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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4화

Autor: 탄산요정
그 말을 남긴 은희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효찬은 더 이상 남우를 쉽게 감쌀 수 없었다. 친구가 은희에게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화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보미가 죽은 직접적인 이유는 꼭 필요한 조혈모세포 이식을 제때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남우의 시선에서 보면, 남우 역시 당시에는 보미가 위급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누군가에게서 문제가 없다는 잘못된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이어진 사건들까지 확인하자 효찬은 자신이 오래전부터 의심했던 사람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영은이 여러 오해의 중심에 있었다.

맑음이 다쳤던 일도, 납치 사건도, 남우가 은희를 오해하게 된 중요한 장면마다 영은이 의도적으로 끼어들어 있었다.

이어서 세준이 은희에게 약물을 사용해 정신적으로 무너뜨리는 과정이 재생됐다.

의사인 효찬은 그 처치가 사람에게 어떤 고통을 남기는지 누구보다 정확히 알았다.

그런 일을 겪고도 은희가 정신을 완전히 잃지 않고 버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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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제265화

    효찬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은희 씨,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너무 멋대로 판단했어요.”효찬은 사실도 모른 채 은희에게 남우를 이해하라고 이야기해 왔다. 남우의 시각으로만 모든 일을 해석했고, 마치 은희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제 보니 자신이나 남우 둘 다 많은 부분을 잘못 알고 있었다.은희는 돌아보지 않았다. 화면에 멈춰 있는 어린 시절 장면만 말없이 바라봤다. 병상에 누운 남우가 어린 은희에게 웃고 있었다. 그 미소와 고마움은 훗날 가짜 자리를 차지한 영은에게 돌아갔다.“이제 가세요.” 은희가 낮게 말했다. “하남우한테 전해주세요. 앞으로 평생 제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은희는 남우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많았다는 사실도 이제는 변명이 되지 않았다.그저 인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너무 많은 오해와 엇갈림이 두 사람 사이에 쌓여 있었다.더 근본적인 문제는 신뢰였다. 상호 신뢰가 없는 관계는 지속할 수 없다.은희는 이제 남우와 얽히는 것에 지쳤다. 누구 잘못이 더 큰지 따지는 것도 무의미했다.분명한 건 자신과 남우가 더는 함께하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효찬은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입을 다물고 방에서 나갔다.문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돌아보니 차가운 화면 빛 속에서 은희의 가느다란 등이 떨리고 있었다. 노레드는 반 걸음 뒤에 서서 손을 들었다가, 결국 은희의 어깨에 손을 대지 않고 조용히 손수건만 내밀었다....별장 현관문이 닫히고 효찬의 발소리가 사라지자 은희는 갑자기 가슴께 옷을 움켜쥐며 허리를 숙였다.기억 재생 장비는 낮은 기계음을 내고 있었다. 화면 속 기억은 머릿속을 맑게 해 주기는커녕 양쪽 관자놀이를 수없이 찌르는 듯한 통증을 끌어냈다.“숨 쉬세요. 제 호흡에 맞춰서 천천히요.”노레드는 바로 은희 앞에 몸을 낮췄다. 은희의 손목을 잡아 자기 목 옆 맥박이 뛰는 곳에 손가락을 댔다. “박자 느껴지

  •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제264화

    그 말을 남긴 은희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효찬은 더 이상 남우를 쉽게 감쌀 수 없었다. 친구가 은희에게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화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보미가 죽은 직접적인 이유는 꼭 필요한 조혈모세포 이식을 제때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남우의 시선에서 보면, 남우 역시 당시에는 보미가 위급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누군가에게서 문제가 없다는 잘못된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그 뒤에 이어진 사건들까지 확인하자 효찬은 자신이 오래전부터 의심했던 사람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영은이 여러 오해의 중심에 있었다.맑음이 다쳤던 일도, 납치 사건도, 남우가 은희를 오해하게 된 중요한 장면마다 영은이 의도적으로 끼어들어 있었다.이어서 세준이 은희에게 약물을 사용해 정신적으로 무너뜨리는 과정이 재생됐다. 의사인 효찬은 그 처치가 사람에게 어떤 고통을 남기는지 누구보다 정확히 알았다.그런 일을 겪고도 은희가 정신을 완전히 잃지 않고 버틴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하지만 노레드가 일부러 마지막까지 남겨 둔 영상은 효찬뿐 아니라 은희까지 말문이 막히게 했다.화면의 색감이 오래된 영상처럼 부드럽게 바뀌며 기억은 훨씬 전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어린 은희가 병상 옆을 지키고 있었다. 작은 손으로 아픈 남우의 팔과 어깨를 조심스럽게 주물러 주고 있었다.그 시절의 남우는 지금과 달리 맑고 순한 눈으로 은희를 바라봤다.“남우 오빠, 조금만 더 참아. 다 나으면 우리 같이 연도 날리러 가자.”어린 은희의 맑은 목소리에 남우는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백한 뺨에 옅은 기색이 돌았다.그러나 평온했던 기억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끊겼다.은희가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크게 다쳤고 오랫동안 의식을 잃었다.깨어난 뒤에는 사고 전후의 중요한 기억까지 함께 사라졌다.그 틈에 영은이 나타났다. 영은은 자신이 과거 남우 곁을 지키고 남우를 구했던 아이라고 거짓말했고, 원래 은희의 것이었던 자리와 기억을 가로챘다.효찬은 말을 잃

  •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제263화

    병원을 나온 은희는 곧바로 노레드의 별장으로 향했다.이번에는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하고 왔다. 은희는 망설임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노레드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은희의 표정만 보고도 왜 왔는지 짐작한 듯, 은희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물었다.“정말 결정하신 겁니까?”노레드는 속을 알기 어려운 깊은 눈으로 은희를 바라봤다.“네. 충분히 생각했어요. 후회하지 않을게요. 또 부탁드리게 돼서 정말 미안해요.”그동안 노레드가 자신을 얼마나 세심하게 돌봤는지 은희도 잘 알고 있었다. 노레드가 자신을 그저 평범한 환자로만 대하지 않는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이미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은희는 노레드의 감정에 같은 방식으로 답해 줄 수 없었다.더 우스운 건 기억이 사라진 동안 오히려 남우에게 다시 다른 감정이 생겼다는 사실이었다.‘정말 같은 사람을 다시 좋아할 수도 있나 봐.’ 더 깊이 빠지기 전에 과거를 알아야 했다. 기억이 없는 채로 지내는 일도 은희에게는 또 다른 괴로움이었다.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확인하고 진짜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노레드는 더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희를 별장 안쪽의 별도 진료실로 안내했다.방에는 신경 반응을 기록하고 재생하는 장비들이 켜져 있었고 벽 한쪽의 대형 화면에는 예전에 보관해 둔 은희의 기억 영상 자료가 준비돼 있었다.다만 시작하기 전에 노레드는 먼저 처리할 일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은희는 노레드 자신의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잠시 뒤 노레드는 숨어 있던 효찬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여기까지 따라왔으면 이제 나오는 게 어떻습니까?” 노레드가 차갑게 말했다.효찬은 난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박사님, 오해는 하지 마세요. 남우가 은희 씨가 기억을 확인하다가 또 위험해질까 걱정해서 부탁한 거예요. 저도 의사니까 혹시 급한 상황 생기면 도움은 될 수 있잖아요.”노레드는 짧게 웃고 은희를 바라봤다. “은희 씨, 내보낼

  •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제262화

    “은희야, 잠깐만!” 남우가 크게 불렀지만 병실 안에는 목소리만 남았다. 은희는 걸음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남우는 멀어지는 은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려울 만큼 가슴이 아팠다.은희가 기억을 되찾으면, 그때는 자신이 저지른 모든 일을 제대로 다시 사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기억을 확인한 은희가 지금보다 훨씬 더 자신을 증오하게 될 거라는 두려움도 컸다.그보다 걱정되는 건 은희가 기억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고통을 다시 겪게 되는 일이었다.남우는 은희가 또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남우는 침대에 누운 채 닫힌 문 쪽만 바라보았다.한동안 그렇게 있던 남우가 시선을 거두고 옆에 서 있던 효찬에게 말했다.“사람 하나 붙여서 은희 따라가게 해 줘. 기억 기록 볼 때 상태도 확인하고. 위험해 보이면 노레드랑 같이 바로 안정되게 조치 부탁해.”효찬은 초췌한 얼굴로도 은희 걱정부터 하는 남우를 바라봤다. 자기 몸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당장 너부터 아직 환자야. 남 걱정할 힘 있으면 네 몸이나 챙겨. 은희 씨 쪽은 내가 알아서 할게.”남우는 고개를 저었다. 감정이 올라온 탓인지 몇 번 거칠게 기침한 뒤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 마음이 놓이지 않아. 은희가 기억을 다시 보면 분명 큰 충격을 받을 거야. 혼자 견디게 두고 싶지 않아.”남우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쉰 목소리로 덧붙였다. “애초에 다 나 때문에 시작된 일이잖아. 뭐라도 해야 해.”효찬은 남우가 마음을 바꿀 리 없다는 걸 알고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바로 알아볼게. 대신 너도 진짜 몸 챙겨. 또 쓰러지면 이번에는 나도 못 봐줘.”은희에 대한 일을 정리한 뒤 남우의 표정이 다시 차갑게 굳었다. 의식을 잃었던 기간과 회복 시간을 합치면 거의 한 달을 자리를 비운 셈이었다.하씨 집안 내부 문제도 더 미룰 수 없었다.“효찬아, 원로들한테 연락해 줘. 하진그룹으로 돌아갈 거야. 그 징계도 끝까지 다

  •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제261화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음이 병원으로 왔다. 기침 때문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온몸에는 넓게 두드러기가 올라와 있어 보기에도 안쓰러웠다.효찬은 곧바로 맑음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를 시작했다.검사를 진행하는 내내 효찬은 미간을 풀지 못했다.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증상만 보면 알레르기 반응과 비슷했다. 하지만 최근 먹은 음식이나 생활환경을 확인해도 뚜렷한 알레르기 유발 요인이 나오지 않았다. 효찬은 누군가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 가능성까지 떠올렸고, 가장 먼저 영은을 의심했다.검사 결과를 아무리 살펴봐도 그 의심을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결국 지금 단계에서는 다 효찬의 추측이 전부였다. 다만 이상하게도 남우가 영은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할 때마다 맑음이 아프거나 사고가 생기곤 했다.한두 번이면 우연으로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같은 흐름이 반복된다면 일부러 만들어 냈을 가능성도 무시하기 어려웠다.그래도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남우에게 함부로 그런 말을 꺼낼 생각은 없었다.그 뒤 열흘 동안 은희는 남우를 세심하게 돌봤다.아침이면 따뜻한 죽을 준비해 한 숟가락씩 천천히 먹여 줬다.낮에는 정해진 시간에 약과 드레싱을 챙기고, 남우가 지루해하지 않도록 가끔 이야기도 나눴다.밤에는 침대 곁을 지켰다. 남우가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몸을 일으켜 상태부터 확인했다.은희가 곁을 지킨 덕분인지 남우의 몸은 눈에 띄게 회복됐고 이제는 생명이 위태로운 단계에서도 완전히 벗어났다.햇빛이 병실 안으로 길게 들어오던 날, 은희는 안색이 좋아진 남우를 바라보다 이제는 사실대로 말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은희의 시간 역시 소중했다. 언제까지 남우의 병실에 붙잡혀 있을 수는 없었다.“지난 열흘 동안 내가 널 이렇게 돌본 건 널 용서해서도, 다시 사랑하게 돼서도 아니야.”은희는 말을 잠깐 멈췄다가 차분하게 이어 갔다.“네가 나 때문에 이 지경이 됐고, 그렇다고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어. 이제 생명에는 문제없다고 하니까 나는 이제

  •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제260화

    은희는 자신을 짓밟았던 사람들에게도 하나씩 책임을 물을 생각이었다.앞으로의 일을 정리하고 계획할 때 병실 문이 열렸다.영은이 들어왔다. 화장은 흐트러짐 하나 없이 정교했지만 눈가는 울다 온 듯 일부러 붉게 만든 모습이었다.“남우야, 너 다쳤다는 얘기 듣고 걱정돼서 밤새 한숨도 못 잤어.”영은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침대 가까이 다가왔다.은희가 병실에 있는 걸 본 영은은 잠깐 굳었다. 눈 깊은 곳에 질투가 번졌지만 곧 가련한 미소를 다시 만들어 냈다.영은을 본 남우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고 미간까지 저절로 좁아졌다.예전에 영은의 말만 믿다가 은희를 더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을 뻔한 일을 생각하면 지금은 영은을 곱게 볼 수 없었다.“네가 여긴 왜 왔어?” 목소리에는 온기가 없었다.영은은 남우의 태도에 상처라도 받은 사람처럼 몸을 작게 떨었다.“맑음이 또 아파. 계속 아빠 찾으면서 울어서 나도 방법이 없었어. 그래서 너한테 온 거야.”영은은 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쳤지만 실제로 맺힌 눈물은 거의 없었다.남우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맑음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맑음이 데리고 와. 여기서 바로 치료받게 할게.”영은은 한 걸음 더 다가가 남우에게 손을 대려 했지만 남우가 자연스럽게 몸을 피했다.“네가 없는 동안 나 혼자 맑음이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네가 다쳤다는 말 듣고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영은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이라도 된 듯 끊임없이 자기 고생을 늘어놓았다.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은희는 결국 짧게 손뼉까지 쳤다.‘이 사람이 예전부터 나랑 부딪혔던 소영은이라고?’기억을 잃은 뒤 처음 직접 겪는 영은의 가련한 연기는 은희에게 그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위선적으로 보였다.과거의 자신이 이런 영은을 어떻게 상대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눈앞에서 계속 이런 모습을 보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은희는 남우의 침대 가까이에 붙어 서서 일부러 다정한 표정으로 남우를 바라봤다.“나 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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