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이런 슈퍼 고객은 임설아 같은 작은 은행 직원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다.

아까 발생했던 일을 떠올리니 임설아는 후회가 밀려와 자기의 뺨이라도 갈기고 싶었다.

그런 슈퍼 고객이 그런 눈빛으로 자기를 봤다는 건,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밀어냈다니, 게다가 기분까지 상하게 했다니.

“부장님, 나 도와줄 거죠?”

임설아는 몸을 배배 꼬며 남자의 목을 팔로 감았다.

“도와줘?”

남자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박박 긁적였다.

“나도 지금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야. 너도 너지만 만약 그 고객님께서 기분이 상하셨다면 나도 끝장이라고.”

청천벽력이다.

멈칫하던 남자는 이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맞다. 아까 널 훑어봤다는 말, 사실이야?”

임설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무릎을 내리치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아직 기회는 있어! 방법이 있다고! 임설아, 네가 직접 찾아가서 사과드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사과 받아들이게 해. 아니면 우리 둘 다 끝이야.”

“하지만......”

임설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자의 말은 명백했다. 그녀가 은행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남자의 덕분이다.

그러니 남자의 요구에 그녀는 순응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임설아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갔다.

사무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남자가 한마디 덧붙였다.

“수단 방법 가리지 말라는 말, 반드시 기억해. 그래야 우리 둘 다 살 수 있어.”

은행을 나선 후 천도준은 택시를 타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차에서 그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천도준 고객님, 저는 업무를 도왔던 임설아입니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저의 무례를 용서하세요. 미안함의 의미로 저녁 식사를 함께하려고 합니다. 오늘 밤, 반드시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

천도준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임설아 이 여자 생각보다 아주 노골적이네?’

하지만 천도준은 아까 발생했던 일에 대해 따질 생각이 전혀 없었고 임설아와는 조금도 얽히고 싶지 않았다.

임설아는 그 모자란 오남준의 여자 친구라 보기만 해도 역겨웠다.

이율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천도준은 먼저 이천만 원의 병원비를 지불했다.

그리고 나머지로는 월셋집이 아닌 자그마한 아파트의 대출 계약금도 충분히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집을 사게 되면 인테리어도 해야 하니 당장 갈 곳이 없는 그에게는 월셋집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

병원을 나서자 아우디 A4가 천도준 앞에 멈춰 섰다.

“아이고, 난 또 누군 줄? 알고 보니 내 전 매형이네?”

오남준은 머리를 빼꼼 내밀더니 낄낄 웃으며 선글라스를 벗고 오만한 눈빛으로 천도준을 바라봤다.

“반갑네, 오남준.”

천도준이 피식 웃었다.

“어디 가는 거야?”

“당연히 여자 친구 만나러 가는 길이죠. 걔 직장이 이 병원 부근이에요.”

오남준은 천도준 손에 들린 검은색 봉지를 보더니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쯧쯧...... 너무 궁상맞은 거 아니에요? 우리 누나와 이혼하자마자 쓰레기 줍는 거에요?”

천도준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남준은 이마를 툭 치며 말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어머니가 아직도 병원에서 죽기만을 기다린다죠? 돈도 없으니 쓰레기 주워야지, 뭐. 아니며 어쩌겠어? 매형도 참, 우리가 그렇게 많이 도와줬는데 어떻게 이혼할 생각을 했지? 이혼만 안 했더라면 우리가 조금은 도와줬을 텐데.”

“도와줘?”

천도준은 화가 나서 웃음이 나왔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 차 내가 사준 거 맞지?”

오남준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지더니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뭔 개소리야! 이거 아우디예요. 육천만 원짜리라고요. 당신 같은 사람이 나한테 이런 거 사줄 돈이나 있어? 웃기지도 않아!”

말을 끝낸 오남준은 땅에 침을 뱉고 도로 머리를 차에 집어넣더니 차를 몰고 떠나버렸다.

멀어져가는 아우디를 보며, 천도준은 화가 치밀었다.

이내 그는 휴대폰을 들어 임설아에게 답장을 보냈다.

“시간 장소 모두 그쪽이 정해. 침대는 큰 게 좋으니까 참고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