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서해인의 시점.“준혁 씨가 저를 부탁했다고 해도, 얌전히 ‘알겠어요, 부탁해요’라고 할 수는 없어요. 저는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이가 아니에요…… 준혁 씨가 뭐라고 하든, 제 일은 제가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요.” “해인 씨…….” “저더러 ‘보호받기만 하는 존재’로 있으라는 거라면, 준혁 씨도 시우 씨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거예요.” 분함과 슬픔, 그리고 최준혁을 향한 격렬한 분노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어쩌면 이것은 그저 성시우 씨에게 화풀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절대로 눈앞의 성시우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입술을 깨물며 견뎠다. 제멋대로 나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으로 지켰다고 생각하는 최준혁의 나약함과 안일함. 그리고 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품 안에 가두려는 성시우의 강압적인 태도. 두 사람 모두 나를 생각해서 그러는 것임을 알고 있어도, 그 마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 외로움과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아낌없이 온기를 건네려 하는 성시우를 매정하게 밀어낼 수도 없었다. 사고의 공포에 떨던 나를 지탱해 주고 진지하게 마주해 준 그의 호의는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해인 씨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최준혁 씨가 해인 씨를 포기한다고 해도, 저는 해인 씨를 혼자 두지 않을 거예요.” 성시우는 조용히 내 짐을 들고 천천히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성시우를 따라 세 걸음 뒤에서 걸었다. 뒷모습만으로는 표정을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섣불리 말을 걸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차에 올라탄 뒤에도 우리 사이에는 대화가 없었다. 차 안에 조용히 흐르는 음악이 평소보다 이상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성시우는 화가 난 것도, 냉담하게 구는 것도 아니었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거울 너머로 내 상태를 살피듯 애틋하고 다정한 시선을 보내왔다. 거절당했는데도 여전
서해인의 시점.“해인과 아이들을 부탁합니다.…… 최준혁 씨에게도 그런 부탁을 받았어요.”성시우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그 말이 차갑게 내 고막을 때렸다. 지척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숨이 막힐 만큼 달아올랐던 열기가 한순간에 얼어붙는 듯했다. 내 뺨에 닿아 있던 성시우의 손끝과, 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등에 둘러져 있던 팔의 감촉이 빠르게 현실감을 잃어 갔다.“……준혁 씨가요? 정말로…… 그렇게 말했나요?”쉰 목소리로 되묻는 것이 고작이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성시우는 내 놀람을 다정하게 감싸듯 애처로움이 담긴 온화한 눈빛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하지만 저는 최준혁 씨가 부탁하지 않으셨어도 해인 씨와 아이들을 지키고 싶었어요. 지킬 각오는 오래전부터 되어 있었어요. 그러니…… 제 곁에 있어 주세요. 그것이 제 바람이자, 최준혁 씨의 바람이기도 합니다.”최준혁의 바람이기도 하다――.그 한마디가 날카로운 칼이 되어 가슴 깊숙이 꽂혔다. 시야가 휘청이며 현기증이 일었다.'준혁 씨…… 왜? 어째서 그런 말을……?'어제저녁 병실에서 내 손을 꽉 붙잡은 채 흘리던 뜨거운 눈물은 거짓이었던 걸까.‘해인아……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네가 죽는 건 아닐까 싶어서…… 정말 무서웠어.’나를 힘껏 끌어안고 깨지기 쉬운 것을 다루듯 애틋하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던 최준혁. 최준혁의 안에서 타오르던 분노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그토록 강한 맹세.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전했던 말들이 겨우 하룻밤이 지났다고 모두 사라진 것일까?‘괜찮아, 해인아. 내가 여기 있어. 곁에 있을게.’어제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끌어안았을 텐데. 아버지들이 아무리 ‘최준혁과 엮이지 마라’라며 막아도, 나는 최준혁의 올곧은 온기를 믿고 싶었다. 그래서 주위에서 아무리 반대하고 아무리 위험한 어둠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이번에는 최준혁의 손을 놓지 않고 함께 싸우겠다고 이제 막 마음먹었는데.그런데도
서해인의 시점.최준혁이 떠난 뒤, 불안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병실. 고요하게 가라앉은 병실 안에서 나는 침대 옆에 놓인 가방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머리의 상처는 미세한 맥박과 함께 욱신거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선명하게 가슴을 파고든 것은, 떠나기 직전 최준혁이 보여 준 절망에 가득 찬 눈빛과 쓸쓸히 돌아서던 뒷모습이었다. '준혁 씨………….' "해인 씨."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성시우가 돌아왔다. 걸음은 조용했고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병실로 들어온 그의 분위기는 어딘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무겁고 뜨거운 공기를 두른 채, 조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시우 씨. 준혁 씨와 무슨 이야기를 하신 건가요?" 불안을 애써 감추며 묻자, 성시우는 내 앞으로 다가와 그대로 침대 가장자리에 천천히 걸터앉았다. 평소라면 이렇게 내게 가까이 다가올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 신사답게 한 걸음 물러선 자리에서 따뜻하게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성시우'였다. "최준혁 씨한테…… '이제 더 이상 해인 씨 앞에 나타나지 말아 달라'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네……?" "그리고 그분도 받아들이셨습니다. '해인과 아이들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며, 물러날 각오를 하신 것 같더군요." "그럴…… 수가……!"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놀람과 충격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그런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성시우의 길고 아름다운 손이 내 양어깨를 단단히 받쳐 주었다. "……해인 씨, 왜 그렇게까지 그 사람을 놓지 못하는 거예요." 성시우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언제나 맑고 청량했던 그의 목소리에는 처음 듣는 짙은 열기와 애틋한 슬픔이 배어 있었다. "시우…… 씨……?" "해인 씨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해인 씨를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눈앞이 새까매졌고 숨 쉬는 법조차 잊어버릴 것 같았어요…….
최준혁의 시점.무기질적인 병원 복도를 도망치듯 빠르게 걸었다. 구두의 마른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하지만 아무리 걸음을 재촉해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겨져 떠나지 않는 그 광경을 떨쳐 낼 수는 없었다.병실 문을 열기 직전 들려왔던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와, 성시우의 품에 조용히 안겨 있던 서해인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성시우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서해인의 가느다란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서해인도 놀란 기색은 보였지만, 성시우를 거부하려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해인 씨…… 정말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요.’'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소식을 들었다고……?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해인이 성시우에게 연락한 건가? 그래서 성시우가 데리러 온 거야? 게다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니…… 설마 이미 같이 살고 있는 건가……?'서해인의 상태가 걱정돼 견딜 수가 없어 밤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라도 조금 가져다주고 싶어 병문안 선물까지 사 들고 왔다. 그런데 나는 오늘이 퇴원일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내가 서해인의 인생에서 완전한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잔인할 수 없는 현실로 들이민 것만 같았다.'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어제 서해인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며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나 때문에, 내가 경솔하게 그녀를 불러내 사건에 휘말리게 한 탓에 또다시 서해인을 죽음의 위험으로 내몰았다는 생각에 자신의 무력함과 절망으로 미쳐 버릴 것 같았다.병실에서 서해인의 모습을 본 순간, 억눌러 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치솟아 체면도 잊은 채 그녀를 끌어안고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서해인도 그런 나를 거부하지 않고 다정하게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잃어버렸던 부부의 유대가 되돌아온 듯 달콤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 혼자만의 환상이었고, 다친 서해인이 잠시 보여 준 정에 불과
서해인의 시점.“준혁 씨…….” 목에서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발치에 나뒹군 고급 과일 전문점 종이봉투에서는 싱싱한 멜론과 젤리 컵 몇 개가 흘러나와 병실 바닥을 무정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최준혁은 그것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크게 뜬 그의 눈동자는 나와 성시우를 번갈아 격렬하게 헤매고 있었다. 어제 내 사고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걱정하며 가장 먼저 병실로 달려와 나를 힘껏 끌어안았던 최준혁.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려주었던 최준혁이――지금은 마치 배신당한 아이처럼, 처절한 눈빛으로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해인아……. 성시우 씨……? 왜, 여기에…….” 억지로 짜내듯 내뱉는 최준혁의 목소리는 극심한 혼란과 끝을 알 수 없는 절망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최준혁 씨. 오랜만입니다. 저는 오늘 해인 씨가 퇴원하셔서 모시러 왔습니다. 설마 대표님도 병문안을 오실 줄은 몰랐네요…….” 얼어붙은 듯한 어색한 침묵을 가장 먼저 깬 것은 성시우였다. 성시우는 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더니, 자연스럽게 나를 감싸듯 최준혁의 날카로운 시선을 가로막았다. 목소리는 평소처럼 부드럽고 온화했지만, 나를 감싸고 선 그의 모습에서는 여기서부터는 한 발짝도 지나가게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퇴원하러…… 왔다고요?” 최준혁의 시선이 성시우의 손에 들린 내 보스턴백과, 침대 옆에 가지런히 정리된 퇴원 짐으로 내려갔다. “왜 서 씨 가문 사람도 아닌 당신이 해인을 데리러 온 겁니까……?” 최준혁의 목소리와 말끝에는 미세한 가시가 배어 있었다. 하지만 성시우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미소를 띤 채 차분하게 대답했다.“최준혁 씨는 모르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해인 씨의 전담 운전기사인 전민수 씨가 어제 사고로 타박상을 입으셨습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으셨지만 안정을 위해 당분간 쉬시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온 겁니다.”“대신…… 왔다고요?”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서해인의 시점.다음 날, 오전 정밀검사를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어두컴컴한 검사실로 이동했다. MRI의 비좁은 장치 위에 누워 몸을 고정하자, 검사대가 천천히 새까만 원통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 위에서는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안대를 썼는데도 카메라 플래시처럼 번쩍이는 빛의 잔상이 느껴졌고, 귓가에서는 마치 공사 현장 한가운데 던져진 것처럼 가가가, 쿵쿵하는 거센 굉음이 불규칙하게 울리며 귀마개 너머로 머릿속을 흔들었다. 보통이라면 숨이 막힐 것 같은 그 소란스러운 공간 속에서, 나는 그저 어제저녁 병실로 달려왔던 최준혁의 온기를 필사적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해인아……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최준혁은, 깨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손을 대면서도 힘껏 나를 끌어안았다. 최준혁의 목덜미에서는 땀 냄새와 뜨거운 체온이 전해졌다. 그리고 정장 너머로 느껴지는 가늘지만 단단하게 다져진 팔의 감촉. 그 모든 것이 너무도 그리워 내 심장은 순식간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최준혁의 얼굴에서 눈물이 서서히 흘러나와 내 피부를 적셨다. 그 눈물은 얼어붙어 있던 내 가슴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따뜻한 물결처럼 천천히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준혁 씨, 정말 급하게 달려와 준 거구나. 약속에 늦은 데다 사고까지 났으니 걱정했겠지. 목소리도 조금 떨리고 있었어…….'내 손을 잡고 있던 그의 손끝도 줄곧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언제나 냉정하고, 기업의 대표로서 당당한 최준혁이 저토록 어린아이처럼 필사적으로 체면도 잊은 채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첫 번째는 이동현의 아파트에서 나를 데리고 나와 구해 줬을 때였다.그때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오는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아버지와 최준혁의 모습을 보고 안도한 순간 의식이 어둠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 자리에서 무너지려던 나를 누군가가 강한 힘으로 붙들어 안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