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지옥

다정한 지옥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28
Oleh:  홍피코Ongoing
Bahas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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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 윤이재는 연쇄살인사건에서 홀로 살아남았다. 피로 물든 집에서 그녀를 찾아낸 사람은 스물다섯의 형사, 강태혁이었다. 그리고 십 년 후. 다 잊었다고 생각한 이재 앞에 그가 다시 나타났다. “십 년 전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죽은 범인. 다시 시작된 사건. 그리고 하필 지금, 자신을 찾아온 강태혁.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다시 만난 순간부터, 끝난 줄 알았던 그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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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asan-ulasan

Hoho Haha
Hoho Haha
진짜 작가님 작품 다 너무 재미있어요 작가님 팬됐어요♡ 그런데 언제 다시 연재해주시는건가요? 기다리기 힘드네요~~~ㅜㅜ
2026-10-14 12: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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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Bab
1화
강태혁. 분명 아는 이름 같기는 했다.문제는 대체 어디서 아는 이름인지 죽어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였다.“제 손님이라고요?”―네. 1층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계세요.수화기 너머로 안내 데스크 직원이 친절하게 대답했다.이재는 모니터 한쪽에 띄워둔 사내 메신저를 확인했다. 오늘 예정된 외부 미팅은 없었다.애초에 있을 리가 없었다.입사한 지 이제 나흘. 한국에 돌아온 지도 고작 열흘이었다. 그런 사람을 회사까지 약속도 없이 찾아올 인간이라면 둘 중 하나였다.아주 가까운 사이거나.아주 눈치가 없는 사이거나.강태혁이라는 이름은 안타깝게도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무슨 일로 오셨대요?”―따로 말씀은 안 하셨어요. 성함만 전달해달라고 하셨습니다.“아, 네. 내려갈게요.”전화를 끊고 속으로 이름을 한 번 더 불러봤다.강태혁.역시 모르겠다. 한국을 떠난 지 십 년이었다.그동안 잊은 사람이 한둘도 아니었고, 굳이 기억하며 살 필요가 없는 사람은 더 많았다. 그중 하나겠거니 했다.적어도 그 사람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로비는 한산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탓인지 오가는 직원도 많지 않았다. 이재는 외부 손님 전용 라운지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누구든 얼굴을 보면 기억나겠지.라운지 창가에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검은 정장. 길게 뻗은 다리.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어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다만 남의 회사 로비치고는 지나치게 편해 보였다.이재는 걸음을 늦췄다. 저런 인간을 알았던가.그때였다.기척을 느꼈는지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시선이 마주쳤다.아.알았다.동시에 속이 뒤집혔다.이재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화장실까지 어떻게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칸막이 문을 열고 변기를 붙잡자마자 헛구역질이 터졌다.“욱…….”나오는 것은 없었다.아침에 마신 커피 한 잔이 전부였으니 당연했다. 그런데도 몸은 자꾸만 무언가를 뱉어내려 했다.심장이 뛰었다.손끝이 떨렸다.그리고 아주 잠깐. 냄새가 났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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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오래 걸리길래.”“화장실 앞까지요?”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이재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래. 이 인간이었다.말을 하다 말아서 사람 기분 묘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던 인간.기억 하나가 돌아오니 다른 것들도 줄줄이 딸려 나왔다. 썩 반갑지는 않았다.태혁이 이재를 바라봤다.십 년이라는 시간이 짧지는 않았던 모양이다.남자는 기억 속보다 선이 짙어져 있었다. 소년 같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고, 대신 훨씬 서늘하고 단단한 인상이 자리 잡았다.유감스럽게도 잘생긴 건 여전했다.아니.그것만큼은 십 년 전보다 심해진 것 같았다.저 얼굴을 보고 화장실로 뛰어가 헛구역질까지 했다는 사실이 조금 자존심 상했다.“십 년 만이네요.”반가워해야 하나. 이재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만 살짝 숙였다.“그러네요.”그걸로 끝이었다. 십 년 만에 만난 사람들의 재회치고는 몹시 건조했다.그럴 만도 했다. 둘 사이에는 추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다.한쪽은 피해자였고. 한쪽은 형사였다.이재가 먼저 물었다.“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태혁이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직원 몇 명이 로비를 지나가고 있었다.“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네요.”그 말에 이재의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좋은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었다.“잠깐 시간 괜찮아요?”괜찮지 않다고 하고 싶었다. 십 년 만에 나타난 남자를 보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헛구역질까지 했으니, 오늘치 재회는 이미 차고 넘쳤다.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근처 카페로 가요.”이재가 먼저 걸었다. 태혁이 뒤를 따랐다.***카페에는 이른 점심을 나온 직장인 몇 명이 앉아 있었다.이재는 가장 구석진 자리를 골랐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이재는 빨대 포장지를 벗겼다.정작 커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태혁도 마찬가지였다.짧은 침묵 끝에 이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제 말씀하세요.”태혁이 이재를 바라봤다.“무슨 일로 오신 건지.”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또 저 침묵이었다.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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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사흘 전.”“…….”귀국하고 일주일 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기분 나쁜 숫자였다.하지만 그뿐이었다. 이재는 천천히 등을 의자에 기댔다.“그래서 저한테 오신 거예요?”“그것도 이유 중 하나고.”“제가 한국에 들어온 뒤에 사건이 시작돼서?”“네.”“그걸 어떻게 아셨어요?”“뭘요.”“제가 언제 들어왔는지.”태혁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확인했습니다.”“어디서요?”“입국 기록.”이재는 눈을 가늘게 떴다.“제 입국 기록까지 확인했어요?”“필요해서요.”참 한결같은 인간이었다.십 년 전에도 그랬다. 필요한 것은 물었고, 필요한 것은 확인했다.상대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늘 그다음이었다.“여전하시네요.”“뭐가요?”“사람 기분 나쁘게 말하는 거.”태혁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기분이 나빴는지, 십 년 만에 만난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 몰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우연일 수도 있습니다.”태혁이 말했다. 이재는 그를 바라봤다.“그런데 아닌 것 같다는 거네요.”“아직 판단할 단계는 아니에요.”“그럼 판단하고 오셨어야죠.”“판단하고 나면 늦을 수도 있으니까요.”말문이 막혔다. 저런 식이었다.말을 예쁘게 하는 재주는 없는데, 반박하기 어렵게 하는 재주는 있었다.이재는 결국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얼음이 녹아 밍밍했다.“십 년 전 범인은 죽었어요.”“알아요.”“강태혁 씨가 더 잘 아시겠죠.”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러니까 같은 사람일 리는 없잖아요.”“그렇죠.”“그럼 모방범이거나, 그냥 우연이거나. 둘 중 하나네요.”“현재로서는요.”“그런데 왜 제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세요?”태혁의 시선이 이재에게 멈췄다.“위험하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지금까지 한 얘기가 전부 그 얘기 아니었어요?”“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죠.”“그게 그거잖아요.”“다릅니다.”단호한 대답이었다. 이재는 기가 막혔다.“뭐가 다른데요?”“윤이재 씨가 위험하다고 확정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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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태혁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낮게 물었다.“내가 오늘 안 왔으면.”이재가 그를 바라봤다.“이 사건, 모르고 있었겠죠?”“그렇겠죠.”“앞으로도 모르고 지내고 싶어요?”묘한 질문이었다. 이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태혁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그 침묵이 싫었다. 스스로 대답을 내놓을 때까지 사람을 가만히 기다리는 것.십 년 전에도 그랬다. 결국 이재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그건 제가 결정할게요.”의자를 뒤로 밀었다.“저 올라가봐야 해요.”태혁은 붙잡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재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한 걸음 옮긴 뒤 멈췄다.“그리고.”태혁이 고개를 들었다.“다음부터는 회사로 찾아오지 마세요.”“왜요?”“싫으니까요.”이번에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이재는 그대로 카페를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한낮의 햇빛이 눈부셨다. 회사까지는 걸어서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별일 아니었다.정말로.성림동에서 주거 침입 사건이 두 건 발생했다. 그중 하나는 살인미수였다. 범인은 검침원을 사칭했다.그리고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자신이 한국에 돌아온 지 일주일 뒤였다.이재는 신호등 앞에 멈춰 섰다.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성림동은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이었다. 돈 많은 집을 노리는 인간이 그 동네를 고른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검침원을 사칭하는 수법도 흔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십 년 전 그 사람은 죽었다.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경찰이 확인했다. 강태혁도 알고 있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었다.신호가 바뀌었다.이재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길을 건넜다.괜찮았다.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달라질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아니.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카페 유리문 너머로 윤이재가 멀어졌다. 신호등 앞에 멈춰 서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태혁은 시선을 거뒀다. 테이블 위에는 거의 손대지 않은 커피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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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네.”“얼마나요?”“그건 잘 모르겠어요. 몇 초 정도?”피해자는 불안한 듯 이불 끝을 만지작거렸다.“그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좀 이상해서요.”“뭐가요?”“사진에 있는 남자를 가리키면서 아들이냐고 물었어요.”태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준호가 수첩을 넘기는 소리만 작게 들렸다.“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아들이라고 했죠.”“같이 사느냐고도 물었습니까?”피해자의 눈이 조금 커졌다.“네.”이번에는 준호가 태혁을 쳐다봤다. 태혁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기억납니까?”“그냥…… 아드님도 여기 사시냐고.”“그래서요?”“결혼해서 나가 산다고 했어요.”“그다음에는요?”피해자가 미간을 찌푸렸다.“언제 오는지도 물었던 것 같아요.”“집에 언제 오느냐고요?”“네. 자주 오냐고.”태혁은 수첩에 짧게 적었다.가족사진. 아들. 거주 여부. 방문 시기.네 줄이었다.“그 외에는요?”“……잘 모르겠어요.”“천천히 생각하셔도 됩니다.”“이게 중요한 건가요?”태혁이 고개를 들었다. 피해자는 겁먹은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아직은 모릅니다.”“그 사람이 다시 올 수도 있어요?”“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확실해요?”태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확실하다는 말은 쉽게 하는 게 아니었다. 특히 이런 일에서는.“병원에 계시는 동안은 경찰이 주변을 확인할 겁니다.”피해자는 썩 안심한 얼굴이 아니었다. 태혁도 더 나은 말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생각나는 게 있으면 사소한 것이라도 연락 주세요.”“네.”태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실 밖으로 나오자 준호가 바로 물었다.“팀장님.”“왜.”“아까 그건 뭡니까?”“뭐가.”“같이 사느냐고 물었냐고 먼저 물어보셨잖아요.”태혁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그랬지.”“알고 계셨어요?”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태혁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확인해봐야 해.”준호가 뒤따라 들어왔다.“뭘요?”“가서.”문이 닫혔다.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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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태혁의 손이 멈췄다.비슷한 것과 같은 것은 달랐다. 기억과 기록도 달랐다.아직 확인할 게 남아 있었다.“모르지.”태혁은 다시 페이지를 넘겼다.“그래서 보는 거야.”준호는 더 묻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로 돌아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태혁은 혼자 남은 책상에서 기록을 계속 읽었다.첫 번째 피해자.두 번째 피해자.세 번째 피해자.십 년이라는 시간은 종이도 늙게 만들었다. 이름도, 날짜도, 사진도 그대로인데 파일만 낡아 있었다.태혁은 어느 페이지에서 손을 멈췄다. 아까 전산으로 확인했던 기록이었다. 원본도 같았다.거실에 비치된 가족사진을 확인.그 아래.사진 속 가족의 동거 여부 및 귀가 시간을 질문함.태혁은 두 문장을 오래 내려다봤다. 오늘 병원에서 들은 말과 같았다.우연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많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연락처 하나를 열었다. 오늘 오전 저장한 번호였다.윤이재.―다음부터는 회사로 찾아오지 마세요.―왜요?―싫으니까요.통화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몇 초쯤 그대로 있다가 화면을 껐다. 아직은 아니었다. 같은 질문을 했다는 것만으로 윤이재에게 다시 겁을 줄 이유는 없었다.무엇보다 자신이 오늘 그녀에게 한 말이 있었다.―아직 판단할 단계는 아니에요.그 판단부터 끝내야 했다. 태혁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기록을 펼쳤다. 십 년 전과 같은 질문. 그것만은 이제 확실했다.그렇다면 다음으로 확인해야 할 건 하나였다. 첫 번째 사건에서도 같은 질문을 했는가. 태혁이 자리에서 고개를 들었다.“준호야.”멀리서 대답이 돌아왔다.“네.”“첫 번째 피해자.”“네.”“내일 오전으로 일정 잡아.”잠시 뒤 준호가 물었다.“직접 가시게요?”태혁은 낡은 기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어.”이제 우연인지 아닌지 확인할 차례였다.***첫날은 조금 신경이 쓰였다. 업무 중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발신자를 확인했다. 강태혁이 자신의 번호를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입국 날짜까지 알아낸 사람이었다.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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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점심시간이 되자 팀원 여섯 명이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오늘 뭐 먹죠?”누군가 묻자 잠깐 정적이 생겼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선 몇 개가 이재에게 향했다. 이재가 뒤늦게 알아차렸다.“왜 절 봐요?”“윤 대리님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저요?”“네.”이재는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딱히 없는데.”“그럼…….”다시 조용해졌다. 사흘째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재는 이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저 때문에 메뉴 못 정하시는 거면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누군가 급히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그런 건 아니고.”“다들 아까부터 저만 보는데요.”곁에 있던 다은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솔직히 조금 그런 것 같아요.”“김다은.”선배 하나가 작게 타박했다.“왜요. 윤 대리님도 다 아시는 것 같은데.”이재는 다은 쪽을 보다가 웃었다.“오늘 아침보다 많이 편해졌네요.”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재가 먼저 내리며 말했다.“저 진짜 아무거나 잘 먹어요. 메뉴는 그냥 먹고 싶은 사람이 먼저 말하는 걸로 해요.”그러자 뒤에서 다은이 냉큼 말했다.“저 칼국수요.”이재가 돌아봤다.“좋아요. 오늘은 다은 씨 승.”“이런 시스템이었어요?”“방금 만들었어요.”결국 근처 칼국숫집으로 향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주말 계획으로 넘어갔다. 결혼식이 있다는 사람도 있었고, 부모님 집에 간다는 사람도 있었다.“윤 대리님은요?”“저는 영화 보려고요.”다은이 물었다.“뭐 보세요?”“아직 안 정했어요. 주말에 극장 가서 시간 맞는 걸로 보려고.”“혼영 좋아하세요?”“네. 자주 봐요.”“의외세요.”이번에는 다른 직원이었다. 이재가 그쪽을 봤다.“뭐가요?”“윤 대리님 같은 분은 주말에도 약속 많고 그럴 것 같아서요.”말을 하고 나서 조금 늦게 눈치를 보는 기색이 보였다. 이재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저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요?”“아니, 그게…….”“저도 궁금한데.”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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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다은이 바로 쳐다봤다.“거짓말.”“왜요?”“저였으면 팀장님이 ‘근거 자료는?’ 하는 순간부터 제가 잘못 태어난 것까지 반성했을 것 같은데.”이재가 웃었다.“그 정도예요?”“네. 머릿속으로 퇴사까지 했을 듯요.”“자료가 있는데 뭐가 문제예요.”“그러니까 그게 멋있는 거예요. 물어볼 거 예상하고 다 준비해두신 거.”다은이 진지하게 말했다.“저도 다음에는 그렇게 해야겠어요.”이번에는 이재가 조금 의외라는 듯 다은을 봤다. 장난으로만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그럼 다음 보고서는 다은 씨가 먼저 준비해봐요.”“갑자기요?”“배우고 싶다면서요.”다은이 입을 다물었다.“취소해도 돼요?”“늦었어요.”이번에는 두 사람 모두 웃었다.자리로 돌아오자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 하나가 떠 있었다.아빠였다. 이재가 전화를 걸었다.―회의였니?“응. 방금 끝났어요.”―근데 왜 이렇게 피곤한 목소리야.“오늘 회의가 좀 많았어.”―저녁은 먹었고?“아직 여섯 시인데.”―같이 먹을까?이재가 시계를 확인했다.“오늘?”―약속 있어?“없어요.”―그럼 끝나고 와. 장소는 보내주마.“기사님은 보내지 마.”―차 가져갔어?“응.”잠깐 정적이 생겼다. 이재는 다음에 나올 말을 이미 알았다.―늦게 운전하지 말라니까.“아빠, 나 운전해서 퇴근해요.”―그거랑 같아?“뭐가 다른데?”―됐어. 끝나면 바로 오거라.무슨 논리인지는 끝내 듣지 못했다.“알았어요.”―운전 조심하고.“네.”통화를 끊고 휴대폰을 내려놓던 이재의 손이 잠깐 멈췄다.―저 이제 열여덟 살 아니에요.―알아요.며칠 전 강태혁에게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한쪽은 밤에 운전하지 말라고 했고, 다른 한쪽은 혼자 다니지 않는 편이 좋다고 했다. 둘 다 자신이 스물여덟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그 사실을 실제로 믿느냐는 별개의 문제인 모양이었다. 이재는 더 생각하지 않고 업무 화면을 띄웠다. 아직 답해야 할 메일이 네 통이나 남아 있었다.***윤정호는 예순을 앞둔 호텔·레저 그룹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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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저녁을 먹고 나온 건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정호는 헤어지기 전까지 두 번이나 운전 조심하라고 말했다. 이재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사이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도착하면 연락해라.]“알았다고.”혼잣말로 대답하고 차에 올랐다. 이재는 밤 운전을 좋아했다. 도로를 따라 이어진 가로등 불빛이 차창 위로 일정하게 흘러가는 풍경도 좋았고, 낮보다 한산해진 길을 오래 달리는 기분도 좋아했다.음악 하나를 틀어놓고 앞차의 미등을 따라가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도 어느 순간 비슷한 속도로 정리됐다.어디로 갈지만 알고 있으면 됐다. 나머지는 길이 알아서 이어졌다.집에 도착한 뒤 정호에게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도착했어.]답장은 금방 왔다.[그래. 쉬어라.]이재는 휴대폰을 가방 안에 넣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구두부터 벗었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미뤄뒀던 우편물을 정리했다. 관리비 고지서는 챙기고 광고지는 그대로 버렸다.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열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침대에 앉아 머리를 말리다가 사내 메신저를 확인했다. 다은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김다은 : 윤 대리님 저 자료 다시 받았습니다!]파일 하나가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이재가 열어보니 이번에는 기준 월이 제대로 맞아 있었다.[윤이재 : 확인했어요. 고생했어요]답장이 곧바로 왔다.[김다은 : 이제 진짜 퇴근합니다]이재가 시간을 확인했다.[윤이재 : 아직 회사였어요?][김다은 : 수정본 기다렸어요 ㅠㅠ][윤이재 : 내일 봐도 됐는데]잠시 답이 없었다.[김다은 : 그걸 조금만 일찍 알려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이재가 웃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말을 고르고 골라 건네던 사람이었다. 반나절 사이에 제법 편해진 모양이었다.[윤이재 : 미안해요ㅋㅋ 내일 커피 살게요][김다은 :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이재도 짧게 인사를 보내고 메신저를 닫았다. 다음 날 오전에는 회의가 하나 있었고, 주말에는 영화를 볼 생각이었다. 아직 풀지 않은 이삿짐도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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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카페에 들어서자 강태혁이 보였다. 지난번과 같은 자리였다. 재킷은 옆에 벗어두었고, 셔츠 소매는 두어 번 걷혀 있었다.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서류철이 놓여 있었다.이재는 맞은편 의자를 빼 앉았다.“일찍 왔네요.”“근처에 볼일이 있었습니다.”태혁이 휴대폰을 내려놨다. 그제야 이재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잔이 두 개라는 걸 알아챘다. 태혁 앞에는 커피. 그리고 제 앞에는 처음 보는 잔 하나.“이거 뭐예요?”“캐모마일.”“제 거예요?”“아니면 제 앞에 뒀겠죠.”이재가 그를 봤다.“제가 이거 마신다고 했어요?”“안 했죠.”“그런데 왜 시켰어요?”태혁은 서류철을 열었다.“늦었잖아요.”“그래서요?”“카페인 먹고 잠 못 자면 피곤하니까.”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재는 제 앞에 놓인 잔을 내려다봤다. 제법 멋대로였다.“저 잘 자는데요.”“다행이네요.”정작 시켜놓은 사람은 별 관심도 없다는 얼굴이었다. 이재는 캐모마일을 제 앞으로 끌어왔다.“그래서 뭘 확인했는데요?”태혁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첫 번째 피해자를 다시 만났습니다.”“직접요?”“네.”이재가 종이를 받아들었다.“지난번에 윤이재 씨가 판단하고 오라고 했잖아요.”화가 나서 한 말이었다.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그래서요?”“판단하고 왔습니다.”태혁이 말했다.“우연은 아닌 것 같아요.”이재의 손끝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첫 번째 피해자는 혼자 사는 육십 대 여성이었다. 검침원이라고 찾아온 남자를 별 의심 없이 집 안으로 들였고, 이상함을 느낀 건 그다음이었다.“처음에는 단순 침입 시도로 봤습니다.”“지난번에도 들었어요.”“그때 빠진 게 있었습니다.”태혁이 진술서 한 부분을 짚었다.“집에 들어간 뒤 검침은 아예 안 했답니다.”“그럼 뭘 했는데요?”“집 안을 돌아봤어요.”손가락이 다음 줄로 내려갔다.“가족사진을 봤고.”그다음.“사진 속 남자가 아들이냐고 물었습니다.”이재의 눈이 진술서를 따라 움직였다.“같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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