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치고 나서 한마디 보탰다.“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봬요.”그녀는 염성민이 자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눈치챘다.접견실에서 마주 보고 있는 와중에도 비록 최대한 예의를 차렸지만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를 고스란히 느꼈다.어쨌거나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법이다.그녀도 단지 협력 상대를 찾고 있을 뿐, 어디까지나 이익이 최우선인지라 굳이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이내 상대방의 무례한 태도에도 모른 척하며 미소를 지었다.“네, 그러죠.”말을 마치고 김태훈의 비서를 향해 부탁
염성민이 물었다.“경 대표님이 오셨어요?”“네.”경민준을 언급하자 임지유의 말투가 한결 누그러졌다.“아직 완치된 게 아니라서 걱정되는지 데리러 오겠다고 하네요.”말을 이어가는 와중에 연미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러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저희는 먼저 가볼게요. 다음에 봬요.”염성민은 임지유를 위해 연미혜에게 따지려고 했다.하지만 신경조차 안 쓰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상종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 굳이 아부를 떨지 않았다고 여겼다.도도하고 직설적인 성격마저 염성민에게는 개성과 매력으로 다가왔다.따라서 연미혜
단지 빛 좋은 개살구라서 아쉬울 따름이다.순간 흥미를 잃은 그는 곧장 시선을 돌렸다.염성민도 연미혜의 미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하지만 정범규와 비슷한 생각인지라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윤신재는 연미혜 같은 스타일이 꽤 마음에 들었다.결국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염성민의 반응을 보고 의아한 듯 물었다.“왜 그래요? 반응이 영... 설마 또 성민 씨의 심기를 건드렸어요?”지현승도 뒤늦게 눈길을 돌렸다.염성민은 며칠 전 넥스 그룹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낱낱이 털어놓았다.윤신재가 말했다.“겉보기에 전혀 그런 사
경민준이 말했다.“난 괜찮아. 다녀와.”이내 하승태가 대답했다.“알았어.”그러고 나서 다가가 연미혜와 마주 보았다.“김 대표님, 미혜 씨.”그를 발견한 순간 김태훈의 얼굴에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하 대표님, 안녕하세요.”연미혜도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이때, 염성민이 다가왔다.다만 하승태와 달리 오로지 김태훈과 인사를 나눴다.“안녕하세요.”김태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오셨어요? 미안해요. 방금 너무 바빠서 인사가 늦었네요.”염성민은 지난번에 만났을 때보다 그의 태도가 훨씬 더 시큰둥하
표정이 살짝 변한 하승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연미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연미혜를 바라보는 하승태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김태훈은 점점 더 흥미가 생긴 듯 몸을 굽혀 오버스러운 동작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아름다운 연미혜 씨, 저와 춤 한 번 추지 않을래요?”김태훈이 적극적으로 요청하자 춤을 출 줄 아는 연미혜가 웃으며 말했다.“영광입니다.”연미혜의 대답에 김태훈이 그녀의 손을 잡고 댄스장으로 들어갔다.하승태도 앞에 있는 여자에게 젠틀하게 손을 내밀었다.연회장에 들어가는 연미혜와 김태훈은 저도 모르게 경민준과 임지유를
“미혜요?”지현승이 멈추었다.“네.”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현승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옆에 있던 염성민, 정범규, 하승태, 그리고 임지유와 경민준까지 모두 연미혜의 움직임을 눈치챘다.무도장에서 파트너를 바꾸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다.하지만 연미혜와 지현승은... 외모만 봐도 너무 잘 어울렸다.염성민이 눈살을 찌푸렸다.하승태가 잠시 움직임을 멈추자 그의 파트너가 하승태를 바라보았다.“하승태 씨?”하승태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죄송합니다.”“괜찮아요.”무도장에서 파트너를 바꾸는 것은
정신을 차린 연미혜는 바로 경민준을 밀어내려 했다.“긴장 풀어.”경민준은 연미혜가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을 예상한 듯 아무렇지 않은 듯한 말투로 그녀의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더 줬다.“왜 이래!”소란을 피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연미혜는 결국 경민준의 품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싶지도 않았다.아무 이유 없이 굳이 입방아에 오를 필요가 있겠는가.경민준이 아마도 할 말이 있기에 파트너를 바꾼 것으로 추측한 연미혜는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하고 싶은 말이 뭔데?”
연미혜는 순간 멈칫했다.지현승은 연미혜가 그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기에 다시 춤을 신청했다.지현승은 조금 전의 일을 사과하고 좋은 인맥으로 이어나가기 위해 진심 어린 마음으로 연미혜를 향해 춤을 추자고 요청했다. 그러자 연미혜도 그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이미 댄스장을 나온 하승태는 연미혜와 지현승이 다시 춤을 추는 것을 보고는 눈빛이 어두워졌다.지현승이 다시 연미혜에게 춤을 신청한 것을 본 임지유는 조금 놀랐다.두 사람을 발견한 경민준도 눈썹을 치켜올리며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지만
연미혜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녀는 짧고 단호하게 메시지를 보냈다.[바빠. 그리고 약속 지켜. 다솜이 외할머니댁엔 절대 못 가게 해.]잠시 뒤, 경민준에게서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알겠어.]이후로 그는 더 이상 아무 연락도 해 오지 않았다.어린이날 연휴 다음 주말은 마침 주말이었다.그날 오후, 연미혜는 가족들과 함께 관광지에서 래프팅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때 차예련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는데, 사진 속 인물은 임지유였다.차예련은 지금 쿠바나에 머무르며 패션쇼 준비로 한창이었다.사진을 본 연미혜는 메시지를 보냈다.[
‘넥스 그룹이랑 세인티가 해지한 건 알고 계신가요? 교수님의 제자인 김태훈 대표가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재능을 믿고 우쭐대는 것도 모자라, 사사건건 여자한테 휘둘려서 점점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던데요. 혹시 그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염성민은 막 입을 열려다 말았다.곁눈질로 경민준이 있는 걸 본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사실 이 얘기는 전부 임지유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임지유의 옆에 경민준이 있었다.염성민의 입장에서 굳이 나서서 이런 말을 할 명분이 없었다.괜히 앞장서서 이런
임지유는 곧바로 해약서에 서명했다.배상금은 계약서에 명시된 기한 내에 전액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이 소식을 들은 김태훈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생각보다 행동이 빠릿빠릿해서 좋은걸?”해약 이후의 처리 절차는 변호사가 맡았고, 임지유가 서명한 뒤로는 김태훈과 연미혜 모두 더 이상 그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이삼일 뒤, 유명욱이 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두 사람을 불러 모았다. 한동안 얼굴을 못 본 터라, 사제지간에 오붓하게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연미혜와 김태훈은 회사를 나와 약속 장소인 식당에 도착했는데, 식당 입
임지유는 계약 해지를 결정한 뒤, 곧바로 경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경매 날에 김태훈 어머님이랑 얘기하다가, 내가 말을 좀 잘못했어. 그걸 사모님이 딱 집어냈고... 게다가 김태훈 쪽은 아예 세인티랑 엮일 생각이 없어 보여. 만약 소송으로 가서 이긴다고 해도 나중에 또 딴지를 걸어 협력 관계가 틀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담담히 결론을 내렸다.“그쪽이 처음부터 협력 의지가 없었다면, 괜히 시간 끌기보다 지금 깨고 다른 파트너 찾는 게 낫다고 봐.”경민준은 그녀가 무슨 말을 실수했는지 구체적으로 묻
‘김태훈 어머니가 연미혜를 좋아한다고? 그게 말이 돼? 진짜라면... 어제 김태훈 어머니한테 했던 말들은 대체...’임지유는 갑자기 이미연이 대화 도중 갑자기 통화하러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머릿속에 전화를 받는다며 자리를 비운 장면이 스치자, 묘한 불안감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다.그녀의 낯빛이 안 좋아진 것을 본 경민준이 곁에서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그 말에 임지유는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나 괜찮아.”그날 저녁, 임지유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이미연이 연미혜를 마음에 들어 하고
다음 날 아침, 경민준은 임지유, 경다솜과 함께 일찍부터 경기장에 도착해 있었다.잠시 후, 하승태와 수연도 도착했다.경다솜이 그들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승태 삼촌, 안녕하세요!”“수연아, 와줘서 고마워!”수연이 경다솜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이제 곧 경기 시작되잖아. 다솜아, 많이 긴장돼?”경다솜은 고개를 저으며 또렷하게 말했다.“긴장되긴, 당연히 긴장 안 되지!”하승태는 다른 일정이 있어 경기엔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그는 수연이를 데려다주러 잠깐 들른 것이었다.경민준이 그의 사정을 알고 먼저 말했다.
김태훈의 부모님이 자리를 뜬 뒤, 경민준이 물었다.“사모님이랑 얘긴 잘했어?”임지유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런 것 같아. 고마워.”임지유는 속으론 생각했다.‘방금 사모님 얼굴 보니까 연미혜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지는 것 같던데....’사실 세인티와 넥스 그룹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이미연도 이미 알고 있었다. 김태훈이 미리 설명을 해뒀기 때문이었다.조금 전 임지유와 이야기를 나눌 때 울린 전화는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대화를 미리 녹음해 두고, 자리를 비켜선 후 멀리서 경민준과 임지유 쪽을 슬쩍
임지유는 며칠은 기다려야 소식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 경민준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김 회장님이랑 사모님께서 내일 경매 행사에 참석하신대. 우리도 같이 가보자.”그 말에 임지유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좋아.”다음 날 저녁, 경매장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민준은 임지유를 데리고 곧장 김태훈의 부모님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직접 임지유를 두 사람에게 소개했다.김태훈의 부모는 이미 경민준과 연미혜의 관계를 알고 있었고, 연미혜와 임지유 사이에 있었던 일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지현승이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염성민이 다시 물었다.“성민아, 철호 아저씨나 아버지 말고, 네가 아는 사람 중에 유명욱 교수님 연락처 아는 사람 또 없어?”“없는 것 같아.”지현승이 대답했다.그렇게 말한 뒤,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말을 이었다.“근데, 너 전에 임지유 씨가 유명욱 교수님을 만난 적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마 지유 씨는 교수님이 연락처를 갖고 있을 것 같은데? 교수님한테 직접 연락해서 해결될 일이라면, 임지유 씨가 알아서 연락하지 않았을까?”염성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