큰 곽승재 옆에 서있는 마재경의 뒷모습이 유독 더 작아보였다.고은서는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은서 씨도 병원에 가서 검사 받아보는게 어때요?”여시은이 관심하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고은서는 이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여시은 씨, 곽승재랑 마재경 씨가 이 레스토랑에 있다는 걸 알고 일부러 이곳에 오자고 한 거죠?”전에 노숙자 일과 마찬가지로 우연이라고 해도 너무 수상했다.‘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여시은이 그 현장에 있는다는 게 말이 돼? 한두 번도 아니고. 우연이라고 해도 이런 우연이 어디 있어?’여시은은 멈칫하더니 이내 울먹이면서 물었다.“은서 씨,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그저 여기 음식이 맛있다고 들어서 먹어보러 온 것뿐이에요. 저도 이곳에서 곽 대표님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여시은은 마치 정말 상처라도 입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다치게 한 건 정말 죄송해요. 이럴 줄 알았더라면 합석하는 게 아니었는데... 다른 레스토랑으로 가든 얌전히 자리가 나길 기다리면 될 것을.”고은서는 상심해 하는 여시은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우연이 아니라면 대체 왜 그런 거지?’“여시은 씨, 곽승재 비서를 하러 판주에 들어간 것도 곽승재한테 호감이 있어서죠?”고은서가 직설적으로 자신의 의문을 내뱉었다.여시은은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답했다.“확실히 능력이 뛰어나고 우리 아빠도 마음에 들어 하면서 우리
“지연아, 차라리 연예 기자를 하는 건 어때? 간호사보다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박지연은 자신을 향해 장난치는 고은서를 보며 전혀 화내지 않았다.“안 될 일은 없지. 그럼 우선 날 위해 엔터테인먼트 하나를 매수해주지 않을래? 그리고 저기요, 왜 제 물음을 피하시는 거죠?”박지연은 끝까지 캐물을 생각인 것 같았다.“아무렇지도 않거든. 됐지?”고은서가 그녀를 째려보며 답했다.“그만하고 나 손 아파.”그녀는 화제를 돌리면서 박지연을 향해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박지연은 눈이 휘둥그레서 황급히 어떻게 다친 거냐고 물었다.고은서는 그제야 밥 먹을 때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그러니까 그 인플루언서가 병원을 간 게 화상을 입어서란 말이지? 그래서 아까 놀라지도 않았던 거고.”그러나 박지연은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시은이라는 사람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어. 그런데 그럴 이유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어.”박지연은 이내 이미숙한테 연고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면서 그녀의 말에 답했다.“그게 왜 이해가 안 돼. 곽승재가 그 인플루언서랑 가까이 지내는 걸 알고 일부러 너를 이용해서 두 사람을 데어놓으려는 거겠지. 상대방한테 곽승재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라고 주제를 알라고 경고하는 거잖아. 그럼 그 인플루언서도 자연스럽게 널 질투하게 되는 거지. 그렇게 되면 여시은이 어부지리로 모든 이득을 갖게 되는 거고.”박지연의 설명을 들은 고은서는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음식을 주문할 때랑 밥을 먹으면서까지 여시은이 은근슬쩍 곽승재가 아직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확실히 느껴졌어. 특히 그 우유가 튕길 때 곽승재의 반응이 그 모든 게 사실이라고 증명하는 셈이 되었지. 만약 여시은이 일부러 마재경의 질투심을 일으키려 한 거라면 목적을 이루게 된 거네.’“그런데 여시은이 마음에 다른 여자를 둔 남자는 싫다고 했는데.”고은서는 아직도 어리둥절했다.‘곽승재를 좋아하지 않는 거라면 왜 자꾸 그를 시험하려 하는
“괜찮아. 급한 일도 없고 한데 그냥 쉴 겸 기다린 거야.”주인혁은 말하면서 아주 정교하게 포장된 선물 하나를 꺼내 고은서에게 건네주었다.“누나, 이거 내가 주는 선물이야. 개업한 거도 축하하고 해성 10대 청년상을 받은 것도 축하하는 의미에서 주는 선물. 비록 조금 늦었지만 양해 부탁해.”고은서는 선물을 받아 열어보았다.그 안에는 옥으로 된 평안 목걸이가 들어 있었는데 빨간 줄로 장식되어 있었고 불빛 아래에서 아주 영롱한 빛을 선보이고 있었다.축하 선물이라기엔 너무 귀중해 보였다.“촬영장 근처에 아주 영험한 절이 하나 있는데 누나를 위해 내가 가서 직접 받아온 거야.”주인혁이 약간 쑥스러워하며 말했다.“누나가 계속 평안하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서.”전에 매번 그와 연락할 때마다 고은서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아마 그 이유 때문에 나한테 이걸 주는 거겠지.’고은서는 그의 정성에 감동을 받았다.“고맙게 받을게. 너무 마음에 들어. 가자. 누나가 밥 사줄게.”그러나 주인혁은 갑자기 그녀의 손등에 있는 상처를 보고 다급해 하며 물었다.“누나, 손등은 왜 이래? 다쳤어?”어제 데인 상처에 연고를 발랐다고 하지만 하루아침에 다 나을 리가 없었다.물집은 또 어느새 터졌는지 주변이 새하얗게 되면서 물집 아래의 빨간 살이 드러났다.확실히 보는 사람이 놀랄만한 비주얼이었다.“괜찮아. 약을 바르면 돼.”고은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그럼 안 되지. 의사한테 가서 보여야지. 누나, 나랑 같이 병원 가자.”주인혁이 병원을 가자고 고집부렸다.고은서는 이까짓 상처로 병원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느꼈지만 태도가 결연한 주인혁을 보면서 밥 먹으러 가는 도중에 의원에 들러보려고 했다.주인혁이 워낙 인기가 많아서 행여나 기자들한테 찍힐까 봐 고은서는 기사한테 주차장에서 대기하라 하고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그러나 엘리베이터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송민준을 만났다.그는 캐쥬얼한 옷차림을 한 채 손에 간식거리를 들고 있었는데 송민아를 찾으
하강하는 엘리베이터 안에는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었다.고은서는 희망으로 가득한 주인혁의 두 눈을 마주 보았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라도 하면 그가 오랫동안 참아왔던 속마음을 토로할 것만 같았다.주인혁이 단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명확히 말한 적이 없었지만 고은서는 그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고은서는 항상 주인혁을 진취심이 있는 남동생으로 여기면서 그와 친구 사이로 지내는 반감하지 않았고 그가 큰 성과를 이룩하길 바랐다.그러나 그뿐이었다.더 이상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은서는 이내 그의 뜻을 못 알아들은 것처럼 연기했다.“서로 잘 맞는 여자친구를 찾아서 함께 노력해 나가면 좋지 않아?”주인혁은 입술을 달싹이더니 끝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두 사람은 주차장에 도착했다.대화도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차에 오른 후 고은서는 기사에게 근처에 있는 진료소로 가달라고 했다.당직을 서는 의사는 한 중년여성이었는데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의사는 그녀의 손등을 보자마자 자신의 몸을 아낄 줄 모른다고 피부가 이렇게 될 때까지 왜 처치하지 않았냐면서 고은서를 꾸짖었다.그리고 걱정하는 눈빛으로 고은서를 바라보고 있는 주인혁을 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청년, 여자친구를 어떻게 보살핀 거야?”“제 남동생이에요.”고은서가 다급하게 부인했다.“얘 탓이 아니에요. 아침저녁으로 연고도 바르고 해서 괜찮을 줄 알고 의사를 보러 가지 않았거든요.”“화상을 그렇게 쉽게 넘어가서는 안 돼. 처치 안 했다가 나중에 상처가 감염이라도 되면 어쩌려고.”의사는 고은서의 상처를 처치해주고 주인혁에게 당부했다.“돌아가서 누나를 잘 챙겨. 그래야 미래의 여자친구도 행복할 거 아니야.”주인혁은 얼굴이 새빨개서 고개를 끄덕였다.의사는 고은서를 위해 약을 발라주고 또 몇 가지 소염제와 바르는 약을 처방해주었다.마침 점심시간이라 약사들이 밥 먹으러 간 탓에
그는 창가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뭘 도와드릴까요?”여자 간호사가 얼굴이 새빨개서 입을 열었다.“필요 없어요.”곽승재가 담담하게 거절했다.여자 간호사가 떠난 후 고은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인혁이 잡고 있던 손을 거두어들였다.“대표님, 여기 계셨어요? 계속 주차장에서 기다렸잖아요.”바로 이때 마스크를 낀 마재경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그녀는 고은서를 보자마자 무언갈 떠올린 듯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듯이 곽승재의 팔짱 꼈다.“은서 씨, 저는 기자들한테 사진이 찍히면서 혹시라도 이상한 기사가 날까 봐 이 진료소로 온 건데 은서 씨는 왜 이곳에 있는 거죠?”마재경이 고은서를 노려보며 말했다.‘왜 하필 이곳에서까지 만나게 되는 거지?’고은서는 마재경의 말을 무시한 채 주인혁을 향해 말했다.“이만 가자.”주인혁도 눈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오른 후, 고은서는 완곡하게 주인혁의 고백을 거절했다.“미안. 난 그저 널 남동생과 좋은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어. 네 고백은 못 받아줄 것 같아.”주인혁은 실망하긴 했지만 이미 그가 예상했던 결과였다.그는 사실 오늘처럼 갑작스럽게 그녀에게 고백할 생각이 없었다.원래 같으면 미래에 더 강해져서 그녀 곁에 설 수 있는 자격이 있을 때 고백할 예정이었다.그러나 복도에 홀로 앉아 자신의 상처를 호 하고 부는 그녀의 뒷모습이 하도 가녀려 보여서 저도 모르게 고백을 하게 된 것이었다.“미안해, 누나. 내가 너무 급했네.”주인혁이 후회하며 사과했다.“그렇다고 날 멀리 밀어내진 말아줘. 나, 나...”그는 장난친 것뿐이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전에도 말했지만 넌 그저 내가 널 도와준 일로 나에게 환상이 생겨서 날 좋아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뿐이야.”고은서가 난감해하는 그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나도 이해해. 예전에 내가 그렇게 곽승재를 사랑하게 되었거든. 그런데 이혼하고 나니까 곽승재도 내가 생
여시은은 곽승재의 말을 듣자마자 순간 멍해졌다.그러나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곽 대표님, 어제 은서 씨랑 마재경 씨를 데게 한 건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진짜 그냥 실수로 그런 거예요. 대체 무슨 설명을 원하시는 거죠?”곽승재의 표정이 삽시에 어두워졌다.“여시은 씨, 총명하신 분이어서 직설적으로 말할게요. 어떤 일은 해도 괜찮고 어떤 일은 하면 안 되는지 이후부터 잘 구분해 가며 하시길 바랄게요.”“지금 제가 일부러 그런 거라고 단정 짓는 건가요?”여시은은 억울하다는 듯 씩씩거리며 반박하기 시작했다.“그럼 신고해서 경찰더러 저를 잡아가라고 하세요. 고의상해죄로 저를 고소하면 되겠네요.”여시은이 이렇게 강인하게 나올 줄은 생각 못 했던 곽승재는 눈살을 찌푸렸다.바로 이때 문 쪽에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곽 회장님과 여 대표님께서 오셨습니다.”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이 사무실 문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아버지, 여 대표님, 여긴 무슨 일로 오셨죠?”곽승재가 일어서서 두 사람을 마중했다.“금방 귀국하고 시은이 보러 들렀는데 마침 아래서 곽 회장님을 만나서 같이 올라왔어.”여재훈이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여시은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더 빨개지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고 억울하면서도 굴복하지 않는다는 듯 울락 말락 했다.“시은아, 왜 그러니? 승재가 널 괴롭혔어?”곽현수는 눈을 부릅뜨고 곽승재를 노려보면서 그를 비난했다.“시은이가 뭘 잘못했다고 애를 울리는 거야?”곽승재는 눈살을 찌푸린 채 덤덤하게 그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재훈은 여시은에게 다가가 물었다.“시은아, 무슨 일 있었어?”여시은은 눈물을 닦으면서 울분을 토했다.“방금 분쟁이 생겼는데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곽 대표님한테 화냈어요.”여재훈은 여시은의 이마를 콕 찍으면서 말했다.“겸손하게 성질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걸 배우겠다고 아빠랑 약속했잖아.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잊은 거야?”그러자 여시은이 콧방귀
지난번 숙모에게 가방을 선물했을 때, 숙모가 엄청나게 기뻐했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그래서 이번엔 삼촌에게도 뭔가를 사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은서는 노 사장님에게 코담배병을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다. 그리고 가족에게 드릴 선물로 하나 사고 싶다고 말을 덧붙였다.“이건 친구가 선물한 거라 어디서 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노 사장님은 미안한 듯 말했다.고은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그냥 예뻐서 한번 여쭤본 거예요. 나중에 백화점 가서 한번 골라볼게요.”“아가씨는 참 효심이 깊구먼.”노 사장님은 칭찬을 몇 마디 건넨 뒤, 주문한 메뉴를 주방으로 가져갔다.“은서 씨 아버님께서 코담배병을 좋아하시나요? 선물하시려고요?”여재훈이 부드럽게 물었다.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전 아버지가 없어요. 삼촌께 드리려는 거예요.”여재훈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그는 고은서를 몇 번밖에 만나지 못했기에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들었다.“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여재훈은 곧바로 사과했다.고은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괜찮아요. 저희 가족끼리도 잘 지내고 있어요.”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여재훈은 고은서의 그 미소는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때 여재훈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전화번호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시은아, 왜 그래... 주사 맞는 게 당연히 좀 아프지. 하지만 주사를 안 맞으면 어떻게 낫겠어... 알겠으니깐 떼쓰지 말고, 의사 말 잘 들어.”전화를 끊고 나서 여재훈은 고은서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시은이가 아픈데 주사 맞기 싫다고 하네요.”고은서는 여시은의 이름에 반응이 컸다. 예전에 여시은에게 학대받다 죽은 쿠아가 떠올랐다. 그 기억 때문에 속이 불쾌해지고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그녀는 말없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여재훈은 고은서의 반감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그는 조심
여재훈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여시은이 아픈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밖의 여론이 여시은에게 불리해서 고은서를 만나고 싶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요 며칠, 인터넷에서는 여시은과 관련된 뉴스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은서가 KK한테 도움을 요청한 것 외에도, 아마 곽승재도 뒤에서 힘을 써준 것 같았다.“원래 연회 다음 날에 시은이를 데리고 직접 사과드리려고 했는데, 며칠간 일이 좀 많아서 오늘로 미뤄졌어요.”여재훈은 이어 말했다.“오늘 아침에 갑자기 시은이가 열이 나서, 제가 혼자 찾아오게 됐습니다.”“은서 씨, 지난 일은 전부 시은이의 잘못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여재훈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고은서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재훈 씨의 사과는 저한테 너무 과분해요. 다만 저를 나쁜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고은서가 지난번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여재훈은 마음이 더욱 불편해져났다.“제가 도우미와 시은이의 말만 믿었네요. 시은이에게는 그 일에 대해 이미 훈계했고, 요 며칠 집에서 반성하고 있습니다.”고은서는 여시은이 그저 여재훈에게 보여주기 위해 반성하는 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여재훈은 여시은을 여전히 굳게 믿고 있었고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에도 크게 실망하지 않은 듯했다.고은서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운전 중이던 여재훈도 잠시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한적한 곳에 있는 개인 요리 식당에 도착했다.그 식당은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엄청 좋았다.정원에는 다양한 희귀한 꽃들과 식물들이 놓여 있었고 작은 인공 폭포와 휴식용 테이블과 의자들도 마련되어 있었다.입구 쪽의 돌 테이블 위에는 하얀색의 통통한 고양이 두 마리가 게으르게 햇볕을 쬐고 있었다.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니 고은서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송민아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저번에 네가 너무 진지하게 말하길래, 나 진짜 겁먹었잖아.”고은서가 다시 한번 웃으며 잡담하듯 물었다.“민아야, 너 예전에 말했잖아. 너랑 네 오빠는 엄마가 다르다고. 그럼 네 아빠랑 네 오빠 엄마는 이혼하신 거야?”송민아는 사무실 밖을 슬쩍 확인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말했다.“몰래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우리 오빠 엄마는 아빠랑 혼인신고도 안 했대. 둘이 약혼까진 했는데,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오빠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길 거절했대.”고은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설마 송민준의 엄마도 결혼 안 하고 그를 낳은 걸까?’지난번 고은서가 송민준과 함께 바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가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송민준은 어릴 때부터 보호만 받고 자라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고 고은서한테 말한 기억이 있다.그때 그의 말투는 평소의 부드러운 말투가 아니라 약간의 조롱 섞인 느낌이었다. 마치 그의 어린 시절이 순탄치 않았다는 듯이.‘혹시 송민준의 어머니가 결혼도 안 하고 그를 낳아서 상처를 받은 탓일까?’“은서야, 이건 진짜 너한테만 말한 거니까, 절대 우리 오빠한테 묻지 마!”송민아가 신신당부하면서 말했다.“오빠는 이 얘기를 누구한테도 한 적 없어. 분명히 신경 쓰고 있다는 거야. 우리 엄마가 말하는 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더래.”“오빠는 혼자 살긴 해도 우리 엄마한테는 되게 예의 바른 거 있지. 나도 이 비밀 듣기 전까진 우리 둘이 같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줄 알았어.”고은서는 절대 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송민준에게 묻지도 않겠다고 약속했다.“민아야, 혹시 너희 엄마가 네 아빠의 다른 연애 상대에 대해 말한 적 있어?”고은서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묻는 성격이었다.혹시라도 송민아의 어머니가 송민준 부모의 관계에 끼어든 거라면 송민아의 어머니가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냥 어른들 옛날 연애사에 호기심이 생긴 거야. 만약 불쾌했
송민준의 단어 사용은 꽤 신박했다.그는 “어젯밤 그 일은, 네가 의도한 거야?”라고 물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가 아니라.그러니까 송민준의 말뜻은 그가 어젯밤 일이 여시은을 고의로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고은서의 계획이었음을 알고 있다는 건가?하지만 그 테라스는 비교적 한적했고 로마식 기둥이 시야를 가려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잘 알아채기 어려운 장소였다.고은서가 로비에서 넘어졌을 때 여시은은 빈 와인잔을 들고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이 상황을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떻게 송민준은 고은서가 여시은을 속이기 위해 고육지계를 쓴 걸 알아챈 걸까?고은서는 아예 직설적으로 물었다.“민준 오빠, 왜 그렇게 물어보는 거야? 설마 어젯밤 내가 넘어졌던 게 자작극이라고 생각한 거야?”그 말을 듣자 송민준은 웃으며 물었다.“은서야, 그런 뜻이 아니야. 난 그냥 그 농장 영상 말이야, 그걸 일부러 어젯밤 그 시점에 터뜨린 건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알고 보니 송민준은 농장 영상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그날 송민준의 컴퓨터에서 영상을 확인하고 난 후, 송민아가 고은서에게 이 영상을 바로 여재훈에게 전달할 거냐고 물었을 때, 고은서는 송민준을 경계해 일부러 연회 이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었다.하지만 실제로는 연회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영상을 공개해 버렸다.송민준이 의심하는 것도 정상이다.“맞아.”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원래는 어젯밤이 지나고 여재훈 씨를 따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 상황에서는 여시은이 그런 행동을 할 만한 동기를 증명하려면 그걸 꺼낼 수밖에 없었어.”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다른 뜻은 없었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네 선택이 맞아, 난 항상 널 지지할 거니깐.”그의 표정을 본 고은서는 확신했다. 송민준은 고은서가 아직 그를 경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그의 성격상, 어젯밤 그녀가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했을 테니까. 하지만 송민준
박지연은 계속해서 불만을 터뜨렸다.“내가 보기엔 여시은은 태생이 못돼먹었어!”“이번에 그렇게 크게 당했으니 더더욱 널 원망할 거야. 너 조심 좀 해.”박지연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각을 세우기로 마음먹었기에 여시은과 평화롭게 지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앞으로는 여시은을 더 철저히 경계할 것이다.“듣자 하니 곽승재가 내내 널 감싸줬다며? 너한테 점점 마음이 가는 모양이야.”박지연이 코웃음을 쳤다.어젯밤 곽승재가 고은서를 계속 도와줬던 건 사실이었다. 증거를 공개하자고 제안한것도 곽승재의 생각이었고 마지막에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곽승재가 고은서에게 큰 도움을 준 셈이었다.하지만 고은서는 곽승재에 대한 이야기를 박지연과 깊이 나누지 않았다.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 박지연이 고은서에게 뜬금없는 소문 하나를 전했다.“우리 과장님한테서 들었는데, 어제 혜린 씨가 다니는 병원에 조 여사님이 찾아가서 난리를 쳤대. 혜린 씨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다른 남자랑 팔짱 낀 사진까지 들고 와서 공개하면서 혜린 씨랑 그 자리에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움 났대!”고은서는 지난번 소동 이후 손자를 중시하는 조수연이 한동안은 조용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또 난리를 친 거였다. 조수연의 전투력은 엄청 대단했다.“아니, 그러다 혜린 씨 혹시라도 애를 지우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고은서가 물었다.박지연은 말했다.“조 여사님 말로는 혜린 씨 뱃속 애가 자기 아들 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해서 혜린 씨를 끌고 가서 친자 확인하자고 했대. 그래서 둘이 몸싸움까지 벌어져서 이미지도 최악이라 혜린 씨는 한 달 정직당했어.”“혜린 씨 배속에 애가 온승준 씨 애가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 집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거야? 그냥 진짜 애 아빠랑 결혼하면 될걸...”고은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소문엔 그 남자가 유부남에 애까지 있다고 하더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냥 과장님이 흘린 얘기야.”
여시은은 여전히 여재훈의 다리를 붙잡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그럼, 아빠가 생각하시는 해결 방법은 뭐예요?”여재훈은 여시은에게 홍보팀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공개 사과하고, 개인적으로 고은서에게 직접 진심으로 사과한 뒤 집에서 2주 동안 자숙하라고 말했다.“제 회사는 아직 개업식도 제대로 안 했는데 공개 사과를 하라뇨? 그럼 모든 사람들이 저를 웃음거리로 볼 거 아니에요!”여시은은 눈이 퉁퉁 부은 채 애원했다.“아빠, 저 은서한테 개인적으로 사과만 하면 안 돼요? 저도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사람들을 이끌기 힘든데, 공개적으로 사과하면 앞으로 누가 저를 믿고 따르겠어요?”“안 된다.” 여재훈은 단호하게 말했다.“이 일은 이미 파장이 커졌고 많은 사람들이 너를 지켜보고 있어. 그러니 모든 사람에게 확실하게 해명해야 한다.”“시은아, 잘못을 저지른 건 무서운 일이 아니야. 진심으로 뉘우치고 성실하게 사과하면 은서 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너에게 다시 기회를 줄 거다.”여재훈은 계속해서 말했다.“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네가 잘못했는데 내가 덮어주면 그건 너를 망치는 거야. 그러니까 이 일은 이렇게 결정된 거다!”여시은은 그 말을 듣자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고은서를 그저 연못에 좀 빠지게 했을 뿐인데 이게 뭐 그렇게 큰일이라고 이렇게까지 일을 키운단 말인가?’‘공개 사과라니, 이제 예전처럼 모두에게 존경받고 칭찬받던 모습은 끝이라는 거잖아.비록 인터넷의 영상은 지워지더라도 사람들이 나에 대한 나쁜 인상은 지워지지 않을 거란 말이야!’오늘 밤 그렇게 많은 부유층과 정재계 인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녀는 그들에게 최악의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해성에서 쌓아온 그녀의 완벽한 이미지가 단번에 무너진 셈이다.예전엔 그녀가 울기만 하면 여재훈은 안쓰러워하며 뭐든지 다 용서해 줬었다.‘지금은 무릎까지 꿇었는데도 아빠는 고은서 때문에 자신의 딸을 벌하려 한다니, 정말 나를 딸로 생각하긴 하는 걸까?’
여시은은 그 말을 듣자 눈이 시뻘게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아빠, 제가 한 게 아니라니까요! 고은서가 일부러 저를 함정에 빠뜨린 거예요. 왜 저를 믿지 않으세요!”“시은아!”여재훈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난생처음으로 이토록 차가운 눈빛으로 딸에게 화를 냈다.“너는 어쩌다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 됐니!”“내가 사람을 시켜서 확인해 봤어. 연회장 CCTV 꺼놓은 거, 그거 네가 시킨 거더라.”여재훈은 딸을 억울하게 만들까 걱정돼 CCTV 관련 내용을 직접 조사했다.그런데 정말로 여시은이 꺼놓았던 것이었다.“네가 정말 은서 씨를 해치려는 의도가 없었다면 왜 CCTV를 미리 꺼놓은 거냐?”여재훈은 냉정한 태도로 물었다.여시은은 자신이 고은서의 계략에 걸려든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고은서는 일부러 도발적인 눈빛으로 여시은을 자극했고 곧바로 테라스로 이끌어냈던 것이다. 모두 여시은한테 엿 먹이려는 행동이었다!여시은은 고은서가 쿠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격동적으로 행동해 자신을 밀칠 거라 확신했었다.왜냐하면 고은서는 지난번엔 쿠아를 다치게 한 일로도 크게 충격을 받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엔 반전이 생겼다.고은서는 오히려 침착하게 반격했고 지난번 농장에서의 ‘물에 빠진 사건’ 증거까지 들고나왔다.일이 이렇게 커져 버린 이상 여시은은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걸 알았다.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여재훈을 향해 소리쳤다.“맞아요! 저 고은서가 너무 꼴 보기 싫었어요! 왜 아빠는 맨날 걔만 칭찬하세요? 이러니깐 제가 질투 나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고은서한테 꼽 주고 싶었어요!”“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이에요. 전 잘못한 거 없어요! 후회도 안 해요!”“너!”여재훈은 손을 번쩍 들어 여시은의 뺨을 때리려 했지만, 그녀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보고는 차마 때릴 수가 없었다.“시은아, 아빠가 평소에 너를 어떻게 가르쳤니? 사람은 자기 양심에 떳떳해야 하고 올곧게 살아야 한다고 했잖아! 근데 너는 어떻게 질투심에 눈이
이미숙은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바로 여시은이 고은서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겨 연못 가까이로 끌어당기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그 영상은 누군가가 휴대전화로 촬영해 올린 것 같았고 화질이 너무 좋은 건 아니지만 전반 상황을 알아보는 데에는 충분했다.영상의 끝에는 고은서와 여시은의 얼굴을 비춘 장면도 담겨 있었다.다소 초라해진 고은서는 곽승재의 부축을 받으며 옆에 서 있었다. 여시은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빛엔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했다.그 와중에 영상의 제목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재벌가 아가씨, 두 얼굴의 진실!]“사모님, 저 여자는 어쩜 저리 독하대요. 이렇게 심하게 괴롭히다니. 누가 폭로해 줘서 다행이지! 이제 세상 사람들 다 그 여자 피해서 다니겠어요!”이미숙은 화가 난 듯 말했다.고은서는 이번 일이 오래 퍼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시은 뒤에는 여재훈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 일로 여시은이 보기 좋게 망신을 당했고, 여재훈 역시 자신의 딸이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테니, 이번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은서는 이미숙의 휴대전화 영상에 대뜸 ‘좋아요'를 눌렀다.한편, 여씨 가문에서.여시은 역시 유튜브 영상을 확인했다. 분노에 찬 그녀는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던졌다.밖에 서 있는 박미화가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다.“시은 아가씨, 회장님께서 지금 바로 서재로 오시래요. 할 말씀이 있으시답니다.”이번이 박미화가 세 번째로 말을 전하러 온 것이었다.여시은은 곧바로 얼굴에 드리워진 분노와 짜증을 숨기고는 일부러 슬프고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방문을 열었다.박미화는 방안에서 반응이 없자 방문을 열려고 하였다. 때마침 여시은이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급히 손을 거두며 사과했다.여시은은 박미화의 손을 움켜쥐었다. 조금 전에 분노로 인해 물어뜯은 날카로운 손톱이 그녀의 살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여시은은 울먹이는 말투로 물었다.“미화 언니, 아빠가 나한테 화 많이 나신 거야? 나 어떻게 해야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기사가 차를 라이트문 아파트 앞에 세웠다.고은서와 곽승재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고은서는 샤워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직행했고 곽승재는 거실에 남았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고은서는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곽승재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왜 또 왔어? 할 말 있어?”고은서가 물었다.곽승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논의할 게 있어서. 그전에 이 콜라 생강차부터 마셔.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거야.”“사모님, 콜라 생강차는 감기 예방에도 효과적이거든요. 어서 드세요!”이미숙이 차를 가져오며 말했다.고은서는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잔을 들어 올리더니 이상한 듯 물었다.“아줌마, 제가 방금 들어온 걸 보지도 못하셨을 텐데 어떻게 제가 감기 걸릴 줄 아시고 미리 차를 준비하셨어요?”이미숙의 눈가에는 잠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곽승재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내가 알려줬어. 일단 마셔.”고은서는 고개를 숙여 생강차를 내려다 볼뿐 이미숙의 표정 변화를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물론 곽승재의 눈에 비친 기대감도 보지 못했다.생강차의 냄새를 맡아보니 생강 향이 꽤 진했다.고은서는 생강차를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콜라의 단맛과 생강의 톡 쏘는 맛이 어우러져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맛이 어때요?”이미숙이 물었다.“좋네요. 그런데 오늘은 생강을 좀 많이 넣으신 것 같네요. 예전에 만드신 것보다 더 매운데요.”이미숙은 잠시 망설이다가 급히 대답했다.“생강 양을 조절하지 못했네요. 주의할게요.”고은서는 더는 따지지 않고 다시 마시려던 참이었는데 곽승재가 말을 건넸다.“맛이 별로면 안 마셔도 돼.”고은서는 그를 흘겨보았다.“누가 맛없다고 했어? 아줌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건데 끝까지 마셔야지.”“사모님, 도련님과 얘기 나누세요. 저는 할 일이 남아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이미숙은 두 사람의 언쟁을 피하려는 듯 급히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