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훈이 도장을 나올 때, 강우연과 관계자들도 조사를 끝내고 석방되었다.그녀는 입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서 있는 한지훈을 보자 눈시울을 붉히며 달려가서 그의 품에 안겼다.한지훈은 가볍게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위로했다.“이제 괜찮아. 울지 말고 집에 가자.”“네.”강우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지훈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사건 관련해서는 주연승이 제때에 기자회견을 열고 해명을 진행했기에 더 이상 그녀를 폄하하는 여론은 없었다.다음 날.“좋은 아침입니다.”한지훈은 상쾌한 기분으로 도영그룹 1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왔다. 커피만 사고 올라가려는데 마침 다급히 올라가는 이안영과 마주쳤다.이안영은 언제 봐도 예뻤다.하얀색 블라우스에 몸매를 강조하는 H라인 스커트를 입고 어울리는 구두까지 신은 그녀에게 많은 이목이 쏠리고 있었다.“지훈 씨?”이안영이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제가 별로 반갑지 않은가 봐요.”한지훈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이안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더니 피식, 미소를 지었다.“뭘 착각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오늘 좀 바빠요. 리양제약에서 오늘 손님이 왔는데 커피 사러 나왔거든요. 너무 바빠서 미처 보지 못했어요.”“그런 거였군요….”한지훈이 얼굴을 붉히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대표실 비서에게 뭔가 밉보인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마침 올라가던 길이었는데 그거 저 주세요.”한지훈은 매너 있게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궁금증이 발동한 한지훈이 물었다.“리양제약이 갑자기 우리 회사에는 어쩐 일이래요?”“네.”이안영은 어딘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내용을 들어보니까 리양 쪽에서 일방적으로 모든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요구하고 있는데 이 일로 대표님이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계약 해지?한지훈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어딘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그는 이안영을 대표실까지 데려다준 뒤, 생각
마케팅부로 돌아온 한지훈은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장신혁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시청했다.그런데 주변이 어수선하더니 갑자기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일렬로 들어오더니 양 옆으로 비켜섰다. 그들 사이로 도설현과 한 중년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도설현은 중년 남자에게 마케팅 부서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사오십 대로 추정되는 중년 남자는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분위기 싸한데요. 역시 성공한 사업가는 뭔가 다른가 봐요.”장신혁이 한지훈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저분이 리양제약 송경림 회장이래요. 이번에 프로젝트 때문에 왔다고 하던데요?”한지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송경림을 훑어보다가 이한승에게 문자를 보냈다.곧이어 이한승에게서 송경림에 대한 정보가 답장으로 왔다.시가 총액 1조 규모!도설현보다 더 부자였다.“저런 거물급 인사가 우리 회사랑 협약을 체결한다니, 뭔가 이상한데요.”한지훈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도설현 성격에 만약 리양 쪽에서 위협적인 조건을 내걸었다면 저렇게 평화롭게 시찰까지 시켜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뭐가 이상해요? 어떻게든 협약을 체결하는 게 중요하죠. 회장이 직접 왔다는 건 그만큼 이 사업을 중시한다는 거 아니겠어요? 혹시 우리한테도 인센티브 나오려나?”장신혁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한지훈이 리양제약의 의도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마케팅 부장 조민아가 나와서 그들을 맞았다.그녀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회장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는데요. 준비가 미흡해서 죄송합니다.”조민아는 직장 내 엘리트답게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끌었다.하얀색 블라우스에 레드와인 컬러의 스커트는 섹시하면서도 지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번 회담을 위해 단장에도 신경을 꽤 쓴 모양이었다.송경림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조 부장이 직접 마중을 나올 줄은 몰랐네요. 나도 영광입니다. 우리 S시 기업판의 여자 엘리트로 불리잖아요.”“과
“투자를 철회한다고요?”도설현은 그 말을 듣고 미간을 확 찌푸렸다. 아침에 이미 정보를 입수하긴 했지만 회장에게 직접 통보를 받으니 정신이 아찔했다.“송 회장님, 이렇게 갑자기 투자를 철회하면 어떡해요? 용경 쪽 일은 저희도 알아봤는데 그 사건과 도영, 그리고 리양제약은 아무런 관련이 없어서 별로 영향을 안 받았잖아요. 이렇게 갑자기 투자를 철회하려는 이유가 뭔가요? 무슨 소문이라도 들은 건가요?”도설현은 이렇게까지 따지고 싶지 않았다.조사해 본 결과 리양제약이 용경에 있는 산업은 아주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었다.그렇다면 송경림은 다른 이유 때문에 투자를 철회하려는 게 분명했다.그녀의 입장에서는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밝혀야 했다.“설현아, 이건 내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이사회에서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인 걸 어떡해.”송경림은 자상한 삼촌의 입장으로 돌아와서 부드럽게 그녀를 달랬다.“네 아빠와의 친분도 있고 나 혼자 결정해서 될 문제라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사회 쪽에서 계속 압박이 오고 있는 상황이라 나도 어쩔 수 없어. 이 일 때문에 내가 이사회 그 영감들이랑 싸우기까지 했다니까? 그런데도 이사회의 결정은 변함이 없어.”도설현은 미간을 확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옆에 있던 조민아가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송 회장님, 우리 좋은 쪽으로 이야기해 봐요. 이번 연구 프로젝트, 사실 송 회장님이 내부 사정을 잘 아시잖아요. 성공했을 때 순 이익이 얼마 정도인지 잘 아시는 분이, 곧 끝나가는 프로젝트에서 빠진다는 건 저희 입장에서 좀 곤란하죠.”“굳이 투자를 철회하려는 건 아니에요.”송경림이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다른 방법이 있긴 한데 설현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네?”도설현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능구렁이 같은 영감,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이번 프로젝트에서 우리 리양이 가져가는 이익은 고작 30프로 정도야. 투자를 철회하지 않고 계속 간다면 우리 리양은 계속해서
이때, 싸늘한 목소리가 입구로부터 들려왔다.“리양에서 투자 철회할 거면 그렇게 하라고 하세요. 우리 도영그룹은 리양의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송 회장께서 투자를 해주지 않아도 이번 신약개발은 성공할 테니까요.”한지훈이 싸늘한 표정을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도설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그를 나무랐다.“한지훈 씨, 왜 허락도 없이 들어와요? 당장 나가요!”조민아 역시 허락도 없이 들어온 남자를 좋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저 사람… 대표님이랑 같이 다니던 경호원이잖아? 뭘 믿고 저렇게 허세를 부리는 거지?’이번 리양제약과의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건가?당혹스럽고 짜증이 치밀었다.자리에서 일어선 송경림이 싸늘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노려보더니 물었다.“자네가 한지훈인가?”한지훈은 의심의 눈초리로 상대를 노려보며 되물었다.“날 아시는 것처럼 얘기하시네요?”송경림은 화가 치미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겉으로는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천우한테 자네에 관한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도 대표 옆에 아주 대단한 경호원이 있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까 그 말이 사실이었네.”송천우?한지훈은 싸늘한 냉소를 머금었다.이때, 도설현이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송 회장님, 제가 문 앞까지 모셔다드릴게요.”송경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그래요. 이제 볼 일도 끝났으니 나갑시다.”말을 마친 그는 음침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노려보고는 회의실을 나섰다.도설현은 한지훈의 옆을 지나치며 낮은 소리로 그의 귓가에 대고 경고했다.“앞으로 허락 없이 회의실 들락거리지 마세요!”한지훈은 말없이 눈썹만 치켜올렸다.뒤통수가 따가워서 고개를 돌려보니 조민아가 있었다.조민아는 조심스럽게 한지훈을 관찰하고 있었다.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이었지만 회사에 그에 관한 소문이 허다했다.비록 인성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조금 전 보인 그의 행보는 명백히 선을 넘었다.한지훈은 그녀를
오후 세 시가 되어 회사는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누가 소문을 퍼뜨린 건지, 리양제약이 투자를 철회한다는 소문이 회사 곳곳에 퍼졌다.“대체 누가 이렇게 입이 싼 거지?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어! 당장 누군지 알아보세요!”대표 사무실, 도설현은 소문이 퍼진 것에 대해 크게 분노하며 이를 갈았다.“당장 임원 회의 소집할 테니까 모이라고 하세요!”이안영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밖으로 나온 이안영은 문에 기댄 채, 긴 한숨을 내뱉었다.“이 비서님, 무슨 고민 있어요?”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들자, 어느새 다가온 한지훈의 얼굴이 보였다.“왜 또 오셨어요?”이안영이 물었다.한지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표 사무실 쪽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대표님이 불러서 왔어요.”이안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들어가서 말 조심해요. 대표님 지금 기분 굉장히 안 좋아요.”한지훈은 고맙다는 인사를 끝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아니나 다를까, 사무실에는 팽팽한 기압이 흐르고 있었고 얼음여신 도설현은 온몸으로 냉기를 뿜고 있었다.“찾으셨어요?”한지훈이 웃으며 물었다.도설현은 창가에 서서 도심을 내려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지난번 호텔에서 벌어진 소란, 조용히 처리했어요.”그일 때문이었구나.한지훈은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도설현의 시선은 뭔가 탐탁지 않은 눈빛이었다.“퇴역 군인에 불과한 지훈 씨가 어떻게 그런 무시무시한 실력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말해줄 수 있나요?”도설현은 드디어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꺼냈다.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한지훈처럼 날카로운 검기를 내뿜는 사람은 처음이었다.5대주국의 수배범마저 한 주먹에 보내버릴 실력이라니!대체 그의 실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한지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 군대에 있을 때 무술 교관이었습니다.”“무술 교관이요?”도설현은 인상을 확 찌푸렸지만 더 추궁하
그는 한지훈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무례한 녀석! 회사에서 감히 폭력을 휘둘러? 너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알죠. 이사님 애인.”한지훈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아는 놈이 그랬단 말이야?”이한명은 분노에 얼굴까지 시뻘게져서 손을 번쩍 들었다.하지만 한지훈이 더 빨랐다. 그는 재빨리 손을 뻗어 이한명의 팔목을 비틀고는 벽에 처박았다.“이거 놔! 나 이 회사 이사야. 당장 이거 안 놔? 넌 이제 해고야!”이한명이 몸을 비틀며 소리쳤다.한지훈은 그의 귓가에 대고 싸늘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이 이사님, 자꾸 직책으로 나 누르려고 하면 큰 코 다쳐요. 그리고 그 자른다는 말도 이제 너무 들어서 지겹네요. 그렇게 난리를 부려도 결국엔 나 못 자를 거잖아요.”이한명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그래, 너 잘났다! 도 대표한테 다 말할 거야! 도 대표도 네가 이런 놈이라는 걸 알아야 해!”협박을 가장 혐오하는 한지훈은 그대로 손에 힘을 줘서 이한명의 팔을 꺾어버렸다. 이한명이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고 하정혜도 겁에 질려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이 자식이 사람을 치네! 경비! 경비!”하정혜의 앙칼진 비명이 울려퍼지자 회사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경비 팀장 유운봉이 부하들을 이끌고 달려왔다.“멍하니 서서 뭐 해! 당장 이 새끼 잡아!”이한명이 경비팀을 향해 소리쳤다.유운봉은 난감한 얼굴로 한지훈에게 다가서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훈 씨, 일단 그거 놓고 대화로 풀면 안 될까요? 정 대화가 힘들면 제가 대표님 불러올게요.”이한명이 발끈하며 소리쳤다.“너희는 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이 자식이 하는 꼴 못 봤어? 당장 잡아서 끌어내라니까? 말 안 들으면 너희도 해고야!”“정말 시끄럽네!”한지훈은 미간을 확 찌푸리며 손에 힘을 주었고 이한명의 팔은 그대로 탈골되었다.“악!”이한명은 순식간에 괴성을 지르며 팔을 잡고 소리쳤다.“당장 저놈 잡아! 안 그러면 너희 다 해고야!”유운봉도 한지훈의 돌발행동에 화들짝 놀랐다.“
출구를 막고 있던 경비팀 직원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왕 팀장은 그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다고 인정받는 상사였는데 한주먹에 나가떨어질 줄이야!“이 자식이 주제도 모르고!”한 팀원이 음침하게 굳은 얼굴로 한지훈을 향해 방망이를 휘둘렀다.정통으로 맞았다면 뇌진탕으로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회심의 일격이었다.한지훈은 미간을 확 찌푸리고는 날카로운 살기를 방출했다.한낱 경비실 팀원이 직장 동료를 죽이려고 덤비는 꼴이라니!그는 살짝 옆으로 피하고 직원의 손에서 방망이를 빼앗은 뒤, 상대가 넋을 놓은 틈을 타서 발을 들어 상대의 복부를 걷어찼다.그 직원은 그대로 유리 벽에 부딪혔고 유리 벽이 깨지면서 그의 머리 위로 유리 파편들이 우수수 떨어졌다.남은 한 명은 겁에 질린 얼굴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형님, 한 번만 봐주세요. 저희도 이 이사님 지시를 받고 움직인 겁니다. 우리 같은 말단 직원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쾅!한지훈은 발을 들어 상대를 힘껏 걷어찼다.일격에 맞은 상대는 그대로 날에 문과 부딪히며 바닥으로 추락했고 문은 반쯤 뜯겨져 나갔다.한지훈이 지금 화가 많이 난 상태라는 것을 대변하는 모습이었다.유운봉의 부하들은 이미 겁에 질려 꼿꼿하게 선 채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역시 실력으로는 저 녀석을 당해낼 자가 없겠어!’손 쉽게 이 이사의 사람들을 제압한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강력한 상대인지 알 수 있었다.경비실을 나온 한지훈은 바닥에 쓰러진 경비 직원의 가슴을 살포시 즈려밟았고 그 직원은 고통에 몸서리치며 그의 다리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이 이사한테 가서 전해. 살고 싶으면 나 건드리지 말라고!”그의 싸늘한 목소리가 복도에 메아리쳤다.한지훈이 발을 비키자 겨우 목숨을 건진 왕 팀장 일행은 기다렸다는 듯이 황급히 이곳을 벗어났다.그들은 구석진 곳으로 가서 몸을 숨긴 뒤, 이한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사님, 놈은 저희가 상대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에요….”병원에서 나온 이한명의 목에는 붕대가 칭칭
“알았어요. 그럼 원흥거리 입구에 있는 찻집에서 만나요.”하정혜는 전화를 끊은 뒤, 이한명에게 OK사인을 보냈다.이한명은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가서 하정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얼굴이 예쁘니까 일이 착착 풀리네.”한편, 경비실을 나온 한지훈은 그 길로 마케팅부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마주 오던 여자와 부딪혔다. 여자의 부드러운 살결이 팔뚝에 닿자 한지훈도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괜찮아요?”그가 다급히 물었다.이안영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흔들며 어색하게 말했다.“네, 괜찮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한지훈을 지나쳐 종종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한지훈은 도망치듯 현장을 벗어나는 그녀를 보고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오후 네 시쯤 되었을 때, 회의실에서 사람들이 나왔는데 저마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지훈 씨, 리양에서 투자를 철회하기로 했다던데 사실일까요?”장신혁이 한지훈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한지훈이 물었다.“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요?”장신혁은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고는 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아는 동창이 리양제약에서 출근하는데 오늘 긴급 회의를 소집하더니 도영그룹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기로 했대요.”그 말을 들은 한지훈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송경림 이 능구렁이 같은 영감이 결국 해냈네.’도설현은 아마 지금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인 것 같았다.좀 도와줄까?한지훈은 이런 생각을 하며 화장실로 가서 이한승에게 전화를 걸었다.“S시에 있는 도영그룹에 투자 좀 합시다.”“네, 회장님.”이한승은 공손히 대답하고 전문가를 섭외해서 도영그룹에 대해 분석했다.모든 일을 마친 뒤, 한지훈은 그 길로 퇴근했다.집으로 돌아오자 강우연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지훈 씨, 오늘 백 선생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지훈 씨도 같이 가요.”한지훈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백 선생이랑 약속을 잡았다고?”그럴 리가 없었다.용이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용이가 깜빡하고 보고를 안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
천산 장 씨 집안과 항산 사이에는 서로 맺은 약속이 있었다. 오늘 이 자소화도 사실은 천릉자에게 주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소화 자체는 결코 희귀하지는 않지만, 꽃이 피기 전의 자소화를 찾는 건 매우 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다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산속의 맹수들에 의해 먹히고는 만다. 사실 천신계 강자에게 있어, 자소화의 장점은 셀 수 없이도 많았다.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순조롭게 2성 현급 천신계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유혹 앞에서, 장령풍은 장 씨 집안과 항산의 약속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생각뿐이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천릉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령풍, 작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잃으려 하지는 마. 당시 한지훈의 그 사건도 장 씨 집안이 자초한 일이었어. 네가 자소화를 손에 넣는다면, 그동안 우리가 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사실 전에 5대 명산, 항산 그리고 천산 장 씨 집안이 줄곧 천릉자를 치켜세운 이유는 그 배후에는 아주 큰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불세출의 천재란 타이틀을 근본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실 천릉자는 이미 30년 전에 항산 문하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항산은 줄곧 그를 중점 육성 대상으로 간주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4년 만에 단번에 천신 경계를 돌파하게 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가짜였지만, 그 최종 목적은 천릉자를 이용하여 한지훈을 호되게 밟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유 씨 어르신의 발언과 언론을 통해 한지훈은 영원히 용국의 치욕이라는 이미지로 매장하려는 속셈이었다.그러려면 이 과정에서 천릉자의 후광을 더욱 밝게 비추어야 했다. 그의 후광으로 한지훈의 공적을 덮어 그를 폄하하고 말살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이었다. “장 씨 집안의 계략이 뭐가 대수야? 난 지금 오직 이 자소화만 갖고 싶을 뿐이야!”장령풍은 여전히 굳은 표정
만약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 내용이 보도된다면 전 세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될 것이다.필경 현재 용국은 물론, 심지어 전 세계가 모두 한지훈이 단지 일성 준 천신계의 실력으로 10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참살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는, 한지훈과 용국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배후에 호천 창세가 손을 쓴 거라면 용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지훈은 또 어떻게 될까? 과연 누가 용국을 두려워하겠는가? 아마 그 누구도 한지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 않을 것이다.“됐어, 한지훈 그 반역자에 대해서는 이쯤하자. 저 두 사람의 시합이나 지켜보자고!”유 씨 어르신은 의도적으로 반역자라는 세 글자를 강조하며, 한지훈의 못된 이미지를 제대로 박았다. 한편 그 시각, 한지훈도 어느새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은 여전히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장령풍의 상황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새하얀 도포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장령풍은,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고 분노 가득한 두 눈동자는 천릉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반면 천릉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여유롭게 한 손을 짊어진 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듣기로는 너희 장 씨 집안 삼절진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역시나 명실상부라 느껴지긴 하는구나. 하지만 다만 아쉬운 건, 넌 아직 제대로 불꽃이 튀지 않아 천절진의 위력은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앞으로 만약 10년만 더 지나게 된다면, 나중에 나의 천망 검진은 너를 더 이상 격파하기도 어렵게 될 거야. 하지만 어찌 됐든 그건 10년 후의 일이니, 오늘은 일단 이 자소화를 나한테 양보해!”이내 천릉자가 허리 굽혀 자소화를 따려는 순간, 숲속에서는 갑자기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옥!”불곰보다도 몇 배나 더 큰 맹호 한 마리가 갑자기 숲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천릉자와 장령풍 모두 멍해졌다. 전에 5대 명산 고수들이 이미 산꼭대기를
유 씨 어르신의 말에, 임설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기가 돌아온 후, 모든 사람들의 몸에는 큰 변화가 생겼고 저항력도 강해졌을 뿐만 신체능력도 향상되었다.그러나 마찬가지로 맹수들도 더욱 강해졌다. 만약 임설이 맹호를 상대한다면, 그건 바로 먹잇감이 되는 것이었다.당시 한지훈의 일전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상대하다니, 게다가 모두 한지훈보다 한두 단계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라니. 비유하자면 당시의 한지훈은 마치 현재의 임설과도 같았고, 그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은 바로 맹호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결 결과는, 전혀 추측할 필요가 없이 다들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당시 그 대결이 만약 오로지 한지훈의 소행이었다면, 이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유 씨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필경 유 씨 어르신은 화산 고수중 한 명이었기에, 그의 말은 신빙성이 아주 높았다. 게다가 진정한 무도 중인 만이 한지훈이 당시 직면한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유 씨 어르신은 이런 속임수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종이 점점 강해지게 되면서, 현재 더욱 많은 일반인들이 모든 경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게 되었다. 천신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전신계라 하더라도 작은 경계 사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즉 천릉자는 비록 일성 준 천신의 최고 실력에 도달하긴 했지만, 그가 2성 천신계를 돌파하지 못한 이상, 2성 천신계 상대에게 있어 그는 마치 땅강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전혀 같은 수평선에 놓여있지 않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어르신, 그 말씀은 전에 한지훈이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뜻인가요?”임설이 다시 물었다. “그래.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네. 너희들 아직도
임설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 임설이니?”바로 이때, 임설의 뒤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씨 어르신?”고개를 돌린 임설은, 뒤에 선 노인을 보고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이내 급히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녀가 유 씨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바로, 세속에서 활동 중인 화산 강자이자 현재 무도 재판소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게다가 화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유 씨 어르신은 세속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매체인으로서 임설 역시 유 씨 어르신이 낯설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에 그녀는, 유 씨 어르신의 인맥을 통해 5대 명산의 3기 다큐 영화까지 제작했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왜 여기 계신 거예요?”임설은 겉으로는 궁금해하는 척했지만, 사실 내심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이었기에, 같은 5대 명산인 화산에서 사람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단지 길을 가던 중 한번 와서 본 것일 뿐이야.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이들이야말로 용국의 미래 희망이지!”유 씨 어르신은 눈을 지그시 뜨고는 산 꼭대기 쪽을 유유히 바라보았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임설은 급히 보조 카메라 감독을 불러 휴대폰으로 촬영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유 씨 어르신 가까이에 다가갔다. “어르신, 어르신의 경험으로 봤을 때 오늘 이 자소화, 과연 어느 집안이 가져갈 거라고 예상하시나요?”필경 유 씨 어르신의 신분 지위는 꽤나 높았기에, 아마 일부 내막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5대 명산끼리의 호흡은 결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령풍과 천릉자가 맞붙기도 전에, 아마 암암리에 모든 준비를 마쳤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아이고, 그 질문은 좀 난처하네. 원칙부터 말하자면, 장 씨 집안 역사는 엄청 유구하지. 우리 용국의 많은 비진도 모두 장 씨 집안으로부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