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습니다!”경다솜이 기쁜 얼굴로 얼른 위층으로 올라갔다.방금 컴퓨터를 끈 연미혜가 물건들을 정리한 후 안방을 나서려던 찰나 경다솜이 연미혜에게 달려와 안겼다.“엄마!”“응.”연미혜는 경다솜의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안아주지는 않았다.하지만 이를 눈치채지 못한 경다솜은 기쁜 마음으로 연미혜에게 말을 걸었다. 이때 위층으로 올라오는 경민준의 발소리에 연미혜가 고개를 돌렸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경민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고 연미혜도 상대적으로 평온한 듯했다. 연미혜는 계속 재잘거리는 경다솜을 향해 말했
연미혜는 저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맴돌았고 머릿속은 순간 멍해졌다.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급히 말했다.“고마워, 그럼...”‘조건이 뭐야’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경민준이 담배를 아래로 내리더니 다른 한 손으로 연미혜의 눈가에서 막 흘러나온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일찍 쉬어.”멍해진 연미혜는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경민준의 뒷모습만 바라봤다.일찍 쉬라는 경민준의 말뜻은... 오늘 밤 연미혜더러 여기서 묵으라는 것인가?연미혜가 비록 나가서 살지만 두 사람이 아직 정식으로 이혼하지 않았기에
노현숙은 연미혜를 나무라는 듯 말하더니 손자를 향해 눈썹을 찌푸렸다.하지만 경민준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노현숙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반찬을 짚어 연미혜의 그릇에 올려주었다.연미혜가 말했다.“감사합니다.”노현숙은 보신탕 재료를 많이 가져왔다고 말하며 저녁 식사 후에 연미혜와 경민준에게 몸보신을 할 수 있도록 몇 개 재료를 선택해 보신탕을 해주겠다고 했다.연미혜는 거절하기 어려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젊었을 때 양주시에서 고생 좀 했던 노현숙은 보신탕을 잘 끓였다. 식사 후, 노현숙은 직접 사람들을 시켜서 연미혜와 경민준
연미혜는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약간 어색하긴 했지만 지나치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두 사람은 부부였고 볼 것 안 볼 것 다 본 사이였기에 상관없었다.결혼한 후에도 연미혜는 경민준이 항상 그녀를 사랑해주길 바랐지만 경민준을 유혹하려고 일부러 노력한 적은 없었다.물론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었지만 경민준에게는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그래서 평소 집에 있을 때면 기본적으로 넉넉한 칼라의 상하의 세트로 된 평범한 잠옷을 입었다.지금 입고 있는 상의 또한 캐쥬얼한 스타일인 데다가 길이도 꽤
게다가 그런 약이었다니...하지만 약리학을 알고 있는 경민준은 노현숙의 생각을 간파한 듯 어젯밤 보양식을 마시지 않은 것 같았다.노현숙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던 연미혜는 눈살을 찌푸렸다. 연미혜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노현숙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가끔은 너무 많이 아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야, 아이고... 난 손자 한 명 더 갖고 싶은데... 미혜야, 시간이 되면 민준이랑 더 노력해봐, 알겠니?”연미혜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어제 경민준이 그녀를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연미혜는 두 사람이 더 이
여기까지 생각한 연미혜는 순간 목구멍이 씁쓸했고 차 안에 있는 것이 답답해졌다.시선을 돌리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려 했지만 버튼을 누르기 직전 손을 멈췄다.그러고는 결국 버튼을 누르지 않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얼마나 지났을까, 경다솜의 학교에 도착했다.연미혜는 차에서 내려 경다솜을 학교 문 앞까지 데려다 주었지만 경민준은 차 안에 앉은 채 꼼짝달싹하지 않았다.경다솜이 말했다.“아빠는요...”“아빠는 일이 있나 봐.”“네...”이전에 경민준과 임지유가 경다솜을 학교에 데려다 줄 때 경민준은 항상 임지유와 함께
경민준도 있었기에 연미혜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았다.임지유가 김태훈과 인사하기 위해 웃으며 걸어왔다.“김 대표님, 이런 우연이 있네요. 여기서 또 만나다니.”김태훈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그러게요. 정말 우연이네요.”“안 그래도 전부터 김 대표님에게 식사 한 번 대접하고 싶었는데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했어요.”“지유 씨, 그런 걱정 안 해도 돼요. 지유 씨가 바쁜 건 저도 알고 있어요.”그렇지 않으면 처음 만나고 나서 한 달이 지났는데도 넥스 그룹에 출근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임해철도 김태훈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연미혜와 경민준이 집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노현숙은 연미혜가 정말로 경민준의 차를 타고 돌아온 것을 보고 나서야 안심하고 방으로 돌아갔다.위층으로 올라간 연미혜는 연창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연창훈과 통화를 마치자마자 김태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30분 정도 통화를 한 후 방으로 돌아온 연미혜는 경민준이 이미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기대어 책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연미혜가 방으로 들어오자 경민준은 책에서 시선을 돌려 그녀를 흘끗 보고는 다시 책에 집중했다.연미혜도 아무 말 없이 샤워를 하
캐벳 스미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내 박사 과정 학생, 임지유입니다.”그는 임지유 외에도 네댓 명의 학생들을 데려왔는데, 그중 임지유만이 유일한 동양인이었다.임지유가 캐벳 스미스의 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현장에선 감탄과 부러움이 쏟아졌다.“세상에, 스미스 교수님 박사 과정 학생이라니 완전 대단한데?”“그런데 저렇게 예쁘기까지 해? 신이 모든 걸 다 줬네. 너무 불공평해!”“더 기가 막힌 건... 저 여자가 경민준의 여자 친구라는 거잖아.”“헐... 진짜 비교할 게 못 되네. 나 같은 인생은 어떡하라고...”순식간
이틀 뒤, 김태훈은 서원시에서 열리는 국제 인공지능 대회에 참석했다.지난해의 기술 박람회와 마찬가지로 이번 행사 역시 업계 관계자들이 AI 관련 최신 동향을 파악하고 기술을 교류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이번에 그와 함께한 일행은 연미혜, 그리고 최근 넥스 그룹에 새로 합류한 구진원을 포함한 몇몇 엔지니어들이었다.구진원을 비롯한 신입 직원들을 함께 데려온 이유는 아직 이들이 회사의 핵심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술 유출에 대한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서원시에 도착한 뒤, 행사장에 들어서자 이미 내부
구진원은 결국 연미혜와 함께 래프팅을 타볼 기회를 잡지 못했다.하지만 저녁 무렵, 그는 또 한 번 ‘우연히’ 연미혜와 연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쳤다.그녀의 외삼촌 연창훈과 외숙모 하여진은 반갑게 인사하며, 그와 그의 친구에게 같이 식사하자고 흔쾌히 자리를 권했다.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구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연창훈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근데 어쩐 일이에요? 갑자기 도원시로 내려올 생각을 다 하고...”구진원은 젓가락을 잠시 멈췄다.도원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가 순간 머릿속을 스쳤던 그는 짧게 숨을 고르고
‘경민준 씨는 바쁘다며 다솜인 못 챙긴다더니, 정작 임지유랑은 같이 있고?’그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연미혜는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그보다 먼저, 경다솜이 해맑게 말했다.“엄마, 조금만 더 일찍 전화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헬기 타고 있을 때 영상 통화했으면 진짜 멋지게 보여드릴 수 있었을 거예요!”그 말에 연미혜는 조심스럽게 웃었지만, 경다솜이 이번 여행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져 더는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그럼에도 마음 한쪽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가슴안에 찜찜함이 또 하나 차곡히 쌓였다.경다솜은
연미혜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녀는 짧고 단호하게 메시지를 보냈다.[바빠. 그리고 약속 지켜. 다솜이 외할머니댁엔 절대 못 가게 해.]잠시 뒤, 경민준에게서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알겠어.]이후로 그는 더 이상 아무 연락도 해 오지 않았다.어린이날 연휴 다음 주말은 마침 주말이었다.그날 오후, 연미혜는 가족들과 함께 관광지에서 래프팅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때 차예련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는데, 사진 속 인물은 임지유였다.차예련은 지금 쿠바나에 머무르며 패션쇼 준비로 한창이었다.사진을 본 연미혜는 메시지를 보냈다.[
‘넥스 그룹이랑 세인티가 해지한 건 알고 계신가요? 교수님의 제자인 김태훈 대표가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재능을 믿고 우쭐대는 것도 모자라, 사사건건 여자한테 휘둘려서 점점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던데요. 혹시 그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염성민은 막 입을 열려다 말았다.곁눈질로 경민준이 있는 걸 본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사실 이 얘기는 전부 임지유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임지유의 옆에 경민준이 있었다.염성민의 입장에서 굳이 나서서 이런 말을 할 명분이 없었다.괜히 앞장서서 이런
임지유는 곧바로 해약서에 서명했다.배상금은 계약서에 명시된 기한 내에 전액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이 소식을 들은 김태훈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생각보다 행동이 빠릿빠릿해서 좋은걸?”해약 이후의 처리 절차는 변호사가 맡았고, 임지유가 서명한 뒤로는 김태훈과 연미혜 모두 더 이상 그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이삼일 뒤, 유명욱이 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두 사람을 불러 모았다. 한동안 얼굴을 못 본 터라, 사제지간에 오붓하게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연미혜와 김태훈은 회사를 나와 약속 장소인 식당에 도착했는데, 식당 입
임지유는 계약 해지를 결정한 뒤, 곧바로 경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경매 날에 김태훈 어머님이랑 얘기하다가, 내가 말을 좀 잘못했어. 그걸 사모님이 딱 집어냈고... 게다가 김태훈 쪽은 아예 세인티랑 엮일 생각이 없어 보여. 만약 소송으로 가서 이긴다고 해도 나중에 또 딴지를 걸어 협력 관계가 틀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담담히 결론을 내렸다.“그쪽이 처음부터 협력 의지가 없었다면, 괜히 시간 끌기보다 지금 깨고 다른 파트너 찾는 게 낫다고 봐.”경민준은 그녀가 무슨 말을 실수했는지 구체적으로 묻
‘김태훈 어머니가 연미혜를 좋아한다고? 그게 말이 돼? 진짜라면... 어제 김태훈 어머니한테 했던 말들은 대체...’임지유는 갑자기 이미연이 대화 도중 갑자기 통화하러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머릿속에 전화를 받는다며 자리를 비운 장면이 스치자, 묘한 불안감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다.그녀의 낯빛이 안 좋아진 것을 본 경민준이 곁에서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그 말에 임지유는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나 괜찮아.”그날 저녁, 임지유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이미연이 연미혜를 마음에 들어 하고