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은 뒷짐을 진 채, 깊은 눈빛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대원수 직위와 북양 왕의 직위를 가지려 해.”신군은 한마디로 자신의 뜻을 당당히 밝혔다. 그는 바로 군사 정권을 빼앗으려는 것이다. 한지훈은 눈썹을 찌푸린 채, 차가운 눈빛으로 신군을 바라보았다. 한편으론 끊임없이 들려오는 바깥의 동정을 신경 쓰기도 했다. 천자각 정문과 창문 밖에서는, 중무장한 흑갑 병사들은 이미 총알을 장전하고 있었다. 그 병사들을 거느린 대장은, 큰 손으로 주먹을 꽉 쥔 채 긴장한 마음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일단 명령만 떨어지기만 하면 그들은 바로 돌진하게 된다. 심지어 홀 안에서는 이미 정문과 창문 밖 사람들의 그림자를 훤히 보아낼 수가 있었다. 곧이어 한지훈은 갑자기 웃더니 탁자 위에 놓인 식은 찻잔을 들고는 망설임 없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 나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폐하께서 가져가려 하신다면 제가 굳이 안 넘겨줄 이유는 없죠. 이 차, 식었네요.” 말이 끝나자마자 한지훈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신군은 한지훈의 뒷모습을 보고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한 사령관, 이 길대로 천자각을 나가면 너는 더 이상 용국의 대원수도 북양 왕도 아니라 그저 평범한 백성이 될 거야.”그 말에 한지훈은 발걸음을 멈추고는 뒤도 안 돌아보며 말했다. “저도 피 터지게 싸우는 게 싫어서 그러는 겁니다. 폐하께서 저의 통솔권과 병권을 원하신다면 전 얼마든지 흔쾌히 넘겨줄 의향이 있어요. 오늘부터 전 더 이상 용국의 대원수도, 북양 왕도 아닙니다. 앞으로는 폐하께서 저희 용국을 더욱 휘황찬란하게 이끌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말이 끝나기와 바쁘게 한지훈은 자신의 품 속에서 금색 영패를 하나 곧바로 신군의 손에 건네주었다. 그것은 바로 대원수 영패였다. 이 영패를 두 눈으로 확인한 신군은 그제야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떠나기 전,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나저나 폐하께서 제 말을 믿어주실지는 모르겠
진노는 호들갑을 떨며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안돼! 대체 신군이 무슨 꿍꿍이를 하고 있길래... 북양이 우리 용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이라는 것도 잘 알 거잖아! 너 말고 국경에 있는 여러 나라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데 네가 만약 이렇게 파면된다면, 그 여러 나라들은 반드시 언젠가는 북양을 노릴 거야! 내가 지금 당장 들어가서 신군을 설득해 볼게!”신한국은 불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자 한지훈은 재빨리 그를 가로막고 말했다. “장로님, 나서실 필요 없어요. 일이 이미 이 지경까지 이른 상황에 저희가 더 이상 설득할 필요는 없어요.”“그래도...”신한국의 얼굴에는 여전히 노기가 가득했다. 강만용도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국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됐어, 그만해. 신군이 즉위하게 된 이상 노신들을 정리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야. 필경 그의 입장으로서는 권력을 단단히 틀어쥐어야 하거든. 이왕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우린 그저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면 돼.”한쪽 켠에 서있던 전부 대장군도 살짝 눈썹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노의 말이 맞아. 이 시점에 굳이 신군한테 도전할 이유는 없어. 필경 우리가 전임 국왕과 함께 뽑은 사람이잖아. 어떻게 보면 그 또한 전임 국왕이랑 비슷한 점이 많기도 해.”사람들은 침묵한 채 한지훈만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한지훈은 웃으며 말했다. “장로님, 사실 저도 좀 피곤했어요. 마침 쉬는 시간을 가져서 우연이랑 고운이 곁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앞으로 용국의 미래는 장로님들한테 부탁할게요.”말을 마치자마자 한지훈은 몸을 굽혀 인사를 올렸다. 그 후 그는 발걸음을 옮겨, 오랫동안 그를 기다리고 있던 용운의 차에 올라탔다. 차에 오르자마자 한지훈은 말했다. “강중으로 돌아가자.”“네, 용왕님.”곧이어 용운은 액셀을 밟고는 천자각 광장을 떠났다. 미련 없이 떠나는 한지훈의 모습에 강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용국에는 더 이상 북양 왕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강우연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한지훈은 크게 기뻐하며 강우연을 껴안고는 화장실에서 뛰쳐나와 펄쩍펄쩍 뛰었다. “와! 나 또 아빠 되는 거야!”한지훈에게 안긴 강우연은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마찬가지로 즐겁게 웃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강우연은 입을 뗐다. “아이고, 이젠 그만해요. 머리가 어지러워요.”한지훈은 그제야 강우연을 내려놓고는 격동된 말투로 그녀의 배를 만지며 웃었다. “내가 또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다니...”강우연은 그런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어허, 함부로 만지지 마요. 이제 얼마밖에 안 됐는데 뭘 그렇게 자꾸만 만져요?”난감한 표정을 보인 한지훈은 얼굴을 긁적거리며 민망한 듯 말했다. “전에 네가 고운이를 임신했을 때 내가 네 곁에 없었잖아. 하지만 이젠, 내가 네 곁에 계속 머무를 수 있게 됐어. 앞으로 하루도 떨어지지 않을 거야.”그 말에 강우연은 사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 왜 이렇게 능글맞아요. 우린 신혼부부도 아닌데...”한지훈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 내 운명은 정해졌어. 난 우리 와이프 밀착 경호원으로만 지내면서 살 거야!”강우연은 사랑이 넘치는 한지훈의 품에 안겨 미소를 머금고는 말했다. “맞다, 여보. 이름부터 생각해 봐요.”그러자 한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약 남자아이라면 한우현이라고 하고, 여자아이라면 한영이라고 짓는 게 어때?”강우연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좋아요.”그렇게 두 사람은 질리도록 온 밤 기대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저녁, 강우연이 잠든 후 한지훈은 조심스레 고운이의 작은 침실에 들어와 잠결에도 입가에 웃음을 띤 딸의 모습을 지그시 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문을 살짝 닫고는 정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웬 한 줄기의 그림자가 어둠을 뚫고 한지훈 앞으로 걸어갔다. “할아버지? 웬일이세요?”한지훈은 벤치에 누워 전에 한용이 건네준 을 읽어보고 있었다. 지난번 칠검과의 일전
“무신종, 신군, 무종, 이외의 각 세력들 그리고 해외 여러 나라들까지... 그 누구도 쉬운 상대들은 아니야. 그리고 넌 이미 이 시대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람 중 하나가 되었어. 어떻게든 널 손아귀에 넣고 통제하려 할 거야” 한용은 지그시 한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연히 한용의 뜻을 알게 된 한지훈은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는 지금으로서는 편안하게 지내고 싶었다. “할아버지, 하지만 전 여전히 이해가 안 돼요. 제가 이미 물러났는데 왜 그들은 여전히 저를 잡고 놓지 않으려 하는 거죠?”한지훈이 물었다. 그러자 한용은 웃으며 한지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말했다. “지훈아, 네가 물러나든 말든 너의 명예는 영원히 남게 되고 너의 능력은 여전히 인정을 받게 되는 거야. 그러므로 널 추격하려는 자들은 언제나 존재해. 네가 살아있는 한, 그들은 영원히 네 인생의 장애물이 될 거야.” “앞으로 네가 걸어가야 할 길은 많아. 넌 천천히 그 길을 가야 돼. 신군은 비록 잠시는 너를 건드리지 않을 테지만, 그를 지키는 신하들은 달라. 무종의 각 문파, 해외 세력들 그리고 무신종은 결코 너를 이렇게 편안하게 놔두지는 않을 거야.”그 말을 들은 한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곧이어 한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별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훈아, 이젠 새로운 시대가 왔어. 전세가 또 바뀌게 될 거야. 우리한테는 남겨진 시간도 별로 많지가 않아. 그동안 너는 네 실력을 잘 키워내. 몰래 숨어서 널 노리는 적들이 하나씩 나타나게 될 거야. 이미 바둑판은 바뀌기 시작했거든.”말을 마치자마자 한용은 주머니에서 녹색의 비취 옥패를 꺼내 던져주었다. “이건 내가 곧 태어날 아이에게 주는 선물이야. 받아.” 그 비취 옥패는 영롱한 녹색 빛을 뿜어냈고, 그 위에는 다섯 마리의 용이 한 기둥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손에 쥐기만 해도 한지훈은 이 옥패 속에서 흘러나오는 기온을 온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할아버지, 이 옥패는 어디선 난 거예요?”한지
한지훈은 차갑게 웃기만 했다. 그 모습에 놀란 동방풍은 갑자기 눈빛이 흔들렸다.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게 되면, 동방풍은 지금도 간담이 서늘해난다. 약왕파 황약사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동방풍은 진작에 자신의 팔과 다리를 잃고는 폐인이 되었을 것이다. “동방 도련님이셨네. 그나저나 팔, 다리 회복이 아주 빠르네?”한지훈은 담담하게 웃었다. 그 말을 들은 동방풍의 안색은 즉시 상기되었고, 그는 분노를 불태우며 한지훈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뭐라고? 설마 내가 너를 무서워하는 줄 알아? 나 이래 봬도...”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지훈은 차갑고 살을 에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고, 그 기에 눌린 동방풍은 깜짝 놀라 하려던 말을 삼켰다. 이내 한지훈은 고개를 돌려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우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 만나야 된다던 고객이 바로 이 사람이었어?”강우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왜 그래요?”한지훈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하지만 뭔가 낌새를 알아차린 강우연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여보, 혹시 전에 이 사람 만난 적 있어요? 전에 갈등이라도 있었던 거예요?”한지훈은 차마 부정하지는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작은 갈등이 있긴 했어.”그러자 강우연의 얼굴색은 순식간에 차가워졌고,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동방풍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놀란 동방풍은 어쩔 바를 몰라했다. 일단 그는 애써 침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강 회장님, 저희가 가져온 계약서입니다. 직접 서명하시면 됩니다.” 곧이어 동방풍이 손짓하자 뒤에 서있던 비서가 직접 계약서를 꺼내 강우연에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강우연은 차가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동방 도련님, 저희의 협력은 없던 일로 하죠!”탁! 이에 분노한 동방풍은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 치며 물었다. “강 회장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제가 멀리 용경에서부터 이곳까지 달려온 건
동방풍은 순간 온몸이 거꾸로 날아올라, 이내 의자 몇 개에 부딪히고 나서는 땅에 털썩 쓰러져 버렸다. 그는 가슴을 쥐어잡고는 얼굴은 온통 빨갛게 달아오른 채 고통스럽게 소리를 내며 피를 토해냈다. 강우연은 차가운 표정을 한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지르는 동방풍을 내려다보며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방풍, 여기는 엄연히 우연 그룹이야! 네가 함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경비원!”말이 떨어지자마자 문 앞의 경비원 몇 명이 신속하게 뛰어들어왔다. “강 회장님!”강우연은 차갑게 말했다. “모두 내쫓아!”“네!”곧이어 그 몇 명의 경비원은 즉시 앞으로 나아가 동방풍과 그의 비서들을 전부 우연 그룹 빌딩 밖으로 내버렸다. 그렇게 동방풍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건물 밖으로 던져졌다.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비서들은 재빨리 몸을 털고 일어나 동방풍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동방풍은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강우연과 한지훈을 가리키며 악랄하게 소리쳤다. “너... 너희들 두고 봐! 한지훈, 강우연! 오늘 너희들이 한 짓, 내가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 거야!”곧이어 동방풍은 비서의 부축을 받아 차에 올타라 우연 그룹을 떠났다. 그러자 강우연의 얼굴에 가득했던 한기도 서서히 사라졌다. 이때, 한지훈은 손을 들어 강우연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여보, 잘했는데?”강우연은 민망한 듯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다 당신 때문만은 아니에요.”한지훈은 웃으며 강우연의 작은 허리를 껴안고는 말했다. “알겠어. 이젠 그만 화내. 그리고 앞으로는 함부로 나서지 마. 만약 방심했다가 아기가 다치지라도 하면 어떡해?”그러자 강우연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앙탈을 부렸다. “여보, 저 임신한 후부터 실력이 나날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이제 어떡하죠?”한지훈은 그런 그녀를 달래주었다.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그래도 일단은 안심해. 남편인 내가 네 곁에 있
동방 오호는 떨리는 눈빛을 한 채, 돌아선 연로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사실 연로는 동방 가문 10대 공양 중의 한 명이었다. 이미 꽤나 진화를 한 그의 실력은 진작에 종사는 초월하였고, 어느새 천왕의 경지까지 다다르기도 했다. 그런 연로가 직접 나서려고 하자, 동방 오호는 더 이상 우연 그룹을 얻지 못할 걱정은 아예 지워버렸다. 한편 연로가 막 자리를 떠나자마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하인이 재빠른 걸음으로 들어와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가주님, 천자각에서 사람을 보내왔습니다.”“천자각?” 그 말을 들은 동방 오호는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얼른 들어오라고 해!”이내 동방 오호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입구에서는, 군복을 입은 장교가 여섯 명의 병사들을 데리고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동방 오호는 재빨리 나서서 그들을 맞이하였고 일일이 악수까지 나누며 호의를 표했다. “장군님, 먼 곳에서 이곳까지 찾아와 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얼른 앉으시죠! 차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하지만 장군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사양할게요, 괜찮습니다. 사실 제가 이번에 찾아온 것은 신군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폐하의 명령이요?”그 말을 들은 동방 오호의 안색은 약간 부자연스럽고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곧이어 장군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동방 가문의 원자 일맥뿐만 아니라 이따가 다른 가문에도 직접 이 소식을 전하러 갈 거거든요.”“그렇군요. 그럼 폐하께서는 대체 어떤 명을 내리 신 건가요?” 동방 오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공손하게 물었다. 그러자 장군은 직접 품에서 금빛 성지를 꺼내 들어 펼쳤다. “폐하께서 동방 오호에게 직접 내린 명령입니다!”눈치 빠른 동방 오호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얼른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렸다. 장군은 말을 이어갔다. “자세한 이유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신군의 뜻은 매우 간단해요. 동방 가문의 원자 일맥을 폐하에게 넘
뜻밖에도 동방 한문이 주동적으로 10퍼센트를 추가하여 무려 40퍼센트의 이윤을 신군에게 넘겨줬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동방 오호는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됐다. 그러나 그는 제 멋대로 따라서 10퍼센트를 추가할 수는 없었다. 이 일은 반드시 어르신으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했다. 곧이어 장군은 더욱 머물지도 않고 얼른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동방 오호는 복잡한 마음으로 그를 직접 문어귀까지 바래다주면서 공손하게 한마디 물었다. “장군님, 제가 감히 한마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원 씨, 당 씨 그리고 이 씨 가문 모두 아무런 원망도 않던가요?” 그러자 장군은 고개를 돌려 동방 오호를 바라보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원망 안 하던데요. 감히 원망할 용기도 없어 보였고요.”그 말을 마치자마자 장군은 다시 자리를 떠났다. 동방 오호는 어두운 안색을 한 채, 재빨리 몸을 돌려 뒤뜰로 달려가 이 일을 할아버지께 보고했다. 결국 이날, 4대 가문은 각자 긴급회의를 열어 대처 방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4대 가문의 가주들은 비밀리에 당 씨 집안까지 찾아 대면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논의한 결과, 그들은 결국 일단 참기로 했다. 금방 직위에 오른 신군은 위세를 떨치고 싶어 안달 난 상황이었고, 그의 첫 번째 계획이 바로 4대 가문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패기는, 분명 전임 국왕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만약 이 상황에, 4대 가문이 명령을 거절하게 된다면 그들은 용국과 등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때가 되면 신군도 그들을 정당하게 처리할 핑계가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4대 가문은 곧 천자각과 용국 백성들로부터 삿대질을 받을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4대 가문 역시 이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순순히 넘긴 그 30 퍼센트의 이윤은 일단은 신군를 달래주는 용도였다. 한편 천자각에서는, 신군이 지난번 한지훈과 바둑을 두었던 경험을 되새기면서 조용히 혼자서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낙로와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
천산 장 씨 집안과 항산 사이에는 서로 맺은 약속이 있었다. 오늘 이 자소화도 사실은 천릉자에게 주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소화 자체는 결코 희귀하지는 않지만, 꽃이 피기 전의 자소화를 찾는 건 매우 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다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산속의 맹수들에 의해 먹히고는 만다. 사실 천신계 강자에게 있어, 자소화의 장점은 셀 수 없이도 많았다.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순조롭게 2성 현급 천신계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유혹 앞에서, 장령풍은 장 씨 집안과 항산의 약속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생각뿐이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천릉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령풍, 작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잃으려 하지는 마. 당시 한지훈의 그 사건도 장 씨 집안이 자초한 일이었어. 네가 자소화를 손에 넣는다면, 그동안 우리가 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사실 전에 5대 명산, 항산 그리고 천산 장 씨 집안이 줄곧 천릉자를 치켜세운 이유는 그 배후에는 아주 큰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불세출의 천재란 타이틀을 근본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실 천릉자는 이미 30년 전에 항산 문하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항산은 줄곧 그를 중점 육성 대상으로 간주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4년 만에 단번에 천신 경계를 돌파하게 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가짜였지만, 그 최종 목적은 천릉자를 이용하여 한지훈을 호되게 밟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유 씨 어르신의 발언과 언론을 통해 한지훈은 영원히 용국의 치욕이라는 이미지로 매장하려는 속셈이었다.그러려면 이 과정에서 천릉자의 후광을 더욱 밝게 비추어야 했다. 그의 후광으로 한지훈의 공적을 덮어 그를 폄하하고 말살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이었다. “장 씨 집안의 계략이 뭐가 대수야? 난 지금 오직 이 자소화만 갖고 싶을 뿐이야!”장령풍은 여전히 굳은 표정
만약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 내용이 보도된다면 전 세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될 것이다.필경 현재 용국은 물론, 심지어 전 세계가 모두 한지훈이 단지 일성 준 천신계의 실력으로 10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참살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는, 한지훈과 용국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배후에 호천 창세가 손을 쓴 거라면 용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지훈은 또 어떻게 될까? 과연 누가 용국을 두려워하겠는가? 아마 그 누구도 한지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 않을 것이다.“됐어, 한지훈 그 반역자에 대해서는 이쯤하자. 저 두 사람의 시합이나 지켜보자고!”유 씨 어르신은 의도적으로 반역자라는 세 글자를 강조하며, 한지훈의 못된 이미지를 제대로 박았다. 한편 그 시각, 한지훈도 어느새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은 여전히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장령풍의 상황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새하얀 도포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장령풍은,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고 분노 가득한 두 눈동자는 천릉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반면 천릉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여유롭게 한 손을 짊어진 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듣기로는 너희 장 씨 집안 삼절진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역시나 명실상부라 느껴지긴 하는구나. 하지만 다만 아쉬운 건, 넌 아직 제대로 불꽃이 튀지 않아 천절진의 위력은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앞으로 만약 10년만 더 지나게 된다면, 나중에 나의 천망 검진은 너를 더 이상 격파하기도 어렵게 될 거야. 하지만 어찌 됐든 그건 10년 후의 일이니, 오늘은 일단 이 자소화를 나한테 양보해!”이내 천릉자가 허리 굽혀 자소화를 따려는 순간, 숲속에서는 갑자기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옥!”불곰보다도 몇 배나 더 큰 맹호 한 마리가 갑자기 숲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천릉자와 장령풍 모두 멍해졌다. 전에 5대 명산 고수들이 이미 산꼭대기를
유 씨 어르신의 말에, 임설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기가 돌아온 후, 모든 사람들의 몸에는 큰 변화가 생겼고 저항력도 강해졌을 뿐만 신체능력도 향상되었다.그러나 마찬가지로 맹수들도 더욱 강해졌다. 만약 임설이 맹호를 상대한다면, 그건 바로 먹잇감이 되는 것이었다.당시 한지훈의 일전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상대하다니, 게다가 모두 한지훈보다 한두 단계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라니. 비유하자면 당시의 한지훈은 마치 현재의 임설과도 같았고, 그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은 바로 맹호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결 결과는, 전혀 추측할 필요가 없이 다들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당시 그 대결이 만약 오로지 한지훈의 소행이었다면, 이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유 씨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필경 유 씨 어르신은 화산 고수중 한 명이었기에, 그의 말은 신빙성이 아주 높았다. 게다가 진정한 무도 중인 만이 한지훈이 당시 직면한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유 씨 어르신은 이런 속임수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종이 점점 강해지게 되면서, 현재 더욱 많은 일반인들이 모든 경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게 되었다. 천신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전신계라 하더라도 작은 경계 사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즉 천릉자는 비록 일성 준 천신의 최고 실력에 도달하긴 했지만, 그가 2성 천신계를 돌파하지 못한 이상, 2성 천신계 상대에게 있어 그는 마치 땅강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전혀 같은 수평선에 놓여있지 않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어르신, 그 말씀은 전에 한지훈이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뜻인가요?”임설이 다시 물었다. “그래.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네. 너희들 아직도
임설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 임설이니?”바로 이때, 임설의 뒤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씨 어르신?”고개를 돌린 임설은, 뒤에 선 노인을 보고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이내 급히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녀가 유 씨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바로, 세속에서 활동 중인 화산 강자이자 현재 무도 재판소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게다가 화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유 씨 어르신은 세속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매체인으로서 임설 역시 유 씨 어르신이 낯설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에 그녀는, 유 씨 어르신의 인맥을 통해 5대 명산의 3기 다큐 영화까지 제작했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왜 여기 계신 거예요?”임설은 겉으로는 궁금해하는 척했지만, 사실 내심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이었기에, 같은 5대 명산인 화산에서 사람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단지 길을 가던 중 한번 와서 본 것일 뿐이야.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이들이야말로 용국의 미래 희망이지!”유 씨 어르신은 눈을 지그시 뜨고는 산 꼭대기 쪽을 유유히 바라보았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임설은 급히 보조 카메라 감독을 불러 휴대폰으로 촬영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유 씨 어르신 가까이에 다가갔다. “어르신, 어르신의 경험으로 봤을 때 오늘 이 자소화, 과연 어느 집안이 가져갈 거라고 예상하시나요?”필경 유 씨 어르신의 신분 지위는 꽤나 높았기에, 아마 일부 내막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5대 명산끼리의 호흡은 결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령풍과 천릉자가 맞붙기도 전에, 아마 암암리에 모든 준비를 마쳤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아이고, 그 질문은 좀 난처하네. 원칙부터 말하자면, 장 씨 집안 역사는 엄청 유구하지. 우리 용국의 많은 비진도 모두 장 씨 집안으로부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