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제야 덕만이 분위기를 눈치채고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형님, 그게.”“조용히 하라니까!”정식은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아니, 휴게소는 어디 들릴 거냐고 물어보는 건데.”잠시 침묵이 흘렀다.인명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큭 하고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박 형사도 피식 웃었다.여기저기서 웃음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더니, 차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잠시라도 긴장감을 잊고 싶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실컷 웃어댔다.1시간 만에 톨게이트에 접어들었다.이천에 도착하자, 다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자, 이제 슬슬 준비하자고.”시간은 오후 4시가 넘어서고 있었다.차는 어느덧 목적지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비포장 언덕길로 접어들었다.“이제 500미터 앞인데요.”덕만이 내비게이션을 보며 말했다.“구체적인 작전을 짜야 하지 않을까요?”“문제는 우리가 그 별장 상황을 모른다는 건데.”인명과 박 형사의 대화에 정민이 끼어들었다.“미리 말씀드리려 했는데요. 제가 혹시 몰라서 드론을 가져왔어요.이게 작고 가볍고 또 소음이 별로 없는 신형이라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정민의 말은 드론을 띄워서 농장을 관찰하자는 거였다.정민은 참 복덩이다.“하늘에 날리는 드론? 굿 아이디어인데.”정식이 감탄했다. 앞에 농장이 보이기 시작했다.외길이라 그놈들을 만난다면 빠져나갈 수 없어 보였다.일단, 수풀이 우거진 길섶에 차를 세웠다.농장 쪽에서 발견하기 쉽지 않은 장소였다.“이제부터 진짜 긴장해야 한다. 말 그대로 전쟁이다. 그렇다고 쫄지는 말자.그렇다고 너무 흥분해서도 안 되고. 우리의 목적은 사라를 구출하는 거다.그러기 위해서는 네 명의 감시조를 따돌려야 한다.물론 무력 충돌 없이 빼 올 수도 있겠지만,솔직히 그럴 일은 없을 거 같다.우리가 이겨야 하지만, 혹시라도 걔들을 심하게 다치게 하거나,만약의 하나라도, 죽이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모두 무사하게 빠져나오는 것이고.”박
며칠 전이었다.식사를 날라준 영식의 아내 박 여사가 실수로 대문을 잠그지 않고 나갔다.하필, 판석과 죠스는 외출 중이었다.영식은 집안에서 고장 난 수도관을 수리하고 있었고,감시를 맡고 있던 훈기는 마당 벤치에서 햇볕을 즐기다가 아예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거실에 있던 사라는 창을 통해 대문이 삐죽 열린 것을 우연히 보았다.심장이 뛰었다.영식은 위치는 쿵쿵거리는 망치 소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고,훈기는 구석에서 잠이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저 문을 나가서 사력을 다해 뛴다면,마을 사람이든 지나가는 차든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하늘이 준 마지막 기회 같았다.거실 문을 열어보았다. 열려 있다.조용히 마당으로 내려왔다.훈기의 코 고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몇 발짝을 내디뎠다. 갑자기 코 고는 소리가 멈추었다.사라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잠시 후 떨리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훈기가 가려운 듯 뺨을 긁더니 또다시 코를 골았다.사라는 그제야 안심하고 대문으로 조용히 다가갔다.그러고는 대문을 빠져나왔다.별장 밖은 수목원이 있고, 숲 가운데로 난 길 끝, 50미터 앞에 입구가 있다.입구 옆에는 영식 부부가 거주하는 집 겸 식당이 있다.그 집이 농장 출입구의 초소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출입구가 활짝 열려 있었다.사라는 뛰었다.당장 누가 뒤쫓아 올 것 같은 불안감이 두 다리를 자꾸 붙들었다.그래도 사력을 다해 뛰었다. 출입구를 지났다.마침내 탈출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그런데, 식당 앞에 누가 쓰러져 있는 게 언뜻 보였다.그만 자리에 서버렸다. 보지 말아야 했는데.사라는 돌아봤다. 박 여사가 쓰러진 것이 보였다.자신을 아껴주었던 아주머니.평소 심장병이 있다는 얘기는 얼핏 들었는데. 어떡하지?그냥 가야 하는데. 아주머니가 아직 살아있으면?짧은 순간, 사라는 숱하게 갈등했다.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박 여사에게 뛰어갔다.“아주머니! 괜찮아요?”분명히 살아 있었다. 숨은 쉬었다.그러나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
“늦지 않았어요. 지금도요. 일 끝나면 미국에 한 번 다녀오세요.”진구의 말에 인명이 진구를 쳐다봤다.“헐. 돗자리 펴야겠는데? 몸에 누가 들어온 거 아니니?”하면서 진구의 몸을 더듬거렸다.진구가 간지럽다며 킥킥거리며 웃었다.“사고 나요.”“아, 참. 미안.”그 사이 집에 도착했다.“진구야, 나는 정리할 게 별로 없어. 30분이면 끝날 거야.”“네. 저도 뭐가 없으니 금방 올게요.”오랜만에 집에 온 듯하다.그렇게 낯설고, 괴로운 기억만 가득했던 동네였지만,어느덧 오랫동안 살아온 고향 같은 느낌이 들었다.방에 들어가 옷가지와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는데, 10분밖에 들지 않았다.방안을 둘러봤다. 갑자기 여기 다시 못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의 무게가 느껴졌다.잘할 수 있을까? 아니다. 할 수 있다.내 이름이 인명인데, 명이 질길 것이다. 성공할 거다.그래서 다시 돌아오자. 하지만 다시 예전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다.동네의 영웅으로 살면 되지. 약한 사람 도와주고. 악한 사람 무찌르고.만화 주인공처럼. 참, 그런데 돈도 벌어야 하는데.집을 나오려는 데, 주인집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그냥 나가려다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어르신!”“누구요?”하면서 주인집 할아버지가 문을 열었다.“접니다. 어르신.”“윗방 총각이네. 어디 갔다 왔어? 안 보이던데.”아직도 이 동네에서는 총각으로 불린다.“예, 일이 좀 있어서요. 그리고 또 나갈 건데, 이번에는 좀 오래 걸릴 겁니다.”“뭐? 이사 간다고?”“그게 아니라요. 어디 멀~리 좀 갔다 온다고요.”“아.”그러더니 할아버지가 인명을 지그시 쳐다봤다. 처음 보는 시선이었다.“힘내게. 나 같은 사람도 살잖아. 금방 좋은 날 올 거야.”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말에 울컥 눈물을 쏟을 뻔했다.괜히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나는 이렇게 살지만,너희가 어른 되면 우리나라가 엄청 좋은 나라가 될 거야.두고 봐. 너희는 엄청 행복하게 살 거야.
“여보세요?”“저예요. 박석기요.”“그래.”“정리했어요.”“그래.”“지금 어머니 모시고 고향 쪽으로 일단 갈 겁니다.”“잘했네.”“사라가 있는 장소는요.경기도 이천시 오가면 왕가리에 있는 ‘풀잎 농장’입니다.농장 안에 별장이 하나 있는데 거기 있습니다.”“어디라고?”“이천시 오가면 왕가리 ‘풀잎 농장’이요.제가 정확한 주소, 문자로 보내드릴게요.”“고마워.”“저 그리고 이제부터 휴대전화 꺼놓을 겁니다.”“알았어.”“마지막 부탁인데요.”“말해.”“지금 통화 내용, 그리고 문자 보낸 거,일단 메모하시고 다 지워주세요. 제 번호도요.”“알았어.”“참, 그리고요. 절대 경찰은 믿지 마세요.”“무슨 말이야?”“거기하고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여기저기. 위험합니다.”그 부분에서 박 형사는 잠시 말이 없다가 한숨을 쉬었다.“뭔 말인지 알겠다.”“반장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믿어줘서 고맙습니다.”“잘 살아라.”“네.”여기까지였다. 그리고 박 형사가 문자를 확인했다.‘풀잎 농장’의 주소까지 보냈다.“자, 이거 빨리 메모하고, 난 약속을 지킬 거니까.”인명과 진구가 서둘러 위치를 메모했다.정민은 바로 태블릿PC로 위치를 확인했다.“저번에 진구 잡혀갔던 데, 근처네요.”정민은 인공위성 사진도 확인했는데,숲속에 어렴풋이 집들이 보였다.인명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긴 시간의 추격전이 끝나가고 있다.하지만, 어떻게 거기서 사라를 구출해야 하나,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지금 당장 가자, 작전이 필요하다,여기저기서 말들이 쏟아졌다.“자, 조용해 봐. 문자가 하나 더 왔어.”박 형사의 말에 다시 조용해졌다.“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별장에네 명 정도가 지키고 있을 거라고 왔네.만만찮은 놈들이니 조심하라고.”그 말에 또 모두 시끌시끌해졌다.“자, 자. 조용히 좀 해봐. 내가 한마디만 할게.”모두 박 형사를 바라봤다.“물론, 이번 일의 중심은 안인명이야.그건 변함이 없어.하지만, 여기서 가장 연장자로
박석기에 대한 심문은 지지부진했다.박 형사의 설득이 계속되었고 박석기도 감정이 흔들리고 있었지만끝내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박 형사의 활약으로 할 일이 없어진 정식과 덕만은,김현의 차를 추적하는 정민의 태블릿PC에 오히려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너, 그렇게 버텨봐야 아무 이득이 없다는 건 알지?네가 이렇게 아무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만 해도넌 블랙리스트야, 걔들한테.”“…….”“아마 한 회장은 네가 사라진 걸 파악했을 거야.네가 여기서 나가서 다시 연락하면 뭐라고 할 거야?‘제가 감금당하고, 얼굴이 이렇게 되도록 맞았지만,아무것도 안 불었습니다.’ 하면 한 회장이 믿어줄 거 같아?좋아할 것 같냐고.”“…….”“내가 보기에는 어쨌든 넌거기서 더 이상 신임을 못 받을 거야. 그러면······.”“저에게 노모가 계십니다.”박 형사의 계속된 협박과 회유에도 입을 다물고 있던 박석기가갑자기 박 형사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모두 박석기를 쳐다봤다.“집에, 노모가 계십니다.”“…….”“저도 압니다. 다시 가봐야 한 회장 애들이 반겨주지 않을 거라는 거. 그리고.”“그리고?”“그리고, 사실 저도 더 이상 거기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잘 됐죠, 뭐. 이왕 이렇게 됐으니 그만, 할 겁니다.”입을 아예 꿰매버리고,그렇게 몇 시간을 버티던 박석기는 이제 생각을 정리한 것 같았다.아무리 비리 형사였다고 해도,지금 하는 일은 못 할 짓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시간을 좀 주세요. 제가 노모에 함께 정리할 시간을요.”박 형사는 박석기를 말없이 쳐다봤다.너도 참 불쌍한 인간이다. 측은한 생각이 밀려왔다.하지만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그러면? 시간을 주면?”“그러면, 제가 전화드릴게요. 그 여자가 어디 있는지.한 회장이나 여기 이 사람들이나 저의 편이 아니기는 마찬가지 아닙니까?”박 형사는 박석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하지만 주저했다. 자기 혼자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박 형사는 깊이 한숨을 쉬었다.“
세나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분명 정 실장이 이상하다고 했다.그럼, 정 실장이 그랬을까? 두 사람이 공모했을까?아니면 둘은 적일까? 둘은 도대체 어디 있을까?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그리고 그런 의문의 끝에는 분명 한 회장이 있을 것이다.병원에 도착한 지 세 시간 만에 인명과 진구는 병원을 나섰다.중환자실에 계속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공식기록으로 그들은 물에 빠진 여자를 우연히 구한용감한 두 명의 시민일 뿐이었다.정식 보호자가 아니었다.그래서 병원에서도 세나는 신원불명의 환자로 기록되었다.인명은 굳이 세나의 신원을 밝히는 것이 꺼림칙했다.병원을 나온 후 인근 여관에 투숙했다.무엇보다도 심신이 너무 지친 상태였다.진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말린 옷가지와 캔 커피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일어나셨네요. 이 옷들을 모텔 사장님이 세탁하고 말려주셔서.”“수고했어. 근데 너 그런 차림으로 나갔다 왔니?”“그럼, 어떡해요? 옷이 없는데.”진구는 ‘화이트 모텔’이라고 크게 자수가 박힌 목욕가운을 입고 있었다.그러고 보니 인명도 똑같은 목욕가운을 입은 채 누워 있었다.할 말이 없었다.진구가 준 커피를 마시고 나니, 갑자기 서울 소식이 궁금해졌다.“혹시 서울 쪽과 통화해 봤니?어떻게 됐는지? 거기 인질도 있잖아.”“네. 안 그래도 잠들기 전에 정민이와 통화를 했는데·····.”“했는데?”“그게····· 사부님이 그놈을 풀어줬대요.”“뭐? 풀어줘? 그놈을? 그게 무슨 말이야?”인명은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서울 가서 알아봐야죠.그때는 여기 상황 얘기하는 게 급해서.거기서는 오히려 우리를 걱정하고,또 세나 누나 이야기를 듣고 엄청, 놀라서.”생각해 보니 그럴 것 같았다.어젯밤 여기서 엄청난 일이 있지 않았나.하지만, 지금 사라도 급한 상황인데 그렇게 무책임하게 풀어주다니.솔직히 화가 났다. 박 형사에게 문자를 했다.어제 늦게 들어갔을 테니 혹시 아직 자고 있을 수도 있었다.
두 사람은 인명의 이야기를 듣더니 긴장을 약간 늦추는 듯했다.‘난 또.’하는 표정이었다.남자가 말을 먼저 꺼냈다.“아, 네. 피클이란 팀이 저희, 회사 소속이었던 것 같긴 한데.근데 해체한 자기가 꽤 오래되어서, 연락처가 없을 것 같은데요.”하면서 여자에게 동의해달라는 눈빛을 보냈다.“네, 없을 것 같은데.”여자가 말꼬리를 흐렸다.“에이 그럴 리가.이렇게 큰 회사에서 소속 가수 연락처가 없을 리가요.아무리 해체했다 해도 한 2, 3년? 정도밖에 안 되었을 텐데.기록이 남아있지 않을까요? 한 번만 찾아봐 주시면.
민사라는 실력도 있고 인간성도 좋고 예쁘기도 해서회사 내에 남자 직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그리고 무엇보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다.노래 부를 때(트로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주 이야기했지만)에는그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2년 전쯤 사라가 ‘피클’ 3인조로 활동하던 때,정훈이가 지방 공연이 늦게 끝난 피클을 픽업해서서울까지 올라온 적이 있었다.두 멤버는 곯아떨어졌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라는,혼자 안 자고 노래 한 구절을 반복해서 연습하며 흥얼거렸다.“사라 씨는 노래하는 게 그렇게 좋아요?”사라의 그런
“안녕하세요.저 정훈이 동료인 이진성이라고.같은 매니저고요, 친구인데요.”그러고 보니 낯이 익어 보인다.“왜, 작년인가?정훈이와 저에게 술 사주신 적 있으시잖아요.”그제야 생각이 났다. 정훈과 친하다는 동료.장례식장에도 왔었고 얼마 전에 통화까지 한 친구다.“아~~ 정훈이 친구 진성이. 알지.내가 요즘 깜빡깜빡해.”자신을 이제야 알아보자,멋쩍게 웃던 진성은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며 목소리를 낮췄다.“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어디 조용한 데 가서.”정식은 직감적으로 ‘얘가 뭐 좀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훈이 다시 한잔을 마신 후.“내게 계획이 있어.나도 거기 왔다 갔다 하면서 대강 정보를 모아놨어.사라가 마음을 독하고 먹고.몇 가지 일만 하면 돼. 물론 위험하긴 하지만.”사라는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이리저리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게 될까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내가 도울게. 나만 믿어.”그때 마침,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