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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천도준의 답장을 받은 임설아는 다급히 부장이라는 남자에게 휴가를 내고 천도준과의 만남을 위해 준비했다.

이는 그녀와 부장이라는 남자의 미래와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

심지어 남자는 규정을 어기고 불법적으로 천도준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초조한 마음으로 은행을 나서는데 마침 차에서 내리는 오남준과 마주쳤다.

하지만 오남준은 그녀의 표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활짝 웃으며 말했다.

“설아야, 벌써 퇴근했어?”

“오남준?!”

임설아는 깜짝 놀랐다.

그제야 오남준과 데이트 약속을 잡았던 것이 떠올랐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응, 그래. 몸이 안 좋아서 미리 나왔어.”

“하핫, 다행이다. 일찍 퇴근했으니 조용한데 가서 게임이라도 하자. 오늘 내가 제대로 함께 놀아줄게.”

오남준의 말에 임설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자식 말귀 못 알아듣는 거야?’

히죽거리는 오남준의 면상을 보니 저도 몰래 화가 치밀어 올랐다.

놀아주기는 개뿔!

그녀는 오늘 다른 남자한테 몸을 바치게 되었는데 아직도 게임 타령이라니?

임설아는 애써 화를 누르며 차분하게 말했다.

“미안한데 남준아. 나 오늘 급한 일이 있으니 다음날 다시 만나자.”

오남준은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밥 먹고 함께 게임하기로 약속했잖아.”

임설아는 이가 갈렸다.

‘오남준 이 모자란 자식,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지.’

시골 출신인 그녀는 도시에서 집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무리 가정이 있는 은행 상사와 불륜을 저질러도 그 남자는 절대 임설아를 위해 가정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다.

하여 그녀는 미리 다음 남자를 물색했고 결국 오남준이 걸려들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녀는 오남준을 한대 패고 싶은 심정이다.

결국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애써 웃어 보이며 오남준의 볼을 꼬집었다.

“미안해, 자기야. 근데 나 오늘 정말 급한 일이 생겼어. 게다가 지금 몸도 불편해. 우리 다음 날 다시 데이트하자.”

“그래.”

오남준은 풀이 죽어 대답했다.

오남준은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거절했고 그는 하는 수 없이 그녀를 위해 택시를 잡아주었다.

마침 은행 부장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는 피식 웃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모자란 것.”

택시에 탄 임설아는 눈시울을 붉힌 채 입술을 깨물고 요염한 몸을 가늘게 떨었다.

그녀는 짜증스럽게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만약 오늘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됐을까?

그녀는 재벌의 구애를 전혀 거부할 마음이 없었고, 심지어 재벌의 품에 나비처럼 안길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녀가 원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결과이다.

하여 그녀는 은행 부장과 불륜도 저질렀다.

하지만 아까의 충동적인 행동 때문에 본질이 변해버렸다.

저녁에 발생할 일을 상상하니 억울하고 굴욕적이었다.

콧대를 높인 채 자기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한 남자가 자기를 구애하는 순간을 완전하게 느낄 수 없게 되었으며 오히려 을의 입장에서 갑을 위해 복무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천도준은 나중에 어머니가 퇴원하면 회복기를 보낼 수 있도록 이율 병원 근처에 월셋집을 구했다.

계약서에 서명한 뒤, 그는 바로 이삿짐센터에 연락해 오남미와 함께 살던 집에서 자기의 물건을 새집으로 옮기려고 했다.

한심하게도, 문을 여는 순간 집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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