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여보세요? 당신의 인생을 훔친 사람, 바로 나예요.” 전화 한 통으로 사람을 울리고, 목소리 하나로 세상을 속였던 여자 - 린자오밍. 그녀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전설이자, 죽은 언니의 복수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땅끝마을 해남, 꽃집 ‘린’을 열고 평범한 얼굴로 살아가는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 전직 국정원 요원, 강혁. 그는 과거의 작전에서 그녀의 언니를 잃게 만든 남자였다. 전화선 끝에 남겨진 거짓말, 그리고 그 거짓 속에서 피어난 진짜 사랑. “당신 목소리… 어디선가 들은 것 같네요.” 사랑이었을까, 복수였을까. 그녀의 이름은 김수진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기억한 건… 린자오밍이었다.
View More그림자의 얼굴이 옆으로 찢기듯 일그러졌다가, 다시 수민의 얼굴선으로 돌아오는 그 기괴한 ‘반복’에 수진은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그녀는 오히려 앞으로 걸어가며, 발걸음 하나하나에 긴장과 슬픔이 동시에 섞인 감정을 다잡아 올렸다.강혁은 그 모습을 막으려 했지만, 수진이 살짝 뒤로 손을 들어올려 그를 멈춰 세웠다.“이건 내가 해야 해.”그녀의 낮은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고,자신이 평생 피해 다니던 그림자와 마주설 때의 그 단단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그림자는 수진이 다가오는 순간,마치 ‘입 모양만 흉내 내는’움직임으로 또다시 입술을 들썩였다.“…진… 아…”그 발음은 형태만 있었고, 온기란 없었다.그러나 모양 자체는 놀랍도록 익숙했다.언니가 어린 수진에게 ‘괜찮아, 아가’라고 말하던 그 입술의 움직임과 같았기 때문이었다.수진의 가슴이 한순간 비틀렸고, 숨이 깊이 흔들렸다.그러나 그녀는 단 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다가갔다.그림자와의 거리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자그 기묘한 존재가 마치 반사적으로 고개를 기울였다.그리고 그 순간, 수진은 아주 낮고,자기 자신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흑거미… 너 진짜 이렇게까지 했구나.”그녀의 눈에 떠오른 건 분노가 아니라, 배신에 가까운 ‘비참함’이었다.“혁 씨.”수진이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흑거미가 사람을 부숴버릴 때 가장 먼저 노리는 게 뭔 줄 알아?”강혁은 숨을 고르며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정체성.”“맞아.”수진은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사람의 얼굴을 쓰고, 그 사람의 말투를 흉내 내고, 그 사람의 기억에서 뽑아낸 표정을 모방해.그리고 그걸 ‘진짜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서…네가 네 감정 전체를 붙잡을 수 없게 만들지.”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림자의 얼굴선 바로 앞에서 멈췄다.닿지 않았다. 닿을 수 없었다.닿는 순간, 언니의 마지막 기억마저 더럽혀질 것 같아서.“이건 언니가 아니야. 언니의 이름도, 목소리도, 사
어둠 속에서 튀어 오른 그림자의 움직임은 인간의 그것이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유연했고, 동시에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관절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실이 연결돼 있어 그 실을 누군가 강제로 잡아당기듯 움직이는 형태였다. 강혁은 본능적으로 몸을 낮추며 팔로 수진을 감싸 뒤로 밀었고, 그림자는 그런 그를 정확히 향해 몸을 꺾었다.수진의 시야에는 그림자의 움직임보다 먼저 ‘얼굴’이 들어왔다.언니의 얼굴선. 언니의 거리.언니가 웃을 때 생기던 눈꼬리의 약한 주름.그러나 그 얼굴은 ‘살아 있는 사람의 표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눈매는 무감했고, 시선은 고정되지 않았으며, 입술은 움직임만 흉내낼 뿐 감정을 담고 있지 않았다.유사한 외형, 모방된 패턴, 빼앗긴 표정.어떤 감정도, 어떤 고뇌도 깃들지 않은 얼굴이 ‘수민의 형상’을 흉내 내고 있다는 사실이, 수진의 가슴을 사정없이 짓눌렀다.“언니가… 아니야.”수진의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그 떨림은 공포가 아니라, 세상이 비틀려 보이는 데서 오는 깊은 상실감이었다.그림자는 너무 빠르게, 너무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혁에게 달려들었다.강혁은 정면을 향해 몸을 틀어 손목을 잡고 제압하려 했지만, 그림자의 관절은 비틀리고 구부러지는 각도가 달랐다.정상적인 인간은 하지 않는 궤적.전직 국정원 에이스였던 그조차 예측이 어렵고, 손끝을 스치는 순간에도 뼈가 아니라 말랑한 무언가에 닿은 느낌이 들었다.“혁!”수진의 목소리가 날이 선 듯 울렸다.그녀는 뒤쪽 벽에 고정돼 있던 금속 파이프를 잡아 힘을 주어 뜯어냈다.오래된 벽은 약했고, 파이프는 날카로운 끝부분을 드러내며 크게 들썩였다.그림자가 강혁의 얼굴을 정확히 향한 순간, 수진은 파이프를 가로질러 세차게 휘둘렀고, 금속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방 안을 갈랐다.파이프 끝이 그림자의 팔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의 몸이 뒤로 꺾였다.그러나 그림자는 넘어지지 않았다.똑바로 쓰러지지도, 흔들리지도 않았다.그저 팔의 방향만 부자연스러운
방 안의 공기는 마치 오래된 유리병 속에 갇힌 것처럼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조명조차 없었지만, 희미한 틈으로 들어온 불빛이 방의 중심을 겨우 비추었고, 그 빛 아래에서 천천히 고개를 든 그림자는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으면서도, 어딘지 현실과 어긋난 존재 같았다.그림자는 천천히 손을 올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그 손의 각도, 손목의 기울기, 손등의 얇은 실핏줄 그 모든 작은 디테일들이 수진의 가슴을 짓눌렀다.‘언니가… 이런 손을 가지고 있었지.’그녀의 머릿속에서 오래된 기억이, 바스러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떠올랐다.눈이 내리던 연변의 겨울밤, 언니가 장갑을 벗어 수진의 손을 감싸던 순간의 촉감,그 따뜻함까지 전부 겹쳐왔다.그러나 이 방 안의 손은 따뜻하지 않았다.숨을 쉬는 기척과는 달리, 손끝에는 생기가 없었다.마치 생과 사 사이에서 길을 잃은 사람의 움직임.“강혁 씨… 기다려.”수진은 거의 숨을 삼키듯 중얼렀다.강혁은 이미 한 발踏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였지만, 수진의 손이 그의 팔을 꽉 잡고 있었다.그녀 손끝의 힘은 한순간 그의 움직임을 막을 만큼 단단했다.“…저건 언니가 아니야.”한 문장. 그러나 자신에게 내리는 처벌과 같은 문장.그림자는 여전히 고개를 쳐든 채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수진은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그 얼굴선은 수민의 것과 닮았지만, 너무 매끄러웠고, 지나치게 정적이었으며, 감정이 깃들 틈이 없었다.그리고, 진짜 언니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방식으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뒤로 가.”수진은 강혁의 팔을 뒤로 당겼고, 강혁은 그녀의 눈빛이 단순한 놀람이 아니라,‘피해야 한다’는 판단임을 알아챘다.그러나 그림자는 두 사람의 움직임을 보는 순간, 느리게, 아주 느리게… 입술을 떼었다.“…진…?”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수진의 온몸에서 체온이 꺼져 내려갔다.그 목소리는 생전의 수민과 너무나 비슷했다.음색도, 높낮이도, 숨을 끊어 삼키는 버릇까지.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오래된 먼지 속에 갇힌 습기가 코끝에 닿았다. 발끝으로 느껴지는 바닥의 질감이 위층과 다르게 거칠어졌고, 수진은 그 작은 변화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듯 시선을 바닥과 벽 사이에 번갈아 두었다. 강혁은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며 그녀의 움직임을 지켜보았고, 그 사이 공기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얇게 고여 있었다.계단 끝에 다다르자 좁은 복도가 나타났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만 느껴지는 오래된 숨 같은 냄새가 그 안에 가득했다.복도 양옆으로 문 두 개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수진은 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을 둘러싼 침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오른쪽 문 앞에 멈춰 섰고, 손등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문 표면을 스쳤다.“여긴… 오래 닫혀 있던 방이야.”문틀 사이로 나오는 공기의 흐름은 거의 없었다.“흔적이 없어. 아무도 오래 들어오지 않은 냄새.”강혁은 왼쪽 문을 바라보았다.“그럼 반대쪽이”수진은 이미 고개를 끄덕였다.“응. 발자국도, 먼지 흐름도 다 이쪽으로 이어져.”그들은 왼쪽 문 앞에 섰다.문은 닫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잠겼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가 안에서 조용히 기대고 있는 문 같았다.수진은 문고리를 잡지 않고, 귀를 문에 살짝 붙였다.숨소리가 들렸다. 아주 얇고 느린 숨.누군가가 숨을 죽이며 버티는 소리.“안에… 있어.”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지만, 그 속엔 단단한 확신이 섞여 있었다.강혁은 순간적으로 심장이 위로 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여진인가?”“아니.”수진은 단호했다.“여진 씨였으면, 이렇게 숨을 숨기지 않아. 여진 씨는 자기 의지가 사라지는 상황에서도 기척을 남기는 사람이야. 안에 있는 사람은… 너무 조용해.”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자신의 가슴께를 눌렀다.압박이 느껴지는 듯, 표정이 흐려졌다.“…그리고… 이 기척은 낯설지 않아.”강혁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누군데.”그녀는
폐쇄구역의 문틈으로 스며드는 공기는 차갑고 눅눅했지만, 두 사람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강혁은 앞장서 통로를 비추는 작은 손전등을 들고 있었고, 수진은 뒤에서 그가 놓칠 수 있는 흔적들을 눈으로 훑었다. 그녀의 눈은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하게 빛났다. 연변 시절부터 길러진 감각은, 이렇게 빛 한 줄기 없는 공간에서 진짜 역할을 했다. 그녀는 미세한 긁힌 자국, 움직임의 방향, 바닥에 남은 섬유 한 조각까지 놓치지 않았다.강혁의 손전등이 벽을 스칠 때, 수진은 걸음을 멈췄다.“잠깐만.”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아주 작은
폐쇄구역 깊숙한 곳에서, 우리는 시간이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것 같은 공기를 마주했다.수진은 낯선 여자의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바라보며, 그녀가 여기까지 버티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숨을 붙들었는지 느꼈다.그녀의 몸은 지쳐 있었고, 목소리는 매 순간 끊어질 듯 흔들렸지만, 눈동자만은 생존 의지로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강혁은 천천히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그는 급하게 다그치지 않았고, 상황을 조급하게 만들지 않았다.그의 기질은 늘 그랬다.가장 급박한 순간일수록, 오히려 그의 움직임은 더 느려지고, 더 명확해졌다
폐쇄구역의 기온은 분명 일정했다.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아주 작은 바람조차 피부를 벗겨낼 듯 날카롭게 느껴졌다.어둠 속에서 들린 금속 긁히는 소리는 짧고 미약했지만, 두 사람의 감각은 이미 그 소리를 ‘의도’로 해석하고 있었다.실수로 난 소리가 아니었다.누군가가 멈칫하며 숨을 다듬는 과정에서 나온 체온이 있는 존재의 흔적이었다.강혁은 한 걸음도 떼지 않은 채 자세를 낮추었다.몸 전체가 조용히 긴장했고, 그의 시야는 어둠의 결을 따라 얇게 확장되었다.그의 움직임은 군사 훈련에서 학습한 기술이 아니라, 생존의 기억이 만
문 뒤에서 들려온 숨소리는 너무 희미해 마치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꺼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미세함 속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숨을 죽이려는 의도. 발각되지 않으려는 의도.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곳에 있는 두 사람을 피하려는 의도.강혁은 손을 문고리에 걸친 채 움직이지 않았다.체온이 문고리를 타고 금속 속으로 스며드는 동안,그는 상대의 숨결을 읽고 있었다. 아주 느리고, 간헐적이며,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방식이었다.하지만 그 숨은 여진의 방식과 달랐다.여진은 숨을 숨길 때, 소리를 없애는 방향으로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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