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혼을 제기한 다음 날, 위자료 100억 원이 적힌 서류에 서명한 뒤 아내는 사라졌다. 그녀가 실종된 후, 쌍둥이 임신 소식과 아이의 친부가 따로 있다는 소문, 그리고 정체불명의 해외 송금 문제까지 차례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아내가 했던 모든 행동이, 진심이 아닌 모두 거짓이었던 걸까?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우리가 부부였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재벌가 후계자의 깊은 후회가 뒤늦게 찾아왔다.
View More최준혁의 시점.일주일 뒤, 탐정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확인한 나는 숨을 삼키고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최사장님, 지난번에 의뢰하셨던 건 말입니다. 유미연 씨와 관련해 그 사촌 남성과 약속을 잡아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30년 전, 그 남성은 딱 한 번 유미연 씨의 아파트까지 찾아간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관에서 남자가 있다는 이유로 완강하게 만남을 거절당해 그대로 돌아갔다고 합니다……”“정말인가……! 그럼 그때 상대 남자를 목격한 건가?”“네. 하지만 문틈으로 잠깐 보였던 정도라 얼굴의 특징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보내 주신 네 형제의 사진도 보여 드렸지만, ‘음, 아닌…… 것 같은데’라며 굉장히 애매하게 대답했습니다. 벌써 30년 가까이 지난 일이니 당시의 기억과 사진만으로 특정하는 건 솔직히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상당히 유력한 증언을 얻었습니다. 유미연 씨가 당시 그 남자를 ‘유하’라고 불렀다고 합니다.”“유하……?” 수화기를 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네. 그 호칭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유미연 씨는 평소 가족들에게도 어딘가 서먹하게 대하며 일정한 거리를 두는 냉담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남자에게만큼은 평소 그 누구도 들어 본 적 없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진심으로 기쁜 듯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던 모습이 너무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유하라. 하지만 전보사 네 형제 중에는 이름에 ‘유’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은데.” “네, 맞습니다. 신태하, 신진하, 신동하, 신정하…… 본명으로 보나 일반적인 애칭으로 보나 ‘유’를 떠올릴 만한 사람은 없죠. 어쩌면 당시 그녀가 몰래 교제하던 상대는 전보사의 친척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신속하게 조사해 줘서 고마워. 그 밖에 사소한 것이라도 알아낸 건 없나?” “아뇨, 그 외에는 특별히
최준혁의 시점.유미연과 신 씨 가문 사이에 숨겨진 관계, 그리고 서아영의 진짜 혈연. 서아영의 아버지는 대체 누구였던 것인가――그 정체를 밝혀낸다면 이 일련의 사건의 전모가 단숨에 풀리지 않을까. 그렇게 확신한 나는 한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다.“최준혁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사실은……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최 사장님. 오랜만이네요. 지난번 차이령의 체포 건으로 연락 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때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게 부탁하실 일이란 게 어떤 건가요?”전화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박 씨 그룹 회장의 딸인 박하연 씨의 차분한 목소리였다.박하연은 현재 차이령에 의해 자살로 처리될 뻔했던 남편의 의문사와 관련해 차이령의 죄를 철저히 추궁하기 위해 법정에서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남편을 빼앗긴 유가족으로서의 강한 의지가 목소리 곳곳에서 전해져 왔다.“갑작스러운 부탁이라 죄송합니다만…… 예전에 전보사 파티에 참석했을 때 귀사 회장님의 아드님들을 소개받았는데, 다시 한번 그분들의 성함과 가능하다면 모두의 얼굴을 확실히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을 받을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최근에 촬영한 것과 조금 오래된 옛날 사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만……”“옛날 사진……도 말인가요?”박하연은 순간 의아하게 여겼는지 말투에 힘을 주며 되물었지만, 그 이상 깊이 이유를 캐묻지는 않았다. 내가 최 씨 홀딩스의 사업과는 다른 어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필요로 한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알겠어요. 찾아볼게요. 발견하는 대로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감사합니다. 무리한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그녀는 신속하게 대응해 주었고, 다음 날 아침 사장실로 출근하자마자 회사 컴퓨터로 메일함을 확인해 보니 이미 박하연에게서 답장이 도착해 있었다.‘부탁하셨던 사진을 첨부해서 보내드립니다. 한 장은 2년 전 친척들이 모였을 때 촬영한 것이고, 다른 한 장은 27년 전 제가 아직 어렸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첨부된
최준혁의 시점.‘신우석은 지금까지도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려 왔다. 그런 냉혹하고 비정한 신우석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서아영을 도망치게 하려 했다면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야…….’ 원하정과 신우석의, 부모와 자식의 유대를 넘어선 8년에 걸친 뒤틀린 동거 생활... 서해인의 친모인 한세연이 당한 참혹한 사고와, 목숨을 지키기 위해 남몰래 입양 보내진 심예련. 서아영이 해외 유학을 떠나기 전 신우석의 NPO 법인에서 받았다는, 상환 의무조차 없는 수상하고 정체불명의 장학금. 그리고…… 도주를 시도했던 서아영의 전 비서 차이령이 체포될 당시, 격렬한 증오를 드러내며 내뱉었던 “서아영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지시를 받아 서아영과 함께 도망치게 됐다”는 말. 지금까지 뿔뿔이 흩어져 있던 생각의 조각들이 무서운 속도로 하나의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의 끔찍한 가설이 떠올랐다. 심예련 씨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서해인을 더 이상의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나는 이 가설을 검증해야만 했다. “……회장님. 서아영의…… 유학 당시 장학금 수속을 전부 담당했던 사람은 유미연이었죠?” 다급한 내 목소리에 서 회장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그래, 맞네. 유학에 관한 준비와 자금 관리는 모두 유미연에게 맡겼고,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어. ……그게 왜 그러는가?” “……회장님, 실례되는 말씀이라는 걸 알면서도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유미연과 신 씨 가문 사이에 접점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예를 들면…… 유미연이 서 씨 가문에 시집오기 전의 교우 관계라든가, 신 씨 가문 사람들과 뒤에서 이어져 있었다든가, 서 회장님께서 알지 못하는 연결고리가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내 말을 들은 순간 회장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했다. 핏기가 가시더니 순식간에 얼굴이 흙빛으로 창백해졌다.“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준혁 군. 설마 유미연과 신 씨 가문이 뒤에서 연결되어 있다…… 자네는 정말
최준혁의 시점.서 씨 가문과 신 씨 가문의 악연, 아버지와 원하정의 관계. 이 모든 것이 오랜 세월을 거쳐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부모 세대에서 일어난 일들이 지금 나와 서해인, 그리고 서아영에게까지 덮쳐 오고 있었다.‘두 집안 모두 신 씨 가문과 연관이 있었다니, 이게 단순한 우연인 건가……? 아니면 모든 걸 알고 접근한 건가? 원하정 씨에게 이야기를 들은 신우석이 나와 서아영이 결혼한 사실을 알고 복수를 위해 서아영에게 접근한……? 아니, 서아영과 신우석은 서아영이 대학생이 될 무렵…… 결혼하기 훨씬 전부터 접촉하고 있었어. 그렇다면 목적은 서 씨 가문?’두 집안 모두 신 씨 가문과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절묘했다.‘원하정 씨에게 아버지와의 관계를 들으며 자란 신우석이 나와 서아영의 결혼을 알고 복수를 위해 접근한……? 아니, 신우석이 서아영에게 접근한 건 서아영이 대학생일 때야. 나와 해인이 결혼하기 훨씬 전부터 두 사람은 이미 연결되어 있었어. 그렇다면 처음부터 표적은 최 씨 가문이 아니라 서 씨 가문이었다는 건가……?’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가설들을 하나로 이어 붙이려 애쓰고 있을 때, 서 회장이 조용히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허리를 곧게 폈다. 그 눈에는 조금 전까지의 후회와는 다른, 냉철하면서도 비장한 빛이 깃들어 있었다.“준혁 군. ……역시 한 가지 더, 지금 이 자리에서 자네에게 이야기해 두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네. 아니, 반드시 이야기해야만 해.”“반드시 이야기해야 할 일이라니요? 회장님……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회장은 깊게 숨을 내쉰 뒤 결심한 듯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심예련 그 아이에 관한 일이네.” “심예련 씨……? 예련 씨가 왜요? ……그런데 회장님께서는 그분을 알고 계십니까?” 강성환의 연인이자 지방에서 제차업을 하는 그녀를 어째서 회장이 알고 있는 걸까. 서해인이 이야기를 했다고 해도, 왜 그것을 내게 알려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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