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남자의 무관심한 태도에 류서연은 내심 불만이 생겼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오히려 이게 더 편할 수도 있었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덕분에 조용히 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그러나 역시 그녀의 매력은 쉽게 감출 수 없는 법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중년 남성이 다가왔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안녕하세요. 저는 성화 그룹의 이사 이홍만이라고 합니다. 괜찮다면 연락처 교환하고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까요?”성화 그룹이라는 말을 듣자 류서연은 잠시 멈칫했다.‘성화 그룹이라면 자신이 속한 연예계에서도 손꼽히는 최정상급 대형 기업이잖아? 그런데 이홍만이라면...’이홍만이라는 이름 역시 낯설지 않았다. 그는 업계에서도 꽤 영향력 있는 대주주급 인사로 알려져 있었다.그러나 문제는 이 이홍만이라는 남자가 미녀들을 특히나 밝히는 성격으로 유명하다는 점이었다. 이미 업계에서는 그가 수많은 신인 배우와 연예인들을 곤경에 빠뜨린 소문이 파다했다.특히나 그가 지금 노골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류서연은 바로 경계심이 솟구쳤다.“죄송하지만 저는 모르는 분과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아요.”“하하.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인사하면 곧 친해질 수 있잖아요? 게다가 아가씨는 외모나 분위기가 워낙 훌륭해서 우리 성화 그룹의 톱스타로 될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매년 톱스타들을 수없이 배출하거든요.”이홍만은 능청스럽게 설득을 시도했다. 그녀의 우아한 자태와 완벽한 몸매를 보자마자 욕심이 솟아났기 때문이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자신은 충분히 그녀를 손에 넣을 자신이 있었다.사실 이홍만의 자리는 원래 퍼스트 클래스 좌석이었다. 화장실 때문에 이코노미석 쪽에 내려왔다가 우연히 그녀를 발견한 것이다.류서연은 상대가 집요하게 자신을 바라보자 고민할 틈도 없이 딱 잘라 말했다.“필요 없어요.”이홍만은 순간 당황했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기에 그는 그녀 옆자리에 앉은 예천우를 힐끔 보고는 제안했다.“저기 젊은이, 내
“참, 그리고 용진성 일은 알고 있어?”옛 용왕은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혹시 비밀리에 장용 세력을 조직하고 심지어 서방 교황청과 손잡았다는 얘기 말씀입니까?”예천우가 조용히 되물었다.“역시 용수님께서 네게 모든 걸 다 이야기하셨구나. 최근 시국이 워낙 안 좋으니 네가 반드시 용국을 잘 지켜줬으면 좋겠어.”“그럴 겁니다.”예천우는 흔들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상대가 누구든 우리 용국을 건드린다면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반드시 처리할 겁니다.”그의 목소리엔 단호함이 가득했다. 예천우는 원래 자유롭게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지만 용국을 해치려 드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좋아.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안심이 돼.”옛 용왕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다시 한번 진지하게 경고했다.“하지만 이건 네게 반드시 당부해야겠어. 만약 그분이 정말 네 앞에 나타난다면 절대 맞서지 마라. 옥패의 비밀을 깨달았든 깨닫지 못했든 간에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순순히 넘겨드려라. 날 믿어줘. 우리가 모든 걸 하는 건 다 이 세상을 위한 일이니까.”옛 용왕은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신신당부했고 예천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담담히 대답했다.“그건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하시죠.”옛 용왕은 그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예천우가 자신을 아직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그를 탓할 수도 없었다.“그렇게 대단한 존재라면 차라리 그분이 직접 용국을 지켜주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거 아닙니까?”예천우가 갑자기 의문을 던졌다.“그분은 손을 쓰실 수 없어. 언젠가는 너도 그 이유를 알게 될 거야.”옛 용왕은 그 말만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이미 그가 탈 비행기의 탑승 수속이 시작된 터였다.옛 용왕이 자리를 뜨자 예천우 역시 탑승구로 향했다. 그의 비행기 역시 이미 탑승 수속을 시작한 상태였다.한편 박민정은 예천우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뒤에 결국 천해시로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옥패가 아직 예천우
“자. 됐으니 모두 일어나.”예천우는 더 이상 말 길게 하는 것이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비록 이 친구들의 행동이 좀 지나치긴 했지만 그래봤자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젊은이들의 실수일 뿐이야. 난 전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 물론 나였으니 이렇게 넘어가는 거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전부 죽었을 거야. 그러니 이번 일은 따로 책임을 묻지 않겠지만 집에 돌아가서 얘네들을 제대로 교육해 줘. 그리고 가문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확실히 경고해. 가문의 힘을 믿고 함부로 나대지 말라고. 설령 나를 만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혼이 날 수도 있어. 착하게 행동하면 반드시 복 받을 거고 나쁜 마음을 품으면 언젠가 반드시 벌을 받는 법이야.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지. 명심해. 다들 알겠어?”“네. 예 가주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너희들 뭐 하고 있냐? 얼른 예 가주님께 감사 인사드려!”그러자 모두가 서둘러 예천우 앞에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예천우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처리했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연회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깊은 감명을 주었다. 어느새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처음과 완전히 달라졌다.그들은 예천우의 압도적인 실력과 위압감에 대한 두려움을 품는 동시에 그의 뛰어난 인품까지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모든 일이 깔끔하게 정리된 걸 확인한 예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자, 그러면 여기 일은 이만 마무리됐으니 저는 이제 떠나야겠어요. 비행기 시간이 촉박해서요.”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순간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았다.처음엔 예천우가 허세 부리는 줄 알았는데 정말로 비행기 시간에 쫓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예관희가 다급하게 나서서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아, 천우가 급한 일이 생겨서 급히 천해시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더 오래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니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그 말을 듣고 감히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사람들은 내심 예천우가
예천우는 처음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앉아 있었지만 갑자기 연회장 전체가 자기 앞에 절을 올리자 오히려 조금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자, 그냥 하나의 직함일 뿐이에요. 다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요. 편하게들 앉아요.”그렇게 말한 예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서와 잠시 조용히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비서는 오래 머물지 않고 곧장 자리를 떠났다. 오늘 이 자리에 온 목적 자체가 바로 그 임명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리기 위해서였으니 맡겨진 임무만 끝내고 깔끔하게 돌아간 셈이었다.사실 지금 이 타이밍에 임명 소식이 발표된 것 자체가 명확한 신호였다.말하자면 용수 쪽에서 분명하게 예씨 가문을 지지한다는 태도를 보여준 셈이었다.이 점이 바로 남궁서정이 깊이 안도한 이유이기도 했다.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가문의 원로들이나 어르신들에게 따로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오히려 모두가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다며 그녀의 결정을 칭찬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연회장 분위기는 금세 누그러졌지만 남궁성주와 오민규 등 몇몇은 여전히 전혀 안심하지 못하고 있었다.예천우의 권위와 새로운 지위가 그들 마음속에 더욱 커다란 공포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이제 서로 눈빛만 주고받으며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자리를 뜨지도 못했다.예천우가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 도망가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아까 예천우가 급한 일만 정리하고 나면 이런 쓰레기들도 제대로 손봐주겠다고 한 말이 떠올라 더욱 불안해졌다.그들은 지금이라도 자신에게 손찌검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고 마음 같아서는 몇백 대라도 뺨을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이런 가운데 유수민은 이미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멍하니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예천우의 정체와 권세, 그리고 연회장 전체의 분위기가 계속해서 자신이 상상했던 모든 것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마지막에 모두가 일제히 예천우 앞에 고개를 숙이는 그 장면은 특히 그녀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그
“지금 망설였다는 건 아직 완전히 확신이 없다는 거겠지. 그래도 괜찮아. 나는 이번에도 너희 쪽에 기회를 줄 생각이야.”예천우는 아주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앞으로 남궁 가문이 예씨 가문과 화목하게 지내기만 한다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은 깨끗이 없던 일로 해줄게. 어때?”남궁서정은 잠깐 놀란 듯 멈칫했지만 예천우가 이렇게까지 체면을 세워줄 줄은 몰랐고, 그 조건도 전혀 무리한 게 아니었다.바로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문제없습니다. 예 가주님, 이렇게 관대하게 배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예천우는 고개를 가볍게 젓더니 다시 차분하게 말했다.“별말을 다 하네. 용도 4대 가문은 나라의 버팀목이야. 경쟁은 할 수 있지만 절대로 같은 편끼리 싸워선 안 되고 모두 함께 용국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해.”이게 바로 예천우가 진짜 바라는 바였다.처음부터 이렇게 강하게 밀어붙이고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도 다 이 결말을 위한 포석이었다.힘으로 제압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이런 선언이 끝나자 연회장에 있던 이들 역시 예천우에 대한 인상이 한층 달라졌다.남궁서정도 순간 예천우의 말에 크게 공감하며 무언가 말을 하려던 찰나 그때 연회장 문 쪽에서 누군가 들어섰다.놀랍게도 그 인물은 바로 용국의 최고 권력자 용수의 옆에서 직접 보좌하는 비서였다.그를 보자 모두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비서는 부드럽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다들 앉으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 제가 온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용수 님께서 예천우 님이 예씨 가문의 가주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예 가주님께서 예씨 가문을 이끌며 용국을 수호하고 더 높은 곳까지 이끌어 주시길 기대합니다.”이 말을 듣는 순간 연회장에 있던 이들의 마음이 한 번 더 크게 흔들렸다.용수가 직접 사람을 보내 공개적으로 축하를 전한다니 이전에도 축하 인사는 있었지만 전화 한 통이면 끝이었고 이렇게 비서가 직접 찾아오는 일은
“좋아. 이제야 제대로 된 거지.”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으며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참 아쉽네. 만약 너희가 처음부터 이렇게 나와서 솔직하게 사과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어. 그랬다면 사실 대부분은 아무런 배상도 필요 없었을 거고 설령 보상을 해야 한다 해도 아주 조금이었을 텐데.”그 말을 듣는 모두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한다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후회하고 괴롭고 마음이 찢어지는지 알긴 할까.’예천우는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너희가 그나마 빨리 잘못을 인정했다는 거야. 적어도 목숨은 건졌으니까. 어떤 사람들에 비하면 말이지.”말이 끝나자 예천우의 시선이 오아람을 향했다.그러자 오아람의 얼굴이 다시 하얗게 질렸고 그는 온몸을 떨며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예 가주님,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제가 앞으로 예씨 가문을 위해 뭐든 다 하겠습니다. 정말 뭐든지요...”주변에선 오아람의 처절한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특히 재산의 절반을 내놓기로 한 이들은 그나마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스스로를 위안이 되었다.‘하지만 오아람은 이제 정말 끝장이겠네. 오아람이 죽으면 오씨 가문도 끝일 거야.’예천우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차갑게 말했다.“됐어. 너 같은 사람은 우리 예씨 가문에 두고 싶지 않아.”“하지만 굳이 네 목숨을 거두진 않겠어. 대신 네가 가진 회사의 모든 지분을 예씨 가문에 넘기고 이 일은 여기서 끝내자. 어때?”예천우의 말에 모두가 놀라운 듯 잠시 침묵했다. 용지천마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아람 정도면 예천우가 그냥 넘기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오아람의 얼굴이 잠깐 복잡하게 일그러졌지만 이번엔 망설이지 않았다.“알겠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예 가주님, 이렇게 자비를 베풀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회사 지분을 모두 내놓는 건 그의 거의 모든 자산을 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