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성주는 평소 유수민에게도 은근한 호감을 품고 있었기에 그녀가 나서자 바로 한마디 했다.“흥. 수민이 부탁이니까 이번만큼은 넘어가 주지. 굳이 사과까지는 안 해도 돼.”그러고는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덧붙였다.“하지만 앞으로 좀 신중해야 할 거야. 쓸모도 없는 자식 때문에 괜히 괜한 사람들 건드려서 곤란해지는 일은 만들지 말라고.”그러자 다른 남자들도 비웃으며 맞장구쳤다.“그러게 말이야. 세상엔 참 손 좀 봐줘야 하는 애들이 너무 많아.”“근데 이 녀석이 은근히 배짱은 좀 있나 보네? 우리가 아무리 무시해도 묵묵히 앉아 있는 걸 보니 말이야.”“배짱은 무슨 배짱이야. 그냥 말 한마디도 못 하고 여자 뒤에만 숨는 한심한 놈이지.”“이런 애는 신경 쓸 필요도 없어. 아, 민규야, 이번에 예씨 가문이 남궁 가문을 이겼다던데 내일 대규모 행사 연다면서? 혹시 너희 집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오민규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예천우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걸 보며 속으로 쾌감을 느끼는 듯했다.“흥, 남궁 가문을 이겼다고 해도 어쩔 건데? 예씨 가문이 세상을 상대로 싸울 수나 있겠어?”오민규는 거만하게 어깨를 으쓱였다.“이번에 우리 오씨 가문은 여러 가문과 손잡았어. 남궁 가문이 앞장설 테니 내일은 예씨 가문 자존심을 밟아줄 거야. 감히 우리를 건드리다니.”남궁성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그렇지. 우리 남궁 가문이 나섰는데 예씨 가문이 뭘 해보겠어. 아무리 날뛴다고 해도 그냥 독 안에 든 쥐일 뿐이야.”그 말에 다들 한껏 의기양양해졌다.“내일 꼭 구경하러 갈 거야. 우리 유씨 집안도 빠질 수 없어.”“구경거리가 따로 있겠어? 그냥 예씨 가문을 망신 주는 자리겠지. 지네들이 너무 오만하게 굴었으니 이번엔 용수 어르신까지 나서서 혼쭐을 내주실 거래.”남궁성주가 더 당당하게 덧붙였다.“우리 쪽에서 분석한 바로는 예씨 가문이 요즘 워낙 여기저기 적을 만들어서 이번엔 용수 어르신뿐만 아니라 비룡위까지 움직일 거래.”“심지어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하문은 속이 답답해졌다.하지만 달리 좋은 방법이 있을 리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예천우 곁에 앉아 틈틈이 말을 걸어주며 신경을 써줬다.하문의 이런 행동이 오히려 유석주의 심기를 더 거슬리게 했다.하문이 나이가 좀 있다고 해도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고 매력적인 외모와 분위기까지 지닌 여자였다.이런 여자는 유석주 본인도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상대였기에 괜히 더 신경이 곤두섰다.“이봐, 네 이름이 뭐랬지?”유석주는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예천우를 쳐다봤다.“예천우야.”예천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래. 예천우, 겉모습은 멀쩡해 보이는데 어디서 일하고 있어? 나름 괜찮게 사는 것 같은데?”유석주가 대놓고 조롱 섞인 어조로 묻자 예천우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자유직업이야.”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자유직업? 그거 그냥 백수라는 소리 아냐?”다른 남자도 웃음을 얹었다.“맞아. 사실 우리도 솔직히 따지면 죄다 백수나 다름없지.”“그렇지만 우리는 다르지!”또 다른 남자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거들었다.“이 녀석은 딱 봐도 하층민인데 어떻게 우리랑 같을 수 있겠어? 우리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데! 어느 하나 돈이 없고 힘이 없는 사람이 있어? 그러니 일 같은 건 할 필요도 없지.”이렇게 큰소리치는 젊은 남자는 바로 오민규였고 평소에도 거만하고 무례한 데다 여러 대가문 자녀와 일부러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그의 아버지 오아람은 바로 예씨 집안에 등을 돌린 세력의 대표였다.그러자 유석주가 비웃으며 거들었다.“하하. 너무 그러지 마. 그러다 진짜 열등감 느끼면 어떡하려고 그래?”그러자 또 다른 남자가 차갑게 받아쳤다.“저런 애가 뭐로 열등감을 느끼겠어. 정말 그랬으면 아예 이 자리에 못 앉았겠지. 별것도 아닌 녀석이 우리랑 한 테이블에 앉아 있다니.”이번에는 남궁 가문의 자제인 남궁성주가 나섰다.직계는 아니지만 집안에서 꽤 인정받는 인물이었고 주변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하문아.”두 사람이 다가오자 하문이 먼저 밝게 인사를 건넸다.“석주 오빠, 수정 씨, 오셨군요!”하문은 반가워하며 미소를 지었다.“근데 미안하지만 오늘은 제가 여기서 지인분을 우연히 만나서요. 먼저 식사하세요. 우리는 나중에 또 보죠.”그 말을 들은 두 사람 특히 그중 여자 쪽이 살짝 눈을 크게 뜨고는 예천우를 슬쩍 바라보며 웃었다.“지인이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야? 나보다 더 중요해? 설마 남자라도 만난 거 아냐?”장난 섞인 농담에 하문이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그럴 리가 있겠어? 그냥 친구야. 오해하지 마.”그러자 여자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다행이네. 하문아, 우리도 널 아끼고 있잖아. 이상한 남자랑 어울리는 건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근데 이 친구는 얼핏 봐도 네 수준에 맞을 것 같진 않네?”옆에 있던 남자 유석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예천우를 흘깃 바라봤다. 하문이 혹시 예천우와 얽히는 걸 경계하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석주 오빠, 농담하지 마세요.”하문은 혹시 예천우가 기분 상할까 걱정돼 재빨리 상황을 정리했다.“천우 오빠, 제가 잠깐 소개할게요. 이쪽은 유석주 오빠고 이 친구는 유수민이에요. 둘 다 용도 유씨 가문의 자녀들이라 집안도 대단한 사람들이죠.”“용도 유씨 가문?”예천우는 잠시 놀란 눈치였다. 기억이 맞다면 유씨 가문 사람들은 이미 예씨 가문 쪽에 연락을 취해서 내일 열리는 예씨 가문의 공식 행사에도 참석하기로 했었다.무엇보다 용도 4대 가문 중에서도 특히나 위세가 대단한 곳인데도 이런 식으로 빠르게 태도를 밝힌 것이 내심 인상적이었다.‘오늘 이렇게 유씨 집안의 자녀들을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그런데... 집안 어른들과는 달리 애들은 아직 좀 부족해 보이네.’“맞아, 혹시 우리 유씨 가문 이름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유석주가 씩 웃으며 비꼬듯 말했다.“내가 말해두는데 이 용도라는 땅에서 우리 유씨 가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우리 집안이 못 건드릴 사람도 없어. 유씨 가문의
예천우는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부님을 바라봤다.“사부님, 대체 왜 이러십니까?”옛 용왕은 곧바로 자세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네 손에 쥐고 있는 건 통령님의 명패야. 이 명패를 보는 건 곧 용수를 직접 뵙는 것과 같으니 비룡위에 속한 모든 사람은 당연히 정중히 예를 갖춰야 해.”“아, 그런 뜻이었군요.”예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이런 귀중한 물건을 나한테 넘기다니... 이게 정말 내게 좋은 일인지 아니면 부담이 더 커진 건지 솔직히 모르겠네요.”“분명히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너에게 더 많은 책임이 따르게 될 거야. 무엇보다 이 명패를 가진 덕에 네 곁에 사람들도 훨씬 안전해질 수도 있어.”옛 용왕은 문득 자신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신과도 같은 그 사람이 떠올랐다. 그런 사람이라면 분명히 어느 정도는 용수의 체면을 봐서라도 예천우한테 너무 심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더 안전해질 수 있다고요??”예천우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그래. 앞으로 곧 알게 될 거야. 내일 아침에 나는 그분을 찾아가 네 소식을 전하려고 해. 하지만 천우야, 한 가지만 반드시 명심해. 만약 그분이 너에게 옥패를 달라고 하면 절대 저항해서는 안 돼.”“정말 그렇게 대단한 분이에요?”“그래. 굳이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신과 동격인 강자라고 할 수 있지.”“그 정도로 강하다면... 굳이 왜 옥패가 필요하신 거죠?”“이유는 조만간 알게 될 거야. 나는 여기까지만 같이 갈게.”그분의 허락 없이는 옛 용왕도 다른 걸 감히 말할 수 없었다.사부님과 헤어진 뒤 예천우는 차에 올라 예씨 가문으로 돌아가려던 참에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하문이었다.“하문 씨!”“예 대표님, 임연 그룹 일 들으셨어요?”하문은 최근 임연 그룹 관련 소식을 차단해 두었기에 이제야 상황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그녀 역시 회사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적잖이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네, 저도 이미 들었어. 걱정하지 마세요. 이 모든 건 잠깐일 뿐
용진성이 예씨 가문에 했던 짓과 이번에 직접 찾아온 목적, 심지어 입버릇처럼 예천우와 예씨 가문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했던 걸 생각하면 예천우가 그를 죽인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예관희는 고개를 끄덕였고 바로 그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고 난 뒤 예관희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천우야, 용수께서 널 따로 만나자고 해.”예천우는 잠깐 놀라며 물었다.“따로요?”“그래. 만약 네가 원치 않으면 내가 거절할게. 네가 살아 있기만 하면 예씨 가문에 감히 손댈 자는 아무도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예관희의 말투에는 불안함이 배어 있었다. 혹시라도 이것이 함정이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드는 모양이었다.예천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렇게까지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한 번 만나는 거잖아요. 그냥 제가 다녀올게요.”“하지만 그쪽에서는 반드시 혼자 오라고 했고 누구도 따라갈 수 없대.”“괜찮아요.”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제 실력이라면 누굴 데리고 가든 마찬가지예요. 만약 그쪽에서 정말 저를 해칠 능력이 있다면 제가 몇 명을 데리고 가도 소용없어요.”예관희는 잠시 생각하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조심해. 혹시라도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면 제일 먼저 네 목숨 구할 생각부터 먼저 해. 우리까지 신경 쓰지 말고.”“네, 알겠어요.”예천우는 흔쾌히 대답했고 사실 그는 별다른 준비도 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 대의 차가 집 앞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직접 마중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옛 용왕이었다.예천우는 사부님이 이렇게 직접 나선 건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뜻이라는 걸 곧바로 알아차렸다. 평소라면 이런 자리에 직접 나올 분이 아니었으니 오늘 밤에는 특별히 위험할 일이 없으리란 확신도 들었다.옛 용왕의 안내를 받아 예천우는 한 저택으로 들어갔다. 깊숙이 걸어 들어가자 멀리 정자에 홀로 서 있는 노인의 뒷모습이 보였다.그 뒷모습만 봐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그뿐만 아
모든 상황을 곰곰이 정리한 끝에 예천우는 직접 천해시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요즘은 교통도 워낙 발달해 있어서 왕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진실을 밝혀낼 생각이었다.물론 만약 자신이 짐작한 대로 결론이 난다면 그 사실이 임완유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었다.하지만 아픈 진실도 빨리 마주하는 편이 길게 끄는 것보다 나았고 결국은 그녀에게도 더 나은 길이 될 거라 믿었다.게다가 유은수 같은 사람이 앞으로도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으니 이번 기회에 모든 걸 완전히 매듭지어두는 편이 현명했다.하지만 천해시로 떠나기 전에 반드시 마무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바로 내일이 예씨 집안이 공식적으로 4대 가문의 계열에 복귀하는 날이었고 예천우가 갑자기 자리를 비운다면 예씨 가문을 둘러싼 말썽이 끊이지 않을 게 뻔했다.예천우는 한번 시작한 일은 확실하게 끝을 보는 성격이었고 귀찮은 일은 한 번에 끝내는 걸 제일 좋아했다.한편, 임완유 역시 사방으로 연락을 돌리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그제야 어머니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여놓았는지 하나하나 알게 됐다.그녀는 분노와 허탈함이 뒤섞여 참을 수가 없었다.‘대체 왜 엄마는 날 이렇게까지 경계하고 한 번도 친딸로 대해준 적이 없는 걸까...’임완유가 모든 걸 내놓았는데도 끝이 없었다.그래도 그 사람은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였고 아버지는 날마다 전화를 걸어와 울먹이며 꼭 방법을 찾아 달라고 사정했다.그뿐만 아니라 여러 번 예천우에게 직접 부탁해 보라고까지 권했다.“천우 정도의 인맥과 실력이면 틀림없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어.”이런 상황에서 임완유도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고 유은수를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자금이나 회사 내부 문제도 많았지만 가장 큰 고민은 역시 불량 화장품 사건의 피해자들이었다.동생 임선호 역시 바로 누나인 임완유를 찾아와서 어쨌든 엄마를 좀 구해달라고 애원했다.유은수에게 수많은 문제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