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두 사람이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김현의 귀국 예정 시간 30분 전이었다.
공휴일이라 그런지, 공항은 평일인데도 예상보다 붐볐다.
공항 로비에서 베트남발 항공기 도착시간을 확인했다.
문제는 어느 출구로 나올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단 베트남발 항공기의 짐을 찾는 곳과 가까운
게이트 두 군데를 확인하고 기다렸다.
만약 그가 나오는 것을 확인하면 인명은 그를 미행하고
진구는 곧바로 주차장으로 뛰어가서 차를 빼 오기로 했다.
김현이 혼자 이동한다면 공항에서 바로 접촉할 생각도 하고 있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김 대표를 마중 나온 사람들이 있는지 살폈다.
혹시 서지수 이사나 김 팀장이 마중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붐비는 로비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데,
운 좋게도 서지수 이사가 보였다.<
차분하게 써 내려간 진술서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후반부에 서술한 실제 명단이었다.5인뿐만 아니라 추가로 10명의 실명이 적혀있었고그들의 직책과 서로의 관계, 네메시스의 행적 등이 꼼꼼히 적혀있었다.글을 다 읽은 김기정은 놀란 눈으로 사라를 바라봤다.“여기 실명, 이거 확실한 겁니까?”“네. 확실한 것만 적은 거예요.”사라의 조용하면서도 확신에 찬 대답에 김기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준비됐습니다.”카메라 기자가 촬영시작을 알렸다. 김기정은 주위를 돌아봤다.“자, 이제 우리는 나갑시다.”박 형사가 김기정의 사인을 알아보고 말했다.“언니, 잘해.”시은이 싱긋 웃으며 주먹을 흔들었다.다들 웃음으로 사라를 응원하고 방을 나갔다.“제가 듣기로 모자이크와 변조를 안 하신다고?”“네.”“실명도 공개할 겁니까?”“네.”“그에 따른 신변의 위협이나 향후 사생활에 끼칠 나쁜 영향도 고려하셨습니까?”사라는 그 말에 한숨을 한번 쉬고는 ‘네.’라고 대답했다.“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본인 소개부터 해주실까요?”사라의 인터뷰는 무려 세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중간중간 휴식도 있었고, 또 사라의 눈물을 터져 중단되기도 했다.“모두 끝났습니다.”세 사람이 방에서 나왔다.시은이 달려가 사라를 안아줬다.다들 사라에게 수고했다는 격려를 했다.“참, 용감한 분이네요.”김기정은 음료수를 마시며 인명에게 말했다.“그렇죠? 그런 게 느껴지죠?”인명은 김기정 기자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김기정은 사라의 양해를 구하고 세나의 모습도 촬영했다.김현의 죽음에 관한 기사도 따로 낼 거라고 했다.“자, 다들 고생했으니 오늘 저녁 파티 어때?”박 형사가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아, 사부님. 그새 또 술 생각이 나시나 봐.”진구가 핀잔을 줬다.“괜찮아. 다 나았어. 박 원장이 괜찮다 했어. 못 믿겠으면 전화해 봐. 자.”박 형사를 진구의 목을 감고는 전화를 귀에 대는 시늉을 했다.여기저기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정리하라고. 일단, 네메시스 주택하고 이천 별장 싹 정리하라고.서류나 자료, 집기까지 싹 없애라고.CCTV 동영상도 모두. 아 그리고.네메시스 클럽에도 가서 증거될 만한 거 다 없애.거기 가구며 집기며 몽땅 비워버려.여기 사무실에도 뭐가 있으면 다. 컴퓨터 싹 정리하고,관련 서류는 다 파쇄하라고. 직원들 몽땅 동원해. 뭐 해? 안 움직이고?”비서실장은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한헌준은 다시 네메시스 초상화를 바라봤다.‘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나 그리 쉽게 꺾이는 놈 아니야. 어디 한번 해보자고.’그러고는 하얀 손가락으로 자신의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사라는 시은이 구해다 준 화장품으로 오래간만에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거울 속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자기 자신을 이렇게 자세히 쳐다본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참 어렵게 여기까지 왔다. 민사라. 너 할 수 있지?부끄러울 거, 없어. 당당하게 해내는 거야.’그러고는 숨을 한번 깊게 들이마셨다.“택시가 한 대 옵니다.”오늘 오전 당번인 정식의 목소리가 집안을 울렸다.멀리서 먼저를 날리며 택시가 한 대 달려오고 있었다.인명은 마당으로 나왔다.택시가 집 앞에 도착하는 것을 지켜봤다.잠시 후, 택시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카메라를 든 기자와 김기정이었다.“웰컴!”대문을 열며 정식이 환하게 웃었다.“고생했어요.”인명도 환한 미소로 김기정 기자를 반겼다.“말도 마세요. 여기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김기정이 웃으며 푸념부터 늘어놓았다.거실에 들어간 김기정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인사를 나누면서도 김기정의 눈이 이리저리 한눈을 팔았다.사라를 찾는 눈치였다.잠시 후, 방문이 열리면서 사라가 나타났다.“안녕하세요. KBC 김기정 기자입니다."“안녕하세요. 민사라입니다.”“고생 많았어요. 그리고 용기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김기정은 사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차분하고
밤늦게까지 편집실에서 편집 기사와 일하다가새벽 4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던 김기정은회사체육관에서 샤워하며 잠을 깨웠다.벌써 며칠째, 낮에는 취재, 밤에는 편집으로 회사에 살다시피 했다.방송 준비도 급하지만, 보안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사장의 제안으로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사장이 특별취재팀을 꾸려주는 바람에 4명의 기자가 취재를 함께했고,배정받은 편집실은 24시간 교대로 편집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드디어 오늘이네요.”후배 카메라 기자가 엘리베이터를 타며 말했다.“4시간밖에 못 잤는데 말똥말똥해. 긴장이 되어서 그런가.”김기정의 말이 농담은 아니었다. 진짜 긴장되었다.오늘 드디어 민사라를 만나서 인터뷰하기로 한 것이다.민사라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이제 화룡점정을 찍기만 하면 된다.지하 주차장 취재 차량 구역에 도착했을 때,김기정은 깜짝 놀랐다. 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사장님. 여긴 어떻게.”“뭐, 어떻게야. 출정식 보러왔지.”사장이 웃으며 농담했다.그러고 보니 비서실장과 국장, 부장도 함께 있었고,사복 차림의 낯익은 경비요원 두 명도 서 있었다.“오늘은 차에 이 두 친구가 함께 갈 거야.안전관리실장이 추천한 우리 회사 최정예 요원들이야.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거야. 안 좋은 소문도 들리고 해서.”김기정은 사장의 배려에 기쁨과 부담감이 동시에 몰려왔다.새삼 이 프로젝트의 무게감을 느꼈다.김기정은 사장과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고 후배 카메라 기자와 함께 차에 올랐다.그러고는 인명이 불러준 주소를 차를 운전하는 경비요원에게 알려줬다.차는 빠르게 회사를 벗어났다.자유로를 따라 차는 30분도 채 안 되어 파주의 좁은 지방도로로 접어들었다.목적지가 5킬로미터 남았을 때였다.운전하던 요원이 계속 백미러를 주시했다.“아무래도 뒤차가 좀 수상한데요.”그 말에 다들 뒤를 돌아봤다.백여 미터 뒤에서 SUV가 따라오고 있었다.“회사에서 나올 때부터 저 차들이 보였다 안 보였다 했어요.수상해
“박 형사님이 오셔요.”그때, 오전 당번으로 마당에서 망을 보던 진구가 소리를 질렀다.대문이 열리더니 박 형사가 나타났다.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형사님, 괜찮으세요?”다들 반가워하면서도 박 형사의 안색을 살폈다.“멀쩡해, 얘들이 누구를 어린애로 아는 거야,아니면 노인네로 아는 거야.나야. 박영진, 너희들 대장 박영진!”박 형사가 웃으면서 소리를 질렀다.“회사 간다며? 시은이에게 들었다.”“네.”인명이 웃으면서 대답했다.“하여튼, 조심해, 내 꼴 당하지 말고.”“제가 따라갈 겁니다.제가 없는 동안에 여기 경비 잘 부탁합니다.”정식이 대신 시원스럽게 대답했다.“그래 걱정 마.”그러더니 인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괜히 인명의 어깨를 툭툭 털었다.“예전에 처음 체육관에서 봤지?참 그동안 많이 변했네.그때 내가 좀 무례하게 대했지?하지만, 지금 얘기하는 건데,그때도 자네는 찌질하지 않았어. 확고했어.그래서 자네를 믿고 여기까지 온 거야.앞으로도 지금처럼 쭉, 흔들리지 말고, 알지?”인명은 박 형사의 난데없는 고백에 코끝이 찡해왔다.하지만 주위에 눈들이 많았다.“아니, 사람들 앞에서 왜 그러세요? 민망하게.”인명의 말에 다들 킥킥 웃음이 새어 나왔다.신정 물산에서 조금 떨어진 대구탕 전문점에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2층 별실은 누구의 눈에도, 귀에도 띄지 않는 곳이었다.방문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인명이 들어섰다. 다들 반갑게 일어섰다.“안녕들 하세요?”인명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박 과장, 명진, 수진을 비롯해, 동료 10여 명이었다.인사가 끝나자마자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박 과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최 과장님 그렇게 되고,또 장례식장에서의 일들이 회사 사람들에게 각성시켰나 봐요.이렇게 있어서는 안 된다.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생겼어요.마치 촛불혁명 같다고나 할까?”그 말에 여기저기서 피식거리며 ‘뭐 그리 거창하게’라는 가벼운 추임새가 오갔다.“어쨌든
최 사장은 말문이 막혔다.“수고했어. 하지만 너무 막 캐고 다니지 마.그리고 불법으로 취재하거나 하면 오히려 역공당하는 거 알지?”“네. 압니다.”“적당히 하고, 그 민사라 인터뷰만 따면,취재를 일단 중단하고, 방송 준비를 해.그만큼 모았으면 됐어.”최 사장은 끝내 이무기의 전화 얘기는 하지 않았다.이제부터 조용히 방송 준비만 하면 된다.자신이 보기에도 1차 방송 준비는 다 된 것 같았다.가장 핵심인 민사라 인터뷰만 있어도 세상은 발칵 뒤집어진다.과유불급은 안 된다.“네 알겠습니다. 곧 철수하겠습니다.”“오케이. 몸조심하고. 주위를 잘 살피라고.”“넵.”김 기자는 전화를 끊었다.사장이 갑자기 전화해서 걱정을 해주다니. 기쁘기도 하지만,마음에 걸리는 점도 없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사장의 심리를 추측하고 있을 시간이 아니었다.김 기자는 식당 사무실 문을 다시 열었다.후배 박 기자가 그를 쳐다봤다.“선배님, 여기도 하나 더 있어요.”영상을 보니, 이무기와 박성태가 있던 룸 CCTV가 나왔다.“우아, 룸에도 CCTV가 있었네.”그런데, 두 명이 아니었다. 한 명이 더 있었다.세 번째 인물은 혼자 늦게 왔다가 일찍 가는 바람에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었다.“이 사람 누구지? 희미해서.”화면 속을 기어들어 갈 듯 들여다보고 있는데,난데없는 전화기 진동 소리에 꿈쩍 놀라고 말았다. 자신의 전화였다.“또 누구야?”번호를 보니 정식이었다.“네, 형님.”“아, 김 기자. 상황은 어때?””지금까지도 많이 건졌어요.지금도 영상 하나를 더 건지고 있고요.근데 사라 씨는 어때요?““응.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사라가 마음의 준비가 끝났대.진술서도 다시 새로 썼고. 언제 볼까?”“저야, 지금 당장이라도.”“아니, 그러지 말고. 내일 다시 통화하자고.내일, 늦어도 모레 하자고.”“네.”“참, 그리고 인터뷰는 여기서 할 거고, 절대 보안을 유지해야 해.한 회장 패거리들이 우리 찾으려고 쫙 깔렸어.참, 자네
그래서 희진의 가게로 달려온 것이다.“대단하네요. 아저씨.”“아, 물론, 희진이 그 사건 때문에 그 아파트에 가게 된 걸 확신은 못했어.그냥, 찔러봤는데 자기가 실토한 거지.”인명은 마냥 뿌듯해할 수 없었다.뒷맛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확인한다는 것은그냥 모르고 지내는 것보다 훨씬 괴로운 법이다.두 사람은 재빨리 차에 올라타고는 빠른 속도로 파주로 향했다.혹시 희진이 독하게 마음을 고쳐먹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계속해서 미행을 붙지 않나 신경 썼다.그때 인명의 휴대전화에 문자음이 울렸다.회사 후배 이명진이었다.‘선배님 이거 한 번 보세요.’문자에 영상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무심코 영상을 튼 인명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짧은 10초짜리 영상이었다. 그런데 내용이 충격적이었다.강기범 사장이 무릎 꿇은 최 과장을 발로 차버리는 영상이었다.“뭐예요?”인명을 힐끗 쳐다보던 진구가 물었다.인명은 대답 대신 통화버튼을 눌렀다.“명진아, 이거 어디서 났니?”“아, 예. 비서실이요. 비서실에 있는 동기가 빼 왔어요.뭐 비서실이라고 다 강부 편은 아니죠.”“그래?”“그리고 선배님. 내일 회사 쪽으로 올 수 있으신가요?”“왜?”“최 과장님 사건 때문에 여기 분위기가 장난이 아닙니다.내일 몇몇이 모여서 대책 회의를 할 거라서.지금 증거자료도 계속 모으고 있어요. 꽤 나오고 있습니다.”“그래? 진짜?”인명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회사 사람들이 고맙고 대견했다.그래, 우리는 찌질이가 아니야. 우리가 못 할 거 없지.“그래. 가야지. 당연히 가야지.”퇴근 준비를 하던 KBC 최종만 사장은낯선 번호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처음에는 받지 않았으나,두 번째 전화가 울리자, 통화버튼을 눌렀다.“네. 여보세요?”“최종만 사장이신가요?”“네. 그렇습니다만.”“아, 접니다. 민국당 이무기요.”최 사장은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살짝 녹음 버튼을 누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