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에 성연의 생일날이 다가왔다.안금여는 퇴원했다. 옷장 안에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 치마 아래에 금박이 붙은 자주색 한복을 꺼내 입었다. 병원에서 휴양하고 있는 동안 많이 좋아진 혈색 탓에 자주색 한복을 입으니 더 품격 있고 우아해 보였다.상당히 정성 들여 곱게 치장했다.고택 내부의 대형 홀을 개방하여 연회장으로 꾸몄다. 북성 거물들은 모두 연회에 초대했다.초대받은 이들 모두 북성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었다.고급세단들이 길가에서부터 고택 입구까지 줄지어 늘어섰다.고택 뒤를 둘러싼 일대 전체가 강씨 가문 소유였다.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주차장, 개인 영역을 배치할 수는 없었다. 주변이 모두 개인 소유이니 마음대로 주차한들 아무도 관여할 수 없었다.강씨 가문의 고택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곳으로, 원래는 고풍스러운 한옥 저택이었다. 이후 리모델링을 통해 동서양의 건축 스타일을 결합시켜 아름다운 오늘의 고택이 된 것이고. 멀리서 바라보면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눈이 즐거워졌다.강씨 집안은 중요한 행사가 있을 경우에만 초대장을 보내 사람들을 고택으로 초대했다.그만큼 안금여가 성연의 성인식을 얼마나 중요시 하는지 알 수 있었다.연회장은 운경이 직접 꾸몄다.매일 시간을 내서 진행 상황을 직접 확인하며.안금여가 계속 신경 쓰라 다그치기도 했지만 운경 자신도 한 점 실수 없이 성연의 성인식을 준비하고 싶었다.어쨌든 성인식은 한 아이의 일생에 정말 중요한 날이기도 하니까.성연이 치렁치렁한 걸 싫어하지 않을까 싶은 운경이 사진 견본을 안금여에게 보여주며 상의하기도 했다.안금여는 소녀라면 당연히 몽환적인 핑크색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운경에게 연회장을 온통 핑크색으로 장식하라 일렀다.하지만 운경의 의견은 정반대였다.성연은 평범한 여자애들과 달리 핑크색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운경과 안금여의 의견이 엇갈리며 이 때문에 하마터면 싸울 뻔하기도 했다.물론 안금여가 일방적으로 화내는 것이었지만.
불현듯 어떤 예감이 든 성연이 입을 열어 뭔가 물어보기도 전에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등이 우르르 달려들어 성연을 끌어다 의자에 앉혔다.얼른 일어나려 하는데 큼직한 손이 성연의 작은 어깨를 덮었다.“왜 일어나?”이어 무진의 음성이 들리자 성연이 입을 삐죽였다.“이거 뭐예요?”“오늘 네 열 여덟 성인식이 있을 거야. 스타일링 끝나면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자.”담담하게 들리는 음성에서 희미한 웃음기가 뭍은 듯하다고 느껴졌다.성연의 예쁜 얼굴이 온통 짜증났음을 감추지 않았다.“필요 없다고 했잖아요?”“할머니 의견이야. 나랑은 상관없다고.” 물론 무진은 막지 않았지만,지금 완전히 오리발 내미는 격이었다.무진의 말에 성연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두 거절했을 테지만, 할머니 안금여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으니까.할머니가 좋은 마음으로 하시는 거니까.“이 스타일리스트들이 알아서 해 줄 거야. 일이 있으면 전화해. 밖에 나가 있을게.” 무진이 밖으로 나갔다.성연은 의자에 앉아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얼굴을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작은 사모님 피부가 정말 좋으시네요. 베이스는 가볍게 해도 되겠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성연의 깨끗한 피부를 보고 부러워했다.메이크업을 업으로 하는 프로들이니 얼마나 다양한 피부를 봐 왔겠는가.대부분 화장을 지우고 나면 피부가 엉망이었다. 그런데 성연은 모두가 꿈꾸는 그런 피부를 가진 것이다.한 번 터치했을 뿐인데 감촉이 하도 좋아 손에서 떼고 싶지가 않았다.메이크업 팀은 오기 전에 이미 성연의 신분에 대해 들었다.성연에게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당부를 모두 들었고.저택에서 열리고 있는 연회의 성대함을 그들도 눈으로 본 바였다.그러니 성연이 얼마나 아낌을 받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터. 성연의 얼굴에서 손을 놀리는 하나하나가 무척 조심스러웠다.하지만 성연의 나이가 이렇게 어리다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작은 사모님, 평소에 어떻
무료하게 의자에 기대 앉은 성연은 요구에 따라 눈을 감았다, 떴다가 또 입술을 오므렸다.아직 좀 더 자야 정신이 맑아질 터인데, 지금 자신의 주변에서 왔다갔다하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잘 수도 없었다.생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는 성연이었다. 정말 이런 거창함은 원하지 않았다.‘성인이면 성인이지, 그냥 생일 지내듯 하면 안되나?’그러나 안금여가 자신을 위해 이렇듯 성대한 성인식을 마음대로 준비해 주니, 자신이 이 집에서 소중한 존재구나, 라는 느낌도 들었다.안금여는 정말로 송성연 자신을 마음에 담았다.이미 성연을 위해 여러 벌의 예복을 준비한 스타일리스트는 성연의 화장이 끝나자 예복들을 옷장에서 모두 꺼내 보였다.“작은 사모님,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드세요.”다양한 색상의 예복들이 대충 열 벌 정도 되어 보였다.가까이 걸어간 성연이 예복을 만져 보았다.옷의 촉감이 무척 좋은 것이 모두 수제품일 터.바느질 처리와 디자인 모두 최상급으로 강씨 집안 가족들이 무척 신경 썼음이 분명했다.안금여의 각별한 마음을 헛되게 할 수 없어서 성연은 예복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았다.마지막으로 은백색의 예복을 골라 피팅 룸 안에 들어가 갈아입었다.그러자 스타일리스트의 눈이 놀라움으로 크게 벌어졌다. 저도 모르게 칭찬이 나왔다.“작은 사모님, 안목이 정말 뛰어나시네요.”성연이 고른 이 예복은 의심할 여지없이 성연에게 가장 잘 어울렸다.“감사합니다.” 감사인사를 빼놓지 않은 성연이 다시 의자에 앉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헤어스타일리스트가 다가와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헤어스타일링을 하는 동안은 얼굴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휴대폰을 가지고 놀았다.강씨 집안이 부른 스타일링 팀이니 함부로 보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성연의 새카만 머리카락은 실크처럼 매끄럽고 광택이 흐르며 부드러웠다.와, 이런 머리카락을 스타일링 할 수 있다니, 라며 스타일리스트가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나중에 다시 헤어스타일 현장으로 돌아가게 되면 장차 일
전화를 끊은 후 밖으로 나간 성연이 의자에 앉아 호기심에 다이버에 들어갔다.헤드라인을 장식한 건 한 동영상이었다. 호기심에 동영상을 켰다.세계적으로 이름난 영화배우 소지한이 카메라 앞에서 진지한 모습으로 말하고 있었다.“오늘, 중요한 사람의 생일입니다. 여기 마이크를 빌어 그녀에게 생일 축하를 전하고 싶습니다.”소지헌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 인물이었다.데뷔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각종 유명 브랜드의 광고를 휩쓸었다.영상이든 광고든 그가 찍은 것들은 하나같이 뛰어났고, 출연한 영화들은 모두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했다.그가 출연한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은 빈자리 없이 꽉 찼으며 때로 표를 사지 못할 때도 있었다.소지한은 또 고아하기로도 유명했다. 대표적인 타락의 온상지, 연예계에서도 그 어떤 스캔들 하나 없었다.그래서 팬들로부터 ‘금욕의 남신’으로 불리기도 했다.화면에 보이는 잘 생긴 남자를 보며 성연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이때 옆에서 마지막 스타일링 작업을 마무리하던 스타일리스트가 휴대폰 화면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궁금해하며 물었다.“작은 사모님, 혹시 소지한 씨 좋아하세요?”성연이 멀뚱멀뚱한 얼굴로 쳐다보았다.“뭐 그런 대로요. 그냥 클릭하니까 보이네요.”“아, 그런가요?” 스타일리스트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의 스타일링을 모두 마치자 왔을 때처럼 모든 사람들이 바로 분장실을 나갔다.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성연은 휴대폰 화면에 뜬 인터뷰 영상을 계속 보았다.평소 소지한은 친근해 보이는 이미지이지만, 사실 어느 누구도 그의 마음에 들어가지 못했다.그 또한 누구에게도 호감을 드러내지 않았고.그런데 지금 이런 폭탄 같은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야?’‘누가 그렇게 운이 좋은 거야?’‘소지한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관계가 나쁘지 않을 텐데.’큰 뉴스거리를 잡았다고 생각한 기자가 마이크를 들고 얼른 물었다.“소지한 씨가 언급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유럽 굴지의 총재 그래함은 이름 없는 별 하나를 사서 어떤 신비에 싸인 사람의 이름으로 명명하고는 또 공중에 드론을 띄워 ‘생일축하’라는 글자를 그렸다.세계적인 거물 심우재는 누군가를 위해 거액을 들여 산 주식으로 하룻밤만에 1억을 벌었고 그 돈을 전부 그 누군가의 계좌에 넣었다.남아프리카의 유명한 다이아몬드상인은 얼마전 좋아하는 사람에게 생일선물을 하기 위해 아주 진귀한 핑크 다이아몬드를 채굴했다.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루카는 좋아하는 여성에게 주기 위해 십 억 상당의 바이올린을 손에 넣었다.미국 내 유명한 연구팀 또한 그 사람의 이름을 딴 프로젝트를 바로 오늘 날짜로 시작했다. 예쁜 소녀에게 주는 생일 축하 선물이라며…….이외에도 헤드라인을 차지한 많은 사례들이 아래에 계속 이어졌다.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그러나 성연은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열어 보았다.이게 그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걸 아니까.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쟁쟁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거물들이었다.돈과 힘이라면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사람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평소에는 다들 냉담하기 그지없는 이들이라 이런 퍼포먼스를 하며 자신들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물론 그들에게 그런 것을 요구할 용기 있는 사람도 없지만.예전에 영국 여왕이 그 중 한 사람을 청한 적도 있었지만 움직이지 못했었다.평소 언론에서 포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모두 이렇듯 큰 액션을 취하고 있으니, 이로 야기된 센세이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이런 소식이 전해진 날, 전 세계 인터넷이 모두 마비되었다.PC 뒤에 앉은 이들은 모두 앞다투어 기사를 만들어 올리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이 소란 속의 인물들은 당연히 돈만 가진 것이 아니라 비주얼도 끝내 주었다.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많은 팬들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아래에 있는 팬들의 댓글은 거의 대동소이 했다.다들 이 거물급 인사들에게 여자친구가 있는지 물어 댔다.이 인사들이 이처럼 목소리를 낼 정도라면
인터넷상에 오른 기사들은 서로 다른 채널에서, 또 서로 다른 분야에서 매일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어떤 기사는 외국 언론에 실린 것이다.하지만 성연의 관심 목록에 모두 들어가 있었다.클릭하면 모두 붉은 폭죽이 몇 차례나 터지는 것이 무척이나 눈에 띈다.기사 몇 개를 찾아보던 성연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이 사람들, 정말 돈 많은 걸 이렇게 자랑해?’똑똑똑.바로 그때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성연은 이 기사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자신이 직접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머릿속에 모두 담았으니까.화면을 위로 터치해서 열려 있던 화면을 지웠다.그리고 대답했다. “들어오세요.”그때 문밖에서 여자 고용인이 기웃거리며 모습을 보였다.실내를 한 차례 빙 둘러본 후에 마지막으로 시선을 성연에게 고정했다.침만 꼴깍 삼키며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성연이 지금 강씨 집안 회장님의 애정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다.‘부자들은 함께 지내기 어렵다고 하던데.’‘만일 내 말이 이 사람 기분을 나쁘게 하면 어떡하지?’고용인이 입을 오므린 채 입을 열지 않았다.멍하니 입을 열지 않는 고용인을 본 성연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무슨 일이에요?”마치 자신을 무서운 호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는 고용인의 표정아 보였다.자신의 얼굴을 더듬어 보던 성연은 좀 의아했다.‘나 그렇게 무섭지 않은데?’성연이 먼저 입을 여는 것을 본 고용인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작은 사모님, 회장님께서 보내셨습니다. 배고프지 않으신 지 물어보라고요. 뭐 드시고 싶은 거라도 있으세요?”‘지금 여기서?’성연은 자신의 귀에 문제가 있나, 하고 의심했다.‘겨우 이런 작은 질문인데, 방금 저 고용인은 왜 말을 못한 거야?’그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이곳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은 모두 소심할 정도로 신중했다.여태껏 다른 사람을 난처하게 해본 적이 없는 성연이다.고용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시간이 쫓기다시피 무진
찰칵-성연의 음성이 흘러나오자마자 누군가 문을 열었다.성연이 고개를 돌려 무진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무진은 늘 그렇듯 블랙 슈트 차림이었다. 다만 오늘 착용한 슈트에는 어두운 색상의 장미 문양이 들어가 은근히 화려하고 고귀해 보였다.휴대폰을 거둔 성연이 팔짱을 끼고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에요?”“뭘 그렇게 보고 있어? 활짝 웃고 있던데?” 무진이 성연의 휴대폰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성연이 어깨를 으쓱하며 들어올렸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친구가 생일 선물을 보내서 감사인사를 하고 있었어요.”생각지도 않게 거의 매년 이들은 자신에게 생일 선물을 보내고 있다.성인식이 있어서인지 올해는 다들 유난히 큰 선물들을 보냈다.다행히도 자신을 생각해서 신분을 드러내지는 않았다.그렇지 않았다면, 한 명 한 명 불러서 일일이 수습해야 했을 터였다.“네…… 친구?” 무진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그가 기억하기로 성연은 학교든 집이든 대부분 혼자 왔다갔다했다.누구와 가깝게 지내는 걸 여태 본 적이 없었다.‘혹시 시골마을에 있는 친구인가?’‘뭐 그럴 수도 있지.’무진의 말투가 무척이나 귀에 거슬린 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그건 무슨 말투예요? 나는 친구도 못 가져요?”“그런 뜻이 아니었어. 얼른 준비를 해. 시간이 늦었어. 벌써 음식을 먹었어?” 무진이 구석에 놓인 그릇과 쟁반을 보았다.“먹었어요. 준비할 거 없어요. 스타일링도 다 끝났는 걸요.” 성연이 일어서서 무진 앞에서 한 바퀴 돌아보았다.이제서야 성연의 전체 모습을 보게 된 무진이었다.허리가 잘록 들어간 디자인의 은백색 드레스는 마치 한 손에 잡힐 듯한 성연의 가녀린 허리를 한껏 강조하고 있었다.은색 드레스에 성연의 피부는 투명한 광택이 흐르는 듯 더 희고 깨끗해 보였다.무진은 성연의 몸매가 좋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평소 성연은 주로 루즈한 스타일의 옷차림이라 완벽한 S라인을 잘 드러나지 않았다.하지만 이 순간, 성연이 이제 더 이상 어린 여자아이가 아니라
성연과 무진의 외모는 북성 시 전체, 아니 S국 전체에서 손에 꼽을 만큼 뛰어났다.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웠다.그래서 두 사람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놀라움의 탄성이 들렸다.침착하면서도 조금도 눌리지 않는 듯한 깔끔한 성연의 행동은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말하지 않으면 성연이 시골 출신이라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아래로 내려가자 무진은 성연을 데리고 다니며 손님들에게 인사하며 응대했다.거의 대부분이 강씨 집안과 우호협력 관계의 파트너들과 일부 강씨 집안 방계 혈족들이었다.“성연아, 이 분은 진 어르신이셔. 진씨 집안과 우리 강씨 집안은 대대로 교분을 나누는 관계지.” 무진이 한복을 차려 입은 한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지팡이를 짚고 있는 진 어르신은 꽤나 깐깐해 보이는 인상이었다.하지만 성연을 보자 미소를 지으며 아주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이 아이가 바로 내 할머니가 그리도 칭찬하는 아이인 게야? 확실히 괜찮아 보이는구나.”안금여의 안목이 매우 높다는 것을 오랜 지기들은 잘 알고 있었다.안금여의 눈에 아무나 쉽게 들지 못했다.가끔 사업 상 만날 때마다 안금여가 한 두 마디 언급하였는데,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칭찬 일색이었다.그래서 진작부터 만나보고 싶었던 진 어르신이었는데, 오늘 보니 과연 좋아 보였다.칭찬에 얼굴이 붉어진 성연은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지도 높이지도 않으며 적당한 태도를 보이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어르신. 모두 과찬이십니다.”보면 볼수록 더 마음에 드는 듯 진 어르신이 웃으며 말했다.“무진의 성격은 좀 너무 무거워. 이 아이, 꽤나 영리해 보이는 게 무진과 서로 잘 맞출 수 있을 듯하구나. 네 할머니가 인연을 잘 찾아 맺어주었어. 두 사람 아주 잘 어울린다.”성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무진과의 관계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장차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하지만 할머니가 이미 모든 걸 다 말씀하신 듯했다.진 어르신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구조를 요청하는 눈빛으로 무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