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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강로이
엘리베이터 안.

유진우는 낙담한 눈길로 가슴팍의 옥 펜던트를 내려다보았다.

진작 예상은 했으나 막상 이혼하니 좀처럼 기분이 후련하지 못했다.

그가 바라던 행복은 아주 단순했다. 하루 세끼를 함께하고 소소하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뿐이었다.

다만 이제야 알게 됐다.

소소함도 죄라는 것을.

소소한 행복에 흠뻑 빠진 3년이란 세월, 이젠 그만 깨어날 때가 되었다.

“띠리링...”

한창 넋 놓고 있을 때 휴대폰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진우 씨, 안녕하세요. 저는 강능 상회의 안병서예요. 오늘이 진우 씨와 청아 씨의 결혼기념일이라면서요. 제가 특별히 두 분께 선물을 준비했는데 언제 시간이 되실지 모르겠네요.”

“고마워요, 병서 씨 마음만 잘 받을게요. 앞으론 이런 거 준비하실 필요 없어요.”

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네?”

안병서는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문득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회장님, 또 다른 용건 남으셨나요?”

유진우가 화제를 돌렸다.

“그게 사실... 대표님께 부탁드릴 사연이 하나 있어서요.”

안병서가 어색한 듯 마른기침을 해가며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제 친구가 요즘 이상한 병에 걸려서 온갖 명의를 수소문해 봐도 치료가 잘 안돼서요. 실례지만 진우 씨가 한번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회장님도 제 룰을 잘 알고 계실 텐데요.”

“물론이죠! 빈손으로 감히 부탁을 청하겠나요. 제 친구 집에 마침 진우 씨가 원하던 용심초가 하나 있어요. 도와만 주신다면 이 희귀한 약재를 보상으로 드리겠습니다.”

안병서가 대답했다.

“진짜예요?”

유진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니까요!”

“좋아요, 그럼 직접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유진우가 바로 허락했다.

그는 돈과 보석 따위에 아무런 흥미가 없지만 일부 희귀한 약재는 꿈에도 오매불망 그릴 정도였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목숨을 구해야 하니까!

“고마워요, 진우 씨. 지금 바로 분부해서 진우 씨 모시러 가겠습니다!”

안병서가 한시름 놓인 듯 웃으며 말했다.

강능 3대 거물 중의 일인인 상회 회장 안병서는 만인이 우러러보는 인물이지만 유진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말았다...

“운이 따라주네. 희귀한 약재를 또 하나 얻었어. 이제 다섯 개만 더 찾으면 돼. 아직 시간이 될 거야.”

유진우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두웠던 그의 마음이 조금은 환해졌다.

“딩동!”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유진우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회사 대문을 나설 때 익숙한 두 사람의 실루엣과 마주쳤다.

한 명은 이청아의 엄마 장경화이고 다른 한 명은 이청아의 남동생 이현이었다.

“어머님, 이현 씨, 여긴 어쩐 일이세요?”

유진우가 먼저 인사를 올렸다.

“너랑 청아 이혼 다 했어?”

장경화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네.”

유진우가 억지 미소를 지었다.

“이 일은 청아랑 상관없어요. 다 제 탓이니까 청아 원망하지 말아요.”

그는 서로 훈훈하게 마무리 짓고 싶어 이렇게 얘기했지만 정작 그의 말을 들은 장경화가 코웃음 치며 쏘아붙였다.

“당연히 네 문제지! 우리 청아 성격은 내가 잘 알아. 네가 미안한 짓을 저지르지 않는 한 걔는 절대 이혼 얘길 꺼낼 애가 아니야!”

“네?”

유진우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이건...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인가?

“어머님, 3년 동안 제가 어떻게 해왔는지 똑똑히 지켜보셨을 겁니다. 저는 청아한테 잘못한 거 전혀 없어요.”

유진우가 말했다.

“쳇! 사람 마음은 갈대야. 네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누가 알겠어? 아무튼 우리 딸이 너랑 이혼하는 건 틀림없이 네 문제야! 꼴 좀 봐, 우리 청아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해?”

장경화가 험상궂은 얼굴로 말했다.

“어머님,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유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3년 전에 그가 선뜻 손 내밀지 않았다면 이씨 일가도 오늘 같은 성과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말이 심해? 그럼 또 어쩔 건데? 내 말이 틀린 것 하나 있어?”

장경화가 양쪽 팔을 껴안고 쏘아붙였다.

“그만해 엄마! 이 인간과 쓸데없는 얘기할 필요 없어!”

이때 옆에 있던 이현이 불쑥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이봐 유진우! 우리 누나랑 이혼하는 건 내 알 바 아니지만 그 돈은 반드시 내놔야 할 거야!”

“돈이라니? 무슨 돈?”

유진우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시치미 좀 그만 떼! 내가 모를 줄 알아? 누나가 당신한테 이혼 보상 비용으로 16억 원을 줬잖아!”

이현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맞아! 그건 우리 청아 돈인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가져가? 당장 내놔!”

장경화도 손 내밀어 카드를 뺏을 기세였다.

“그 16억 원은 일 전 한 푼 안 가졌어요.”

유진우가 부인했다.

“뭔 개소리야! 누가 16억 원을 마다해? 우리가 정말 바보로 보여?!”

이현은 아예 믿지 않았다.

“유진우, 눈치가 없다면 고분고분 내놓는 게 좋을 거다. 내가 화내는 꼴 보고 싶어?”

장경화가 으름장을 놓았다.

“못 믿겠다면 청아한테 전화해 봐요.”

유진우는 더는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왜? 우릴 겁 주는 거야? 내 말 똑똑히 들어, 이혼이 누구 탓이든 넌 반드시 맨몸으로 나앉아야 할 거야. 일전 한 푼도 챙길 생각 하지 마!”

장경화가 사납게 쏘아붙였다.

“엄마! 이 인간이 끝까지 잡아떼니 우리 그냥 몸 뒤져요!”

이현은 살짝 귀찮은 듯 바로 그의 옷 주머니를 뒤지려 했다.

장경화도 곧바로 아들을 따라나섰다.

“어머님, 일을 꼭 이 지경으로 만드셔야겠어요?”

유진우가 미간을 구겼다.

이제 막 이혼 서류에 서명했는데 이씨 일가 사람들이 이 지경으로 피 말릴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그들은 끝까지 막무가내로 나왔다.

“X발! 누가 네 어머님이야? 그 입 닥쳐! 네 꼴 좀 봐! 우리랑 어울린다고 생각해?!”

장경화가 싫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말하면서도 여전히 그의 몸을 수색했다.

한참을 뒤져도 두 사람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젠장,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이 녀석이 정말 돈을 갖지 않은 거야?”

이현은 썩 내키지 않았다.

이때 그의 눈가에 서늘한 빛이 감돌더니 갑자기 유진우의 가슴팍에 걸린 옥 펜던트를 잡아당겼다.

“이건 우리 누나가 걸고 다니던 옥 펜던트잖아! 왜 여기 있어? 네가 훔친 거지?!”

이현이 의심 어린 눈길로 물었다.

“이건 우리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보물이야. 당장 돌려줘!”

유진우가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돈을 일 전 한 푼 갖지 않아도 엄마가 남긴 유품만큼은 반드시 돌려받아야 했다!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보물? 이 물건이 매우 값지다는 거네?”

이현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유진우, 넌 우리 집에서 3년 동안 먹고 자고 누리면서 살았어. 이 옥 펜던트는 이자로 셈 치고 우리가 가져갈게!”

장경화가 곁눈질하며 아들과 함께 자리를 뜨려 했다.

“멈춰 당장!”

유진우가 이현의 팔을 확 잡고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펜던트 돌려줘!”

“아... 아파, 아프다고! 이 손 안 놔!”

이현은 손목이 부러질 듯 아팠다.

“돌려줘!!!”

유진우가 또박또박 말했다.

“X발, 까짓거 버리고 말지. 절대 너 안 줘!”

힘으로 벗어나질 못하자 이현도 화가 치밀어 옥 펜던트를 바닥에 가차 없이 내팽개쳤다.

“짤그락!”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옥 펜던트는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이 광경을 본 유진우는 순간 벼락을 맞은 듯 사색이 되었다.

이건 그의 엄마가 남겨준 유품이다!

이번 생에 그가 유일하게 간직할 수 있는 보물이다!

“감히 나한테 손을 대? 다 망가뜨리고 말 거야!”

이현이 손목을 내리 털며 계속 욕설을 퍼부었다.

“뿌드득...”

유진우가 서서히 두 주먹을 꽉 쥐자 뼈마디에서 뿌드득 소리가 났다.

그의 서늘한 두 눈은 혈안이 돼 있었다.

“빌어먹을!”

유진우는 끝내 참지 못하고 이현에게 가차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철썩!”

주먹에 맞은 이현은 눈앞이 어질거려 두어 바퀴 돌더니 바닥에 툭 쓰러졌다.

그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버릇없는 자식, 네 어미가 가르치지 못했으면 내가 직접 가르쳐줄게!”

유진우는 이현의 머리를 확 잡고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의 뺨을 정처 없이 후려쳤다.

“찰싹, 찰싹, 찰싹...”

연이은 청아한 소리와 함께 이현의 얼굴이 금세 시퍼렇게 멍들었고 입가에 피가 흥건해졌는데 그 모습이 실로 처참할 따름이었다.

“감히 내 아들을 때려? 너 오늘 죽어야겠다!”

장경화가 고함을 지르며 덮쳐들려고 했다.

“꺼져!”

이때 유진우가 고개 돌려 힐긋 노려봤다.

악마와도 같은 사악한 그 눈빛에 장경화는 순간 겁에 질려 꼼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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