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이 지나 임완유는 무슨 생각인지 차에서 내려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머릿속에는 지난날의 장면을 회억하면서 몇 번 방인지 생각하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는데 그때 그녀가 예약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에 대해서 임완유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임완유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냥 집에 가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카운터로 가서 예천우라는 이름으로 그날 예약한 방이 어느 방인지 물었다.직원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건 고객의 개인정보이므로 알려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그러자 임완유는 바로 현금 200만 원을 건넸다. 마침 그날 예천우가 자신의 이름으로 방을 예약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정말 찾지 못했을 것이다.“1006번 방입니다.”“그 방 아직 비어있어요?”임완유가 물었다.“네, 아직 비어있습니다.”직원은 이렇게 아름답고 돈도 많고 완벽해 보이는 여인이 도대체 뭘 하려는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체크인하려고 하는 건지 불륜이라도 잡으러 온 건지 아리송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다.“오늘 밤 그 방에 입주하겠어요.”“알겠습니다.”직원은 빠르게 입주절차를 마치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방키를 건넸다. 아무래도 이렇게 아름답고 돈 많은 완벽한 여자를 처음 봤기 때문이다.임완유는 방키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하지만 방문 앞에 서자 자신이 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 하는지 망설이게 되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결국 문을 열고 들어갔고 방키를 꽂은 뒤 문을 닫았다. 그러고 나서야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이 방안의 공간은 아주 컸고 안에 있을 건 다 있었다. 임완유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망연한 표정이었다.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멍하니 자리에 멈춰 섰다.‘이건, 천우?’캐주얼한 차림의 예천우가 그녀 앞에 꼿꼿하게 서서 절절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계속 거기 서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아니야, 천우는 아직 천궐1호별장에 있어.
예천우는 순간 멍해졌다.‘이 바보 같은 애가 이걸 꿈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서서 꿈을 꾸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임완유는 아마 이 모든 게 환상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그녀가 다시 눈물을 흘리자 예천우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다가갔다.“바보야, 울지 마. 꿈이든 아니든 나 여기 있잖아.”“거짓말하지 마. 꿈에서 깨면 넌 사라질 거잖아.” 임완유는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눈 좀 떠서 제대로 봐봐. 꿈 아니고 진짜야. 네가 너무 슬퍼 보여서 호텔까지 따라온 거야.”임완유는 예천우의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눈앞에 있는 익숙한 얼굴,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했다. 그 순간, 그녀는 뭔가 깨달은 듯 그의 얼굴을 세게 꼬집었다.“아! 아파! 왜 꼬집어?” 예천우가 어이없어 웃으며 물었다.“진짜네! 너!” 임완유가 비로소 믿는 듯 중얼거렸다.“당연히 진짜지. 내가 왜 널 속이겠어.”예천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슬퍼하는 게 신경 쓰여서 따라온 거라고. 호텔 방도 너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어.”예천우는 임완유가 호텔 측에 방 번호를 물어 볼 때부터 그녀가 호텔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천우의 능력으로 방 카드 없이도 손쉽게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임완유는 자초지종을 알게 되자 곧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넌 이제 양씨 가문의 딸이랑 결혼할 사람인데. 나한테는 왜 온 건데?”예천우는 한순간 멍해지더니 쓴웃음을 지었다.“그냥... 네가 너무 슬퍼 보여서.”“슬프든 말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임완유가 차갑게 대꾸했다.그러자 예천우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사실은 너한테 꼭 말하고 싶었어. 요 며칠 동안 일어난 일들... 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진 거라고.”“어쩔 수 없었다고? 넌 용왕님이잖아. 누가 감히 네가 싫다는 일을 강제로 시키겠어?” 사실 임완유도 뭔가 사정이 있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구체적인 이유는 몰랐다. 지금의 예천우는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예천우는 그동안 양체은에게 상처를 줄까 주저했지만 오늘 임완유의 슬픈 모습을 보고 더는 미룰 수 없다고 결심했다.‘완유를 이렇게 슬프게 놔둘 순 없지.’“그래도... 괜찮아.” 임완유는 여전히 불안했다. 혹시 자신의 선택이 예천우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섰지만 그렇다고 예천우와 양체은이 진짜 부부가 되는 건 더 두려웠다.“괜찮아, 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제 화 풀린 거지.” 예천우는 임완유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진 것을 보고 농담하듯 말했다.그러자 임완유는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아직 화 안 풀렸거든! 아무 말도 안 해서 정말 나 혼자 버려진 줄 알았잖아.”“그럴 리가. 네가 원하기만 하면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괜히 말해서 너한테 해가 될까 봐 걱정돼서 그랬던 거야.”“알아.” 임완유는 예천우의 말을 자르며 갑자기 용기를 내어 그에게 가볍게 입을 맞췄다. 하지만 이내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리려 하자 예천우가 웃으며 말했다.“어딜 가? 키스해 놓고 도망가려는 거야.”예천우는 완유의 허리를 감싸안고 그녀의 입술에 다시 입을 맞췄다. 완유는 예천우의 품에 안겨 자신도 모르게 그의 넓은 어깨를 붙잡았다.둘은 서로에게 점점 더 빠져들었고 임완유는 예천우의 품에 안겨 서서히 누웠다. 옷은 이리저리 흐트러졌고 어느새 그녀의 하얀 피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깊은 사랑을 나눴다.그런데 호텔 맞은편 고층 빌딩 창가에선 단아한 여인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사모님, 왜 도련님과 완유 씨가 헤어졌으면 하면서 이렇게 만나게 그냥 두신 건가요?” 그녀 옆에 서 있던 한 여자가 언짢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자기 선우서림이야말로 예천우와 어울리는 사람이라 여겼다. 임완유도 양체은도 모두 예천우와 어울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여인은 선우서림을 그윽이 바라보며 조용히 답했다.“임완유를 막는 건 임씨 가문에 주는 경고일 뿐이야. 임씨 가문 따위가 내 아들을 모욕할 자격은 없지. 천우가 완유를
예천우는 이 모든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몰래 계획했던 일들을 어머니가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다음 날 아침, 커튼을 뚫고 들어온 따스한 햇살에 임완유가 살며시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예천우는 벌써 일어나 있었다. 어젯밤 일은 꿈이 아니었다.처음 그런 일이 있었을 때는 기억이 흐릿했지만 어젯밤의 순간들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설렘이 가슴속에 가득했다. 어젯밤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예천우가 먼저 다가오긴 했지만 결국 자신도 그 상황에서 꽤나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침대 위에서 함께 뒹굴던 순간이 떠오르자 임완유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내가 어젯밤에 무슨 짓을...’ 부끄러움이 밀려온 임완유는 다시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그러자 예천우가 다가와 코끝을 살짝 건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바보야, 다 깼으면서 왜 자는 척해?”임완유는 계속 눈을 감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분명 내가 깬 줄은 모를 거야...’“무시하는 거야? 그럼 어젯밤이 부족했나 보네.” 예천우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임완유를 끌어안았다.임완유는 깜짝 놀라 얼굴이 더 빨개졌다. 옷도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어젯밤처럼 계속하려고. 네가 좋다고 했잖아.” 예천우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임완유의 긴 두 다리를 자신의 허리에 걸쳤다.“안 돼! 아...”임완유는 예천우의 품에서 더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두 사람은 다시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한편 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임완유가 집에 돌아오길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만 돌아오면 다시 한번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임완유는 연락도 닿지 않고 계속 외부와 단절된 상태였다.그 와중에 임선호가 외출했다가 예쁜 여자 친구와 함께 돌아왔다. 그 여자는 동성시에 있는 허씨 가문의 딸, 허가연이었다. 허씨 가문은 평범한 가문이 아니었다.허씨 가문은 비록 4대 가문에 미치지 못했지만 수천억에 달하는
“그건 아닐걸? 요즘 형부한테 잘해주고 있잖아. 혹시 형부도 이제는 너를 다르게 볼지도 모르지.”“됐어요. 제가 처음 형부한테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기억도 안 나세요?”“아이구, 우리도 그때 잠시 눈이 멀어서 네 말을 안 믿었잖니. 그래서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거지.”임국종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할아버지, 이제 와서 그 얘기해 봐야 소용없어요. 제가 뭐랬어요? 분명 후회한다고 했잖아요.”임선호는 답답한 듯 말했다. 예천우가 아직 가문에 남아 있었다면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았을 텐데, 예천우는 그 용국의 예씨 가문조차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 손씨 가문 쯤은 문제가 안 될 것이다.“오빠, 안 되면 그냥 돌아가도 괜찮아요. 제가 가서 그 사람들을 어떻게든 설득해 볼게요.”허가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작고 귀여운 인상에 사랑스러운 분위기와 날씬한 몸매까지 갖추고 있어 임씨 가문에서도 그녀의 집안과 외모를 무척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안 돼, 이런 건 남자가 나서야지.”임선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어쩔 수 없으면 형부한테 부탁해 볼게요. 누나 생각해서라도 한 번쯤 도와줄지도 모르니까.”여자친구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생각이었다. 바로 떠날 준비를 하던 그는 문득 무언가 떠올라 물었다.“참, 누나는 어디 있어요?”“그게...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유은수가 어젯밤 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일부는 생략했다.“뭐라고요?”임선호는 어제 있었던 일들을 전혀 몰랐기에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예천우가 다른 여자와 결혼까지 한다니!“아직 이런저런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얼른 누나부터 찾아야죠!“임선호는 다급하게 외쳤다.“우리도 찾고 있어, 전화도 안 받아.”임국종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임선호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임완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운 좋게도 전화가 바로 연결되었다.임완유는 마침 예천우와 행복한 시간을 마치고 가족들이 걱정할 수도 있다는 생
“엄마!”임선호가 다급하게 외쳤다.“지금 누나까지 귀찮게 할 순 없잖아.”“뭐? 이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네 누나한테 말도 안 하고. 그러면서 가연이를 네가 어떻게 지키겠다는 거야? 평생 고통 속에서 살게 할 생각이야?”유은수는 일부러 큰 소리로 꾸짖었다.임선호는 그 소리를 듣고 바로 임완유에게 말했다.“선호야, 무슨 일인데 그래?”“누나가 이렇게 힘든 상황인데... 말하기가 좀 그래서. 그래도 지금은 정말 방법이 없어.”임선호는 허가연의 집안 문제를 간략히 설명했다.얘기를 다 들은 임완유는 슬쩍 예천우를 바라봤다. 그런데 예천우가 자신의 가슴 쪽을 보고 있는 걸 느끼고 얼굴이 확 붉어졌다.“뭐 하는 거야.”임선호는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자세히 들을 틈은 없었다.“누나, 괜찮아?”“응, 괜찮아. 걱정 말고 이건 내가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 볼게.”임완유가 말했다.“응, 고마워, 누나!”임선호는 전화를 끊었다. 그때 갑자기 허가연이 당황한 표정으로 외쳤다.“큰일 났어요! 오빠가 천해시에서 직접 오고 있어요. 저를 데려가려고!”임선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렇게 빨리 오다니 예상 밖이었다.“걱정하지 마. 일단 숨어.”“하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우리 오빠 성격 알잖아요. 제가 임씨 집안에 있는 걸 알면... 저를 못 찾으면 온 집안을 뒤집어 놓을 텐데.”허가연은 고개를 저었다.그 말을 들은 유은수는 서둘러 말했다.“괜찮아. 우리가 그 사람이랑 말다툼할 필요는 없어. 선호야, 어서 가연이 데리고 나가.”유은수는 미래의 며느리가 마음에 들어 그녀를 지켜주려는 모습이었다.임선호는 잠시 고민했지만 유은수가 상황을 잘 처리할 거라 믿고 말했다.“그럼 부탁할게. 엄마. 가연아, 우리 가자.”어떤 일이 있어도 허가연을 손씨 가문에 보낼 순 없었다.임선호가 그렇게 말하자 허가연은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하지만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는 않는 곳에 숨었다. 일이 커지면 바로 대응할 준비를 하기 위해 근처에 남아 있기로 했다
그런데 예천우가 이렇게까지 이해해 주니 임완유는 오히려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천우야, 예전에 내가 얼마나 철없었는지 몰라. 자꾸 널 의심하고, 심지어 이혼까지 하고... 정말 나한테 화 안 나?”“화났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겠지.”예천우가 웃으며 말했다.“그리고 이혼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라는 거 다 알아.”그 말을 들은 임완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미소를 지었다.“정말 고마워!”“계속 칭찬해 줘. 난 체력도 정말 좋잖아.”“뭐야? 이런 사람이었어?”“왜? 난 그냥 체력 좋다고 한 건데. 설마 딴생각한 거 아니지?”임완유는 얼굴이 화끈거리며 부끄러워했다. 오늘만큼은 회사 대표다운 모습이 아니라 사랑에 눈뜬 소녀처럼 수줍어 보였다.오해를 풀고 나서 예천우는 외부에 그들의 관계가 노출되지 않도록 당부했다. 아직 공식적으로는 헤어진 사이이니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한편, 그 시각 임씨 저택에는 예기치 못한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특히 앞장선 청년은 건장한 체격에 기세가 매서웠다.“임선호! 그 멍청한 놈 당장 끌고 나와!”화가 잔뜩 난 허광이 소리치며 저택으로 들어섰다.임선호를 모욕하는 소리에 유은수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허씨 집안의 권력이 워낙 막강해 섣불리 대응할 수도 없었다.“선호는 지금 집에 없어요. 내가 그의 어머니인데 무슨 일이죠?”“너 같은 사람이 알아서 뭐 하게?”허광은 비웃으며 말했다.“경고하는데 당장 임선호와 허가연을 내놓지 않으면 가만히 안 둘 거야.”유은수는 모욕을 당하자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지만 아들을 위해 침착하게 말했다.“도련님, 무슨 오해가 있으신 것 같네요. 동생분 가연 씨는 여기 없어요.”“가연이가 없다고? 내가 가연이 오빠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그건... 그게... 그냥 추측한 거예요.”“추측? 웃기지 마! 우리 허씨 집안이 강해서 네 아들이 내 동생한테 빌붙은 거 아니야? 하지만 너희 집안 수준으로 그럴 자격이 있을 것 같아?”허광은 조롱 가득한 표정으로 침을 튀기며 유은수를
허씨 가문에서는 허가연이 임선호와 가까워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임연 그룹과 임선호를 철저히 조사했다.조사 결과 임선호는 그야말로 무능하고 하찮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물론 임씨 집안이 요즘 조금씩 성장하는 듯 보였지만 허씨 집안과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무엇보다 지금 동성의 4대 명문가 중 하나인 손씨 집안의 아들이 허가연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 시점에 이런 절호의 기회를 하찮은 임씨 집안 때문에 놓칠 수는 없었다.임국종은 얼굴이 붉어졌고 참기 힘든 굴욕감을 느꼈다. 차라리 나서지 말 걸 그랬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천우를 쫓아낸 이후로부터 이런 모욕을 당하는 일이 잦아져 집안의 위신마저 다 구겨진 것 같았다.임강도 유은수를 변호하려고 나서려 했지만 결국 조용히 서 있었다. 괜히 나섰다가 자기도 함께 모욕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임씨 가문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그 순간, 문득 예천우가 떠올랐다. 만약 그가 여기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당당하게 나서서 이들을 막아냈을 것이다.과거 예천우가 여러 번 나서서 임씨 집안을 위해 소란을 해결해 줬던 기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모두가 예천우가 허풍을 떤다고 여기며 오히려 그를 원망하고 경계했었다.차라리 모욕을 당할지언정 예천우가 무리수를 두는 건 원치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그때를 되짚어보니 예천우가 했던 말과 행동이 전부 진심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그가 자랑할 필요조차 없었던‘용왕’의 신분도 그렇고 그의 능력이라면 과거의 모든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진심을 인제야 알아채고 후회하고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이제 예천우는 양체은과 결혼할 것이고 임씨 집안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걸 깨닫자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고 허탈감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임씨 가문의 위상까지 추락해버렸다는 현실이 더욱 가슴을 짓눌렀다.“뭐야, 아직도 말하지 않을래? 그래, 그럼 네놈들이 자초한 일이니
선우서림이 먼저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주변 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특히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한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모여 있는 젊은 일행 쪽에서는 남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잠시 후 박민정과 그녀를 따르는 소정까지 비행기에 올랐다. 소정도 평범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박민정에 비하면 한참 밀리는 수준이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걸어오는 박민정의 등장으로 기내 사람들의 시선은 또 한 번 집중되었다.특히 그 젊은 일행 중 두 남자의 눈길이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이들 중 앞장서서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예명한이었고 옆에 있는 남자는 하위림, 여자는 그의 여동생 하은별이었다.하위림은 예명의 뒤를 따르는 동생이나 다름없었고 하은별은 오빠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예명한을 좋아하게 됐다. 하지만 예명한은 눈이 높아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었고 하은별은 여전히 예명한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그녀가 예명한과 결혼한다면 용도의 명문 예씨 가문에 들어가는 것이었다.물론 지금의 예씨 가문은 과거의 지위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아직도 용도 4대 가문 중 하나였다. 혹시 나중에 4대 가문에서 밀려난다 해도 슈퍼급 명문 가문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예천우는 예리한 감각으로 이미 그들의 시선을 눈치채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속으로는 또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아, 이럴 줄 알았으면 선우서림을 따라오게 두지 말 걸 그랬네. 또 번거로운 일을 만들겠어.’이번 여정은 특별히 중요한 일이 많아 쓸데없이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자신에게 까불어댄다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선우서림은 옆에서 예천우의 표정 변화를 주의 깊게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도련님, 왜 그래? 누가 화나게 했어?”“아무것도 아냐.”예천우는 고개를 저었다. 선우서림은 겉보기엔 조용해 보여도 실제로는 성격이 칼같아서 만약 이 상황을 안다면 먼저 나서서 난리를 칠 게 분명했다.“알겠어.
예천우의 단호한 태도에 선우서림은 더 이상 농담을 던지지 않았다. 자칫 과하게 나갔다가는 역효과가 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조용히 예천우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선우서림은 함께 올라가지 않았고 비록 겉으로는 이 집에 자신의 방이 있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사실 단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예천우가 부인 임완유와 둘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조금 우스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늘 예천우를 도련님이라 부르면서 임완유는 형수님이라 부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선우서림이 보기에 임완유는 어디까지나 형수님에 가까웠다. 예천우의 부인은 오직 임완유 한 사람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집으로 돌아온 예천우는 임완유와 오랜만에 깊고 다정한 시간을 보냈고 다음 날 이른 아침이 되자 그는 이미 공항 앞에 도착해 있었다.임완유 역시 바쁜 와중에 함께 나왔다. 이번 용도로 향하는 여정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그녀도 직감했기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예천우를 배웅하러 온 것이었다.뒤이어 나타난 선우서림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는 조용히 몸을 숨겼다. 그녀는 간단히 변장을 마치고 먼저 티켓을 확인한 뒤 홀로 탑승구로 들어섰다. 예천우가 어떤 상황을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그녀는 그가 곤란해할 만한 상황은 철저히 피했다.곧 오전 아홉 시가 가까워지자 비행기의 출발 시각도 다가왔고 승객들의 탑승 절차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때 선우서림이 잠깐 멈칫하며 말했다.“도련님, 저기 좀 봐. 저번에 진나비 콘서트에서 봤던 그 여자 아니야?”예천우가 돌아보니 오늘 그녀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마치 신선처럼 우아한 자태로 서 있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매력적인 모습이었지만 차갑고 무심한 표정 때문에 누구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그녀 곁에는 지난번 봤던 소정이라는 어린 소녀도 있었다.예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미 봤어. 근데 우리랑 같은 비행기를 타다니... 우연이라
예천우는 단호하게 말했다.“신향 씨는... 정말로 제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길 바라는 거예요?”“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그럼 됐어요. 정말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기회가 올 거예요.”예천우는 그렇게 말하며 이미 팔을 놓고 있는 이신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말을 들은 이신향은 더 이상 매달릴 수 없었고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전부 천우 씨 뜻대로 할게요.”예천우는 더 미련 두지 않고 호텔 로비를 빠져나갔다.그런데 막 호텔을 나서자마자 눈에 띄는 광경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출입구 옆에 세워진 빨간 페라리 한대가 있었다.그 안에는 마치 현실감 없는 미모를 지닌 여자가 앉아 있었고 지나는 사람마다 시선을 빼앗겨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그녀의 매혹적인 자태는 모든 시선을 빨아들이는 자석 같았다.남자들은 저런 여자를 가질 수 있다면 뭐든 내놓을 수 있다는 표정들이었다.그런데 그 여자가 예천우를 보자마자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도련님!”예천우는 살짝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선우서림?’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바로 차량으로 다가가 탑승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 눈엔 그저 부러움 그 자체였다.차에 오르자마자 선우서림이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예상보다 더 빨리 끝났네?”“무슨 말이야.”예천우는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선우서림 정도의 정보력이라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미 다 파악했을 터였다.“글쎄. 도련님이 뭘 했는지... 자신은 모를 리가 없겠지. 근데... 혹시 아까 그 여자랑... 안 잤어?”선우서림은 다소 실망스러운 듯 말했지만 그녀는 속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예천우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어야만 자신도 예천우의 애인이 될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예천우와 임완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건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근데 나를 왜 찾아왔어? 무슨
이신향은 예천우의 말을 듣자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천우 씨는 진짜 너무 좋은 사람이야...’“고마워요. 천우 씨, 사과도 해야 하지만... 오늘 정말... 너무 고마웠어요.” 그녀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천우 씨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전 제 인생 자체가 끝장났을 거예요.”그때 그 상황을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만약 그때 예천우가 없었다면 자신은 분명 조신우에게 끌려갔을 테고 그런 사람에게 붙잡혀 살게 된다면 인생은 고통뿐이었을 것이다.예천우는 담담하게 웃었다. “우린 친구잖아요. 서로 도우며 사는 거죠. 그리고 지금은 신향 씨도 저를 돕고 있잖아요.”“제가... 도와주고 있다고요?”이신향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백성 그룹을 저 대신 이끌고 있잖아요.”“그건 제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 천우 씨가 기회를 주신 거죠. 그렇게 얘기하니까 더 고맙잖아요.”이신향은 눈이 반짝이며 진심을 담아 말했고 예천우는 손을 들어서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알겠어요. 고맙다는 말은 여기까지 해요. 더는 안 돼요.”예천우는 속으로 제발 대화가 빨리 끝났으면 하고 있었다.솔직히 지금 이 상황은... 너무 위험했다.마음은 잘 다잡고 있어도 몸은 솔직했기 때문이다.“알겠어요. 안 할게요. 대신 제가 몸으로 감사해도 된다면... 그럼 다시는 말 안 할게요.”이신향은 얼굴에 붉은 기운이 가득한 채로 그의 목을 감아 안으며 입을 맞췄다.그녀는 몸을 예천우에게 바짝 기대며 천천히 스치기 시작했다.예천우는 순간 멍해졌고 평소 같았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했을 텐데 이번엔... 늦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는 이런 감각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몰랐다.하지만 머릿속에는 신념이 확고했다.책임감이라는 단어가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서로의 체온이 뜨겁게 오르던 그 순간 예천우는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고 입을 열었다.“신향 씨, 잠깐만요... 제 말 좀 들어봐요.”이신향은 그의 눈빛이 진지하다는 걸 알아채고 조용히 멈췄
원래는 분명히 말하려고 마음을 먹었었지만 예천우는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재동의 행동은 분명 호감 가는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오히려 불쾌하기까지 했고 일부는 분노를 자아낼 정도였다.하지만 예천우는 이제동도 아주 나쁘거나 악의적인 건 아니라는 걸 알았고 단지 그도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위험을 피하고 싶어 했을 뿐이다.무엇보다도 이신향은 아버지를 꽤 존경하고 있다는 걸 예천우는 알고 있었다. 그만큼 이재동도 딸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헤어지자고 말해버리면 이신향이 분명 상처받을 거라는 걸 그는 잘 알았다.‘그래. 그냥 나중에 신향 씨가 직접 아버지에게 말하도록 하는 게 더 좋을 거야.’ 그렇게 하면 서로 감정 상할 일도 없고 훨씬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어차피 예천우는 또다시 가짜 남자 친구 역할을 하며 불려 다닐 여유 따윈 없었다.조신우 건이 깔끔하게 마무리된 뒤 모두가 홀가분한 기분으로 식사를 이어갔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은 하나같이 훌륭했다. 보기만 해도 고급스럽고 향이 진하게 풍겨왔다.그리고 그건 당연했다.오늘 올라온 요리들은 하나같이 고가의 재료로 만든 귀한 음식들이었고 식당에서도 상위 몇 퍼센트만을 위한 최고급 요리였다.이재동 가족에게 이런 자리는 처음이었고 이런 걸 먹어본 적이 없으니 입에 넣는 순간부터 반응이 달랐다. 그야말로 행복한 표정들이었다.그중에서도 이신향은 가장 들떠 있었고 기분도 최고였다.특히나 부모님이 오랜만에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그녀는 아버지와 그리고 예천우와 연거푸 술잔을 주고받았다.그런데 놀랍게도 이재동의 주량은 꽤 대단했다.마오타이를 한 병 비운 뒤엔 더는 예천우의 귀한 술을 손대지 않았다.그 대신 이런 좋은 술은 아껴야 한다며 종업원에게 일반 백주를 가져오라고 시켰다.하지만 예천우가 그런 걸 올리게 둘 리가 없었다.결국 종업원은 또 다른 비싼 술인 페이톈 마오타이를 내왔다.그렇게 술잔
“아!”도민현은 예천우의 말에 깜짝 놀라 얼굴에 놀라움이 그대로 드러났다.“용왕님, 그게...”하지만 그는 곧 표정을 가다듬고 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바로 사람을 시켜 움직이겠습니다!”그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아무리 상상해도 그는 믿기 어려웠다.‘용문을 이끄는 용왕님에게 또 다른... 그것도 이렇게 무서운 신분이 있었다니…’예천우가 용문 용왕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예천우가 바로 용도 예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니... 이건 그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용도 예씨 가문이라면... 수십 년 역사에 빛나는 용도에서 손꼽히는 네 개의 최고 명문 중 하나...’그 존재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땀이 맺혔다.도민현이 자리를 뜨자 남아 있던 이재동과 그의 가족들 또한 속으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예씨 가문의 도련님이라고? 또 뭐야... 그건 또 얼마나 무서운 신분이야?’예씨 가문이 정확히 어떤 가문인지는 몰라도 분위기만 봐도 대단한 집안이라는 건 확실했다.특히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응대하던 걸 보면 그 위엄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이재동은 감히 따져 묻지 못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저... 천우야. 아까는 정말 미안했어. 내가 눈이 어두워서 네 진짜 실력을 알아보지 못했어. 괜한 말을 했고 또 멍청한 짓까지 해서 널 곤란하게 했구나... 그... 사과의 뜻으로 내가 술 석 잔 자진해서 마시겠으니 부디 용서해다오.”이재동은 급히 잔을 들고 술을 따르며 말했다.특히 아까 딸을 절대 예천우에게 줄 수는 없다면서 오직 조신우만이 이신향의 가장 적합한 혼처라는 말을 했던 게 떠올랐다.만약 예천우가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기라도 했다면 이신향의... 인생을 망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그 생각이 드는 순간 이재동은 등골이 오싹해졌다.그가 잘못 판단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이 바로 그 인생의 갈림길이었을지도 모른다.그는 절실했다.‘이건 우리 가족 운명을 바꿀
사실 이 모든 소문은 애초에 예웅남이 일부러 퍼뜨린 것이었다.예관희는 이미 예천우의 뜻에 따라 모든 사실을 예웅남에게 전했고 그중에는 예천우가 자신의 용왕 신분을 외부에 드러내지 말라고 했다는 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심지어 그가 종사급 고수라는 사실조차도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이유는 단 하나였다.예씨 가문 사람들의 진심과 충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예웅남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기회를 역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그는 그 정보를 슬쩍 흘리면서 예관희를 헐뜯고 예천우의 이미지를 흔들어 놓으려 했다.그렇게 분위기를 만든 뒤 예관희가 병사한 것으로 꾸며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주 자리에 오를 명분을 만들고자 했다.그 후에야 예천우를 제거한다면 더 이상 자신을 위협할 존재는 사라질 것이다.4대 가문 중 하나인 남궁 가문에게 자리를 넘긴다 한들 상관없었다. 어차피 지금의 예씨 가문이라면 예웅남은 그 자리를 지킬 능력도 없었다.이러한 소문 덕분에 전태민 역시 예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 돌아와 가주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여기서 진짜로 그 예씨 가문 큰 도련님을 마주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 모든 진위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전해 듣기로 큰 도련님은 예정환과 똑 닮았다고 했다.전태민은 다시 예천우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실례가 안 된다면 여쭤보겠습니다. 혹시... 예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신가요?”그 말이 떨어지자 주변 사람들 모두 눈을 크게 떴다.“예씨 가문의... 도련님?”이재동을 비롯한 일행은 뭔가 헷갈린다는 듯 당황한 표정이었고 심지어 이신향조차도 눈을 깜박이며 당황했다.‘천우 씨는 용왕이라며? 그런데 갑자기 예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거지?’곁에서 듣고 있던 도민현은 잠시 찡그린 뒤 고개를 저으며 정색했다.“전 시장님, 착각하신 겁니다. 이분은 예씨 가문의 도련님이 아니라 용왕님이십니다.”“뭐라고요?”전태민을 포함한 일행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그들은 당황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
이재동과 다른 사람들은 완전히 충격에 마비된 상태였고 심지어 이신향조차도 속으로 깊이 흔들렸다.그녀는 예천우가 대단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렇게까지 이 정도로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지금 방 안에 모인 사람들은 누가 봐도 하나같이 고위직 인사들이었다.그중에서도 앞장선 인물은 동성시의 중심 권력층에 있는 인물인데 그런 사람이 예천우의 부하에게조차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었다.그들이 그렇게 조심스럽고 공손한 태도를 보이자 도민현 역시 더는 강하게 나가지 않았다.그는 곧장 이유를 알아차렸다.‘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나한테 공손하게 대하는 이유는 분명 용왕님의 체면 때문이겠지.’그래서 도민현은 바로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말씀 잘하셨습니다. 오해가 풀렸으니 방금 일은 여기서 그만하도록 하죠.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좀 흥분해서 예의가 없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중히 사과드립니다.”“아... 아닙니다. 저희가 오히려 경솔했습니다.”전태민과 그 일행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고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그래야 협력이든 뭐든 제대로 되지.’“그러면 우리 사업 이야기 말인데요...”전태민이 빠르게 화제를 돌리며 묻자 도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물론 계속 진행할 겁니다. 다만 지금은 조씨 가문을 정리하는 일이 급하니 조금 여유를 주세요. 며칠 뒤에 다시 보죠.”“그건 당연하죠. 아무래도 강흥시에서 오신 거라 좀 거리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남강 지역이지 않습니까. 도 대표님 같은 정의로운 기업가께 우리가 도움 드리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전태민은 부드러운 미소로 덧붙였다.“좋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시장님.”도민현은 그 속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굳이 더 말은 하지 않았다.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조혁진은 점점 더 절망에
도민현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몸을 낮추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용왕님, 그럼... 조신우는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예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조씨 가문 전체도 네가 알아서 처리해. 받아야 할 벌은 반드시 받아야 해. 그리고 조씨 가문이 보유한 자산 중 쓸 수 있는 건 모두 꺼내서 필요한 이들에게 기부해. 물론 억울한 사람은 건드릴 필요 없어. 죄 없는 자에게까지 책임을 묻진 말아야지.”예천우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죄가 있는 자라면... 절대로 봐주는 일은 없어야 해.”“용왕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도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조신우는 아주 잠깐 희망의 빛을 본 듯했지만 곧바로 그 빛은 산산이 부서졌다.‘안 돼... 우리 집안은 죄 없는 쪽이 아니잖아.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밑에 있던 놈들도 하나같이...’조신우는 얼굴이 점점 새하얗게 질려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재동 가족의 마음도 서늘하게 얼어붙었다.‘천우... 아니, 용왕님의 말 한마디가 조씨 가문의 운명이 정해졌네.’바로 그때, 문이 하고 열리며 몇 명의 인물이 들어섰다.강흥시의 시장 전태민과 그 일행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도민현과 예천우가 있는 자리를 찾아낸 것이다.문이 열리자마자 그들은 방 안을 둘러봤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인물은 도민현이었다.그러나 정작 벽 구석에 구겨져 있는 조신우는 눈에 띄지 않았다.이재동과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며 주변을 살폈고 그중에서도 눈에 띈 이는 조신우의 둘째 삼촌인 조혁진이었다.그는 맨 뒤에 있었고 손발이 묶인 건 아니었지만 무언가에 억제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조혁진은 들어오자마자 조신우를 찾으려 두리번거렸다.사실 그도 처음엔 어떤 이유로 자신이 붙잡힌 건지 알지 못했다.하지만 도민현이 이 자리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머릿속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설마... 신우가? 용왕님의 지인을 건드리기라도 한 건가?’그는 그런 상상까지만 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