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심형빈의 첫사랑이 99번째로 두 사람의 은밀한 영상들을 보내왔을 때, 이연우는 더 이상 그 사람의 마음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힘들게 일궈온 가정을 이혼으로 날려 버리기엔 너무 아까웠다. 그녀는 고고한 본처 따위가 아니었다. ‘왜 이혼하면 빈털터리로 나가야 하는가? 이혼하기 전에 몇 수백억은 뜯어내 보상받아야지.’ 이혼 후 그녀는 눈부시게 빛났고 수많은 구애자들이 몰려들었지만 그는 질투심에 미쳐 날뛰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심형빈은 이연우의 집에 쳐들어와 무릎 꿇고 빌며 재결합을 애원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방현준이 서 있었다. 바로 그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 있는 남자였다. 그는 그녀를 뼛속까지 아꼈고 그녀 역시 그를 온 마음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만을 바라보던 사랑하는 사람을 완전히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View More전통적인 결혼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부를 데리러 갈 때 길을 막으며 짓궂게 구는 절차 같은 것들이 없어 신부를 맞이하러 온 행렬은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없이 이어졌다.시끄럽고 어수선한 결혼식 장난 같은 것도 전혀 없었고 모든 것이 조화롭고 고요했다. 모두가 가장 진심 어린 축복만을 품은 채 이 두 사람이 평생토록 행복하게 함께 걸어가기를 바랄 뿐이었다.방현준은 각종 일을 모두 깔끔하게 정리한 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서둘러 결혼식장으로 향했다.그는 차 안에 앉아 눈빛에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고 마음은 이미 저 멀리 곧 이연우와 함께 손을 맞잡고 혼인 예식장에 들어서게 될 그곳으로 날아가 있었다.결혼식이 시작되었을 때, 박명주는 화려한 예복을 차려입고 신부 측 상석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부모님께 인사를 올리는 순서가 되자 방현준은 공손하게 박명주 앞으로 다가가서 장모님이라고 불렀다. 그 호칭에는 그가 박명주에게 품고 있는 존경심과 감사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무엇보다 지금껏 박명주가 이연우에게 쏟아 온 사랑은 한없이 깊었기 때문이다.박명주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이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그녀는 손을 뻗어 방현준의 손을 꼭 붙잡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당부했다.“방 서방, 두 사람 사이가 얼마나 끈끈한지는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내가 다 지켜봤어. 나는 자네가 우리 딸을 잘 돌봐 줬으면 해. 그 애는 나한테 아픈 손가락 같은 아이야. 꼭, 꼭 행복하게 해 줘야 해.”“장모님, 걱정하지 마세요.”방현준은 몸을 숙이며 진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제가 반드시 연우를 행복하게 할 겁니다. 제 평생을 다 바쳐 지킬 거예요. 조금의 서운함도, 조금의 억울함도 느끼지 않게 할게요.”그의 목소리는 크고 또렷했으며 박명주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하객에게도 엄숙한 서약을 전하는 것처럼 울려 퍼졌다.이어서 나정윤에게 인사를 올리는 순서가 되었다. 나정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고 눈빛에
방을 나서자, 서지훈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밤의 청량한 서늘함이 담긴 공기가 폐 깊숙이 가득 차올랐다가 이내 천천히 빠져나갔다.마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줄기 고민과 집착까지 함께 뿜어져 나온 것처럼 온몸이 한결 가벼워졌고 완전히 내려놓은 사람처럼 보였다.“당신이 아직 연우 씨를 다 잊지 못한 거 나도 알아요.”최나린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고 애써 감추려 했지만, 말끝에는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하지만 아마 앞으로는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거예요.”최나린은 자신이 아직 이 남자의 마음속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 조용히 결심했다. 어떻게 해서든 좋은 아내의 역할을 해내겠다고, 자신의 부드러움과 선함으로 서지훈 마음속에 있는 겉보기에는 굳건해 보이는 얼음산 같은 벽을 조금씩 녹여 가겠다고 말이다.하지만 서지훈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따뜻한 눈빛으로 최나린을 바라보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저 이제 미련 같은 건 없어요. 정말이에요. 그냥 연우 씨가 지금 이렇게 행복한 걸 보니까 저도 정말 기뻐요.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이 있는 거고 과거는 이미 지나간 거죠. 이제는 예전의 기억에만 매달려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말을 하면서 서지훈은 자연스럽게 최나린의 손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 행동은 마치 굳건한 약속을 전하는 듯했다.“우리 둘은 이미 결혼까지 했잖아요.”서지훈은 최나린의 손을 꼭 쥔 채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당연히 제가 책임지고 잘해야죠. 당신이랑 같이 지내면서 당신이 정말 좋은 여자라는 걸 진심으로 느꼈어요. 착하고, 다정하고, 마음도 잘 헤아려 주잖아요. 앞으로는 더 열심히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저는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요.”결혼한 뒤로 최나린이 아내로서 보이는 세심한 배려와 보살핌도,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
지나온 모든 일들이 두꺼운 고치처럼 그의 마음을 겹겹이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최나린과 함께 지내는 시간 속에서 그는 어느새 전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연 듯한 느낌을 받았다.서지훈에게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최나린은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한 줄기 빛처럼 조용히 스며들어 그의 마음 깊숙이 오래전부터 먼지 쌓인 채 봉인돼 있던 그 구석까지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최나린은 성격이 온화하고 선한 여자였다. 그녀의 눈길 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신기한 마력을 지닌 것처럼 원래 쇠처럼 단단했던 서지훈의 마음을 서서히 풀어내고 부드럽게 만들었다.함께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서지훈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앞으로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좋은 남편이 되어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사랑과 보살핌을 최나린에게 쏟겠다고 말이다.“사실 예전부터 한번 찾아뵙고 싶었어요.”최나린은 미소를 머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런데 그동안 연우 씨가 집에 안 계신 날이 많아서 저희도 함부로 찾아오기가 좀 어려웠어요.”최나린은 매우 단정하고 기품 있는 여자였다. 그녀도 이연우가 한때 서지훈이 좋아했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속에 질투나 불편함은 조금도 품지 않았다.처음부터 끝까지 태연하고 당당하게 행동하며 자신의 우아한 품격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얼마 전에 개인적인 일 때문에 잠깐 외국에 다녀왔어요.”이연우는 미소를 지으며 친근한 눈빛으로 대답했다.“이제 그 일도 다 정리돼서 앞으로는 다시 해외에 나갈 일은 없을 것 같아요.”“연우 씨,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최나린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두었던 가방에서 정성스럽게 포장된 작은 상자를 조심스럽게 꺼내서는 두 손으로 이연우에게 내밀며 말했다.“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이연우는 상자를 받아 조심스레 뚜껑을 열어 보았다. 순간, 눈부시게 아름다운 고급 맞춤 예복 한 벌이 시야에 들어왔다.그 옷은 재단이 매우 정교했고 전체적인 라인이 자연스럽고 유려해 마치 처음부터 이연우만을
이연우는 그 말을 들은 뒤에도 마음 한편에 여전히 한세영과 가족 사이의 일이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한세영의 말속에서 단호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미 스스로 선택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이것저것 캐묻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저 살며시 한세영의 손을 잡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우리 일은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한세영은 부드럽게 웃으며 이연우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넌 지금 결혼 준비만 잘하면 돼. 방현준 그 사람 꽤 괜찮은 남자야.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고 너를 지켜 줄 사람이야.”그렇게 말하는 한세영의 눈에는 잠시 부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자신의 결혼생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결혼이란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차갑디 찬 거래에 불과했다. 서로의 이해관계만 맞아떨어지면 이어졌다가도 틀어지면 순식간에 무너지는 관계였다.심지어 자신이 F국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조차 남편은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이혼 서류에 서명했고 붙잡지도, 말리지도 않았다. 마치 그들 사이에 처음부터 어떤 감정의 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두 사람 사이에는 애초에 사랑이라 부를 만한 감정은 없었고 남아 있던 것도 계산과 이익뿐이었다.“넌 지금 임신한 몸이니까.”한세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연우를 바라봤다.“몸부터 잘 챙겨야 해. 다른 건 전부 내려놓고 너무 마음 쓰지 말고.”말을 하다 보니 그녀의 생각은 어느새 자신이 임신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만 해도 그녀는 새 생명의 탄생을 손꼽아 기다리며 누구보다 기쁘고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하지만 운명은 너무도 잔인했다. 남편의 외도 상대가 일부러 일으킨 그 사고만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자신에게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었을 것이다.다른 엄마들처럼 아기를 품에 안고 웃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모든 꿈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남은 것은 지워지지 않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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