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7화

본격적인 광고촬영이 시작되었다. 온하랑은 사전에 스튜디오에 도착해 스탭들에게 현장 세팅을 부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 감독과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도착했다. 두 사람은 온하랑의 오래된 파트너로서 수년 동안 함께 일해왔다. 그녀가 한마디만 해도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효과가 무엇인지 이해했다.

현장 세팅이 거의 준비가 끝나갔고 온하랑은 시계를 확인했다. 9시가 거의 되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30분이나 지났는데 추서윤과 그녀의 스텝들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비서가 한번 연락해 이미 재촉했다고 한다.

촬영 감독인 주현은 카메라를 세팅하며 감탄했다.

“추서윤도 갑질이 심하네요.”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김시연도 비웃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외국에서 오셨으니 갑질을 해도 우리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모델을 교체할 수도 없고. 하랑 씨가 마음대로 교체할 수도 없는 거니까요.”

이번에 모델이 부 대표님이 직접 뽑은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전에는 온하랑이 MQ의 총괄 디렉터로서 모델을 교체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추서윤은 그녀가 마음대로 교체할 수가 없었다.

추서윤이 갑질을 한다고 해도 그들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온하랑은 핸드폰을 꺼내 안수빈의 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에서 통화 연걸음이 들려왔다.

그러나 잠시 뒤 뚝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김시연은 깜짝 놀라며 화를 참지 못했다.

“이 사람들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부 대표님이 꽂아주니까 하랑 씨를 완전히 무시하네.”

몇 분이 지나도 어떠한 전화나 문자도 없었다.

온하랑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방이 또 전화를 끊어버렸다. 몇 번 더 전화해도 똑같았다.

온하랑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김시연에게 말했다.

“늦어도 점심쯤에는 올 거예요. 먼저 돌아가요. 도착하면 내가 연락할게요.”

온하랑은 오랫동안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안수빈이 무슨 생각인지는 미팅하던 그날 온하랑은 이미 파악했다.

김시연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면서 이 정도로 갑질하는 연예인은 또 처음이네요. 해외에서 몇 년 활동했다고는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제대로 된 상 하나 받지 못했잖아요. 그렇다고 흥행작도 없고. 무슨 자신감으로 이렇게 갑질인지 모르겠네요.”

“화 풀어요. 내가 다음에 밥 살게요.”

온하랑이 말했다.

“그럼, 우리 먼저 가 볼게요.”

주현과 김시연은 온하랑에게 인사하며 스튜디오를 떠났다.

온하랑은 가지 않고 비서에게 노트북을 가져다 달라고 한 뒤 대기실에서 업무를 봤다.

밖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온하랑은 일을 멈추고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11시 30분이 넘었다.

역시 그녀의 예상이 맞았다. 비서가 노크하며 말했다.

“온 전무님, 추서윤 씨 오셨습니다.”

“네, 알겠어요.”

온하랑은 노트북의 전원을 끈 뒤 기지개를 켰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노트북을 가방에 넣은 뒤 대기실을 나섰다.

온하랑을 본 안수빈은 얼굴에 떨떠름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걸어왔다.

“온 전무님 죄송해요. 오늘 오전에 갑자기 급한 회의가 잡혀서 늦었네요. 제 핸드폰은 비서한테 있었는데 그 자식이 온 전무님 전화를 끊었더라고요. 저한테 따로 알려주지도 않고, 돌아가서 제가 잘 혼낼게요.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사과의 말을 전하면서도 표정에는 하나도 미안한 감정이 없어 보였다.

“하랑아 미안해. 오늘 다른 일이 생겨서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네.”

추서윤의 말에 온하랑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지금 돌아가려던 참이었어요.”

안수빈이 웃으며 말했다.

“온 전무님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가 보세요. 여기서 계속 지켜보지 않으셔도 다른 스텝들이 있는데요 뭐.”

온하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말은 오늘 촬영은 접는다는 뜻이에요.”

안수빈의 미소가 굳어지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온 전무님, 그게 무슨 뜻이에요?”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장난하는 건가요? 촬영 안 할 거면 왜 미리 알리지 않았어요? 그랬다면 우리도 이런 헛수고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특수 상황이라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촬영 감독님도 안 계셔서요. 오늘 오전에 매니저님께 전화해서 알리려고 했는데 여러 번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으시더라고요. 매니저님이 제 전화를 안 받았을 리는 없고 당연히 매니저님의 비서가 그런 거겠죠. 비서분이 너무 무책임하신 것 같네요. 무슨 일이 있어도 매니저님한테 꼭 전달해야 했는데. 그래서 제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시 오신 뒤에 아무도 없는 스튜디오에서 기다리실까 봐.”

온하랑의 말에 안수빈과 추서윤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다.

“지금 알려드렸으니 전 일 때문에 먼저 가볼게요. 내일 촬영에는 두 분 늦지 않길 바라요.”

온하랑은 미소를 지었다. 말을 마친 뒤 노트북이 든 가방을 들고 성큼성큼 스튜디오를 떠났다.

안수빈과 추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온하랑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 머리 좋네, 저 여자. 이런 수를 쓸 줄은 생각도 못 했어.”

추서윤도 웃었다.

“그러니까. 이런 방법으로는 온하랑을 흔들 수 없어. 생각해 봐, 내가 떠난 뒤에 승민이를 꼬셔서 결혼까지 한 여자야. 그런 여자가 순진할 리가 있겠어?”

“이제 어떻게 할까?”

안수빈은 오늘 이미 회의 때문에 지각했다는 핑계를 써버렸기에 내일 다시 똑같이 하면 오늘처럼 쉽게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추서윤은 핸드폰을 흔들며 고민했다.

“내가 승민이한테 전화하고 올게.”

온하랑은 강한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은 그녀에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다. 그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 부승민이다.

Related chapters

Latest chapter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