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경은 방금 전까지도 연회장에서 성연을 찾고 있었다.그러다 고용인들에게서 무진이 이미 성연을 데려갔다는 말을 들은 참이다.성연이 오늘의 주인공인데 무진이 데리고 나가 버렸으니, 연회가 계속 진행될 수 있을 리가.운경이 안금여의 귓가에 속삭이며 참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무진이 이렇게 생각이 없다니요. 이처럼 큰 연회에서 말도 안 하고 가버리면 어떻게 하자는 건지.”“예전에는 이렇게 터무니없는 일을 벌이지 않았는데. 이제 그룹을 모두 맡았다고 더 이상 아무 눈치도 안 보는 건지, 뭔. 가고 싶다고 가고, 아예 제마음대로야. 뒤처리는 다 우리한테 떠맡기고 말이지.”운경의 말을 듣고 있던 안금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잠잠한 표정이었다. 속으로 운경과 다른 생각을 하며.어린 소녀였다가 이제 막 성인이 된 성연이다. 무진은 당연히 그런 약혼녀를 데리고 서로의 감정을 키우려 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만약 정말 그래서 빨리 증손자를 안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무진의 이런 행동을 막을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응원할 생각이다. 엄마 안금여가 말을 하지 않자 운경은 괜히 마음이 초조해졌다.“엄마, 성연이도 없는데 이제 어쩌죠? 파티를 계속 진행할 수 있을까요?”안금여는 딸을 흘겨보았다.“뭐가 그렇게 초조한 거야? 너도 이제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구나. 케이크, 성연이가 이미 잘랐잖아? 성연이 여기에 남아 있을 필요가 있어? 시간이 되면 하객들은 알아서 돌아갈 거다. 소개할 사람도 이미 다 소개했고 말이다. 오늘 밤 주인공은 성연이 아니니? 주인공이 나가 놀고 싶으면 그만인 게지.”안금여에게 핀잔을 듣긴 했지만 운경 또한 투덜대지 않았다.‘강씨 집안 제일 어르신 엄마도 신경 안 쓰시는데, 내가 왜 걱정해?’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중에 강일헌, 강상철, 강상규, 강진성 등이 늦게 도착했다.뒤에 블랙 슈트의 경호원 부대도 거느린 채.보아하니 축하하기 위해 온 것 같지 않았다. 도리어 분위기를 깨고 있는 듯.홀을 둘러보
무진과 성연을 비난하는 걸 안금여가 두고 볼 리 없다. 둘 다 자신의 가족이니.“신혼 부부인데 당연히 자기들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죠. 생일도 이제 1시간 남짓 남았는데, 둘이서만 같이 보내고 싶지 않겠어요?”연회장에 있던 하객들 모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무진과 성연이 서로 사랑하고 다정하게 지내는 걸 다른 사람이 관여할 수 없는 터.또한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기실 성연의 생일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으니.그들의 주목적은 강씨 집안을 통해 사람들과 두루두루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강씨 집안 회장님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만족하고 있던 차였다.그리고 모두 하나같이 사업 파트너를 찾거나 인맥을 쌓느라 어차피 바빴다. 생일 주인공이 어디에 있든 그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고, 신경쓸 시간도 없었다.그런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오래전부터 강씨 집안 큰집 본가와 둘째, 셋째 일가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익히 소문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매체에서 서로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아 몰랐는데, 지금 보니 확실한 것 같다.“아니 그러면 다른 날 잡으면 되잖습니까? 집안 어른들을 접대할 시간도 없었답니까?” 강상철이 괜한 생트집을 잡았다.더이상 꼬투리 잡을 것이 없자 어른들을 안중에도 없다며 계속 따지고 들었다.미간에 주름이 생겨난 안금여는 계속 생떼를 부리는 그들의 말을 더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오늘은 성연의 생일파티이니 당연히 주인공인 성연의 의견을 존중해지요. 둘째 서방님이 다 늦은 시간에 와서 무진과 성연을 못 만난 건데, 어쩌겠습니까? 설마, 늙은이인 내가 두 분 서방님을 접대하면 안 되는 거예요?”안금여 눈빛이 서릿발처럼 아주 매서웠다. 이번에는 형수 안금여가 또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했던 강상철과 강상규였다.강상철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하더니 결국 입을 다물었다.이때 강진성이 입을 열었다.“큰할머님은 형수님을 많이 아끼시나 보네요. 우리 집안에 온 지 얼
안금여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너, 정말 많이도 알고 있구나.”‘무진이 성연에게 별장을 선물하겠다고 말한 게 얼마 되지도 않았어. 그런데 그 사실을 일헌이 벌써 알고 있다? 우리 무진일 계속 감시하고 있었던 거야?’‘이 상황에 이르러서도 둘째, 셋째 일가는 조금도 단념할 생각이 없구나.’“아, 소문에, 형님이 큰 선물을 줬다고요. 비밀리에 선물한 게 아니라 이미 다 소문 난 걸 오다가 들은 겁니다.” 당황한 강일헌이 말도 안되는 변명을 했다.강상철이 강일헌을 노려보았다.‘일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일을 망치는 데 타고 난 놈 아냐?’‘지금 이 자리에서 저런 말을 떠벌리다니. 그냥 큰집에 우리 의도를 알리는 꼴 밖에 더 돼?’‘지금 강무진은 섣불리 건드려선 안된다는 걸 몰라? 무진이 놈한테 당한 게 아직 부족해서 저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지금 강상철은 손자 강일헌에게 정말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우리 큰집의 일은 걱정하지 마, 일헌아. 네가 맡고 있는 그 계열사 실적이 올해 기준 미달로 알고 있는데, 시간 낭비 하지 말고 회사 일에나 좀 더 신경 쓰지 그러니.”운경아 사정없이 비웃었다.‘강일헌 이 자식, 바보 아니야? 우리가 정말 너네 속셈도 모르는 줄 아는 거야?’“저는…….”“됐다. 온 김에 구경이나 하고 가자.” 또 무슨 말을 하려던 강일헌의 입을 강상철이 제지했다.강상철이 음산하고 매섭게 눈을 부릅뜨자 강일헌은 감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순순히 강상철과 강상규의 뒤꽁무니를 쫓아갔다.운경이 그런 저들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많은 말들이 오고 갔지만 결국엔 무진이 성연에게 선물한 별장이 화제가 되고 말았다.만약 잘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그냥 집을 선물했나 싶은 이야기였다.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해변가의 그 고급 별장은 돈만으로 구입하기 힘든 곳이었기에 순간 좀 놀랐다.그러나 이 말을 들은 송아연과 임수정의 눈이 완전히 돌아갔다.바다 전망의 고급 저택이라면
그날 저녁 연회가 끝나고 모든 하객들이 거의 다 떠났을 때, 임수정은 여전히 나가지 않은 채 눈치를 보고 있었다.큰 홀에 자기 가족만 남은 걸 본 임수정이 작심을 하고 결국 또 100억의 예물 얘기를 꺼냈다.“사돈 어르신, 처음에 저희와 약속하신 거 잊지 않으셨죠? 성연이 이 집으로 들어 오면 저희에게 사례금을 줄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지금 어르신께서도 성연이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고요. 엄밀히 말하자면 성연이는 우리 송씨 집안의 딸이니, 저희에게 조금이라도 뭔가 해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어르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임수정이 말을 빙빙 돌려서 말했다.100억인데, 안 받으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었다. 평상시의 그녀였다면 분명히 이 말을 꺼내는 게 무척 부끄러웠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100억이 들어온다면 언제까지 버틸지 장담할 수 없는 자신들 SG기업이 한 숨 돌리 수 있을 터였다.그러나 강씨 집안이 질질 끌며 주지 않으니 그녀도 마냥 초조했다.100억이 물거품이 될까 봐 계속 걱정되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받아내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씨 집안 사람들을 상대로는 그렇게 할 수 없지 않은가.안금여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임수정의 말을 듣던 안금여는 속으로 냉소했다.‘딸을 팔아 놓고 뭐 이리 당당하게 말해, 참내! 송씨 집안 사람들 말고 누가 또 이러겠어?’‘송종철과 임수정은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야. 둘 다 어쩜 이리 똑같이 뻔뻔스러운지!’‘이 계모는 방금 몇 만 원짜리 팔찌로 성연을 속이려던 걸 벌써 잊었나?’그러나 안금여는 별다른 기색 없이 웃으며 말했다.“사돈, 제가 사돈 댁에 말씀드렸잖아요? 예물은 제가 이미 무진이에게 주었으니 무진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임수정은 정말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강무진은 주기는 커녕 얼굴도 전혀 내밀지 않으려 하지 않나 말이다.어떤 꼴을 당할까 무서워 무진 앞에 나타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
씻고 아래층으로 내려온 성연이 거실로 들어가니 무진이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점심 때가 가까워 있었다.의아한 마음이 든 성연이 물었다.“오늘 출근 안 해요?”신문을 탁탁 펼쳐 든 무진이 대답했다.“백수가 회사엔 가서 뭐해?”성연은 어이가 없었다. ‘강무진, 당신이 회사를 손에 넣은 걸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흥, 다들 알고 있는 일을 가지고 지금 부러 저러는 거야? 우리 아수라문의 ‘스카이 아이 시스템’을 빼앗아 놓고 아무것도 모르는척, 너무 얄미워!’‘미리 알지 못했으면 정말 속았을 거 아냐?’성연은 무진의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가지고 놀았다.지금 모든 게 다 귀찮게 느껴져 무진이 계속 연기하락 내버려뒀다. 어차피 언젠가는 들통이 날 테니.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놓은 무진이 성연을 바라보았다.“뭐 먹고 싶은 거 없어?”성연이 입을 열기를 계속 기다렸다.그런데 아침도 안 먹었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무거나 먹으면 돼요.”성연은 어젯밤 생일파티에서 술을 대신해 주스를 너무 많이 마셨다. 케이크도.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한 느낌이다. 당연히 입맛도 없고.게으른 고양이처럼 소파에 누워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아주 귀여워 보이는 무진이다.웃음을 지으며 다가가 성연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그런데도 성연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휴대폰만 계속 가지고 놀았다. 머리도 들지 않은 채.그러다 또 하품을 한다. 잠을 그렇게 많이 자고도 부족한지.성연을 한참 쳐다보던 무진이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30분 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접시를 들고 왔다.코끝에 감도는 맛있는 냄새를 따라간 성연의 눈에 해산물 스프 접시를 식탁에 내려 놓는 무진이 보였다. 깨까지 뿌려진 그 고소함이 성연의 식욕을 더 돋우었다.“우와 이거 아저씨가 한 거예요?” 성연이 미심쩍다는 듯 고개를 들며 물었다.솔직히 요리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 아닌가? 늘 휠체어에
성연은 계속 분풀이를 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무진과 아침을 먹은 뒤 오후에 성연은 학교에 갔다.그런데 하필 체육 시간이었다. 땀이 나 끈적거리고 찝찝한 게 싫어 성연은 수업에 들어가기 싫었다.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이유도 묻지 않고 그냥 쉬라고 하신다.얼마 전에 성연의 일로 학교가 한바탕 떠들썩했던 걸 모두가 안다.비록 성연이 범인이 아니었다는 게 밝혀졌지만 어쨌든 그 일로 유명해졌다.성연 뒤에 누가 있는지 선생님들도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 누가 감히 미움을 살 짓을 하겠는가?어차피 체육수업은 성연과 같은 학생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터.체육 선생님도 일개 고등학교 교사일 뿐, 당연히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다.운동장을 나온 성연이 보건실로 들어갔다.보건실에서 마라탕을 먹고 있던 서한기가 성연을 보더니 놀라 사레가 들렸다. 보건실이 서한기의 기침 소리로 가득했다.허둥지둥 물을 마시고 나니 기침이 가라앉았다.옆에서 지켜보던 성연이 차가운 눈으로 서한기를 보았다.“왜 그렇게 놀라?”“아니 보스, 수업은 왜 안 들어가요?” 서한기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체육시간이야. 여기서 할 일이 있나 찾아 보려고.” 성연이 의자에 나른하게 기대었다.“무슨 할 일을 찾아요?” 서한기가 의심스럽게 물었다.“우리 ‘스카이 아이시스템’을 가져간 대가를 치르게 하는 일.”성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듯 두 눈이 반짝거렸다.북성에 온 이후 조용히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다.“WS그룹에 교훈이라도 주려는 겁니까? 강씨 집안에서 보스를 위해 그처럼 성대한 생일파티도 열어 주었는데요?” 서한기가 조심스러운 눈길로 성연을 쳐다보았다.그의 눈에 비친 성연은 항상 사람과의 정을 중시해왔었다.또 그동안 성연에게 무척 잘해주었던 강씨 집안이었기에 ‘스카이 아이시스템’의 일은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했었다.“그게 무슨 상관이야? ‘스카이 아이시스템’하나면 그깟 생일파티 열 번도 더 할 수 있는데.
WS그룹 내부 시스템에 회사 기밀 정보들이 많이 들어있는 만큼 회사에서는 많은 인재들을 뽑았다. 당연히 보통 실력들이 아니었다.성연이 그룹 내부 시스템에 침입하는 순간, WS그룹 쪽에서도 즉시 알아차렸다.즉시 방화벽을 세우고 보안시스템을 새로 만들었다.하지만 침입자는 너무도 빠른 속도로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갔다.이쪽에서는 아직 침입자의 꼬리도 못 잡았는데 저쪽은 바로 공격방식을 바꾸었다.컴퓨터 보안시스템에도 일가견이 있는 손건호가 마침 회사에 있다가 꽤 심각한 상황임을 알아챘다.손건호는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이 무진을 찾아 ‘블루베이'로 갔다.어젯밤 엠파이어 하우스에 돌아가지 않고 성연과 함께 그곳에 잤으니, 무진이 아직 그곳에 있을 것이라 짐작한 것이다. 블루베이에 도착해 저택 안으로 들어서니 역시 소파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는 무진이 보였다.무진으로부터 상당한 권한을 부여 받은 손건호였기에 이 집의 열쇠도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웬만한 일로는 블루베이로 찾아오지 말라고 무진이 지시한 터였다.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선을 넘지 않는 손건호인 만큼 무진 또한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그래서 문 소리가 나자 성연이 학교에서 돌아온 줄 알았던 무진이다.하지만, 고개를 드는 순간 거의 뛰다시피 들어오는 손건호가 보였다.“보스, 큰일났습니다!”일 처리가 언제나 깔끔하고 차분한 손건호다. 이렇게 허둥거리는 법이 없었다. 무진이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야?”“회사 내부 시스템이 공격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 막고 있지만, 버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손건호가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금세 표정이 가라앉은 무진이 서류를 덮으며 일어섰다.“회사로 가지.”고개를 끄덕인 손건호가 무진과 함께 저택을 나와 차를 몰았다.어찌나 상황이 긴급한지 엄청난 속도로 달려 30분만에 WS그룹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린 무진과 손건호가 임원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사무실에 도착하자 그룹 내부 보안시스템 담당 전산 직원들이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성연은 단지 재미 반, 경고 반으로 시작한 참이었다. 그러다 제대로 해보고 싶어 그룹 전산 시스템에 침입해서 ‘스카이 아이시스템’을 찾아보려고 한 것이다.이와 동시에, 무진의 휴대폰에서 붉은 빛이 반짝였다.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일어났다.“여기부터 너희들이 해. 상대방이 계속 공격 못하게 빨리.”말을 끝낸 무진이 황급히 사무실로 들어갔다.무진의 뒤를 따르던 손건호가 다급한 모습을 보고 물었다.“보스, 왜 그러세요?”“해커가 내 컴퓨터를 공격하려고 시도하는 중이야.” 무진이 입술을 꽉 다물었다.“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 걸까요?” 손건호도 따라서 눈살을 찌푸렸다.무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 몇 년간 자신이 그룹 외부에서 일을 처리할 때는 다른 신분을 사용했다. 그리고 두 신분의 인물이 동일인, 바로 자신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그래서 자신이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원한을 사거나 한 조직이 없다시피 했는데.그런데 이 해커는 분명 WS그룹을 겨냥한 듯 보인다.무진의 컴퓨터에는 WS그룹의 자료 뿐만 아니라 조직의 정보들도 들어있다.그동안 무진의 컴퓨터에 침입한 해커는 없었다. 컴퓨터 내부 시스템은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다. 일반인은 공격할 수 없는.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어떤 상황인지 먼저 확인해 봐야 대책을 세울 수 있을 터.성연이 끊임없이 키보드를 두드려 댔다. 노트북 화면에 일련의 코드가 떴지만 너무 빨라 그림자만 보일 지경이었다. 옆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던 서한기는 정신이 없었다.보스의 실력을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없이 옆에서 주전부리만 먹고 있을 뿐.끊임없이 과자를 입에 넣으며 그럴듯한 칭찬도 곁들였다.“상대방도 정말 대단한데요? 우리 보스와 이 지경까지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아요.”상대방의 실력에 놀란 성연도 오랜만에 맞수를 만난 흥분감에 몸을 떨었다.도전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그녀다.지금까지 이 정도로 피 터지게 싸운 상대는 없었다. 그런데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