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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오남미는 자기의 물건은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털어갔고, 천도준과 그의 어머니의 물건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헤집어 놓았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건 그와 오남미의 웨딩사진인데 찬찬히 보니 반쯤 찢겨 있었고 사진 속에는 천도준의 얼굴만 보였다.

그리고 그와 어머니의 유일한 사진도 바닥에 떨어져 액자가 깨져있었으며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천도준은 사진을 집어 들더니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

“당신 마음속에 나와 우리 엄마는 고작 이 정도였어?”

그는 심호흡한 뒤 사진을 주머니에 넣고 이삿짐센터 직원을 불러 이사를 시작했다.

모든 물건을 다 옮기고 정리하니 시간은 어느덧 저녁 6시가 되었고 마침 임설아에게서 문자가 왔다.

천도준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임설아가 있는 호텔, 오스턴으로 향했다.

5성급 호텔 펜트하우스의 스위트룸에서는 전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임설아는 채 말리지 않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샤워 가운을 입은 채 소파에 요염하게 기대앉아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었다.

보아하니 취기가 제대로 오른 모양이다.

그녀의 뺨은 붉게 물들었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도시 사람이 되려고 악착같이 애썼다.

은행원이라는 직업은 그녀에게 조신한 껍데기를 선사했으며 그녀만의 우월감을 느끼게 했다.

오남준의 여자 친구가 된 것도 그를 사랑해서 아니라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1억이라는 예물, 아파트 한 채 그리고 육천만 원짜리 차 한 대는 그녀의 허영심을 한동안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비록 예물로 1억은 한참 적은 숫자이지만 최소한 그녀는 결혼 전에 그 돈으로 작은 집 한 채를 살 수 있고 그 집은 자기만의 혼전 재산이 될 수 있다. 그러다 나중에 더 좋은 표적이 생기면 오남준과 이혼하더라도 남는 장사이다.

아쉽게도 충동적인 행동으로 도도한 껍데기를 벗고 끝없는 굴욕을 견뎌야 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녀는 분명 더 좋은 방법을 택할 것이고 그녀가 꿈꾸던 상황을 만들어 낼 것이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 열려있어요.”

임설아는 눈물을 닦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스위트룸에 들어 온 천도준은 소파에 요염하게 기대있는 임설아의 모습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천도준 어머니의 목숨값으로 오씨 집안에서 들이려고 했던 여자가 지금 이 방에 누워있다니.

만약 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천도준 씨......”

임설아는 몸을 일으키더니 와인잔에 와인을 따른 후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잔을 넘겨주며 말했다.

“천도준 씨, 오후의 일은 설아가 정말 미안했어요.”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말투로 요염하기 그지없었다.

천도준은 평온한 표정으로 와인잔을 넘겨받으며 말했다.

“은행 고객의 개인정보를 도용하는 건 규정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임설아는 멈칫했다.

천도준이 이런 반응을 보일지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맞받아쳤다.

“그건요, 천도준 씨에게 보상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어요.”

“어떻게 보상할 건데?”

천도준은 싱긋 웃더니 와인을 한꺼번에 들이켰고 그가 와인잔을 내려놓기도 전에 임설아가 그를 덮쳤다.

순간 와인잔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났고 깨진 유리 조각은 불빛을 받아 마치 네온처럼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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