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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MC 대표

이진은 샴페인 잔을 든 손에 힘을 주더니 눈을 예쁘게 깜박거렸다.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이긴, 언니가 이제 윤씨 가문과 아무 사이도 아닌데 윤씨 가문의 이름으로 이런 파티에 참석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이 말이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A 시에서 한가락 한다 하는 대단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윤씨와 이씨 두 가문이 3년 전 깜짝 결혼을 발표할 때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혼도 결혼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급작스러울 줄이야. 아무런 소리 소문 없이 이렇게 끝날 줄이야.

솔직히 이영의 말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헛소문이겠거니 의심만 했었다 그런데 방금 전 한 마디로 인해 이혼은 사실이 되었다.

“이씨 가문 둘째 아가씨 말도 맞죠. 이미 이혼했으면서 윤씨 가문의 이름을 등에 업고 나타나다니.”

“3년 동안 긁어낸 것 가지고는 아직 부족한가 보죠. 지난 3년을 한번 돌아봐요. 이씨 가문 사업이 얼마나 잘 됐나…….”

주위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에 이진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오히려 이영이 깨고소해하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그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윤이건은 입을 꾹 다문 채 어두운 눈으로 이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듣지 못한 게 아니다. 그저 3년간 자신을 감쪽같이 속여온 여자가 대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이진에게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이영은 자기가 상대의 아픈 곳을 찔렀다고 생각했는지 우쭐했다.

“아니면, 아직도 윤 대표님과 이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거야? 설마 목숨이라도…….”

이영은 팔짱을 낀 채 점점 신나서 떠들어댔다.

이진의 예쁘장한 얼굴을 보고 그녀가 윤이건과 부부였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마음 한구석에 겹겹이 쌓아두었던 분노와 시기가 끝내 폭발한 거다.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차가운 샴페인의 그녀의 얼굴에 뿌려졌다.

순간 떠들썩하던 홀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진은 심지어 사람들의 숨을 죽이며 쉬는 소리마저 들을 수 있었다. 순간 묵었던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속 시원하고 통쾌했다.

그리고 그 시각 옆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윤이건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누구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없었다.

이영은 소리를 질러대며 웨이터 손에 든 휴지를 빼앗아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샴페인을 마구 닦았지만 정갈하던 머리는 이미 축축해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이진! 너 미쳤어? 이게 무슨 짓이야 미치려면 곱게 미쳐!”

언제나 고분고분하던 이진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한테 술을 뿌릴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

“이영, 네 머리와 입이 너무 더러운 것 같아서 그런 거야. 마침 알코올이 열도 식히고 소독 작용도 해준다는데 얼마나 좋아.”

담담하게 웃으며 얘기하는 이진을 보자 이영은 화를 참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진, 이 미친년, 감히…….”

이윽고 이진을 가리킨 손도 덜덜 떨렸다.

“경호원, 경호원 어딨어?”

구석에 있던 경호원은 소리를 듣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 시각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던 사람들도 어느새 소란이 일어난 쪽을 돌아보더니 두 사람을 가리키며 뭐라 수군수군거렸다.

그 모습에 이영은 더욱 펄쩍 뛰었다. 윤이건이 왔다는 걸 알고 몇 시간 동안 열심히 세팅하고 화장도 했는데 이진이 모든 걸 망쳐버린 거다.

그리고 지금 자기 모습을 윤이건이 보고 있을 걸 생각하니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이봐요!”

펄쩍 뛰며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오는 이영의 모습을 이진은 담담하게 지켜보더니 눈썹을 치켜떴다. 몇 년 동안 보지 않았는데도 어쩜 이렇게 변한 게 없이 멍청한지 웃음이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혹시 무슨 일이시죠?”

경호원은 공손한 태도로 말했지만 옆에 있는 이진에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당신들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아무나 다 들이면 어떡하겠다는 건데? 당장 저 여자 끌어내!”

“고객님, 죄송하지만 나가주시죠.”

길길이 날뛰는 이영의 말을 듣고 나니 이진을 보는 경호원의 눈빛에도 경멸이 생겨났다.

그 모습에 이진은 끝내 웃음이 터졌다.

“이진, 마지막으로 기회 줄 테니까 내 앞에 꿀어. 그러면 쫓아내지 말라고 말은 해볼 테니까.”

이영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마치 주인인 양 떠들어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우습고 어이없었다.

“네가?”

“고객님, 나가 주시죠.”

경호원은 다시 이진을 다그쳤다.

그리고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점점 그들 쪽으로 모여들었다.

“저 두 사람 누구예요?”

“한 명은 이씨 가문 아가씨고 다른 한 명은 처음 보는 사람인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쩜 개나 소나 함부로 들이는지. 설마 몰래 숨어들었나?”

“주최 측에서 이런 것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다니. 이런 격 떨어지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으면 새 드레스에 냄새 배기는데! 이봐요, 당장 끌어내요!”

“언니, 봤지? 다들 언니더러 나가래!”

이영은 의기양양해서 이진이 자신에게 빌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래?”

이진의 입에 싸늘한 미소가 걸리더니 그녀를 보는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그 순간, 무대 위의 불이 밝아지더니 긴 빛기둥이 이진의 몸에 떨어졌다. 그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늘의 파티의 주최 측, AMC 대표 이진 씨를 무대 위로 모시겠습니다! 다들 박수로 맞아주세요.”

‘뭐? AMC 대표가 이진이라고?’

사회자의 말에 이영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 사람들 앞에서 의기양양해하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졌고 화장이 살짝 지워진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이영아, 아직 놀라기는 일러.”

곧이어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영의 귓가에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이진의 표정도 완전히 바뀌었다. 이영과 대화할 때와는 다르게 꿋꿋하고 강인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뭇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자기에게 나가라고 모욕하던 사람들의 창백한 얼굴을 한번 슥 훑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 파티에 참석하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방금 저와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공기가 더러워진다던 분들이 몇몇 있었던 것 같은데 힘들게 함께 있을 필요 없습니다. 경호원분, 손님들 내보내세요.”

“그리고 이영 씨는…….”

“이진, 너 그랬다간 가만두지 않을 거야!”

말끝을 길게 늘어트리는 이진의 말투에 이영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영 씨도 모시고 나가주세요.”

이윽고 청아한 목소리가 이영에게 ‘유배’ 선고를 내렸다.

이영이 경호원에게 끌려 파티장 밖을 나갈 때 그 누구도 의견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때문에 고요함 속에 이영의 멀어지는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귀에 꽂혔다.

“이진, 너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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