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엔 누가 됐든 한지훈에게 도전장을 내면, 그는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지요. 그런데 이번엔 어떻습니까? 아무런 응답도 없습니다! 그건 바로 그가 겁을 먹었다는 것입니다!”기씨 가문의 대표가 오만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이미 그들이 한지훈과 완전히 반대편에 서기로 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이 소식에 기씨 대표는 기세가 올랐고, 분위기도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그러나 막 원씨와 동방 가문의 대표들이 반박하려는 찰나,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는 뉴스가 전해졌다한지훈이 공식적으로 위원길의 도전을 거절했다는 것이다.“뭐?!”“한지훈이……!”동방 가문의 사람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원상용조차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혹시 이번에도 잘못된 편을 든 건가……?하지만 정작 한지훈은 전혀 겁먹은 게 아니었다.현재 혈족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용국 각지의 마을과 지역이 심각한 위협에 처해 있었다.그는 지금 혈족의 위협에 맞서면서, 무엇보다 평범한 백성들을 보호해야 했다.그에 비하면, 위원길 같은 어릿광대에게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었다.“내 생각엔, 한 선생께서도 뭔가 계산이 있으신 듯합니다.”원상용이 처음으로 정적을 깨며, 한지훈을 두둔하고 나섰다.“흥! 그가 무슨 계산을 한단 말입니까? 겁먹은 거지! 그리고 당신들도 위원길이 누구인지나 제대로 알긴 하는 겁니까?!”기씨 대표는 더욱 거만한 태도로 목소리를 높였다.“위씨 가문…… 외부 세계에서 온 무도 세가 중 하나였던가요?”원상용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되물었다.이미 입장을 정한 이상, 결과가 어찌 되든 상대에게 기세에서 밀릴 수는 없었다.“이당의 명신 위징에 대해 들어보셨죠? 위원길은 바로 그 가문, 위씨 가문의 세자입니다. 역외에서 위씨 가문은 절대적인 권력을 자랑하지요. 장거정의 장씨 가문, 왕안석의 왕씨 가문…… 이런 거물들도 전부 같은 진영 소속입니다.”“말하자면, 위원길은 단순한 세자가 아니라, 역외 공맹 세가들 전체를 대표하는 존재라 이 말입니다! 한지훈 따위가 아무리 대담해도, 이
한지훈은 이번 역외 통로 개방은, 천도맹약과 제왕각 양측이 오래전부터 판을 짜놓은 전략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있고, 이 안에 담긴 수는 실로 깊고 복잡했다.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단 한 걸음도 물러서선 안 된다.물러서는 순간 용국이 위험하고, 용국 백성들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보고드립니다!”그때, 문밖에서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통신병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진우가 눈썹을 찌푸리며 외쳤다.“들어오게.”“진 총사님, 북양왕님! 용경 위씨 가문에서 흑병대에 일전을 청하는 도전장을 보내왔습니다! 북양왕과의 결전을 원한다고 했습니다!”그와 동시에 통신병은 한 장의 봉투를 진우에게 건넸다.“한 씨 형님, 이건 위원길이 직접 사람을 보내 전달한 겁니다. 꽤 건방지더군요.”진우는 그 말을 하며 도전장을 한지훈에게 내밀었다.위원길이 이번 도전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건 철저히 계획된 움직임이었다.이 도전장이 흑병대에 도착하자마자, 전국의 방송국과 인터넷을 통해 이 소식이 순식간에 퍼졌다.순식간에, 온 나라가 위원길이 북양왕 한지훈에게 도전장을 보냈다는 이야기로 들끓었다.“하, 이놈의 세자가 뭐 이렇게 끊이지를 않냐? 며칠 전에 죽은 그 누구처럼 또 도전이야?”“흥, 이런 놈들은 진짜 남쪽 벽에 머리 부딪치기 전엔 정신 못 차리지. 북양왕이 한 번 나서면 그 자리에서 끝장인데 말이야.”“진심 궁금하다, 쟤네 목숨은 충전할 때 공짜로 딸려 온 건가? 어째 이리도 값싸냐?”한동안, 온라인의 여론은 거의 일방적으로 전부 다 한지훈을 지지하고 있었고, 위원길은 조롱의 대상일 뿐이었다.그도 그럴 것이, 이전 무종이든 오대 명산이든 연달아 민심을 거슬렀고, 결국 한지훈이 직접 나서서 억울했던 백성들의 울분을 풀어주었기 때문이었다.용국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한지훈은 이미 구세주 그 자체였다.무슨 위씨 가문 세자건, 이씨 가문 세자건 간에, 통하지 않았다.하지만 정작 위원길은 그런 여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단지 위 씨 가문을 대표하는 것뿐만
한지훈은 생각에 잠긴 듯 물었다. 예전의 용 선생이든, 나중의 낙 선생이든, 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바로 언제나 국왕 곁에 붙어 있으면서도, 그 진짜 목적은 국왕을 곤경에 빠뜨리고, 이견을 가진 자들을 억누르며 끝내는 그를 용상에서 끌어내리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사실 천도맹약이든, 제왕각이든 간에, 양측은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물밑에서 대결해 왔다.그들의 손에서 놀아난 것은 다름 아닌 각 시대의 군왕과 재상들이었다.한 황제든, 진왕이든, 어쩌면 그들 위에 또 다른 판을 짜는 이들이 존재했던 건 아닐까?그리고 지금의 이 혼란스러운 판세 역시, 그 긴 싸움의 결과 중 하나에 불과할지 모른다.현재 용국의 무력은 오대명산과 무종이 대표하고 있으며, 문신들 가운데에도 그들과 내통하는 자들이 없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만약 한지훈이 갑작스럽게 등장하지 않았다면, 천도맹약의 이번 계획은 아마 그대로 이루어졌을 것이다.그랬다면 단지 용국 백성의 생명만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용국 전체가 혼돈에 빠지고 더 나아가 전 세계가 멸망의 문턱에 내몰렸을 것이다.한지훈은 직접 성역을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비록 성역은 도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립적인 세계였지만, 그곳은 완전히 속세와는 단절된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이었다.즉, 속세가 멸망하더라도 성역은 그대로 존속할 수 있다는 뜻이다.결국, 아직 용족의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다섯 개의 용심이 여전히 용국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은 속세를 유지하는 척하며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속세 따위는 이미 존재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정말 예상 밖이네요. 그러고 보면, 예전에 당나라 왕이 임종할 때 우리 이씨 가문에 당부하시길, 언제 어디서든 용국 백성을 지켜야 하며, 백성에게 등을 돌리는 자는 이당의 적이라 말씀하셨지요.”이청도가 감개무량한 듯 중얼거렸다.“그분도 이미 모든 것을 간파하고 계셨던 겁니다.”“이제야 게임이 시작된 거죠. 천도맹약이든 제왕각이든, 지금의 용국은 예
수 세기 동안 전해 내려오는 수 양제에 대한 전설은 거의 모두가 부정적인 내용으로 가득했으며, 그는 용국 역사상 대표적인 암군 중 하나로 손꼽혀 왔다.그러나 지금, 주호연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이 모든 인식을 송두리째 뒤엎고 있었다.“그렇다면… 아주 오래전부터 천도맹약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 용국을 통제하려 했다는 거군요?”한지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주호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비밀들을 하나씩 털어놓기 시작했다.사실, 고대부터 지금까지, 많은 문관들이 천도맹약에서 파견한 첩자들이었다. 평소에는 입만 열면 인의예지를 떠들지만, 용국에 변동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서서 물을 흐리고 혼란을 조장하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수당을 지나 명대에 이르기까지, 그 흐름은 한 번도 끊기지 않았다.예를 들면 주기진은 결코 와라에게 항복한 적이 없으며, 관복을 입은 적도 없었고, 단지 문신들에게 배신당했을 뿐이다. 따라서 그가 복위한 뒤, 그는 조정의 문신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던 것이다.심지어 명나라 전체를 살펴봐도, 실제로는 단 한 명의 암군도 없었다. 다만, 그들은 동림당과 싸우는 데 평생을 바쳐야 했고, 언제든지 독살당할 위험에 놓여 있었을 뿐이다.한지훈이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이 동림당이 단지 명말에 생긴 정치 집단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기원은 훨씬 더 오래된 북송 시대의 동림서원에서 비롯되었으며, 송태조 역시 바로 그 인의예지를 외치던 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그럼… 그들은 자신을 공자의 제자라 자처하면서도, 가장 비열한 짓을 일삼았단 말입니까?”이청도 역시 얼굴을 굳히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닙니다. 공씨 가문, 그러니까 공구 그 자신부터가 용국의 배신자였습니다.”주호연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을 이었다.“선진 시기, 용국에는 수많은 절세 고수가 존재했고, 그 중에는 천도맹약조차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존재들이 즐비했지요. 그래서 그들은 전면 충돌을 피하고, 전의를 무너뜨리는
“한흉합친?”이정도조차 놀라며 되물었다.주 씨 가문의 배경이 이 씨 가문보다도 훨씬 깊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맞습니다. 저희 주 씨 가문의 조상을 굳이 말씀드리자면, 바로 ‘주발’ 장군입니다.”주호연이 이 말을 꺼내자, 모두의 눈빛이 경악으로 변했다.“혹시 그 칠왕의 난을 평정했던 주발 장군을 말씀하시는 겁니까?”한지훈이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주호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당시 한나라 조정은 흉노를 정벌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화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이른바 공주란 명목은 겉치레에 불과했지요.”“그 시집가는 여인들은 대부분 민간 출신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 가문이 적절한 인물을 추천하면서 북방의 한 유력 가문과 갈등을 빚었지요!”“하지만 저희 조상은 당시 권세가 하늘을 찔렀기에, 결국 그 북방 가문은 한제의 명령으로 멸문당했습니다. 그 여인도 무사히 흉노로 시집갔지요.”“그런데 그 여인이 떠나기 전, 이런 맹세를 남겼습니다. 내 생이 다하도록, 천지를 끝까지 쫓아서라도 반드시 주 씨 가문을 멸할 것이라고요!”이 말을 들은 한지훈은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렇다면, 당시의 진실은 후세 사서에 적힌 것과는 전혀 다르군요……”“그뿐만이 아닙니다.”주호연은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저희 주 씨 가문은 수천 년 동안 비밀을 하나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 가문이 멸문당한다면, 그 비밀은 아마 다시는 세상에 드러나지 못할 겁니다.”“아버지, 우리 주 씨 가문에 무슨 비밀이 있나요?”주림림이 놀라며 물었다.“천도맹약이라는 이름, 여러분도 들어보셨겠지요?”천도맹약이라는 네 글자가 떨어지자, 방 안의 모든 이가 숨을 죽이며 주호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사실, 천도맹약은 한나라 시절부터 용국을 침투하려 했습니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용심을 찾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 당시 한나라 황제는 온 나라의 힘을 모아 그들의 침투를 막아
진우는 두어 번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이 모든 건 다 용국과 국민을 위한 일입니다. 고생이라 말할 것도 없지요. 다만, 혈족 측이 대화에 응할 의사가 있다면, 협상은 가능한 한 진행하는 편이 낫습니다.”한지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혈족 쪽에서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까?”진우는 잠시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오대명산과 몇몇 세가가 합심해 몰아낸 이후로는 큰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다만 최근 이틀 사이, 소규모 종문 두 곳이 전멸했습니다.”“하지만 아직까지는 용국의 도시나 마을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훨씬 더 영리해진 것 같습니다!”“사실 먼저 화친을 제안한 쪽도 혈족입니다. 양측이 함께 천하를 다스리자는 제안을 내놨지만, 국왕께서는 그 속에 숨은 속셈이 있다고 판단하셨습니다.”진우 역시 그 판단에 크게 공감하고 있었다.혈족은 세속으로 돌아온 직후부터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협상을 제안하고 민간에는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이상했다.마치 승리를 목전에 둔 장수가 갑자기 군을 철수시키고 휴전을 선언하는 것처럼, 논리에 맞지 않았다.실제로 용국 무종계의 일부 장수들, 특히 서효양 등은 일찍이 혈족과는 화친이 불가하며, 핵무기를 동원해서라도 그들을 완전히 말살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이 제안은 곧 진우에게 철저히 반박당했다.혈족 내부에는 고수들이 너무 많고, 특히 천신 경지를 넘은 이들에게는 아무리 위력이 큰 핵무기라 해도 전혀 통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을 격분시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전면전은 혈족이든 세속이든, 모두에게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 뿐이었다.“화친을 먼저 제안했다고요?”한지훈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분명 시간을 끌기 위한 술책입니다. 그들은 지금 인원을 모으고 있는 중이며, 목적은 용국이 아닌 주변 국가일 가능성이 높아요.”이 말에 진우는 순간 멍해졌다가, 이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