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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사령관님, 이제 저흰 어떡하죠? 파용군이 S시에 나타나면 상황이 복잡해질지도 모릅니다. 기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요.”

홍진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한편,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을 침묵하던 서효양이 말했다.

“어서 원로님들에게 이 사실을 아려. 그리고 참모장 자네는 직접 S시로 가봐. 최대한 빨리!”

스크린을 통해 파용군의 위치를 다시 확인한 서효양이 또다시 명령을 내렸다.

“S시 시장 연결해. 앞으로 30분마다 S시의 상황을 보고한다. 한민학 군단장더러 직접 움직이라고 해. 이번 일 제대로 못해내면 다들 옷 벗을 각오해야 할 거야!”

퍽!

분노에 찬 서효양의 펀치와 함께 의자가 산산조각 났다.

한편,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S시는 거센 폭풍을 앞둔 바다처럼 기이한 고요함을 풍기고 있다.

S시 교외의 한 별장.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기댄 한지훈의 얼굴이 보인다.

극도의 흥분과 분노로 인해 과거 전투에서 입은 내상이 다시 도져 피까지 토하며 쓰러진 한지훈이었지만 3대 신의인 손강수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사령관님, 더 이렇게 흥분하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제가 아니라 정말 화타님께서 환생하신다 해도 사령관님을 구할 수 없을 겁니다.”

이미 환갑을 넘긴 손강수가 금색 침을 집어넣으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직 무리를 하면 안 된다는 손강수의 말에도 한지훈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제 딸... 우리 고운이는 어떻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른 두 분께서 치료를 하고 계시니 아가씨께서도 무사히 깨어나실 겁니다.”

손강수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 듯 한지훈은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터벅터벅.

한고운이 누워있는 방 앞에 도착한 한지훈은 혹시나 아이가 깨어날까 훨씬 더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곱게 잠든 한고운을 보니 마음이 놓이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물었다.

“우리 고운이 괜찮은 거 맞죠?”

얼핏 보면 산속에서 도를 닦는 도사님 같은 모습인 하시윤 명의가 흰 수염을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사령관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가씨의 부상은 아주 심각한 상태입니다. 저희 두 사람이서 최선을 다했지만 그저 위급한 상황만 넘겼을 뿐이에요. 향후 부러진 갈비뼈 치료부터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주 고되고 긴 시간이 될 겁니다. 그리고 두개골 부상도 아주 심각하십니다. 설령 의식을 회복하신다 해도 후유증이 남진 않을지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준비... 해두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하시윤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한지훈의 눈시울이 점차 붉어졌다.

‘아빠라는 사람이... 딸이 이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장군이 됐다고 흐뭇해 하고 있었어...’

천천히 허리를 숙인 한지훈이 창백한 인형 같은 아이의 볼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너무 예쁘다 내 딸. 날 바라보던 그 눈, 강우연 그 여자를 아주 빼다박았더군.’

5년만에 느끼는 아빠의 손길이라는 걸 아는 건지 가만히 누워있던 한고운의 얼굴에 달콤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미소에 한지훈의 메마른 가슴이 어딘가 간질간질하면서 저릿해지기 시작했다.

5년간, 감정이라는 걸 죽이고 또 죽이면서 오직 복수만을 위해 살아왔는데...

‘천륜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건가?’

피식 웃던 한지훈이 아이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곤 속삭였다.

“고운아, 우리 공주님. 아빠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 고운이 깨어나게 할 거야. 앞으로 그 누구도 너랑 네 엄마 괴롭힐 수 없을 거야. 아무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눈 뜨면 아빠 얼굴 제대로 볼 수 있을 거야.”

한지훈의 목소리를 들은 듯 한고운의 고사리 같은 손이 그의 큰 손을 꼭 잡더니 잠꼬대하 듯 웅얼거렸다.

“아빠, 너무 보고 싶었어... 언제 나 보러 와줄 거야... 엄마가 그러는데... 아빠는 슈퍼맨이래. 이 세상을 구하느라 너무 바빠서 우리랑 함께 할 수 없는 거라고 했어... 그런데 아빠, 이제 그냥 나랑 우리 엄마만의 슈퍼맨 해주면 안 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한고운의 진심어린 말에 집안일을 담당하는 아주머니, 두 신의들까지 몰래 눈물을 훔쳤다.

‘어머나, 너무 안 됐네. 사경을 헤매면서도 아빠 얘기만 하는 것 좀 봐... 그 동안 얼마나 그리웠으면... 저 어린 게 그 동안 많이 힘들었을 거야...’

물론 딸의 말에 가장 가슴이 미어지는 건 바로 한지훈이었다. 5년 동안 아이의 존재 조차 몰랐다는 사실이 죄책감으로 변해 메마른 그의 가슴을 폭포처럼 적셔냈다.

아이의 손을 더 꼭 잡은 한지훈이 결연한 얼굴로 두 신의를 바라보았다.

“신의님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 딸 살려주십시오.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제발 목숨만 붙여놓으세요.”

“사령관님, 그렇게까지 말씀하지 않으셔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는 게 당연한 법이니까요. 그리고... 사령관님이 아니었다면 저와 제 가족들 아마 3년 전에 이미 이 세상을 떠났을 겁니다. 저도 나희 신의님도 목숨 걸고 구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시윤과 이나희는 빠르게 움직이며 방을 수술실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소독이 필요해 한지훈 역시 방을 나서야 했지만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자꾸만 고개를 돌려보았다.

닫히는 문틈 사이로 사라지는 한고운의 창백한 얼굴에 저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온갖 부상을 당하면서도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던 그였다. 그런데 아이 때문에 이렇게까지 마음이 약해지다니. 새삼스레 핏줄의 힘이라는 게 이렇게 대단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지금은 이렇게 감성에 젖을 때가 아니야.’

주먹을 꽉 쥔 채 돌아선 한지훈이 이를 악문 채 물었다.

“용일아, 우리 딸... 누가 저렇게 만들었는지 알아냈어?”

“네, 사령관님. 금조그룹 김정필 회장의 아들 김태우라는 자랍니다. 금조그룹은 몇 년 사이 재계 순위가 급격하게 오른 그룹이고요. 그리고 저희가 알아낸 바로는 사고가 아니라... 분명... 청부 살인인 것 같습니다.”

“살인? 하, 좋아. 금조그룹이라고 했나? 두고 봐... 죽음보다 못한 고통이라는 게 뭔지. 제대로 알려줄 테니까.”

한지훈의 차가운 목소리에 별장 전체가 차가운 기운에 휩싸였다.

잠시 후, 한지훈이 한 마디 더 물었다.

“강우연은 지금 어디 있지?”

강우연, 누구보다 착하고 밝고 웃는 모습이 유난히 예쁘던 그 여자, 아직도 강우연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으로 가슴이 욱신거렸다.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그 여린 몸으로 5년을 어떻게 버틴 걸까?

모진 고생에 그 발랄하던 소녀의 모습이 전부 사라지진 않았을까?

혹시... 날 미워하는 건 아닐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김태우와 함께 타워팰리스로 향했다고 합니다. 5년 전,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가문에서도 쫓겨나고 5년 동안 혼자 힘으로 힘들게 아가씨를 키워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김태우가 저희 사모님에게 반해 대시를 하기 시작했고 뜻대로 되지 않자 아이가 걸림돌이라는 생각에 교통사고까지 낸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대로 보고를 이어가던 용일이 힐끗 한지훈의 눈치를 살피다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8국대전을 앞둔 그날의 눈빛... 그대로셔. 이번에도... 거센 피바람이 불겠구나.’

그리고 다음 순간, 조용하던 별장 주위에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검은색 방탄차량 수십 대가 별장을 빈틈없이 둘러싸고 각 차량에서 완전 무장한 경찰 특공대들이 줄줄이 내려 별장의 각 입구를 봉쇄했다. 게다가 하늘에는 헬리콥터 두 대까지!

자신들의 기세가 꽤 마음에 드는 듯 확성기에서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잘 들으십시오. 저는 S시경찰청 경찰특공대 대장 조명한입니다. 당신들을 고의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하는 바입니다. 당신들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지금부터 하는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다섯 셀 때까지 전부 무기 버리고 별장에서 나오십시오. 명령에 불복할 시 경찰특공대가 침입할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체포령에 용육이 물었다.

“사령관님, 어떻게 할까요? 저희도 대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한지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히 문제 일으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일단 나가야겠어.”

말을 마친 한지훈은 용일부터 용팔까지 전부 거느리고 백 명 남짓되는 경찰특공대 앞에 섰다.

한지훈 일행이 예상외로 아무 반항 없이 걸어나오자 조명한의 입가에 더 의기양양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전부 체포해!”

‘저 자식들이 어제 병원에서 그 학살극을 벌인 놈들이라 이거지... 최근 5년 동안 이렇게 악질적인 범행은 처음이야. 왜 아무 반항도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여기서 무조건 체포해야 해.’

바로 그때, 또 다른 차량 한 대가 매섭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그들 앞에 멈춰섰다.

차에서 내린 이는 바로 S시 경찰청 청장. 송호문.

허둥지둥 달려온 송호문이 경찰특공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전부 다 총 내려! 내 허락도 없이 이게 무슨 짓이야! 진짜 다들 옷 벗고 싶어? 1분 안에 당장 철수한다.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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