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가 끝난 뒤 부승민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눈썹을 문질렀다.바로 그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보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승민아 지금 회사야? 나 지금 너한테 가도 돼?”부승민은 테이블 위에 놓은 캘린더를 확인했다.“오늘 촬영 이렇게 빨리 끝났어?”추서윤은 머뭇거리며 말했다.“오늘... 오늘 촬영 못했어.”“촬영을 못했다고? 왜?”부승민이 물었다.그는 아까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온하랑의 사무실 문이 잠겨있는 것을 보고 외근을 나간줄 알았다.매번 광고 촬영에 온하랑은 모두 현장에 가서 지켜보았다.아마 오늘도 그녀는 이미 스튜디오로 갔을 텐데 왜 촬영하지 않았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우리가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하랑이가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서 촬영 못 한다고 하더라고. 그러고는 바로 떠나버렸어. 우리도 무슨 일이 있는 건지는 몰라.”“그럼 긴급한 상황이 있나 보네. 촬영 없으면 회사로 와.”3년 동안 온하랑의 일 처리를 부승민은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만약 정말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녀가 이렇게 촬영을 접는 일은 없었다.부승민의 말투에 온하랑에 대한 책망이 전혀 없는 것을 듣고 추서윤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특수한 상황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어. 맞다, 승민아. 나 한 가지 부탁해도 돼?”“뭔데?”“이번 촬영에서 내 개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데려와도 괜찮을까? 몇 년 동안 해외에 있다가 돌아와서 그런지 물이 잘 안 맞아서 피부상태가 너무 안 좋아. 국내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내 상황을 잘 모를 거 같아서. 메이크업 잘 안되면 카메라에도 당연히 예쁘게 나올 수 없으니까. 내 전담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내 피부 상태도 제일 잘 아니까 실력을 잘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아.”부승민은 큰일인 줄 알았다.“뭘 이런 작은 일까지 나한테 보고해?”추서윤이 말했다.“이게 어떻게 작은 일이야?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제대로 소통해야지. 서로 존중하고
부승민이 이미 동의했다는 것이 밝혀지자 온하랑은 갑자기 이 상황이 매우 우스워진 느낌이 들었다.추서윤 때문에 부승민은 또 한 번 MQ의 일에 개입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온하랑의 계획을 망쳐 버렸고 수습은 결국 그녀가 다 해야 했다.이미 준비되어 있던 마케팅 계획도 모델을 바꿨기에 결국 폐지되었다. 부승민은 온하랑이 현재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들였는지 모를 것이다.그는 단지 추서윤을 기쁘게 하려고 신경을 쓸 뿐이었다.일의 진행에 얼마나 더 문제가 생기든지 모두 온하랑이 감당해야 했다.그는 어떻게 이런 일에 신경 쓸 수 있을까?김시연이 듣더니 더 어이가 없어 물었다.“부 대표님이 동의하셨다고요? 부 대표님이 이런 사소한 문제까지 신경 쓰셨다니.”추서윤이 웃었다.“시연 씨도 알다시피 사소한 문제니까 승민이가 나한테 마음대로 하라고 한 거겠죠.”김시연이 말했다.“추서윤 씨, 지금 내가 말한 사소한 문제는 부 대표님께만 해당하는 말이고요.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은 촬영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예요. 추서윤 씨가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전 단지 부 대표님이 왜 이런 일에 개입하셨는지가 의문이 들어서요.”안수빈이 말했다.“그쪽 말은 우리 서윤이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온 전무님 만약 믿을 수 없다면 부 대표님께 전화해서 확인해 보세요. 이 일은 부 대표님이 저희에게 일임한 사안이에요. 저희는 지금 메이크업 바꿀 생각 없습니다. 남은 건 두 분이 해결하세요. 해결하지 못한다면 계약을 해지하면 되고요. 저희 서윤이는 이 광고 찍지 않아도 딱히 문제 될 게 없어서요.”추서윤은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시연은 안수빈의 말에 화가 났지만 참고 있었다.분장실을 나오자마자 그녀는 손으로 가슴을 퍽퍽 치며 말했다.“이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많은 연예인 하고 일해 봤는데 이렇게 뻔뻔한 사람은 처음 보네요. 이 광고 안 찍어도 되면 왜 임리안 손에 들어간 광고를 뺏은 거래요? 나쁜 년이 정당한 핑계까지 대는 거 보니까 역겨
온하랑은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무릎을 굽히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온하랑은 더 이상 이런 굴욕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부승민의 마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추서윤에게로 향해 있었다.어제 일도 부승민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싶었다면 사람을 보내 조사를 하면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추서윤을 더 믿었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이게 바로 남자들이 제일 못 잊는다는 첫사랑인 걸까?“온 전무님, 김시연 씨와 주현 씨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비서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온하랑을 보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말을 전했다.“네, 알겠어요.”온하랑은 바로 자기 기분을 정리하고 성큼성큼 대기실로 향했다.“어떻게 됐어요? 부 대표님이 뭐라고 하세요?”대기실로 들어오는 온하랑을 보고 김시연이 바로 물었다.주현도 고개를 들었다.온하랑이 고개를 젓자 주현은 한숨을 쉬었다.김시연은 감탄하며 말했다.“정말 이런 건 예상도 못 했어요. 부 대표님은 정조인 줄 알았는데 숙종이었네요.”“그럼, 이제...”“내가 가서 얘기해 볼게요. 조금이라도 메이크업 수정하고 또 촬영 소품도 좀 바꾸면 될 것 같아요. 주현 씨 후반 작업 잘 부탁드려요. 지금 막 아이디어가 떠오르니까 저녁에 가서 시안 보내드릴게요.”온하랑이 말했다.“네, 좋아요.”주현이 대답했다.온하랑은 다시 분장실로 들어가서 추서윤의 스텝들과 지금 메이크업을 조금 수정해 달라고 소통했다.온하랑은 이미 짜증이 났지만 그녀는 MQ의 책임자로서 반드시 자신의 업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만약 광고 효과가 좋지 않으면 MQ의 책임자인 온하랑에게도 안 좋은 영향이 있을 테지만 추서윤이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지난번 추서윤은 부승민과 스캔들이 터짐과 동시에 MQ의 홍보모델이 되었다. 비록 평화로워 보였지만 실제로는 피바람이 불었다.임리안은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이기에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임리안의 손에서 광고를
운전기사는 백미러를 통해 부승민을 흘긋 보더니 그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분 사모님이 아니야? 사모님 옆에 있는 남자는 누구지? 캡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꼼꼼히 가리고 스튜디오에서 나오는 걸 보아 아마도 연예인이겠지?’그 남자는 사모님과 사이가 아주 가까워 보였다.운전기사가 조용히 일러줬다.“도련님, 추서윤 아가씨가 나오셨습니다.”“응.”부승민이 무심한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기사는 조금 헷갈렸다.“차를 스튜디오 문 앞에 갖다대.”스튜디오 문 앞에 가면 사모님이 볼 텐데?운전기사는 마음속으로 갈팡질팡하다가 부승민의 지시에 따라 차를 스튜디오 앞에 세웠다.대화 중이던 이주혁이 턱을 쳐들며 차를 가리켰다.“저분 너희 대표님 아니야?”온하랑이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자, 어느새 스튜디오 문 앞에 검은색 카이엔 한 대가 서 있었고 번호판을 보니 부승민이 자주 사용하는 차량이었다.그리고 차 앞에는 추서윤이 서 있었다.부승민이 차에서 내려 추서윤과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추서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개해 있었다.그리고 부승민은 반대편으로 가서 추서윤에게 문을 열어주더니 매너 있게 손으로 차의 윗부분을 가려줬고 추서윤이 차에 타자 다시 돌아가 차의 뒷좌석에 앉았다. 운전기사가 차를 몰고 자리를 떠났다.부승민이 추서윤을 데리러 온 것을 보고 온하랑의 마음에는 씁쓸함이 밀려왔다.하지만 이주혁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우리 매니저가 요즘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이미 여주인공을 추서윤으로 정했대. BX 그룹 산하의 스타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한 대작이래. 특별히 진 감독님을 섭외해서 촬영한다네. 하랑이 너희 대표님은 여자 친구에게 씀씀이가 정말 크더라. 듣기로 전 MQ의 전속모델은 임리안이었다며?”온하랑은 입꼬리를 올렸고 이미 자기도 모르는 새에 소매 안에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혀 깊은 초승달 모양의 자국을 남겼다.그녀는 숨이 멎을 정도로 마음은 답답했다. 알고 보니 그녀가 모르는 곳에서 부승민은
부승민은 고개를 들자마자 문 앞에 서 있는 온하랑을 보았다.온하랑은 불빛을 등지고 서 있어 얼굴이 어두워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부승민은 그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복도에서 우연히 준형 오빠와 마주쳐서 여러분께 인사드리러 왔어요.”온하랑은 미소를 지은 채 사람들을 훑어보았다.“친구랑 식사하러 온 거야?”부승민이 물었다.“응.”강민이 웃으며 물었다.“하랑아, 요즘 뭐해?”“MQ 전속모델 계약 건을 맡고 있어요.”그러자 강민은 자신이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은 걸 깨닫고 당황했다.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그걸 눈치채지 못한 듯해서 강민이 추서윤을 가리키고 웃으며 말했다.“그 전속모델이 바로 여기 있잖아?”미소를 짓고 있던 온하랑은 다가와 테이블에서 빈 컵을 들고 직접 차를 따르며 말했다.“오늘 우연히 이곳에서 만났으니 제가 술 한 잔 권하겠습니다. 다음에 식사 대접해 드릴게요. 둘째 오빠도 축하해요.”그녀는 ‘둘째 오빠’라고 또박또박 말했다.두 사람이 결혼한 뒤로 그녀는 부승민을 ‘둘째 오빠’라고 부른 적이 없다. 대신 더 친밀해 보이게 그냥 ‘오빠’라고 불렀었다.온하랑은 술잔에 들어있는 차를 한꺼번에 들이켰다.“천만에.”“저는 볼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온하랑은 술잔을 내려놓았다.그런데 이때 노준형이 말했다.“하랑아, 이렇게 가면 안 되지! 네 새언니도 여기 있는데 새언니한테 술 안 권해?”강민은 속으로 노준형을 욕했다.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옆에 있는 오지랖 넓은 사람들은 노준형을 따라 부추기기 시작했다.“하랑 씨, 승민이가 직접 서윤 씨와의 계약을 성사한 건데, 서윤 씨에게 술 권하지 않아요?”“두 사람 지금 협력하고 있잖아요? 같이 한 잔 마셔요.”온하랑은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앙다물었다.그녀가 어떻게 추서윤에게 술을 권할 수 있겠는가?!“에이, 됐어.”강민이 말했다.노준형은 웃을 듯 말 듯 하면서 말했다.“왜? 하랑인 새언니가 마
그녀의 심장을 칼로 찌른 것처럼 아프게 하다니.“온하랑, 새언니에게 술을 권하는 것뿐이잖아? 그게 뭐라고 망설여?”“역시 서윤 씨가 착하다니까. 새언니한테 술 권하는 게 어떻다고?”온하랑은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앙다물고 테이블 위의 술잔을 들고 추서윤 앞으로 건네는 제스처를 취하고 한꺼번에 들이마셨다.그리고 그녀는 술잔을 내려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끝까지 새언니라고 부르지 않네.”노준형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정말 자기가 부씨 가문의 아가씨인 줄 알아. 감히 승민이 체면을 세워주지 않다니.”“BX 그룹에서 자기 자리가 있는 걸로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서윤 씨는 이제 사모님이 될 건데, 감히 저렇게 무시하다니. 승민아, 서윤 씨가 당하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거야?”“크흠.”강민은 점점 더 어두워지는 부승민의 얼굴을 보며 목청을 가다듬었다.“다들 조용히 해요.”사람들은 부승민의 언짢은 듯한 표정을 보고 그가 온하랑의 태도에 불쾌해하는 줄로 알고 더는 이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하지만 그중에 한 명은 이 기회에 부승민과 추서윤의 환심을 사려는 듯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부 대표님, 온하랑은 십 대 때 부씨 가문에 와서 양딸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가게 놔두면 안 돼요. 보세요, 지금 대표님이랑 추서윤 아가씨를 존중하지도 않잖아요. 지금 부 회장님을 믿고 저러는 건데, 대표님이 혼내시지 않으면 부 회장님에게 있는 주식도 온하랑한테 넘어갈 거예요.”“그래요? 그럼 제가 어떻게 혼내 주어야 할까요?”술잔을 흔들며 무심코 묻는 부승민의 표정이 어두워 기분을 알 수가 없었다.“그건 간단하죠. 지금 온하랑은 결혼 안 했잖아요? 아무 남자나 찾아서 결혼시키면 그 남자가 대표님께 아첨하지 않을까요?”“좋은 생각이네요.”칭찬을 들은 남자는 환하게 웃었다.부승민은 천천히 일어서더니 갑자기 남자의 무릎을 발로 찼다.방심한 그 남자는 쿵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고 고통스러웠다.사람들은 깜짝 놀
“왔어?”부승민이 말했다.온하랑은 그에게 시선을 주지도 않고 신경을 쓰지 않은 채 곧장 계단을 올라갔다.부승민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시선은 계단 끝에서 그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따라갔다.일 층에서 한참 앉아 있다가 부승민은 일어서서 위층으로 올라가 바로 침실로 갔다. 문을 열자 침실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욕실에서 흐르는 물소리만 들렸다. 온하랑은 샤워하고 있었다.부승민은 침을 삼키며 옷깃을 풀고 옷장에서 샤워 가운을 집어 들어 침실 밖에 있는 욕실로 가서 샤워했다.부승민은 다시 침실로 들어오자 마침 욕실에서 나오는 온하랑과 마주쳤다.그녀는 잠옷을 챙기는 것을 까먹었고 머리는 반쯤 말린 채 몸에 타월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그것은 가슴부터 엉덩이까지 겨우 가리고 있었다. 온하랑의 목은 길고 아름다웠고 반질반질한 어깨는 가늘었으며 타월에 가려진 가슴은 풍만했다. 부승민은 그것들의 촉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희고 날씬한 다리는 밖으로 드러났는데 피부는 우유처럼 희고 비단처럼 매끄러워 보였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온하랑은 눈을 피하고 옷방으로 가서 자기 잠옷을 꺼내며 무심한 듯 말했다.“난 오늘 손님방에서 잘 거야.”“온하랑, 그게 무슨 뜻이야?”부승민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아무 뜻도 없어. 두 사람을 만족시켜 주려는 것뿐이야.”온하랑은 조롱하듯 웃었고 그의 몸에서 살짝 풍기는 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부승민은 문 앞에 서서 나른하게 기대어 있었다.“내가 서윤이에게 술을 권하라고 해서 화났어?”“난 화나면 안 돼?”무심한 그의 말투에 온하랑은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녀는 술을 권하라는 말 때문에 화난 것뿐만 아니라, 그의 옆에 있는 친구들이 추서윤을 감싸는 모습이 더 꼴 보기 싫었다.“언젠가는 서윤이를 새언니라고 불러야 할 텐데, 왜 이번 일을 그렇게까지 신경 써?”“걱정하지 마. 이혼하면 난 절대 그 불륜녀를 새언니라고 부르지 않을 테니까.”“온하랑!”부승민의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날 왜 불러?
“오빠 손님방에 갈 거라며? 빨리 가!”온하랑은 다급히 타월을 들고 가슴을 가렸다.고개를 들자 부승민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쳤는데, 너무 깊어서 그녀를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온하랑은 얼어붙었다.눈앞의 잘생긴 얼굴이 서서히 다가오더니 뜨거운 기운이 그녀의 얼굴을 덮쳤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눈을 감아도 눈앞에 빛이 가려져 어둠이 드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키스하지 않았다.온하랑이 눈을 떠보자, 부승민은 이미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다.“미안해. 나는 손님방으로 갈 테니까 일찍 쉬어.”그는 문 앞에 서서 눈을 감고 조금 전의 장면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그는 하마터면 그녀에게 키스할 뻔했다. 자신이 미친 것 같았다. 이제 곧 온하랑과 이혼하고 추서윤과 함께 할 건데, 어떻게 온하랑에게...그는 몸매가 좋은 온하랑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눈앞에 서 있으면 정상적인 남자인 그가 생리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자신을 위로했다.부승민은 자신의 미간을 만졌다....문이 닫히는 무거운 소리가 들리자 온하랑은 몸이 굳은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주변의 차가운 공기가 그녀의 피부에 스며들자 다급히 이불을 들어 자기 몸을 가리고 침대 구석으로 몸을 움츠리고 머리를 이불속에 파묻었다. 반짝이는 눈물이 눈가에서 새어 나와 이불을 적셨다.조금 전 차갑게 돌아서서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마치 그녀의 뺨을 무자비하게 내리치는 것 같았다.그가 조금만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면 그녀는 바로 그것에 빠져들었다.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부승민이 그녀를 보고 추서윤에게 술을 권하라고 한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가 다가오자 온하랑은 저도 모르게 그에게 기대려 했다.그녀가 받아들이려 해도 부승민은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는 추서윤에게 정말 충성스러웠다. 또 망신당했다. 그는 온하랑이 싸게 군다고 생각할 것이다.그것도 그런 것이, 부승민은 한 번도 그녀를 아내로 대한 적이 없었고 단지 있어도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